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1979년부터 98년까지 넝마주이, 부랑인 등 사회적 약자를 포이동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사진 제공 CBS 수호천사)
1979년 정부는 넝마주이, 부랑인 등의 자활을 명목으로 자활근로대를 결성했다. 그 후 그들을 강제수용 하여 삶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81년 자활근로대는 해체되었고 1998년까지 강제 이주가 이어졌다. 그리고 2012년 현재까지 그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불법 점유자로 낙인찍힌 삶

"그 사람들(당시 경찰)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면 그들이 관리하고 정작 우리는 돈 한 푼 갖지 못했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고아원을 전전하던 유도관 할아버지(63). 유일한 생계 수단은 폐품 수거 일이었고 1981년 영문도 모른 채 포이동으로 강제 이주됐다.

열심히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던 가난하고 고단한 삶에 아내는 할아버지의 곁을 떠났고 이제 남은 건 외로움과 질병뿐이다. 삼십 년이 넘게 이어진 감시와 폭력, 철거 위협은 결국 심장병을 낳았고 병원비는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 1981년 자활근로대인 남편을 따라 재건 마을로 강제 이주된 서미자 씨도 화재로 집을 잃었다.(사진 제공 CBS 수호천사)
"억울한 거야 지금에 와서 말하면 뭐합니까."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한 많고 억울한 삶이지만 다른 것 바라지 않고 죽을 때까지 쫓겨나지 않고 여기서 눈 감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하는 유도관 할아버지.

포이동 재건마을은 주변의 땅값이 오르면서 눈엣가시가 됐다. 1988년 강남구청이 당시까지 하천 부지였던 마을 부지를 도서관 부지로 변경하면서 그전까지 주소지가 안정되고 주민등록도 등재돼 있던 주민들을 새 주소지로 등재하지 않았다.

강남구는 강제 이주된 증거가 없다며 거부했다. 2009년 대법원이 주민으로 인정하라고 결정했는데도 시의 땅을 불법 점거했다며 수억 원의 토지 변상금을 부과했다. 졸지에 주소 없는 유령이 되었고 불법 점유자로 낙인찍힌 것이다.

2011년 화재로 또다시 밑바닥 인생

지난해 6월, 재건 마을은 또 한 번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96가구 중 74가구가 전소하는 화재가 발생한 것. 그러자 기다렸단 듯이 다시 시작된 철거 위협.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철거 위협 속에 공동생활을 해야 했던 끔찍한 시간을 보낸 끝에 지난 1월 입주식을 마쳤다.

1981년 자활근로대인 남편을 따라 재건 마을로 강제 이주된 서미자 씨(56세)도 화재로 집을 잃었다. "그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뛴다." 화재 당시 처참했던 상황을 회상하며 서미자 씨는 한숨을 지었다.

좋은 집, 좋은 물건이 아니라도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자활근로대 사람들에게 밥을 해 주며 가정부로 일하며 힘겹게 일궈 놓은 손때 묻은 모든 것이 한순간 재가 되어 날아갔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흉통이 심해서 병원에 갔더니 불안증이 심해서 생겼다고 해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 보니 흉통이 심근경색이 되었다. 바람 잘 날 없이 고단한 삶에 병까지 찾아왔다. 앞으로 남은 일생을 약에 의지해 살아야 한다.

아직 독립하지 못한 두 자녀와 함께 정부 보조금 39만 원으로 생활하는 서미자 씨. 무겁기만 한 삶이지만 아직 목소리에는 희망이 가득하다. "없이 사는 살림이지만 우리 가족 여기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쫓겨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제 소원이 부족한가요?"

▲ 포이동 주민들에게는 삼십 년이 넘게 이어진 감시와 폭력, 철거 위협은 결국 심장병을 낳았고 병원비는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사진 제공 CBS 수호천사)
자녀들에게 대물림된 아직 끝나지 않은 투쟁

이제 포이동 재건마을 주민은 60,70대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저기서 주워 온 물건들로 살림을 차리고 돈이 없어 자식들 공부도 못 시켰던 지난 세월.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벗어날 길 없는 가난은 절망을 만들었고 그 사이 세월은 무심히 흘렀다.

"추운데 돈이 없다 보니까 집을 이렇게 짓고 살았다. 수십 년이 지나니까 집이 허물어져서 비도 새고 엉망이다. 오갈 데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사는 거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1989년 이곳으로 강제 이주 되어 온 이영순 할머니(62세).

10년 전 신장암으로 콩팥을 다 떼내는 대수술을 받았지만 몸이 아픈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자녀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다. 늘 부족한 삶에 자녀들 공부 못 시킨 것도 한이 되는데 가난까지 대물림된다고 생각하니 할머니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가진 것도 없고 공부도 못 시켜 보고 가난 하나만 안 물려주려고 애를 쓰는데 그게 잘 안 되네요. 부모 노릇 못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알아서 살아 보겠다고 애를 쓰는데 그것도 너무 마음 아파요." 살기 위해 발버둥 쳤던 지난날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할머니는 스스로를 원망하고 만다.

평생을 가진 것 없이 살아온 할머니는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다. 다만 30년 동안 함께 울며 웃으며 살아온 이들이 마지막 보금자리를 빼앗기지 않고 자녀들에게 역사가 낳은 끔찍한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는 것이다.

포이동 재건마을의 안타까운 사연은 CBS TV '수호천사 사랑의 달란트를 나눕시다'를 통해 오는 2월 19일(일) 오후 4시에 다시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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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내주신 성금은 월드비전을 통해 전액 포이동 재건마을에 전달됩니다.

이주훈 / C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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