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환 목사. ⓒ뉴스앤조이 신철민

김장환 목사가 지난 달 31일 자신이 시무하는 수원중앙침례교회 주일예배에 행한 설교는, 그의 현 정권에서 좁아진 자신의 위상을 토로한 것으로 해석된다.

사실 일개 목사가 무슨 영화(榮華)를 얻겠다고, '정권'에서의 입지를 이야기하겠는가 하는 논란이 있겠지만, 불행히도 김 목사의 족적을 한국 현대사의 권력 이동과 분리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매우 적절치 못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김 목사는 당일 설교에서 구약시대 선지자 미가야의 예를 들며, "많은 목사들이 권력자들과 타협했다. (시대) 조류에 따라, 권력(의 부침)에 따라 (움직이는) 지조 없는 세상을 보라. 어떤 권력가에게 미움을 받건 안받건 괘씸죄에 걸리건 안걸리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던 미가야가 한국 강단에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물론 이같은 발언은 표면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목회자는 당연히 세속 권력과의 등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것은 상식에 가깝다. 또한 만약 권력이 오도된 방향으로 흐를 때에는 통렬히 개탄하는 '선지자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 역시 우리의 이해에 자리잡은 '목회자의 본령'이다. 이것이 성경의 정신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부인할 이 없으리라. 그러나 그런 이야기가 '김 목사의 입'에서 나왔다는 점은 여러 가지로 화제거리를 양산하고 있다.

김 목사가 이 이야기를, 청년 노동자가 노동법전과 함께 불길 속에 사라질 때, YH여공들이 머리채가 잡혀 길거리로 내몰릴 때, 광주의 시민들이 흉탄에 맞아 죽어갈 때 꺼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냐는 시각이다. 이 말을 뒤집자면, 김 목사는 권력이라는 온상에서 온존했다는 지적이다.

김 목사는 자서전 [그를 만나면 마음에 평안이 온다]에서,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절, 미주 전역을 순회하면서 당시 이른바 반한(反韓) 여론을 잠재우는 일을 맡았다고 소개했다. 당시 한국사회에 대한 반감은 다름 아닌 폭압적 독재의 연장을 기도하려는 것과 권력에 반하는 이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에 근거하고 있다. 당시 문익환, 김재준 등 많은 목회자들이 구속됐다. 그러나 김 목사는 미국에 건너가 '이는 종교 탄압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에 의한 정상적인 공권력 행사'라고 강변했다.

이 점은 종교가 과연 종교 자체를 위해 존치하는 것인가라는 논란을 불러 일으킨다. 종교는 김 목사 말대로 권력자에 대응하는 견제세력이 돼야 할 필요도 있다. 특히 어려운 시대에 사회적 소수, 약자를 위한 등불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종교 본연의 정체성인 것이다.

사실상 종신 집권 체제요, 계엄, 긴급조치를 연발하며 국민과 야당의 입을 틀어 막었던 당시에는, 아무리 '혈맹'의 경우라지만, 민주주의의 기본적 금도를 너무 심하게 벗어난 박정희의 한국 정부에 대한 미국의 우려는 당연한 것이다.

이 때 김 목사는 '박정희 정부 홍보대사'를 자임하며 방송, 강연을 통해 자칭 '반한 감정 잠재우기'에 전력을 기울였다.

사실 김 목사는 우리 나라 정보 기관인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로부터 '미국 스파이'라는 의혹을 받으며 뒷조사 당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같은 '반한 감정 잠재우기'는 김 목사에 대한 권력의 호감도를 증진시키는 계기가 됐다. 유신정권이 김재규가 쏜 총탄 몇 발에 의해 종식되던 그 날까지 김 목사에게 박정희는 '달콤한 파트너'였던 것이다.

물론 김 목사 자신은 <중앙일보>에 기고한 '남기고 싶은 이야기'의 연재물에서 '복음 전파의 자율성 보장을 확보함으로써, 민주화에 일정 부분 기여하려 했다'고 밝히고 있다. 훗날 역사가 김 목사의 강변을 그대로 받아 써 줄지는 지켜 볼 일이다.

