<뉴스앤조이>가 '합동복음 총회장 장재형 목사 통일교 전력 논란①'을 보도한 직후, 장재형 목사에게 연락이 왔다. <뉴스앤조이> 기사에 대한 장재형 목사의 입장을 정리한 '반론① "순회전도단은 원리 연구하는 모임"'을 삭제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뉴스앤조이>가 기획한 기사가 모두 나간 후 반론의 기회를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에 <뉴스앤조이>는 장 목사의 의견을 존중하여 해당 기사를 삭제했다. <뉴스앤조이>는 장 목사가 반론을 원할 경우 언제든지 기회를 제공할 방침이다. 아래 기사에 나오는 장재형 목사의 견해는 그동안 4차례 대화에서 장 목사가 펼쳤던 주장을 토대로 구성한 것이다(편집자 주).

'합동결혼식' '원리연구회' '신촌학사장' '대학순회전도단장' '국제기독학생연합회 사무국장' 등으로 이어져오던 장재형 목사의 이력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성화신학교(현 선문대학교)로 옮겨진다. '선문대학교30년사 편찬위원회'가 2002년 4월 펴낸 「선문대학교 30년사」 134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선문대학교 설립준비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던 장재형 씨가 이 소식을 접하고 곧장 윤세원 준비위원장의 이름으로 설립자(문선명 교주를 지칭·편집자 주)께 보고를 하였다."

▲ 「선문대학교 30년사」 내용 중 장재형 목사와 관련된 부분.

"설립자의 염원을 알고 있는 장재형 씨(후일 교수)는 본격적으로 성화신학교를 인수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으로서 천안시 삼룡동에 자리한 평지도 아닌 산에다가 대학을 짓는다는 것은 무리한 것으로 비쳐졌기에 통일교 내에서도 회의적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래서 장재형 씨는 자신의 집을 팔아서 기금을 보태기도 하였다. 그는 진실로 선문대학교가 있게 하는데 큰 공로를 세운 사람이다."

"당시 통일교 이재석 협회장은 자신의 친구인 서진석 씨를 내세워 성화신학교를 인수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재석 협회장은 자신이 초교파 활동을 하면서 교육기관을 통하여 후진을 양성해야 한다는 뼈저린 경험을 하였기에 장재형 씨를 적극 지지해 주었다. 장재형 씨의 보고를 받고서 이재석 협회장은 객관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판단 아래 친구 서진석 씨를 동참시킨 것이다. 서진석 씨는 1985년 6월 5일에 성화학원 초대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 장재형 목사가 선문대학교 설립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고 기술하는 「선문대학교 30년사」.

「선문대학교 30년사」는 장재형 목사를 "설립자의 염원을 알고" "집을 팔아 기금에 보탠" "선문대학교에 큰 공로를 세운 사람"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 자료만 놓고 보면 장재형 목사는 현재 통일교에서 운영하는 선문대학교를 있게 한 일등공신인 셈이다.

그러나 장재형 목사는 「선문대학교 30년사」 중 자신과 관련된 부분의 내용이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입장이다. 선문대학교 설립준비위원회에서 일한 적도 없고, 성화신학교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 것도 통일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에큐메니컬 정신에 의해 운영되는 학교를 세우기 위해서였다는 주장이다.

선문대 설립 공로자 VS. 에큐메니컬 신학교가 목표

성화신학교 설립 초기부터 인연을 맺은 장재형 목사는 1998년 1월 퇴직하기 전까지 10년 이상 학교에 머물면서 신학 행정학 등을 가르친다. 1989년 9월부터 1991년 2월까지는 학생처장을 역임하기도 한다. 30대와 40대를 성화신학교와 선문대학교에서 보낸 것이다.

현재 선문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신학이 통일교 교리에 기반한 것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선문대학교 2004학년도 신입생 모집요강 안내문을 보면, 통일신학과 졸업생들의 진로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목회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과 관련된 각종 기관 및 회사 근무자'로 명시하고 있다. 통일교 지도자를 길러내는 과정인 셈이다.

그러나 장재형 목사는 자신이 근무하던 때의 학교 분위기는 지금과 현저히 달랐다고 주장한다. 그 당시는 학교에서 드러내놓고 통일교 교리를 가르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는 통일교인도 정통신학을 배워 사회화 될 필요가 있다는 판단 아래, 복음주의에 입각한 신학을 가르쳤다고 말한다. 그러나 선문대학교가 펴낸 각종 자료에 나타난 장재형 목사의 행적은 본인의 주장과 상반되는 측면이 많다.

▲ 성화신학교가 1989년도 발간한 요람.

선문대학교의 전신인 성화신학교에서 발행한 1989년 요람을 보면, 장재형 목사의 전공은 '신학'으로, 담당과목은 '조직신학' '통일신학'으로 표기되어 있다. 보직으로는 학생처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적혀 있다. 학과 소개글에는 통일교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들이 눈에 띈다. "하나님과의 참된 부자관계를 정립한다" "말씀과 심정을 깨우쳐서" 등이 그것이다.

