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독교 내부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없는 걸까.'

지난 1일 '불명예 사임하는 교회 목사 전별금이 20억?' 기사가 나온 후 기자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의문이다. 보도 이후 '목사 전별금'이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에 장시간 오를 정도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전별금은 생소한 것이었고 그 규모는 상식 밖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별금 문화에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종교인은 거의 없었다.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것은 그 때문이다. 한백교회 담임목사로 8년간 있었던 김 연구실장은 현재 민중신학을 연구하는 제3시대그리스도교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 기독교 문화의 무엇이 이러한 거액의 전별금을 가능하게 하는지, 내부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11일, 충정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 연구실장은 "그동안 공론화되지 않았을 뿐 큰 교회에서는 전별금이 관행화되어 있다"며 "원래 전별금은 열악한 교회들이 퇴직금을 제대로 지급하기 어려워서 주기 시작한 건데, 대형 교회는 퇴직금 제도를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데도 안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한 목사가 30~40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재임 기간은 물론이고 은퇴 후에도 교회의 모든 자원을 독점하는' 한국 대형 교회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이어 최근 언론에서 부쩍 많이 보도되고 있는 기독교 비리와 관련 "사람들은 (기독교가) '지금이 더 나빠졌다'고 보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전별금 문제도 그렇고 다 있었던 문제들이 그동안 공론화되지 않았을 뿐이다"며 "기독교 내부의 비리들을 좀 더 공론화해서 건강한 비판들이 많이 오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진호 연구실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떠나는 목사들 집 사 주고, 차 사 주면 교회 재정이 휘청"

비기독교인들에게 전별금은 생소한 문화다. 교회에서는 이러한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는 건가.

소수 대형 교회 문제다.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교단별로 유추한 숫자에 따르면 한국 교회의 80%가 미자립 교회다. 목사들 중에 3분의 1 정도는 최저생계비 이하로 살아가고 있다. 목회자들 중에 농촌 목회자들 같은 경우에는 월급이 50만 원 미만인 경우가 많다. 농촌이라 집은 있지만, 집안 식구들이 아프거나 이럴 경우에는 대책이 없다.

▲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사진 제공 오마이뉴스)
도시 교회들은 그보다는 나아도 생활이 어렵다. 투잡, 쓰리잡 하는 목사들이 많다. 택시 기사, 건설 노동자, 부인들도 같이 일하는 경우도 많고. 그런 교회들은 전별금은 생각도 못 하는 상황이다.

큰 교회들, 이번에 전별금이 불거져 나왔으니까 문제가 됐지만 실제로는 관행화되어 있다. 목사님이 은퇴하고 떠나시는데 뭐라도 해 드려야 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아주 대형 교회가 아닌 중·대형 교회들은 재정이 휘청거릴 정도로 전별금을 많이 지출하기도 한다. 대형 교회들은 재정이 충분하지만 중형 교회들은 적자재정이 많다. 그런 교회에서는 목사님이 은퇴할 때 가장 큰 지출이, 집을 사 주는 거다.

집을 사 주거나 차를 사 주거나 그렇게 전별금을 하는 게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에 교회들은 당연히 그런 줄 알고, 많은 교회에서는 그것이 큰 부담이 된다. 실세가 아닌 분들은 불쾌해하기도 하고. 교회 안에서 불협화음을 내기도 한다.

거액의 전별금을 논의하면서도 그 과정이 민주적이지 않은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교인들의 합의 사항이 아니라 당회의 결정 사항이다. 사실 당회 참여했던 장로들도 '전별금 만들어 주자'는데 하지 말자고 말 못 한다.

분당중앙교회 일부 교인들의 경우, '최 목사는 교회를 창립해서 성공시킨 일종의 CEO이기 때문에 거액의 전별금이 적절하다'는 의견도 있었는데.

사실 대형 교회 같은 경우에는 책정된 월급 이외에 많은 돈을 목사에게 지출하기 때문에 목사들이 전별금 따로 받지 않아도 퇴임 이후를 준비할 수 있다. 재직 기간 동안은 교회 사택이 있고, 일체 가계 지출들, 예를 들면 자동차 관리비, 자녀 학비 이런 걸 교회에서 다 내주니까 지출할 게 없다. 어떤 CEO도 그렇게 대우를 못 받는다.

