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 이후 가톨릭교회도 처음에는 사제들도 모두 결혼하여 가정을 가졌다. 교회에 부가 축적되면서 사제직을 아들들에게 세습하여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악순환과 타락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 1046년에 칙령을 내려 사제의 결혼을 금지하였다. 오늘날의 교회 세습과 똑같은 양상이 중세 가톨릭교회 타락의 시발점이 되었다. 따라서 세습은 교회를 무너지게 하는 악의 근원이다. 세습은 본질적으로 담임목사의 자리가 부와 명예를 보장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만일 어려운 교회, 아무도 오지 않으려고 하는 교회에서 자신의 아들을 후임 목사로 삼으려고 한다면 미담이 될 것이다. 문제의 초점은 대형 교회의 담임목사는 누구나 부러워한다는 점이다.

세습에는 '소유'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세습이란 무형이든 유형이든 소유권자가 자기가 원하는 사람에게 그 '소유'를 이양해 주는 것이다. 목사는 어떤 경우에서도 교회 공동체의 재산이나 신분상 '소유권자'가 될 수 없다. 어떤 목사가 '내가 젊은 나이에 개척하여 이만큼 큰 교회로 키웠다', '교회가 어렵고 힘들 때 내가 부임해서 이만큼 성장시켰다'는 주장을 한다면 그것은 믿음 없는 삯꾼의 억지 주장임에 틀림없다. 교회는 오직 '주님의 교회'일 따름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를 특정인의 소유물처럼 여긴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목사를 포함한 교회 구성원이 교회 안에서 기득권을 주장할 수 없고 또한 어느 누구라도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였다면 전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며 은혜를 넘치게 받았다는 뜻이고,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신앙과 양심적인 고백이 존재한다면 담임목사는 임기가 끝나면 조용히 물러나면 된다. 만약 교인 수가 100여 명 미만이고 교회 건축으로 빚을 지고 은행 융자를 평생 갚아야 할 상황이라면 과연 자식에게 세습을 생각하겠는지 물어야 한다. 후임자 결정에 대해 전임자가 간여하는 것은 목사의 윤리에 반하는 행동이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교만에서 비롯된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방법대로 하신다. 어느 목사가 아들에게 세습을 준비하고 있다는 암울한 소식이 들린다. 그간의 대형 교회의 세습 과정을 살펴보면 결국 세습 카드를 사용할 것이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교회가 세습된다면 이미 교회로서의 생명력을 잃은 것이다. 세습화는 모든 사유화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일부 교회가 행하고 있는 세습은 천박한 자본주의를 기초한 세속화의 단면이다. 교회 세습을 하려는 목사는, '내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우리 교회를 가장 잘 아는 적합한 인물이다', '목사의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본 교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목사이다'고 주장할 것이다. 교회의 형편이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아버지나 아들 중 한 사람이라도 성숙한 신앙과 인격이 있다면 세습은 접어야 한다.

<생사를 건 교회 개혁>의 저자 김동호 목사는 그의 설교에서 "세습은 참 전근대적인 것이다. 사업도 조그맣게 할 때는 자식에게 물려줄 수도 아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업이 커져서 주식회사가 되고 여러 주주들의 돈으로 큰 회사를 이루게 되면 사장의 아들이라는 이름만으로 그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개인 회사는 개인의 것이니까 아들에게 사장 자리를 물려주어도 되지만, 주식회사는 개인의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사장과 회장의 회사가 아니라 주주들의 회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무조건 자기 아들이라고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뒤를 이어 사장을 만들고 회장을 만드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옳지 않은 일이다. 공정한 경쟁을 통했다면 그는 그 교회의 담임목사가 아마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저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는 남의 자리와 기회를 도적질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고 세습에 대해 일갈했다.

