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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교회의 새로운 패러다임, 해방적 선교!

들꽃향린교회 김경호 목사 인터뷰

희년함께   기사승인 2012.03.26  10:5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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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영(이하 이) : 자기소개와 하시고 계신 사역 소개 부탁합니다.

김경호(이하 김) : 김경호 목사입니다. 들꽃향린교회 담임목사를 맡고 있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예수살기의 조직위원장, 촛불을켜는그리스도인들 집행위원, 희년함께 공동대표, 생명평화기독교연대 운영위원, 생명강기독교행동 공동대표 등을 맡고 있습니다. 그렇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 강동·송파시민단체협의회 대표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김 : 강남향린교회에 있을 때 주로 했었고요. 지역 운동과 빈민 운동을 열심히 하다가 들꽃향린교회에 와서는 교계의 일들을 중심으로 예수살기를 창립하는 일을 하고 촛불교회를 세우는 일 등을 하게 되었습니다. 들꽃향린교회 교인들과 그런 일들을 함께했습니다.

이 : 들꽃향린교회에 대한 소개 부탁합니다.

김 : 들꽃향린교회는 강남향린교회에서 분가해서 세운 교회입니다. 2004년 11월 28일에 창립을 했습니다. 강남향린교회들에서 분가한 24명이 들꽃향린교회를 시작했어요. 교회는 운영위원회 체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당회 대표나 담임목사도 운영위원 중에 한 명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고 운영위원장은 평신도 중에서 하고 있습니다. 운영위원장이 모든 회의의 소집과 사회권과 제반 운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교회의 최고 대표자입니다. 매년 말에 2년 임기로 운영위원을 선출하게 되는데 매년 반씩 선출을 해서 2년씩 활동을 하게 됩니다.

이 : 당회보다 운영위원회가 상위 기구라고 봐야겠네요?

김 : 그렇죠. 교회의 모든 결정은 평신도 대표들이 운영위원회에서 결정을 하죠. 집사나 권사와 같은 재직은 구성을 하지 않았고 장로교니까 장로 선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장로님은 한 분이 선출되어서 당회를 구성하고 있어요. 그런데 당회에서 하는 역할을 전부 운영위원회로 이관을 했기 때문에 당회가 특별히 하는 것은 없어요. 외부적으로 노회와 총회가 관계된 일만 당회가 담당하고 그 외에 다른 일들은 전부 운영위원회에서 관장하죠.

이 : 당회 중심의 장로교 조직에서 봤을 때 매우 혁신적인 시도라고 보입니다. 당회 중심의 장로교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평신도 중심의 운영을 통해 극복하는 것 같습니다.

김 : 장로교 제도도 유지하면서 권한은 전부 평신도들에게 넘기는 거죠. 장로교 헌법에 위배되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민주화한 시도입니다. 더 나아가면 목사, 장로가 없는 회중 교회가 되는 스타일인데 거기까지 가면 장로교에서 나와야 합니다. 장로교 내에서 가능한 모든 문을 다 열어 놓은 제도라고 볼 수 있죠. 장로교가 갈 수 있는 마지막 막장까지 간 거죠(웃음).

이 : 들꽃향린이라는 교회 이름에서부터 생태적 감수성이 풍기는데요. 이름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요.

김 : 들꽃이라는 것이 크고 화려하지 않고 우리가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면서도 굉장한 생명력을 가지고 전파해 나가는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이미지를 따서 지었습니다.

이 : 강남향린교회를 목사님께서 개척하셨는데 개척 목회자가 다시 들꽃향린교회를 분가 개척하셨습니다. 대부분의 목회자가 대형 교회를 꿈꾸는 한국교회의 풍토에서 신선한 시도인 것 같습니다. 목사님의 목회관이나 교회관에 대해서 설명 부탁합니다.

