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트위터에서 "개신교 목사가 되려면 몇 년이 걸리나요?"라는 질문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았다. 한기총 문제와 분당중앙교회 퇴직금 사건 등이 회자하면서 올라온 질문이었다. 그 질문의 진의가 뭘까 싶어 올린 글들을 보니 '개신교가 타락한 이유가 목사 안수를 너무 쉽게 주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견을 개진하는 내용이었다. 몇몇 답변이 올라왔고, 스님과 신부와 비교하면 목사는 너무 쉽게 되어 문제가 많은 것이라는 식으로 정리되어 가고 있었다. 화가 났다. 그래서 답글에 "그래, 나 13년 걸렸다!"고 썼다.

'목사 안수'도 틀린 분석은 아니겠지만, 단순히 함량 미달의 목사들을 양산해서 생긴 문제만이 아니라 정규 신학교를 나와 공인된 교단 소속의 목사들이 일으키는 문제도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다. 결국, 그 원인을 파고들어 가 보면 '돈' 문제이고, '돈' 문제로 사회적인 비아냥감이 되는 경우 '대형 교회 목사' 혹은 그와 관련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전별금 20억' 논의로 주목을 받은 분당중앙교회 문제는 물론이고, 한기총 문제 역시도 대형 교회가 그 단체를 좌지우지한다는 점에서 동일선상에 있으며, 순복음교회 문제 역시도 대형 교회 그룹에 속한다. '대형 교회'가 철저하게 자본을 따라 움직이면서 '하나님이냐, 맘몬이냐?' 둘 중에서 과감하게 '맘몬'을 택하게 된 것이다. 즉, 하나님 아닌 우상을 섬기는 결과를 부패한 개신교의 현실에서 보는 것이다.

교회마다, 교단마다, 그때그때 달라요

신약성서 누가복음 21장을 그대로 옮겨 보자.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불교의 '빈자일등'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사실 건강한 종교라면 신도들이 바치는 모든 물질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고맙게 받아야 하고, 신에게 바쳐진 것이므로 거룩하게 사용해야 한다.

위의 성경 말씀은 주로 헌금하는 자세에 대해 설교할 때 많이 사용하는 본문이다. 그러나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과부의 두 렙돈은 우습고, 부자의 헌금 역시도 그렇다. 왜냐하면, 과부의 헌금은 귀하게 여겨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 때문에 그렇고, 부자의 헌금은 눈먼 돈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헌금'은 신앙적인 결단 혹은 감사의 표시로 드리는 것이므로, 그 헌금의 사용에 대해서는 교회에 일임한다는 것이 전통적인 사고방식이다.

목사가 교회의 대표이기 때문에 목사 마음대로 사용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정상적인 교회라면 '당회(목사와 장로로 구성)'와 제직회(집사와 권사 등 교회의 직분을 받은 이들의 모임)와 공동의회(세례교인전체)가 구성되어 있어서 서로 간의 합의로 교회 일을 처리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당회의 의견이 주로 반영되고, 당회에서는 목사의 의견이 주로 반영됨은 물론일 터이다.

문제는 얼마나 '민주적인 절차'를 따르는가의 문제인데, 제왕적인 목사 혹은 제왕적인 당회라면 그들이 교회를 좌지우지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더군다나 그 교회가 담임목사에 의해 개척된 것이라면 더더욱 심할 수 있다. 분당중앙교회의 문제 역시도 그런 문제들이 있으므로 단순히 얼마냐의 문제로 시시비비를 가릴 수는 없을 것이다.

유대교에 뿌리를 둔 개신교는 끊임없이 분열에 분열을 거듭해 왔다. 한국에서는 그 상황이 더욱 심각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 대한 정치 혹은 행정에 대한 일정한 매뉴얼 없이 교회별로 자율성을 가지고 이뤄진다. 대부분 총회와 노회에 상회비만 내면, 나머지 예산에 대해서는 교회가 자율적으로 집행한다. 그러다 보니, 목회자가 은퇴를 하거나 사임을 할 때 '퇴직금' 문제가 불거지는 것이다. 그런 경우 대부분 사회 통념에 맞지 않는 '고액'을 받는다. 그 반대의 경우엔 거의 알려지지 않거나, 목회자의 거룩한 희생(?) 정도로 지나쳐 버리는 것이다.

내 퇴직금은 이사 비용 300만 원

교회마다 얼마나 다를까? 지금 필자는 기관에서 목회하고 있으므로 일반 샐러리맨들과 똑같은 봉급 생활자라고 생각하면 된다. 4대 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므로 세금도 꼬박꼬박 내고, 소속 교단에서 요구하는 연금과 최저생계비 등도 납부를 하고, 십일조 헌금도 출석하는 교회에 낸다.

1995년 목사 임직을 받은 이후, 부목사를 거쳐 담임목사와 기관 목사 등을 지내면서 몇 차례 이동을 했는데, 목회지의 경우에는 전별금 형태로 200~300만 원 정도를 받았으며, 기관 목회지의 경우에는 호봉에 따라 직장인들과 같은 퇴직금을 받은 것이 전부다.

