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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언제나 떠돌이의 편이셨다

문동환 박사의 <바벨탑과 떠돌이>

김종진   기사승인 2012.05.18  15: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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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벨탑과 떠돌이> / 문동환 지음 / 삼인 펴냄 / 296쪽 / 1만 5000원
민중신학의 핵심 주장은 하느님이 언제나 약자의 편이라는 것에 있다. 그래서 민중이 주체가 되어 선도하는 역사 진보의 이면에는 하느님의 뜻이 있다고 말한다. 민중신학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해방신학의 형태로 나타나 남미 역사에 큰 영향을 주었고, 한국에서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다.

신간 <바벨탑과 떠돌이>의 저자 문동환은 책에서 그러한 민중신학의 전통을 긍정하고, 그 성과를 인정한다. 그러나 기존 민중신학에 대해 민중이 어떻게 해서 역사의 주체가 되고 역사 진보를 선도할 수 있었던 것인지에 대해 명확히 밝히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곧, 민중의 주체화 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중신학의 이른바 민중 개념에 대해서도 비판을 한다. 지금까지 민중신학이 민중 개념에 대해 제대로 규명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또 민중신학이 민중을 기존 제도에서 자기 몫을 찾는 그러한 존재로 이해하기도 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오랜 세월 성경을 연구해 온 저자는 성경에 다시 천착해 떠돌이라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운다. 권력의 상징인 바벨탑이 떠돌이를 양산했는데, 하느님은 바로 그 떠돌이를 통해 자신의 새 내일을 창출하려 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을 들어 보자.

“한국 민중신학자들의 과오는 민중의 개념을 명확히 규정하지 못했다. 성서에서 새 역사의 주인공은 떠돌이들이라는 것을 명확히 보지 못한 것이다. 동시에 그들이 지향해야 하는 새 역사가 어떤 것이며 어떻게 그 역사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인지를 밝히지 못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자본주의 산업 문화가 극성을 부리는 오늘날 전 세계를 통하여 떠돌이들이 양산되고 있다. 물론 한국에도 아무 소망이 없는 밑바닥 사람들이 있다. 그들도 한국 사회에서 아무 소망이 없는 떠돌이라는 것을 명확히 깨닫고 새 내일을 갈망하면서 아우성을 칠 때 새 내일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 '시작하는 말' 중에서

저자는 떠돌이 문제가 성경의 중심 의제라고 말한다. 기존 민중신학의 민중 개념이 체제 내적이고 다소 정적인 성격이 있었다면, 저자의 떠돌이 개념은 보다 급진적이고 체제 자체에 대해 저항적이며, 탈주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민중이 단지 가진 자들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웠다면, 떠돌이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의 골짜기 자체를 메우고 새로운 동산을 건설한다. 이는 저자의 '떠돌이 신학'이 기존 민중신학의 발전적 계승이자 심화임을 의미한다.

민중신학이 어두웠던 지난 시기 민중의 투쟁을 촉구한 것과 마찬가지로, 저자의 떠돌이 신학 역시 자본과 권력이 판을 치는 오늘날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그 어조는 더 단호하고 근원적이다.

"그러기에 하느님이 창조하신 땅으로 탈출해야 한다. 거기에서 땅을 갈아 소출을 서로 나누어 서로 섬기고 용서하는 환희에 찬 에덴동산을 이룩해야 한다. 모두가 더불어 기뻐하고 보람을 느끼는 생명 문화를 창출해야 한다. 그래서 어두운 세상에 등불이 되어야 한다. 삶의 진미를 맛보게 하는 삶을 창출해야 한다. 이것이 누룩처럼 확산되고 산 위에 세운 성처럼 우뚝 서서 온 인류에게 새로운 소망을 줘야 한다." - '일곱째 마당 : 빗나간 대망 공동체들과 오늘의 도전' 중에서

저자는 이 책에서 출애굽 탈출 공동체의 경험을 모델 삼아 그들이 어떻게 제국에 맞서 싸웠고, 그러나 이후에 왜곡이 되어 파멸하고 말았는지를 통렬하게 보여 준다. 이는 문제의 핵심이 바벨탑의 논리 그 자체에 있는바 다시 말해 권력의 속성 자체, 인간 이기심의 속성 자체, 탐욕으로 귀결되고 마는 지금까지의 민중 투쟁사의 뼈대 자체가 극복의 대상임을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곧 저자가 책의 모든 페이지를 관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벨탑의 논리, 바벨탑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한 어떤 투쟁과 민중의 실천도 악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떠돌이로 칭한 자들이 - 억압·고통·착취·멸시당하고 힘겨운 삶을 겨우 인내하고 있지만 하느님이 진정으로 사랑하고 진정 역사 진보와 변혁의 맹아로 인정한 -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곧 바벨탑의 논리를 근본적으로 거부하고 기득권자들의 권력을 단지 승계하거나 탈취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움직임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떠돌이들의 탈주로부터 오늘날의 어려운 세상과는 다른 생명 공동체, 평화 공동체를 꿈꿀 근거가 생긴다. 저자는 바로 이 근거를 바탕으로 새로운 출애굽이 일어나야 함을 역설한다. 바벨탑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新세계와 新공동체의 비전을 지닌 지구적 운동의 촉발을 촉구한다.