원래 전별금은 열악한 교회가 많아서 생긴 거다. 너무 열악한 데서 일하다 떠나는데 퇴직금 지급하기 어려우니까 전별금을 주는 거다. 그런데 대형 교회 전별금은 그런 게 아니다. 퇴직금 제도를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데도 안 한다. 대기업 이사급 되는 사람들이 퇴직할 때, 억 대 퇴직금을 받을 거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법적인 문제가 안 된다. 수입에 맞춰서 계산을 하는 거니까. 또 세금도 낸다. 그런데 전별금이나 목사들의 임금은 전혀 세금을 안 낸다.

은퇴해서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면 퇴직금 제도를 원칙적으로 도입해서 모든 목회자들이, 담임목사뿐만 아니라 부교역자들도 일한 것에 대해 제대로 계산된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목사도 하나의 직업… 세금 내고, 퇴직금 제도 원칙적으로 도입해야"

보통 목회자들의 경우, 퇴직 후 노후 대책이 어떻게 되어 있나.

통일 운동을 했던 향린교회 홍근수 목사님이 있다. 이분이 은퇴 2년을 남겨 놓고 조기 은퇴를 했다. 은퇴한 목사에게 주는 퇴직금에 대한 부담을 교회에 안 주겠다고. 전혀 생계 대책도 없이. 이분이 지금 난치병에 걸려 있는 상태인데 좋은 예라고는 할 수 없지만, 굉장히 아름다운 예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목회자들에게는 노후 대책이 중요하다. 교단별로 '은급(연금)'이라고 해서 일종의 사회보험 형식의 교회 복지 제도가 있다. 그런데 교회 재임 기간 중에 은급을 위한 헌금을 내놓을 수 있는 교회가 많지 않다 보니 이마저도 혜택을 못 받는 목사가 많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교회가 모든 비용을 신고해서 정당하게 세금을 내고, 작은 교회 목사들도 일반 국민들이 받는 사회보장제도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거다. 교회 역시 사회보장제도가 확대되기 위해 노력을 하고. 교회 목사도 하나의 직업이다. 직업에서 은퇴하면 우리 사회에서 은퇴한 사람들이 갖게 되는 노후 대책을 같이 강구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퇴직 후 '원로목사'가 되어 사례비를 받는 경우도 있다는데.

한국의 교회 대형화 과정에서 정착된 제도 중 하나가 목사들이 장기간 목회를 하는 거다. 그전에는 법칙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일종의 순회 목회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었다. '한 교회에서 너무 오랫동안 있는 것은 교회를 위해서나 목회자를 위해서나 교인을 위해서는 안 좋다. 적당히 한 교회서 시무를 하다가 다른 데로 옮겨 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데 대형 교회로 성장한 교회들은 굉장히 강력한 목사의 카리스마가 교회의 성장을 이끌어 냈다. 조용기 목사처럼 천막 교회로 시작해 자수성가한 그런 교회들에서 목사는 (교회의) 거의 실질적인 소유자다. 본인도, 그들의 가족도 그 (교회) 재산이 자기 재산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은퇴한 다음에 은퇴 목사라는 것은 말이 원로목사지, 그 교회의 사실상 오너로 '큰 회장' 같은 걸로 있겠다는 거다. 목사가 교회의 거의 모든 자원을 독점하고 있는 상태에서 은퇴를 해도 배후에서 조종하고 현 담임목사와 갈등을 빚기도 한다. 그런 것 때문에 권력 이양을 순조롭게 하기 위해서 자식에게 세습하는 경우가 많다.