목사는 교회를 돌보고 맡기신 성도들을 섬기는 종이다. 종은 자기를 즐겁게 하는 자가 아니라 주인을 기쁘게 하는 자이며 자기 짐을 가볍게 하려는 자가 아니라 주인을 위하여 무거운 짐을 지는 자이다. 종은 주인의 자리를 넘겨보는 자가 아니라 종으로 써 주심에 감사하는 자이고 자기의 일보다 주인의 일에 우선권을 두는 자이며 종은 요나처럼 자기 가고 싶은 대로 가는 자가 아니라 땅끝까지 어디라도 주인을 따라가는 자이다.

종에게는 소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종은 종의 모든 것이 주인의 것이며 주인의 아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하나님의 종을 자처하는 목사는 이 원칙을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 이것을 무시하고 변칙을 시도할 때 교회의 부패와 변질과 타락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하나님의 교회를 세습한 목사는 과연 하나님의 교회를 어떤 관점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심장을 소유했는지 한없는 연민을 느낀다. 교회를 개인의 기업 정도로 여기는 그의 신앙이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교회 세습은 하나님과 성도를 상대로 벌인 희대의 사기극이 된다.

한국교회에 알 만한 대형 교회들이 세습에 앞장섰다. 대구 서문교회는 이성헌 목사가 아들 이상민 목사에게, 인천 주안교회는 한경수 목사가 아들 한상호 목사에게, 월드비전교회(구 서울중앙교회)는 오관석 목사가 아들 오영택 목사에게, 광림교회는 김선도 목사가 아들 김정석 목사에게, 소망교회는 곽선희 목사가 아들 곽요셉 목사에게 분당 예수소망교회를 변칙 세습하였다는 논란을 빚었고, 강남제일교회는 지덕 목사가 아들 지병윤 목사에게 대물림하였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는 김준곤 목사가 사위 박성민 목사에게, 경향교회는 석원태 목사가 아들 석기현 목사에게, 대성교회는 서기행 목사가 아들 서성용 목사에게, 동현교회는 예종탁 목사가 아들 예성철 목사에게, 금란교회는 김홍도 목사가 아들 김정민 목사에게, 임마누엘교회는 김국도 목사가 아들 김정국목사에게 세습을 완료했고 증가성결교회는 이정복 목사가 아들 이경원 목사에게 세습하기 위하여 교인 총회를 개최하였으나 교인 62%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코끼리가 설교대로 올라가는 이유는 거기에 비스킷이 있기 때문이다"는 미국 교계의 야유가 풍자하듯 자식에게 교회를 물려주려는 것은 거기에 세속적인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신본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을 빙자하여 목사나 당회가 하나님의 자리와 권위를 대신하여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그것을 신본주의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신본주의자들은 엄격히 말하자면 인본주의의 본류인 셈이다.

교회 안에는 그럴듯한 분위기가 있다. '목사 비판하면 안 된다, 그러면 하나님에게 벌 받는다'. 아주 웃기는 공식이다. 이런 비성경적인 권위주의가 무너져야 한다. 목사들에게 예언자적 기능이 사라져 교회를 사유화하고 세습을 당연시하는 풍조가 만연되었다. 처음 세습 문제가 불거졌을 때만 해도 사회문제가 되었고 교회 안에서도 반대 의견이 비등했다. 하지만 세습이 다 이뤄졌다. 교회 재정은 성도들이 내는 헌금과 십일조로 운영되지만 그것은 신앙 공동체인 교회에 낸 것이지 목사 개인에게 낸 것은 아니다.

특정 목사의 능력이 교인들을 끌어 모으고 교회를 확장시켰다 하여 그것을 개인의 것이라 여기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썩어져 없어질 물질과 명예에 매몰된 중병이 치료되지 않는 한 한국교회는 몰락의 길로 가게 될 것이며 상상할 수 없는 참혹한 열매로 나타날 것이다. 목사가 세운 교회, 목사가 키운 교회이니 마땅히 자식에게 물려주어도 된다는 불신앙과 몰염치가 향후 한국 사회에서 교회의 리더십과 영향력 상실로 귀결될 것이다.