김 : 교회라는 것은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지기까지 하나의 경과적인 조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도 하나님나라이지 교회를 가르치신 것은 아니거든요. 교회라는 것은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봉사해야 하고 하나님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그 임무를 맡은 그런 경과적인 조직이지 교회 자체가 궁극적 목적이 되거나 교회 자체가 하나의 종착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한국교회가 많이 혼동하고 있는 것 같아요. 교회 자체를 위한 선교를 하고 있잖아요. 그게 아니라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선교를 해야지요.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택해야 하는데, 저는 덩치가 큰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 하나님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그 임무를 맡은 그런 경과적인 조직이지 교회 자체가 궁극적 목적이 되거나 교회 자체가 하나의 종착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김경호 목사. (사진 제공 희년함께)
왜냐하면 당회, 제직회, 공동의회 이런 조직들을 다 통과해서 새 일을 하려고 하면 너무 어려워요. 기존의 하던 일만 하다 보면 사회에 깊숙이 들어가서 해야 할 모험적이고 실험적인 일들을 못 하는 그런 구조가 되기가 쉬워요. 그래서 오히려 몸 가볍고 작은 교회들이 기동성 있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밥상머리에 앉아서 같이 식사하면서 우리 이거 하자 해서 마음이 쫙 통하면 거기서 그대로 움직일 수 있는 그런 형태의 작은 교회가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운동에 앞장설 수 있는 그런 틀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저는 교회가 커지면 오히려 불편해지고 교회를 유지하기 위한 일들만 하느라고 오히려 사회적으로 꼭 해야 할 일들을 못 하게 된다고 봅니다. 너무 작아도 어렵겠지만, 웬만큼 자기 생존 능력이 되면 자기 교회를 계속 키우는 것보다는 분가해서 교회를 세우고 함께 연합해서 하나님나라 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가장 건강한 교회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걸 실천하기 위해서 강남향린교회를 개척하고 약 10년 되었을 때 강남향린교회는 완전히 자립적인 구조를 갖추게 되고 거기서 분가를 해서 들꽃향린교회를 세우게 되었지요.

이 : 최근 작은 교회가 대안이라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데 일찍부터 선각자적인 시도들을 하신 것 같습니다. 풀뿌리 지역 시민운동에도 많이 참여해 오셨는데 목회자로서 지역 시민운동에 참여해 오시면서 느끼신 점 등을 나눠주시길 부탁합니다.

김 : 대개 한국교회들이 교회 자체를 목표로 삼기 때문에 교회라는 울타리를 쳐놓고 그 밖의 사회문제들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을 하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 신학에서 이해할 때는 하나님의 통치가 교회 안에서만 이뤄진다면 비극입니다. 경제문제, 민족문제, 노동문제 등 우리 사회 전반의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올바른 교회의 목표이고 그것이 우리 교회들이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꼭 교회 안의 운동이라기보다는 그 지역사회에 있는 시민운동, 빈민 운동 등에 관심을 두게 된 거죠.

강남향린교회가 설립되었을 때는 송파에 설립됐어요. 지역적인 상황이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이면에는 6개의 비닐하우스 촌이 있었고 전혀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빈민들이 있었습니다. 이곳이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이나 이런 걸 통해서 형성된 마을이기 때문에 기존의 조직이라는 것이 없죠. 주민들의 연대 조직이 없고 각자 새로 만들어진 아파트에 입주한 주민들만 있을 뿐이죠.

그래서 시민운동이라는 것도 전무한 그런 형편이었어요. 강남향린교회는 1993년 5월 말에 설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설립된 그해에 정부에서 88올림픽에서 사용했던 운동 시설들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을 하다가 경륜장을 유치하려고 했어요. 경륜이 일종의 도박이잖아요. 이건 문제가 심각하다 생각을 해서 송파 지역에 뜻있는 사람들을 규합했죠. 강남향린교회에서 경륜반대시민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송파 지역 시민의 연대체로 출범하게 됐어요. 그때 모아 보니까 가락시장 영세 상인들도 있고 노점상 연합회도 있고, 현대아산병원 노조도 있었어요. 기층 민중과 연대해서 경륜반대시민모임이라는 것을 만들어 경륜장 반대 투쟁 모임을 했죠.