저는 전별금이나 권력 세습보다 더 문제가, 교회가 갖고 있는 온갖 자원들을 목사가 독점하는 거라고 본다. 북한이나 북아프리카와 마찬가지다. 30~40년 동안 혼자 목회를 하면 그 교회는 그 사람 중심으로 모든 시스템이 움직인다. 한국 대형 교회의 문제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다른 국가는 그런 경우가 없는데 미국에 '메가 처치(Mega Church)'라는 게 있다. 미국 교회의 급성장기가 세 차례 정도 있는데 그 마지막인 60년대 중반에 등장한 대형 교회를 메가 처치라고 한다. 이전의 교회들과는 달리 자본 친화적이고, 자기 개발을 중시한다. 목회자의 카리스마가 절대적이고. 한국의 메가 처치는 미국의 메가 처치를 더 철저하게 발전시킨 경우라고 할 수 있다.

70년대 중·후반, 조용기 목사가 미국 메가 처치들의 신학인 번영 신학을 교회 부흥 신학으로 도입한다. 조용기 목사가 68년 처음 목회를 시작할 때 신도가 5명이었는데 지금은 78만 명이다. 한국판 메가 처치는 목사가 장기간 카리스마를 가지고 교회 자본을 독점하면서 교회가 성공을 하는 데 기여를 한다. 또 자원을 독점하고 있으니까 그들이 쓸 수 있는 비용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한국 기독교는 '공적(公的)'이라는 것의 무서움을 모르는 집단"

최근 들어 대형 교회 목사의 비리와 관련된 교회 내부의 갈등이 많이 보도되고 있다. 법적 분쟁도 많이 발생하고 있고. 이에 '교회 내의 문제를 왜 사회법으로 해결하나'는 비판도 나오는데.

좋은 징조일 수도 있고 나쁜 현상으로 갈 수도 있는데 교인들이 과거와는 달리 자아가 굉장히 주체화되어 있다. 이제는 자신들이 문제의식을 느끼는 부분에 대해 발언한다. 요즘 들어 교회 문제가 언론에 많이 나오니까 사람들은 (기독교가) '지금이 더 나빠졌다'고 보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전별금 문제도 그렇고 다 있었던 문제들이 그동안 공론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동안 한국 기독교는 '공적(公的)'이라는 것의 무서움을 모르는 집단이었다. 역사적으로 별로 피해를 안 받았다. 조선정부로부터 집단 학살을 당하기도 했던 천주교와는 달리, 개신교는 남한에서는 사회적 처벌을 받아 보지 못했다. 종교 인구가 1~3%던 제1공화국 시절에도 국교가 개신교인 나라처럼 기독교에 대한 혜택이 많았다. 지금도 개신교인은 전체 인구의 20%가 안 되는데 국회의원들 보면 3분의 2가 기독교인일 거다.

이처럼 기독교가 우리 사회 특권 집단을 이루고 있다 보니 교회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도드라졌을 때 그 문제를 공적이지 않게 해결해 왔다. 그리고 교인들이 그동안 그 모든 것들에 대해서 순순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금은 교회 내 문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갖고 문제 제기를 한다. 서로 협의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면, 우리 사회 공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에 따라야 한다. 그게 옳다고 본다.

교회 비리 기사와 함께, 기독교를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안티' 세력도 많아지고 있다.

그동안 기독교가 굉장히 은폐되어 있었다. 기자들도 교회 기사를 쓸 때는 굉장히 조심스러워한다. 맹목적인 반격도 있고, 방송사 앞에서 시위를 하기도 하고. 저 역시 기독교 비판 칼럼을 썼다가 살해 협박을 받은 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공론의 장에서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은 굉장히 제한되어 있다.

비공식 매체를 통해 비판의 수위가 높아지는 건 공론화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볼 때 기독교를 비판하는 기사들이 성이 안 차는 거다. 그런데 이런 전별금과 같은 사건들이 표면에만 머무르지 않고 내면까지 짚어 가면서 공적인 문제 제기만 될 수 있다면 맹목적으로 분노하는 안티들은 힘을 잃을 거다.

'안티'는 사회적 병리 현상이다. 사회적 병리는 결국 사회가 병을 치료해야 하는 문제다. 안티를 비난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비난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언론이나 우리처럼 내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안티들이 나올 수 있는 자양분이 됐던 기독교 내부의 비리들을 좀 더 공론화해서 건강한 비판들이 많이 오갈 수 있게 해야 한다.

홍현진 / <오마이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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