"이제 새로운 출애굽 사건이 다시 일어나야 한다. 3000여 년 전에 이집트에서 일어났던 출애굽 사건이 재생되어야 한다. 2000년 전에 갈릴리에서 일어나 지중해 연변에 확산되었던 하느님 나라 운동이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재현되어야 한다. 거대 도시들을 조성한 오늘의 바벨탑에서 탈출하여 다시 가나안 복지인 갈릴리로 가야 한다. 더불어 생산하여 나누는 농촌으로 가야 한다. 서로 이웃사촌이 되어 나누고 도우면서 사는 생명공동체를 이룩해야 한다." - '일곱째 마당 : 빗나간 대망 공동체들과 오늘의 도전' 중에서

추천사

떠돌이란 생명 죽임의 세력과 사회 질서에 수난당하지만 거기에 저항하면서 새 세상을 꿈꾸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끈질긴 순례자들이요, 잡초같이 생명력이 질긴 사회의 바닥 사람들, 곧 민중의 새 이름이다. 저자는 "역사의 주체는 민중이다"라는 민중신학자들의 기본 명제가 왜 타당한 주장인가를 인류 세계사 진행 과정과 성서 세계의 맥을 새롭게 짚어가면서 갈파하고 있다.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 겉으로 본 표층적 문명위기론이라면, 문동환의 <바벨탑과 떠돌이>는 현대 문명의 속살을 파헤쳐 보여 준 심층적 문명 위기론이자 죽음에 직면한 문명을 살려내기 위한 명의 화타의 처방전이다. -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성서 전편을 통해 관통하고 있는 하느님의 진정한 마음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추적해 가는 <바벨탑과 떠돌이>는 우리의 정신적 영토를 무한대로 넓혀 준다. 그러기에 성서를 통해 세상을 제대로 응시하려는 이들에게 이 책은 하나의 정밀 지도다. 애매하고 헷갈렸던 지점이 뚜렷하게 보이고, 거쳐 가야 할 경로가 확실해진다. 그러나 보다 중요하게는, 성서의 권위에 눌려 쉽게 던지지 못했던 질문과 내심 늘 풀지 못했던 숙제처럼 남아 있던 문제가 거침없이 진상을 드러내면서 우리는 자신의 낡은 정신이 해체되고, 정작 봐야 할 진실에 눈뜨게 된다. 이 책은 진보적인 성서 해석학조차도 놓치고 있었던 성서 안에 숨겨진 채 작동하고 있던 바벨탑의 논리, 그 잔상(殘像)을 남김없이 거둬 내고 있다. -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저자 / 문동환

문동환은 1921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민족주의 운동과 기독교 선교의 중심지였던 명동촌에서 성장하면서, 어려서부터 민족과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삶과 기독교 목사로서의 삶에 뜻을 두었다.

서울의 조선학교(한신대 전신)를 졸업한 뒤, 웨스턴신학교, 프린스턴신학교를 거쳐 하트퍼드신학대학에서 종교교육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에 돌아와 모교인 한국신학대학 기독교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한편, 서울의 수도교회에서 목회했다. 그러던 중에 뜻이 맞는 청년들과 함께 '새벽의 집'을 열어 생명 문화를 일구기 위한 공동체 생활을 했다. 1975년 유신 정권의 탄압으로 한국신학대학에서 해직된 뒤에, 해직 교수 및 민주 인사들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실험 교회인 갈릴리교회를 공동 목회로 꾸렸고, 1976년 3․1민주구국선언문 사건으로 투옥되어 2년 가까이 복역했다. 감옥에 있는 동안 민중의 실체에 대해 통찰하면서 민중신학에 입각한 민중운동에 깊이 천착하게 되었고, 그 뒤 동일방직 및 와이에이치 노조원의 투쟁을 지원하다 다시 투옥되어 복역했다.

1979년 10․26으로 유신 정권이 막을 내리자 한국신학대학에 복직했으나 신군부의 등장으로 해직과 더불어 미국으로 망명을 떠났고, 미국에서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과 더불어 목회 생활을 하다가 1985년에 한국에 돌아와 한신대에 다시 복직했다.

정년 퇴임 후에 재야에서 민주화 활동을 하던 중,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1988년에 정치에 발을 들여놓아 평민당 수석부총재를 역임했고, 국회 5․18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정치 활동을 접은 1991년 이래로 미국에서 살고 있으며 지금은 주로 젊은 목회자들과 함께 성서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고향에서 밀려나 저임금 노예로 팔려 가는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그런 비참한 삶의 구조적 원인인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토대로 민중신학을 더욱 심화한 '떠돌이 신학'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미국 유학 시절에 만난 해리엇 페이 핀치벡(문혜림)과 1961년에 결혼하여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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