투쟁하면서 송파 지역에 시민 단체가 형성이 됐어요. 투쟁이 끝난 다음에 강동·송파시민단체협의회라는 것을 팀들이 그대로 승계해서 만들었죠. 17개의 단체들이 거기 가담을 하게 됐고 강동·송파시민단체협의회가 그 당시 낙천·낙선 운동을 하고 강동·송파 지역에서 의식 있는 사람들이 선거에 당선되도록 하는 운동들을 했죠.

그 다음에 위례시민연대로 전환해서 이 지역의 복지 문제, 빈민 문제 등을 감당했습니다. 강남향린교회 사무실을 다 내줘서 시민 단체들이 강남향린교회 안에 있었어요. 그 안에서 같이 협의도 하고 일도 함께했습니다.

작은 교회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 해방적 선교

그리고 송파 지역은 86 아시안게임, 88 올림픽과 더불어서 종합운동장, 운동 시설, 선수촌아파트 등이 들어오면서 개발되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 땅이나 집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보상을 받아서 아파트로 들어가거나 할 수 있었지만 거기 재래 주택의 세입자들은 세입금을 가지고 변화된 신도시에 전세로 들어가거나 새로 들어갈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사는 빈민촌이 동시에 6개가 형성됐어요. 송파가 강남 3구라고 불리지만 그 이면에는 굉장한 빈민촌들이 있어요. 펜스를 쳐놓아서 가려져 있어요. 그래서 그 옆에 사는 사람들도 그 옆에 빈민촌이 있는 줄 몰라요.

이런 비닐하우스 촌, 빈민촌들을 우리가 도와주고 같이 하고 싶었는데 강남향린교회 자체도 세 들어 사는 교회이다 보니까 물질적으로 많이 도와주기가 어려웠어요. 처음에는 제가 기도하기를 우리도 선교비로 교회 예산의 30%를 쓸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월세 내는 교회가 선교비 30% 내기가 어렵더라고요. 허리 졸라매고 써봤자 16~17% 정도 썼어요. 그래서 우리가 우리 것을 덜어내서 남을 도와주는 운동은 가난한 교회가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빈민들 가운데 들어가서 그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면서 그 사람들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함께 싸우는 운동으로 전환했죠.

그래서 비닐하우스 촌에 속하면서 우리 교회 나왔던 두 분을 대상으로 해서 송파구에 행정소송을 걸어서 주거권 인정하라는 투쟁을 도왔어요. 비닐하우스 촌 주민은 구청에서 주민등록을 안 받아줬거든요. 주민등록법에는 25일 이상 거주하면 주민등록을 받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동사무소나 구청에서는 시유지에 사는 사람인데 어떻게 거기에 주민등록을 해 주냐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문정동과 구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걸어서 결국은 이겼죠.

   
▲ "비닐하우스촌 등의 고통이 해결되는 일들을 보면서 우리가 그때 '해방적 선교'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었죠. 지방자치단체나 중앙정부나 기업이 그 사람들을 위해 돈을 쓰도록 같이 싸워 주는 거죠." (사진 제공 희년함께)
주민등록법상 명백하게 25일간 거주하면 받게 되어 있는데 16년 동안 살아도 주거권을 내주지 않고 집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사람들에게 상하수도도 설치해 주지 않고 주소도 없고 우편배달도 안 되고 학교 배정도 안 된 거죠. 애들이 화곡동에 있는 친척집에 주민등록을 해놓으니까 송파구에서 화곡동까지 초등학교 배정을 받아서 세 구역을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져요. 분명히 사람들이 16년 동안 살고 있는데 법적으로는 아무도 살지 않아요. 유령 마을이죠.

수도를 설치해 주지 않으니까 거기 있는 사람들이 쓰레기 매립장에서 나오는 냄새 나는 지하수를 뽑아서 먹고 사는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을 우리가 일일이 사회에 알리고 하나하나 싸워 나갔어요. 그런 과정을 통해 행정소송에서 승리했어요.

그때 대법원에 가서 우리가 이겼으면 전국에 있는 50만 정도의 비닐하우스 촌 주민이 전부 주소를 받게 됐을 거예요. 그런 상황이 되니까 행정자치부가 송파구에 상소하지 말라고 압력을 넣어 송파구 내에 있는 비닐하우스 촌만 주민등록을 다 준 거예요. 나머지 촌에서는 하나의 판례가 있으니까 개별적으로 소송을 걸면 판례에 의해서 주민등록을 받을 수 있게 됐죠.