박 대통령의 서거 이후, 전두환 씨가 쿠데타를 일으킨다. 70년대와 80년대가 바톤을 터치할 이 무렵. 전 씨는 최규하 당시 대통령을 '월급 대통령'으로 '식물인간화'하고, 권력을 사실상 장악한다. '서울의 봄'에 난데없이 핀 사쿠라를 보다 못한 국민들. 그들의 항거가 거세질 듯 싶자, 전 씨는 광주를 희생양으로 삼는다. 바로 그 시점. 전 씨는 바쁜 와중에도 김 목사의 수원 자택까지 찾아갔다고 한다.

일개 목사를 한국의 최고권력자 전 씨가 자택까지 찾아가 만나려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김 목사의 저서 제목처럼 '만나면 마음에 평안이 생겨서'였을까. 아니면 기독교라는 종교에 대한 호기심이 커진 탓일까. 혹시 박 정권 시절 미국을 상대로 '친 독재 발언'을 통해 친미, 지미인사로 통한 김 목사의 대내외적인 '가치' 때문은 아니었을까. 김 목사는 전 씨와의 대화의 내용을 놓고 '화기애애했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또, 설교에서 '많은 역경과 고난에 굴하지 않고 올바로 예언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혹자는 말했다. '미가야 선지자는 암울했던 독재 시절에는 어디 가셨단 말일까'라고.

이후 김 목사는 '노태우 대통령 만들기'에도 한 몫을 한다. 그는 선거 관련 강연에서 차기 대선 후보의 자격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첫째로 미국 우방이 믿어주는 후보, 둘째로 군대가 믿어주는 후보, 셋째로 북한이 무서워하는 후보, 넷째로 가정이 건전한 후보"라고 말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들어서도, 또 이어진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까지도 대통령, 장차관, 여권 실력자, 검찰총장 등 권부의 요직 인사들과 김 목사의 각별한 교분이 있었음은 극동방송에 있는 직원들에게는 익숙한 과거다. 김 목사는 '식사 중에 대통령이 전화해 자신을 위해 기도해달라'라고 말했다며 은근히 '능력있는 목사님', '힘있는 사람과 가까운 목사님'의 존재를 강조했던 부분은 짧았지만, 극동방송에서 재임하던 때에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던 현상이었다.

심지어는 97년과 지난 해 대선에서 특정 유력 후보를 폄훼하고,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강조하는 등 '킹 메이커'를 자임했다. <한국경제신문>은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였던 '이회창 씨의 사람'으로까지 묶기도 했다.

그러나 두 차례에 거듭된 실패는 김 목사에게 심각한 위기감을 불러왔다. 우선 김대중 대통령보다 더 '진보적'이라 불리는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은 김 목사를 장외 투사로 내모는 '기이한 형국'을 조성했다. 김 목사는 지난 1월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회'에 참석해, 주한 미군 철수 반대 등 숭미적 집회를 주도했다. 또한 그 실황을 공공의 자산인 지상파방송 극동방송을 통해 때마다 생중계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아울러 설교 계약을 맺지 않은 새문안교회 이수영 목사의 '정신나간 발언을 하는 철없는 대통령' 발언이 담긴 설교를 애써 구해 방송으로 내보내는 등 정치적 지향성을 노골화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달 31일 설교는 김 목사의 현재 심경을 담은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은 그 내용의 다음 부분이다.

"우리가 이북에 옷 주고 쌀 주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북의 교회와 연합하는 것은 반대이다. 이북 목사는 다 공산당 요원이다. 남한 교회에 와서는 북한 가서 야단 안 맞기 위해 북한 김정일에게 유익한 말을 해야 한다. (중략)"

김 목사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교회를 모두 거짓 단체라고 규정했다. 아울러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당시 대통령과 조직위를 싸잡아 비난했다.

"(지난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당시) 남쪽에서 우익단체가 조금 데모했다고 시합 안 하고 간다고 했다. 사과 안 하면 가겠다는 것이다. 내가 조직위원장이라면 보낼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이 대통령이 사과, 조직위원장도 사과. 이 나라는 사과 공화국인가. 대구가 사과가 많이 나와서 그런가. (중략)"

그러면서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젊은이들이 나가 전쟁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해 파문을 야기했다.

