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존권을 빼앗긴 쌍용차 노동자들과 함께하기 위해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기도회는 위로와 희망의 온기가 가득했습니다. (사진 제공 박보름)
참회의 마음으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2009년 여름 쌍용맨이라는 자부심으로 성실히 일해 온 쌍용 자동차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해고자가 되었습니다.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해고는 곧 밑바닥으로의 추락을 의미하기에 소중한 일터였던 공장에서 77일 동안 파업을 했습니다.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회사 측의 잔인한 정리 해고, 최루액과 곤봉으로 무장한 폭력적인 공권력에 맞서 살기 위해 죽음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파업이 끝난 후 희망퇴직자, 무급 휴직자, 가족, 심지어 비해고자까지 2년 6개월 동안 19명이 죽었습니다.

▲ 세상을 떠난 조합원 영정 앞에서 오열하는 쌍용차 노동조합 김정우 지부장. (사진 제공 박보름)
이들의 죽음은 이들의 나약함이나 무능함 때문이 아닙니다. 이들의 죽음의 일차적인 책임은 자신들의 부실 경영의 책임을 힘없는 노동자들에게 넘긴 경영자들, 노동자들을 국민으로 생각하지 않는 무자비한 정권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묵인한 우리에게도 이 죽음의 책임이 있습니다. 회사와 정권이 사람을 죽였다면 그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우리에게는 죽음을 방조한 책임이 있습니다.

회사와 정권이 그들을 쫓아낼 때 우리가 그들의 편이 되어 줬다면, 힘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외면할 때 우리 평범한 사람들이 그들의 보호막이 되어 줬더라면…. 고난 받는 이웃과 함께하는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지키지 못한 우리는 이 죽음 앞에 무거운 책임을 느꼈습니다. 19명의 귀한 생명을 무기력하게 떠나보낸 우리의 죄인 됨을 고백하며 참회의 마음으로 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 맞잡은 손의 온기로, 함께 드리는 기도로, 죽음의 절망과 해고의 고통을 견디는 해고 노동자들. (사진 제공 박보름)
한기연의 제안으로 '오산이주노동자센터', '수원평택지역목회자연대', '촛불을켜는그리스도인의모임',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감신대총학생회' 등 정리 해고로 말미암은 사회적 죽음을 추모하고 정리 해고 문제 해결을 바라는 단체와 개인들이 모여 '쌍용차해고자와가족들을사랑하는기독인모임'을 꾸렸습니다. 11월 30일 겨울비가 내리는 가운데 첫 번째 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19명의 죽음과 2646명의 고통에 침묵해 온 우리의 죄를 회개하며, 더 뜨겁고 치열하게 함께하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그렇게 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 조합원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 주었던 리코더와 피아노 연주. (사진 제공 박보름)
추모의 기도를 드리며 고난 가운데 임하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험했습니다

절망과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우리의 기도가 어떤 의미가 있을지, 기독인들도 아닌 조합원들에게 기도회라는 형식이 부담스럽지는 않을지 조심스러운 마음이 컸던 만큼 우리의 진심이 전해질 수 있도록 진심으로 기도회를 준비했습니다. 19명의 죽음을 추모하며 매일 저녁 19개의 촛불을 밝혔습니다. 슬픔과 절망이 가득한 사람들의 마음에 조그마한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추위로 언 손을 녹여 가며 악기를 연주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질 있도록 성서를 묵상하며 말씀 나눔을 준비했습니다. 돌아가신 19명의 이름과 삶의 흔적들을 찾아보며 그 애통한 죽음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진심으로 추모하기 위해, 남겨진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함께 중보 기도를 드렸습니다.

삭막한 공장 앞에 울려 퍼지는 맑고 청아한 리코더 연주를 들으며 꽁꽁 얼었던 마음이 따듯하게 녹고 굳은 얼굴에 웃음이 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기도가 어색하기만 했던 조합원들이 젖은 눈으로 두 손을 꼭 모아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19명의 희생자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리고 추모의 기도를 드리며 죽음은 더는 아픔과 절망이 아닌 위로와 소망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 패배와 끝이 아닌 소망의 시작이 되었듯이, 부활의 승리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충만했듯이, 추모의 기도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쌍용자동차 공장 앞 추운 거리에서, 죽음과 절망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부활의 기쁨을 나누며 죽음과 절망을 넘어 새로운 희망을 만들었습니다.

▲ 하나님 곁으로 떠난 이들의 평안을 위해, 다시 일터로 돌아갈 그 날을 위해 기도 합니다. (사진 제공 박보름)
이제, 우리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 왔다. 그러니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이제 나는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친구라고 부르겠다(요 15 : 9, 15)."

30일 동안의 추모 기도회가 끝난 지금 더 이상의 죽음을 막고 일터로 돌아가기 위한 해고자들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희망텐트촌 1차 포위의 날 '와락, 크리스마스'가 1000여 명의 사람이 모인 가운데 진행되었고 더 많은 사람이 해고자들의 죽음과 정리 해고 문제에 관심 두기 시작했다. 그러나 2646명의 해고자가 지난 3년간 겪어 온 경제적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고 해고의 고통에서 벗어나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까지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해고의 현실은 여전히 냉혹하고 이 기도회가 가시적으로 그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했지만 우리는 이 기도회를 통해 친구가 되었고 우리가 품은 친구의 사랑이 결국 이 싸움을 어떤 식으로든 승리로 만들어 갈 것입니다.

30일간 함께 울고 웃으며 맞잡은 손의 온기를 느끼며 기도했던 시간을 통해 그들이 겪고 있는 고난과 아픔이 우리의 아픔이 되었고 고통 가운데 하나님 곁으로 떠난 이들의 못다 이룬 간절한 바람이 우리의 바람이 되었습니다. 어느 자리에 있든 19명의 죽음을 기억할 것이며, 그들이 견디고 있는 고통과 아픔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들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하든 우리는 그들이 사랑과 진심을 가지고 치열하게 살아 내고 있음을 기억할 것입니다.

모든 고난 받는 이들의 친구가 되고 그들을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우리는 이제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품은 친구의 사랑이 더 많은 그리스도인 안으로 퍼져 나가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정의와 평화를 꿈꾸는 모든 이들이 쌍용차 해고 노동자의 친구가 되기를, 친구의 사랑으로 죽음과 절망을 생명과 희망으로 변화시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망합니다. 

▲ 지난해 11월 30일부터 30일 동안 매일 밝힌 19개의 촛불. (사진 제공 박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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