구룡마을 같은 곳은 조직 폭력배들이 이권을 노리고 많이 들어가 있는데, 우리 송파구의 예를 보고 행정소송을 해서 주민등록 내주겠다고 속여서 돈을 전부 걷어 도망가는 일도 생기게 된 거죠. 아무튼 송파구 내에는 주소가 전부 나오게 되니까 수도도 들어오고, 생활보호 대상자로 인정을 받게 되고 최저생계비 등을 받게 됐죠. 주소지로 인정받게 되니까 투표권을 갖게 되잖아요. 송파구청장 나오는 사람이 잘 보여야 하니까 거기 도로도 포장이 됐어요.

사람들이 가게를 가려면 아파트촌에 있는 가게를 가야 하기 때문에 사다리 타고 축대를 올라가서 차들이 고속 질주하는 도로를 무단횡단해서 건너다니다가 매년 한 명씩 사고가 일어나요. 그래서 신호등 하나 설치해 달라는데도 마을이 없는데 어떻게 신호등을 설치해 주느냐면서 안 해줬어요. 그런데 주민등록을 인정받으니까 신호등도 설치되고 아예 구름다리를 놔주더라고요.

그런 일들이 이뤄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그때 '해방적 선교'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었죠. '자선적 선교'라는 것은 교회가 자기 교회의 선교비 몇 %를 남을 위해서 쓴다는 것이에요. 내 주머니를 털어서 도와주는 것인데 교회가 돈 버는 곳은 아니지요. 더군다나 작은 교회들은 자기 생존도 어렵거든요. 빈민촌 문제 등과 같은 그런 일들을 돈을 내서 한다면 그때 강남향린교회가 세를 들어 살고 있던 보증금의 몇 십 배를 내도 감당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나 중앙정부나 기업이 그 사람들을 위해 돈을 쓰도록 같이 싸워 주는 거죠.

그런 것이 해방적 선교입니다. 선교비 몇 % 썼다고 자랑하는 건 큰 교회들이 많이 그렇게 하는데 그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건 자선적 차원의 선교이고 시혜적 선교입니다. 교회가 할 수 있는 선교는 그것 이상의 선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해방적 선교입니다. 법이 잘못되면 들어가서 법을 고치고 제도가 잘못되면 제도를 고치는 것이지요. 밖에서 돈을 제대로 쓸 수 있게 제도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해방적 선교라는 것입니다. 경험을 통해 해방적 선교의 개념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가 자기 생존도 어려운데 무슨 작은 교회 운동을 하느냐, 작은 교회가 사회에 뭘 도울 수 있겠느냐는 그런 논리를 흔히 펴잖아요? 대형 교회를 꿈꾸는 논리도 바로 그런 데 있죠. 우리 교회가 남을 도우려면 사람도 있어야겠고 예산도 좀 있어야 한다면서 대형 교회를 꿈꾸는 것이 한국교회의 문제인데요. 그게 아닙니다. 오히려 돈은 사회가 가지고 있어요. 들어가서 같이 싸워 내는 일을 제대로 하게 되면 해방적 차원의 선교를 이룰 수 있습니다. 교회가 덩치가 크면 못 싸워요. 작은 교회가 오히려 싸울 수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 교회 운동으로 가야 하고 작은 교회가 해방적 선교를 할 때 더 큰 일들을 이룰 수 있다, 그렇게 연결이 되는 거죠.

이 : 작은 교회 운동이 확산되기 위해서는 '해방적 선교'의 개념이 널리 알려져야겠습니다.

김 : 교회가 몇 % 선교비 쓰느냐 이것만 가지고 얘기하는데 실제로 작은 교회 하다 보니까 그게 어렵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런 시혜적 선교를 목표로 할 때는 대교회 논리로 갈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그걸 깨고 새로운 선교의 이론을 체험적으로 습득해서 이야기한 거죠.

