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옥한흠 목사님이 한국교회에 끼친 영향은 대단하다. 말씀을 가지고 수많은 성도를 제자화시켰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부른 백성들을 제자로 삼으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충실히 좇았다고 할 수 있겠다(마 28:20). 그런데 예수님은 가르칠 뿐 아니라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다. 알기는 많이 알아도 아는 것을 지키고 살지 못하면 허사다. 어떤 성현이 "길을 아는 사람은 많아도 그 길을 걷는 사람은 드물다"고 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어려서부터 '공부'하는 데 숙달되어 있다. 한국의 경제적 발전이 공부 열에 기인한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습관이 교회까지 들어와서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한다. 주일 설교를 열심히 듣고, 예배 후 성경 공부반에 참석하고, 주일 저녁 예배까지 드려야 주일 성수를 한 기분이 든다. 주중에는 새벽 기도와 수요 예배, 그리고 주중 성경 공부에 참석한다. 그리고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 철야 기도에 참석해야 한다. 우리는 이 정도는 해야 신앙생활을 제대로 한다고 믿고 있다. 이렇게 우리 신앙의 뜨거움과 열심은 세계 교회에 모범이 되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 성도들은 영적으로나 성경 지식적으로 보아도 중 이상의 성숙도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목회자들은 평신도들을 초등학교 학생 정도로 취급한다. 물론 평신도(필자는 평신도라는 단어를 싫어하지만, 일반적으로 이해 가능한 말이기 때문에 쓴다는 것을 말해 둔다)는 신학 교육을 받지 않았고 영적으로도 목사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성경 지식을 많이 가졌다고 해서 영성이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목적은 주님을 더 잘 알고 그를 닮아 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닮는다는 것은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기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또 하나님의 말씀이 내 인생 항로의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내 인생의 목적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살아 보자는 데 있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나서도 여전히 옛날의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예수라는 이름을 내걸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나 속은 나 중심의 인생을 사는 위선의 삶을 살 수도 있다. 그 세속적인 목표를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성공'이라는 우상이다. 목회자(선교사를 포함해서)나 평신도들은 '성공'이라는 대전제하에 뛰고 있는 것 같다. 이 성공이라는 우상은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가면 뒤에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꼭꼭 숨어 있다. 우리가 교회에서 자주 들어 온 기도, 즉 우리가 "소머리가 못 될지언정 소꼬리가 되게 마시고 쥐 머리라도 되게 해 달라"는 믿음 같은 것 말이다.

물론 어떤 목회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한다고 안 하겠는가? 우리 마음은 간사해서 나 자신의 속임수에 넘어가기 쉽다. 이렇게 우리는 연약하다. 잠시는 자신도 속이고 남을 속일 수는 있지만 이런 연극은 오래가지 못한다. 더욱이 하나님은 속이지 못한다. 언젠가는 주님의 심판을 받을 때가 올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마 7:21~23)"고 하신 주님의 심판을 받기 전에 돌아서야 한다.

이제 우리는 무대에서 연극을 그만하고(위선자의 원뜻은 배우이다) 골방에 들어가서 분장을 지우고 주님 앞에 적나라하게 서서 주님의 점검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교회가 '물 댄 동산처럼 되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처럼'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세우시고 부흥케 하신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지 못했던 세계를 향한 복음 전도이다. 이 세계 복음화의 큰일을 하기 전에 우리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이 깨닫고 반성할 것들이 있다.

평신도들은 깨어 있다. 더는 평신도들을 바보 취급하지 말자. 그들은 속속들이 다 들여다보고 있다. 우리는 더 투명한 옷을 입고 활보하는 황제처럼 되어서는 안 되겠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르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다(마 23:1~3)."

이제는 우리 목회자가 깨어날 때가 됐다. 

김북경 / 국제장로교 영국교회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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