1989년 당시 성화신학교에는 신학과, 해외선교학과, 사회복지학과가 있었는데, 이들은 교양필수로 '통일사상'이라는 과목을 들어야 했다. 요람에 나와 있는 통일사상 과목에 대한 개요에는 "통일사상은 문선명 선생이 제시한 통일주의에 입각한 사상으로서, 역사상 제시되어 온 제반 사상의 미비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여 일관성 있는 사상의 통일체계를 시도한다"는 설명이 붙어있다.

당시 교수진 역시 통일교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사람이 상당수였다. 교장은 훗날 선문대학교 총장을 지낸 윤세원 교수였고, 성화신학교가 생기기 전 통일교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던 '통일신학교' 교장이던 이요한 씨는 '채플 및 교역지도'를 담당했다. 이화여대 교수직을 버리고 통일교로 옮긴 김영운 교수는 통일신학을 담당했다.

▲ 성화신학교 요람. 장재형 목사의 담당과목이 '통일신학'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 요람에 따르면, 장재형 목사는 조직신학, 현대신학, 통일신학을 담당했는데, 통일신학에 대해서는 "통일원리를 조직신학의 체계로 정리한 신학 과목으로서 원리의 세부 내용과 기존 신학과의 관계를 비롯한 문선명 선생의 독창적 계시의 세계를 신학화한 학문 분야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장재형 목사, '통일신학' 가르쳤나?

▲ 1993년도 졸업사은회 모습.

성화(聖化)신학교에서 성화(成和)신학교로, 다시 선문대학교로 이름이 바뀌는 과정에서 신학과 역시 여러 번 모습을 바꾸었다. 86년부터 90년까지는 신학과와 해외선교학과가 존재했고, 91년부터 4년 동안은 신학과가 폐과되고 해외선교학과만 남았다.

이후 1994년 3월 선문대학교로 이름을 바꾸면서 그해 9월 '통일신학과'가 신설됐다. 지금은 통일신학부 안에 3개의 세부전공이 있다. 장재형 목사는 신학과가 폐과된 사실을 예로 들며 당시 학교 교육 내용에 대한 문교부와 기독교계의 감시가 그만큼 삼엄했다고 강조한다.

▲ 1991년 '성화대학 신학부'가 펴낸 '실천신학 자료집'의 일부. 곳곳에서 문선명 교주의 저술이 목록에 올라있다.

그러나 해외선교학과만 남아 있던 1991년, '성화대학 신학부'가 펴낸 '실천신학 자료집'을 보면 문선명 교주의 영향력이 여전히 상당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목회현장에서 당면하는 문제들을 학구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고 연구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자료집 목록 중 상당수가 문선명 교주의 강연이기 때문이다.

또한 선문대학교가 1998년에 발행한 「단과대학 업무철」을 보면, 신학과가 폐과된 4년 동안에도 통일교와 관련된 과목이 교과과정표에 여전히 존재했다. △통일사상 △원리통독 △통일교회사 △통일신학 △원리연구 및 연습 △통일윤리학 △성서와 원리 △원리강의 실습 등의 과목이 그것이다. 역시 신학과가 없던 1994년에 발행된 성화대학 홍보책자에도 '설립자 말씀'이라는 제목 아래 문선명 교주 부부의 사진과 기념사가 실려 있다.

▲ 선문대학교가 발행한 각종 자료집.

1995년 통일신학과가 들어온 후, 선문대학교는 더욱 노골적으로 통일교 교리를 강의하기 시작한다. 교과목에도 통일신학 관련 과목이 대폭 강화된다. 선문대학교 신학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1999년 발행한 자료집을 보면, 문선명 교주에 대해 '참부모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문 교주 배우자에 붙는 호칭은 '대모님'이다. 김진춘 선교학부 학장은 "으뜸되는 가르침이란 하나님과 참부모님과 새진리와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가르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점점 강화되는 통일교 영향력

▲ 선문대학교 졸업생들과 함께한 장재형 목사.

장재형 목사는 1995년까지 선문대학교에 재직하다가 1996년 휴직해 1998년 1월 퇴직한다. 2년의 공백 사이 장재형 목사는 목사안수를 받는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선문대학교 교수직을 유지하고 있던 1997년 6월 목사안수를 받은 셈이다. 장 목사는 이 부분에 대해 퇴직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휴직 상태로 있었다고 밝혔다.

문제의 핵심은 장재형 목사가 선문대학교와 관계를 맺고 있던 1980년대 중반부터 1998년 1월까지의 행적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달렸다. 장 목사는 자신이 학교에 있던 목적은 통일교인들에게 정통신학을 가르치는 것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이단에 미혹된 많은 사람들을 구출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나 선문대학교가 발간한 각종 자료와 장 목사의 주장 사이의 간격은 여전하다. 또한 퇴직금을 받는다는 목적이 있다고 하지만, 선문대 교수직을 유지한 상태에서 목사안수를 받는 것이 과연 적절한 행동이었나 라는 의문도 남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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