<뉴스앤조이>에서 강남향린교회 10년사를 <예수의 얼굴을 닮은 교회>로 출간을 했어요. 거기에 보면 시민운동, 빈민 운동 등 지금 했던 얘기들이 자세히 정리되어 있어요.

이 : 생명과 평화의 관점으로 읽는 성서 시리즈를 출간하고 계신데 생명과 평화의 관점으로 성서를 보아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 : 성서가 따로 있고 생명과 평화의 눈으로 성서를 본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히브리 노예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계시 받고 노예들을 해방시키라는 말씀을 이루는 과정이 출애굽 역사이고 자기 땅을 얻고 나라를 세우고 초기에 있었던 야훼 공동체, 평등 공동체를 지켜 나가고자 하는 운동이 예언 운동입니다. 그러니까 성경 자체를 보니까 생명, 평화, 해방, 정의 등과 같은 가치들이 성경을 이루고 있는 토대라는 것을 발견한 거죠. 그래서 그 입장에서 성경을 보는 시리즈를 책으로 내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죠. 로마의 식민지, 그것도 로마에 가장 저항을 많이 했던 유대, 유대에서도 가장 큰 저항을 일으켰던 갈릴리, 그 당시 세계에서 로마와 가장 심각하게 싸운 장에서 싸우던 사람들 중에 예수가 나와서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가르치신 거잖아요.

하나님나라 운동이라는 것은 대안적 사회의 운동이죠. 모두가 사람대접 받고 포도원 품꾼처럼 다 똑같이 존중받고 살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대안 운동으로 하나님이 가르치신 거잖아요. 이렇게 보니까 구약이나 신약이나 예수님의 말씀이나 교회 운동이나 그게 전부 오늘 우리 얘기로 하면 생명 평화 운동이에요. 그래서 생명과 평화의 맥으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풀어간다는 의미로 책을 내고 있습니다.

이 : 목사님께서 정의하시는 희년이란 무엇인지요.

김 : 희년이라는 것은 어머니의 품으로 되돌리는 해라고 생각합니다. 아기가 태어나서 가장 행복을 느끼는 것이 어머니의 품 안에 있을 때잖아요. 어머니를 절대 신뢰하고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인데 자라면서 점점 현실을 보게 되고 어머니의 품과 같지 않은 사회 속에서 상처도 받고 때로는 그런 고난이 모질면 심성도 삐뚤어지게 되는 것 같아요.

가장 본래적인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희년의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약에 보면 '가알'이라는 말이 되돌리는 것이거든요. 무르는 것이구요. 희년은 물러주는 것입니다. 땅을 잃어버린 사람 땅 찾아주고, 자기 신분을 잃어버린 사람 되돌려서 속전을 내어주고, 그게 대속하는 거죠. 우리가 속죄하고 죄 용서하고 이렇게 얘기하지만 원래 구약적인 의미로 보면 바로 속전을 내주는 겁니다.

죄 용서가 하늘에 떠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신분을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신분을 회복시켜 주고 감옥에 갇혔다든가 노예가 됐다든가 그러면 그걸 다 풀어 주고 빚을 탕감해 주어서 어머니의 품으로 되돌려 주는 것이거든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 저는 그것이 희년의 정신이며 희년이라고 생각합니다.

희년이야말로 구약에 나오는 모든 법 위에 가장 정점에 있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십계명을 우리가 많이 외우는데 그건 그야말로 하위법이죠. 살인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고 간음하지 않는 것은 당연히 그렇게 해야 되는 겁니다. 그건 가장 기초적인 법이고 그 위로 올라가면 점점 구약의 법들이 체계를 구성하고 맨 꼭대기 상층에는 안식년, 면제년, 희년이 있습니다. 이렇게 희년법이 가장 높은 개념으로 있습니다.

그런데 그 희년에는 아주 구체적인 되돌림의 행위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이루었을 때 우리는 정말 근본적인 어머니의 품인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거죠.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것은 사실 추상적인 얘기잖아요. 구체성을 상실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희년의 구체적인 신앙과 만났을 때 빛을 발할 수 있는 거죠. 참의미를 가질 수 있는 거구요.