세습은 교회론의 핵심인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 되심을 실질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목사와 성도들도 세상에 사는 날 동안에 끊임없이 권력과 명예에 대한 유혹이 있고 실족할 수 있다는 겸손한 자기 고백이 있어야 한다. 상대적으로 세습은 담임목사의 지위를 지나치게 강화하여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 되심을 약화시킬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또한 세습은 교회의 언약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에 도전하게 된다. 물론 교회는 혈연적인 관계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교회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언약 관계에 있는 새로운 공동체이며 결코 혈연 공동체가 될 수 없다

은퇴하는 목사가 세습을 하고 싶어도 목사 아들이나 목사 사위가 없는 경우에는 더 심각한 문제로 나타나는데, 바로 '은밀한 담임목사직 거래'이다. 추악한 목사들은 교회나 성도들도 모르게 후임자와의 은밀한 거래를 통하여 한몫(?)을 챙긴다. 교세에 따라서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거래가 성사되는데 이것이 성직 매매라는 데 이견이 없다. 돈은 있으나 교회 개척에는 부담스럽던 자가 바로 안정된 담임목사의 자리를 꿰차는 편의 때문에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거래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재정 형편이 괜찮은 교회가 지나치게 후한 전별금을 책정하고 지급하여 성도들의 반발을 사고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분당중앙교회는 최종천 목사에게 20억 원의 전별금을 책정하였으나 교인들의 반발로 사택을 제외한 13억 원은 없었던 일로 마무리했다. 마포에 위치한 희성교회는 25년간 시무하다가 은퇴한 황태주 목사에게 퇴직금 1억 6,700만 원, 은퇴 후 18년간 생활비 7억 5,600만 원, 1년분 급여 8,000만 원, 8억 상당의 45평 아파트, 합하면 18억 300만 원이다. 당회와 제직회, 공동의회의 결의를 통하여 결정했다는데 회의는 형식적이었고 일시불 요구에 교인들이 크게 반발했다고 한다. 궁핍한 형편에 있는 성도들과 불신자에게 수십억 원의 전별금은 큰 상처와 박탈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다수의 성도들은 교회에서 복을 받고 자신의 영혼이 쉼을 얻기를 바라고 있지 교회 일에 개입하여 골치 아픈 일을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더구나 그것이 목회자와의 마찰이 일어날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뒤에서 교회가 잘못하고 있다고 비난은 하지만 스스로가 문제 해결을 위한 일꾼이 되려고 하지는 않는다. 또한 상당수는 교회가 잘못되면 떠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성도들의 절대 다수가 목회자의 세습은 잘못이라고 생각해도 심각한 저항 없이 세습이 일어나는 것은 성도들의 무책임에 기인한 태만과 방임의 결과물이다.

담임목사가 교회의 결정을 전횡하고 자신의 아들을 세습시킨다는 것은 이미 그가 상당 부분 교회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뜻이 자신을 통해 나타난다고 믿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위와 권한을 사용해서 자신의 아들에게 담임목사직을 세습하는 그곳에 교회의 참된 주인인 예수님께서 계실 자리는 없다. 담임목사에 권한과 특혜가 존재하는 한 아무리 훌륭한 목사라도 이 욕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녀 사랑이 또 하나의 우상으로 자리하고 있는 한국 토양에서 세습과 후임자와 은밀한 거래는 거절하기 어려운 선악과가 되었다.

목회자의 세습은 그 자체가 불의이다. 신앙고백이 규정한 공교회 정신과 충돌하고 합당한 담임목사를 세워서 교회를 바르게 인도하실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교회 안에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주인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하나님나라의 거울로서의 교회의 참모습을 훼손하므로 성장과 선교에도 치명상을 입힌다. 한국교회가 바르게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세습과 전별금 같은 비난받을 불의한 일을 청산하고 교회가 흔들림 없이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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