제주도에서 담임목사직을 사임하고 서울로 올라올 때 내가 받은 퇴직금은 300만 원 정도였다. 이사 비용 정도였던 것이다. 장년 40여 명이 출석하는 작은 농어촌 교회였으므로, 매달 퇴직 적립금으로 10만 원씩 적립했던 돈도 다 받아 올 수가 없었다. 교인은 더 주고 싶어 했고, 목사인 나는 이사 비용만 달라고 했다. 그래서 6년간 담임목사직을 담당하고 받은 퇴직금은 이사 비용에 해당하는 300만 원가량이었고, 교인들이 이렇게 저렇게 마련해서 준 돈은 모두 헌금을 하고 왔기에 '퇴직금 제로'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그런데 만일 작은 농어촌 교회가 아니라 대형 교회였다면? 나도 장담을 할 수가 없다. 아마도 교회서 결정해서 주는 대로 다 받지 않았을까? 더더군다나 내가 개척한 교회라면, 더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는 분당중앙교회의 최아무개 목사를 옹호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교회의 크기에 따라 형편에 따라 퇴직금은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다.

내 경우, 기관에서 퇴직할 때에는 6년 근무했을 때 전별금 없이 퇴직금이 1,300만 원 정도였으니, 보통 중소기업에 다니는 샐러리맨들과 비교해서 많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냥 그 정도가 사회적인 통념이 아닐까 싶다.

목사도 세금을 내야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해진 매뉴얼이 있으면, 보통 직장인처럼 호봉에 따른 체계 같은 것들이 있다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그것의 한 방안이 '목사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세금을 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 왔고, 지금까지 그렇게 생활을 했기에, '왜, 목사들이 세금을 내지 않는가? 혹은 내지 못하는가?'에 대해서는 이해가 잘 되질 않는다. 오히려 성직이기에, 교인들의 헌금으로 먹고 사는 존재이기에 돈 문제는 투명해야 할 것이고, 세금을 내는 것으로 회의에 부쳐 퇴직금을 지급한다면 이번 분당중앙교회와 같은 문제는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

개신교회에는 어떤 정해진 매뉴얼이 없어 교회마다 천차만별이고, 교회 크기에 따라 목회자의 사례비도 천차만별이고, 은퇴 후에도 전별금이나 퇴직금 등 그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다. 어떤 목사는 사례비도 못 받아서 대리운전이나 폐지 수집을 하면서 목회를 하기도 하고, 어떤 목사는 은퇴한 후에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매달 몇백만 원 혹은 몇천만 원씩 챙기기도 하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대부분 집과 자동차 등은 기본이며 주로 대형 교회 목사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그런 사례가 너무 특이하므로 언론의 조명을 받고, 비난을 받는 것이지 사실 많은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지금이라도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교단에서 퇴직금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 중의 한 방안이 '목회자의 세금' 부분이다.

그리스도의 경제 정의는 무엇일까?

오늘 대형 교회의 행태를 보면 과연 한국교회에 희망이 있을까 회의적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어떤 종교도 '절망 가운데서 희망을 보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정화의 가능성을 닫아 버리면 한기총처럼 해체의 순서를 밟을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의 경제 정의, 그것은 부자의 헌금이나 가난한 이의 헌금이나 하나님께 바쳐진 물질이라는 인식이다.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되어야 함은 기본이다. 이것이 무너져서 한국교회가 부패하게 된 것이다. 이것을 회복하지 못하면 한국교회는 희망이 없다. 아니, 어쩌면 이미 희망이 없는지도 모른다. 교회 스스로 맘몬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답이 보이지 않는다. 간절히 바라기는, 그냥 교회가 보통 상식의 수준이라도 회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슨 도덕적인 우위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발 딛고 사는 세상에서 상식의 수준이라도 회복했으면 좋겠다.

목사에게 가난을 요구하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겠지만, 목사가 보통 서민들이 상상할 수 없는 부를 거머쥐고 있다면 어찌 그 영혼이 순수할 수 있겠는가? 청빈, 자발적인 가난이 필요한 시대, 그런 신앙인들이 넘쳐 나지 않으면, 그런 목사가 넘쳐 나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희망이 없다.

대기업 임원들의 연봉이나 퇴직금 등에 대한 보도가 나오면 일반인들은 천문학적인 숫자에 놀란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돈 버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으니, 하며 관대하게 넘어간다. 그러나 목사가 그랬다고 하면 이번 사태처럼 비난하고 나선다. '돈 버는 일이 아니라, '영과 관계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던지는 사람들이 목사에게 가난하게 살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상식의 선을 넘어선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교회와 목회자는 이제 스스로 청빈하고 자발적인 가난을 택해서 하나님이 먹여 주시고 입혀 주신다는 증거를 보여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들을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는 사탄의 무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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