물질적으로 희년의 되돌림이 다 된다고 해서만 되는 것도 아니에요. 물질적인 조건이 갖춰지고 하나님과의 신앙의 회복이라든가 믿음, 소망, 사랑 이런 것들이 같이 이루어져야 되겠죠. 그런 모든 것을 완성하는 정점이 희년이라고 봅니다. 하나님나라라는 것이 결국 희년에 대한 예수님 나름의 표현 방식이죠. 예수님의 첫 번째 설교가 희년에 대한 설교잖아요.

"은혜의 해를 선포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의 사역 자체도 희년을 이루는 사역이고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나라의 성취구요. 저는 희년이 우리 신앙인들이 가야 할 가장 큰 목표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이 : 희년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김 : 제가 1975년에 대학에 입학했는데 첫 강의를 서남동 목사님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분의 강의를 들었더니 희년 얘기를 하시더라구요. 그런 것이 구약에 있었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그 법을 듣는 순간 굉장히 마음이 뛰었어요. 신앙이라는 것이 그냥 허공을 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내가 모태 신앙이고 20년 이상 성경 공부를 하고 신학까지 하겠다는 사람인데 희년 이야기를 처음 듣는가에 대해서 아주 놀랐어요.

그래서 그때 희년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고 희년을 말씀하시는 교수님들이 유신 정권에 의해서 핍박을 받고 해직되고 감옥에 가는 것들을 보면서 희년이 어떤 것인가를 더 깊이 공부하고 깨닫게 됐죠. 그때는 정말 부자유한 때니까 자유를 선포하는 해, 희년을 깊이 동경하면서 공부하게 됐어요.

이 : 교회나 개인이 희년을 실천할 수 있는 방안들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 : 몰론 교회나 개인이 희년의 어떤 조치들 중에 일부를 실행하고 또 실천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겠죠. 그런데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런 희년 운동이 우리 사회 전반에서 전개되어야 하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평화 운동, 정의 운동 등과 같이 만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일시적인 이벤트로 어떤 일을 하는 것보다 근본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교회나 교인이 사회정의나 평화 운동에 교회 단위로 혹은 교인 개인으로 같이 참여해서 그런 일들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인들이 그런 시민운동이라든가 정의 운동에 회원으로 가입해서 활동도 하고 회비도 내면서 참여하는 것이 희년을 실천하는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정의 운동, 평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예배 공동체로 새로운 영적 자극을 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교인들이 그런 운동에 참여했던 보고를 교회에 와서 같이 나누는 그런 공동체가 되는 것이 올바른 희년 운동이고 교회가 해야 될 운동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냥 교회는 따로 있고 한두 가지 어떤 일을 우리가 해 봤다, 희년주일이라서 우리가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을 넘어서서 전체 교회가 그런 운동에 같이 참여하고 전 교인들이 그런 운동에 나눠서 같이 봉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 희년함께에 해 주시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 : 희년함께에서 하고 있는 일들, 토지정의운동, 희년실천주일에 관한 일들이 굉장히 중요한 운동들이고 우리의 일은 크리스천들을 계속 교육시켜서 하나님의 뜻으로 그 운동을 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교회는 주로 보수적인 교회가 많으니까 희년함께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교회라는 테두리 안의 일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삶을 개혁하라는 것을 성경이 말하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가르치고 교육하고 설득해야 되겠죠. 그런 면에서 평신도 학교 등의 교육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한국교회의 보수 신앙을 가진 분들이 전환되면 굉장한 힘이 있거든요. 하나님께 충성은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충성을 해야 할지를 몰라서 그런 것인데 정의로운 사회, 희년 사회 구현이라는 목표를 제시해 주면 하나님나라를 이루기 위해 충성을 다할 거예요.