"우리가 이 나라 지켜야 한다. 우리 젊은이들이 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 나는 이 나라를 뺐기고 싶은 생각이 없다. 세상에 어느 나라 가봐도 군인 3천 명에게 침례를 주는 나라는 없다. 이렇게 좋은 나라를 왜 남에게 뺐기나. 우리가 지켜야 한다.

저기서 탱크 갖고 내려오면 싸워야 한다. 적이 들어오면 싸워야 한다. 나는 대한민국이 좋다. 정치가 좀 거지 같지만 나는 이대로가 좋다. 내 마음대로 의사표현할 수 있고, 기도, 예배, 선교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여러분이 이 민족을 지켜야 한다. '세상이 너를 미워하지 못하나 인자로 인하여 사람이 미워하고 악하여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다'라는 말씀도 있다. 이 세상에 왕따당하지 않는 예수믿는 사람은 진짜가 아니다.“

김 목사는 이 설교를 하면서, '왜 아멘 안해?'라는 말을 섞어가며, 신자들에게 여러차례에 걸쳐 동의를 요구하기도 했다.

한편 김 목사의 이날 '전쟁 나면 싸워야 한다'식의 설교는 하나님의 역사와 주재를 수구적 이데올로기에 묶어 놓는다는 논란을 듣고 있다. 전쟁이 나지 않기 위해서, 남과 북 사이에 적개심과 살의를 접어야 한다는 선지자적인 대안 제시는 마다하고, '전쟁 불사론'을 내세우는 것이 과연 목회자의 발언으로써 적합한 것인지 또한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김 목사가 제기한 '권력자와 타협하지 말 것'에 대한 부분 역시 지극히 정략적이다. 누구라고 이야기는 안했지만 김 목사가 지칭한 권력자는 노무현 대통령이라 추정된다. 노 대통령의 참여 정부에 대한 그의 인식은 '수검표부터 다시 하자'라며 아직도 구랍 19일 이후부터 '몽환'속을 헤매는 이들, 대구까지 내려가 인공기를 불태워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망치려 한 철없는 수구세력들, '내란 선동' 논란에 휩싸인 조갑제 류의 틀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김 목사는 또한 자타가 공인하는 대표적 친미 인사이다. 미국의 폭거로 무고한 양민들이 생을 마감하는 일이 빈번하고, 전 세계가 공포와 위협에 떨고 있다. 김 목사는 정녕 '제국주의적 미국의 횡포'에 맞서 미가야가 될 생각은 없는 것일까.

김 목사의 발언 강도는 스스로의 입지만 좁힐 뿐이라는 생각이다. 소위 자신을 필두로 한 '반대 세력'에 대한 잔인한 탄압은, 김 목사가 그렇게 친애했던 과거 권력 때에 가능했던 행태이다. 정상적인 상식과 원칙을 지향하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김 목사의 '일사각오'가 아닌 '왕따 각오'는 김 목사만의 다짐으로 끝날 것이라 보는 시각이다. 혹여 김홍도 목사의 횡령혐의 구속을 놓고 '미가야'가 당한 고초와 동류로 해석하는 것은 아닐지, 노파심마저 든다.

미가야 선지자와 대별되는 선지자는 바로 시드기야이다. 그는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을 외면하고, 거짓을 예언하는가 하면, 자기 뜻대로 권력을 향유했다.(렘 5:20~31) 우리는 김 목사의 설교에서 미가야와 시드기야 중 어떤 선지자의 중심을 읽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이리라.

김 목사는 어쩌면 꿈꿀지 모른다. 자신이 바라는 권력자의 등장과, 이로 인한 자신의 헤게모니의 온존을. 참으로 유감스럽지만, 당신 생애에는 그런 날이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우리 국민은, 김 목사의 가늠만큼,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역사의 흐름은 과거처럼 탁류에서 소용돌이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 땅이 전쟁과 독재, 반민주라는 사탄 마귀의 횡포에 유린되지 않기 위해 지금도 일하시는 하나님. 그 분의 은총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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