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근수 목사. ⓒ뉴스앤조이 김승범
'빨갱이 교회에 빨갱이 목사.' 향린교회 홍근수 목사를 지금도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교회에 협박 전화를 하는 사람도 여전하다. 한국사회 전체적인 정서에 비춰볼 때 그는 급진적인 통일 운동가라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 전체적인 정서에 비춰볼 때 그는 급진적인 교회개혁가이기도 하다.

교회를 세운 지 40년이 된 93년에 '교회갱신선언서'를, 95년 종교개혁주일에는 '교회갱신실천결의'를 잇따라 발표하면서 교회개혁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몇 백 명 안 되는 규모에서도 분가선교를 단행, 같은 철학을 가진 강남향린교회를 세웠다. 강남향린교회는 3년만에 자립을 했고, 이 교회가 또 다시 분가를 진행하고 있다.

향린교회는 10년 전부터 평신도들이 교회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목회위원회'를 구성하고, 목사 장로 임기제를 도입했다.

이같이 제도적인 면만 가지고 교회개혁 운운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 교회가 지향하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살펴보아야 교회개혁의 진짜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그러나 그 내용을 소개하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겠다).

15년 전부터 조기 은퇴 작정

교회 설립 50주년이 되는 내년 홍근수 목사도 만 65세에 은퇴한다. 홍근수 목사가 조기 은퇴를 결심한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13년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86년 만 49세의 나이로 한국에 들어와 87년부터 향린교회 담임목사가 되었다. 그때부터 "15년만 목회하고 은퇴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단다.

은퇴하는 이유는 이렇다. "향린교회에서 15년 목회하면서 교회 안팎의 일을 나름으로 열심히 했다. 한 교회에서 이 정도면 오래 한 것이다. 앞으로는 내 인생을 관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또 젊은 후배 목회자들에게 길을 열어줄 필요도 느꼈다."

향린교회의 목사 임기는 7년이다. 금년 말로 한 회기가 끝나고 중임할 수 있다. 그러면 70세까지 임기가 보장된다. 그러면 20년을 넘기기 때문에 원로목사가 된다. 하지만 홍 목사는 "원로목사 되려고 20년 채우는 건 싫다"고 했다. 원로목사가 되면 지금 봉급의 절반 정도 생활비가 보장되지만, 지금까지 그런 계산 안 하고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도 그냥 '믿음으로' 살아가겠노라고 했다.

원로목사 되려고 20년 채우지는 않는다

"원로목사 제도는 백해무익하다. 후임자에게 부담을 줘서 교회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홍 목사의 생각이다. 게다가 향린교회에 출석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한다. 아예 멀리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설교는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장로들의 요청도 거절했다.

그의 말을 좀더 들어보자. "은퇴 후 예우 문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 걸 생각했으면 원로목사 되려고 하지 않았겠나. 지금까지는 교회에서 제공해주는 사택에서 살았다. 월급 모았으면 집이야 하나 샀겠지만, 운동하느라고 다 썼다.

그런데 작년 봄 몇몇 교인들이 '홍사모'(홍근수 목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라는 걸 만들었다. 은퇴 후에 집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면서, 자기들끼리 돈 모아서 1억 5천만 원 짜리 아파트를 하나 마련했다고 한다. 16개월치 퇴직금이랑 총회에서 나오는 연금 70만원이면 먹고 살 수는 있지 않겠나 싶다. 자동차도 목회할 때나 필요하지 은퇴한 뒤 왜 필요한가."

후임 청빙 과정에 대해서도 간여하지 않고 있다. 다만 청빙위원회의 요청을 받고 홍 목사가 8명을 추천했다고 한다. 목회위원회 대표 2명과 당회원으로 구성된 청빙위원회는 추천받은 후보자들을 일일이 초청해 설교를 들었고 지금은 3명으로 압축된 상태다. 홍 목사는 "교인들이 교회 창립 정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후임자를 잘 선정할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그분들을 보니 누가 해도 잘 할 것 같아서 염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일성대학에서 기독교개론 가르치고 싶다

은퇴 후 무엇을 하면서 지낼 생각인지 물어봤다. "몇 가지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다. 제일 하고 싶은 건 김일성종합대학에 교수로 가서 기독교개론을 가르치면서 북한에 기독교 복음을 전하는 거다. 작년에 소천한 홍동근 목사가 길을 열어놨으니 누군가 이어받아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국내에서 지원 받는 건 여러 모로 불가능하다. 해외 후원자가 있으면 가능하다.

아니면, 통일선교연구소 같은 걸 만들어서 출판운동을 통해 남북 가교를 잇는 역할을 하고 싶다. 경제적 회복도 중요하지만 기독교 복음이 있어야 살아나는 곳이 북한이다. 그러나 남한의 부패한 기독교가 북한에 가는 건 반대한다.

그밖에 낙도든 산간오지든 아무도 안 가는 곳에서 교회를 도울 수 있으면 좋겠는데, 지금 재야운동·통일운동 등에서 하고 있는 일이 많기 때문에 서울을 떠나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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