희년에 대해 너무나 분명한 성서적 자료들이 있으니까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성경을 연구하고 교인을 가르치는 일, 그래서 끊임없이 영적 각성을 가져오게 하는 일들에 힘을 실어서 희년함께가 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최철호 목사님이 하는 기독청년아카데미 같은 곳에서 끊임없이 청년들을 교육시키잖아요? 그 동력이 되니까 새로운 공동체 운동도 가능한 것이거든요. 희년함께도 대중 운동을 위한 힘을 받으려면 기독 대중들을 끊임없이 교육해 내는 학교를 만들어야 해요. 그래서 매 강좌들이 돌아갈 때마다 두세 명씩이라도 헌신하는 사람들이 계속 쌓이게 되면 무시 못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1년에 10차례 그런 강좌를 개설해서 매년 20~30명씩 그런 사람들이 누적되면 무시 못 할 힘이 되는 거죠. 그렇게 활동을 전개해 나갔으면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 : 한국교회에 해 주시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 : 어느 시대든지 교회는 교회 자체를 위해서 뭘 하려고 하면 무너지게 되어 있어요. 교회가 사회를 위해서 봉사하고 자기 자신을 희생해 나가면 교회가 살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교회 자체를 자꾸 크게 하고 공고하게 하고 모든 사람이 교회에 와서 봉사해야 하고 교회에 순종해야 한다고 하면서 교회 자체를 성역화하고 궁극적인 지향점으로 만들면 교회는 무너지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일제강점기 때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친일을 하잖아요.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신사참배 결의를 하잖아요. 그래서 교회가 지켜집니까? 그 사람들이 지키는 교회는 교회 건물이고 교회 재산이고 자기들이 차지한 성직의 위치입니다. 그때 건물을 잃고 지위를 잃고 재산을 잃더라도 싸웠더라면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천이 되고 역사에 교회가 큰 공헌을 하는 거죠. 그게 우리가 지켜야 할 교회이지 교회가 건물이나 울타리나 재산이 아니라는 것을 빨리 한국교회가 깨달아야 합니다.

이 사회를 위해서 교회는 어떻게 희생할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알고 우리가 가진 조직과 인원과 재산을 사회를 위해서 어떻게 내어놓고 어떻게 희생할지를 고민하면 오히려 교회가 성장하고 커질 수가 있어요. 그렇게 하면 많은 사람이 크리스천이 되고 교회도 같이 힘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어떻게 멋있게 쓸 수 있는가? 어떻게 멋있게 희생할 수 있는가? 어떻게 산화할 수 있는가? 이걸 고민하고 실천하면 대한민국 국민이 기독교에 대해서 호감을 갖게 되고 더 많은 크리스천이 생기게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이 : 오늘의 청년 세대들에게 해 주시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 : 예수님을 찾아왔던 부자 청년은 예수님이 네가 가진 재산 다 팔고 나를 따르라고 하니까 근심하면서 돌아갔잖아요. 청년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가진 것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왜냐하면 가진 것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별로 연연할 것이 없는 사람이에요.

예수님을 언제든지 가볍게 따라갈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이 청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부자 청년은 자기가 가진 것이 많았어요. 그래서 그것을 포기하지 못해서 따라가지 못했어요. 청년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몸 가볍게 주님을 따라갈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들이 청년들이죠. 그러나 가진 것이 있건 없건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 사람이 부자 청년이에요.

주님의 부르심에 근심하면서 돌아가는 부자 청년의 길을 간다면 부자도 아닌 것이 괜히 부자가 되어서 청년의 길을 포기하는 것이 되겠지요. 그런 면에서 청년 세대들이 용기 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좋겠어요. 일반 성직자들이나 기존 체제의 틀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지켜야 할 교회당도 많고 재산도 많고 교회 안에 이루어 놓은 제도도 많아서 이런 것들 지키느라고 따라가지 못해요. 그러나 청년들은 용감하게 따라갈 수 있습니다. 청년들이 뭐 진보가 있고 보수가 있고 복음주의권이고 따질게 뭐가 있어요. 성경 말씀대로 하면 됩니다. 그러면 다 같이 만납니다.

이 : 긴 시간 귀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기도 제목 있으시면 나누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김 : 하나님나라의 정의와 평화와 그런 것들이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희년함께가 추구하고 있는 희년이 이루어지는 그런 사회가 빨리 우리 앞에 열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제 기도 제목이 있다면 오직 그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정말 희년이 이루어지는 그런 사회,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지요. 그것을 위해서 교회가 쓰임 받고 우리가 거기에 부르심 받기를 간구하고 기도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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