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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무릎 꿇은 불쌍한 대통령 '똥 묻은 개들'로부터 지켜 주소서"

[정치 톺아보기] 권정생과 조용기-김홍도-길자연, 그리고 MB의 길

김당   기사승인 2011.03.11  15: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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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우리 집 근처에는 순복음교회가 있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교회의 새벽 종소리를 듣고 자랐다. 독실한 신도였던 할머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예배에 나갔다. 그럴 수밖에, 새벽 예배 시각을 알리는 종을 치는 것이 우리 할머니 '조 집사님'의 하루 첫 일과였다.

한참 세월이 흘러 할머니는 여전히 새벽 예배에 나갔지만 종을 치진 않았다. 교회에 차임벨이 보급되면서부터다. 지금은 교회 종탑이 사라졌지만, 설령 종이 있어도 칠 수가 없다. 도시에선 소음 규제와 민원 때문에 종을 치는 것은 엄두도 못 낸다. 그러나 그때는 새벽마다 할머니가 교회에 나가 새벽종을 쳤다. '떼~앵 떼~앵 떼~앵'

할머니의 새벽 기도는 단순했다.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는 자녀가 되어 건강하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갖고 나라가 태평하기를 기원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은 새벽 기도의 '약발' 덕분인지 아니면 '사탕발림'의 유혹 탓인지 몰라도 나는 언제부턴가 교회에 다녔다.

지금은 초콜릿이 차고 넘치지만 그 시절에는 크리스마스 때 교회에 가야 맛볼 수 있는 귀한 거였다. 그 시절 교회 수련회는 까까머리 학생에게 외박이 허용된 유일한 외부 행사였다. 어쩌면 그때 교회는 나처럼 일탈을 꿈꾸는 소심한 모범생들의 피난처였는지도 모른다.

종지기 동화 작가 권정생의 새벽종 소리

<몽실언니>로 유명한 동화 작가 권정생(1937~2007)도 '종지기'였다. 1937년 일본 도쿄 빈민가에서 조선인 노무자의 아들로 태어난 권정생은 해방 후 외가가 있는 경북 청송으로 귀국했다. 가난으로 인해 가족들과 헤어져 어릴 때부터 나무장수, 고구마 장수 등을 전전했다. 폐병을 심하게 앓은 그는 서른이 되던 67년부터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에 정착해 교회(일직예배당) 문간방에서 살며 종지기가 됐다.

그는 훗날 "내가 예배당 문간방에 살면서 새벽종을 울리던 때가 진짜 하느님을 만나는 귀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하곤 했다. 마을 사람들이 어릴 적 이름에 붙인 '경수 집사'로 통한 권정생은 한겨울에도 진실된 마음이 통하지 않는다며 장갑 낀 손으로는 종을 치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추운 겨울날, 곱은 손으로 종을 치는 '경수 집사'에게 장갑을 내밀자 그는 손사래를 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새벽 종소리는 가난하고 소외받고 아픈 이가 듣고, 벌레며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가 듣는데 어떻게 따뜻한 손으로 종을 칠 수가 있어요?"

종지기가 되어 거처가 생기자 꿈에 그리던 글을 쓰기 시작했다. 69년 '강아지 똥'을 발표해 월간 <기독교교육> 제1회 아동문학상을 받으며 동화 작가의 삶을 시작했다. 교회 뒤 언덕 밑에 7평짜리 작은 흙집을 짓고 살았던 그는 80년대 중반, 교회에 차임벨이 생기면서 20년 종지기 생활을 그만두고 글쓰기에 몰두했다.

"추운 겨울날 캄캄한 새벽에 종 줄을 잡아당기며 유난히 빛나는 별빛을 바라보는 상쾌한 기분은 지금도 그리워진다. 60년대만 해도 농촌 교회의 새벽 기도는 소박하고 아름다웠다. 전깃불도 없고 석유 램프불을 켜 놓고 차가운 마루바닥에 꿇어 앉아 조용히 기도했던 기억은 성스럽기까지 했다.…새벽 기도가 끝나 모두 돌아가고 아침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와 비출 때, 교회 안을 살펴보면 군데군데 마루바닥에 눈물자국이 얼룩져 있고 그 눈물은 모두가 얼어 있었다(<우리들의 하느님>, 권정생 )."

사람들은 그를 '성자가 된 종지기'라고 말한다. '종지기 권정생'은 늘 예수처럼 가난했다. 월 5만 원으로 생활했던 그는 연 인세 1억 원과 10억 원의 자산을 남겼다. 유산은 최완택 목사와 정호경 신부, 그리고 박연철 변호사에게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는 그의 유언의 따라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 굶는 어린이들을 위해 쓰고 있다.

지난해 9월 <국민일보> 보도('종지기' 권정생 선생의 안동 일직교회)에 따르면, 일직교회를 찾는 연 1만여 명의 탐방객 80%는 비기독교인이다. 이 신문은 "버스 대절 답사가 예사다"면서 "그러나 국회, 지자체, 문단이 각기 기념관, 교회 안내 표지판, 기념 재단을 만들고 있을 때 정작 한국교회는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가 지난해 6월 22일 저녁 서울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분단을 넘어 평화로 6.25전쟁 60년 평화기도회'에서 '이날을 잊지 말자' 주제로 평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 제공 오마이뉴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일군 조용기 목사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는 권정생보다 한 해 앞선 1936년 경남 울주군(현 울산광역시)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학교(동래중, 부산공고)에 다녔다. 고교 2학년 때 폐결핵에 걸려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돼 기독교에 입문했다. 이후 56년에 서울에 올라와 '순복음신학교'에 입학해 여기에서 나중에 목회 동역자요, 장모가 된 동기생 최자실(1915~1989)을 만났다.

58년 신학교를 졸업한 전도사 조용기와 최자실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 산기슭에 천막 교회를 세운 지 3년 만에 서대문에 '순복음 중앙교회'를 개척했다. 이들은 방언과 예언, 신유(신앙을 통한 질병 치유) 등 성령의 은사를 핵심으로 하는 교리를 주장해 '이단'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교세는 급속히 확장되어 1964년 신도 수가 2000여 명에 이르렀다. 간호사 출신 최 목사의 치유 사역과 조 목사의 설교로 교세를 확장한 순복음교회는 그로부터 10년 만에 여의도 모래벌판에 교회를 세워 신도수 75만 명의 세계 최대 교회로 키우게 된다.

당시 순복음교회의 성공을 얘기하려면 조용기 목사의 특출한 설교와 조직력을 빼놓을 수 없다. 조 목사는 서울을 20개 지역으로 나눈 '구역'을 조직해 평신도 여성을 구역장으로 임명해 교육하고 구역별로 가정 예배를 드리게 해 교세를 확장하는 기폭제로 만들었다. 그러나 조 목사의 기질과 시대 상황이 잘 맞물린 결과이기도 했다.

조 목사는 어릴 때부터 무엇을 하든 최고까지 해야지 중간쯤 하다가 마는 것은 싫어했다. 그는 최근 자신이 발행인인 <신앙계>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도 "원래 어릴 때부터 모험심이 강했다"면서 60세에 처음으로 스키를 배워 단기간에 상급자 코스를 마스터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밝혔다.

"60세 때 스키에 도전할 기회가 생겼는데 기왕 탔으면 최고까지 해야죠. 제 기질이 무엇을 하든 최고까지 해야지 중간쯤 하다가 마는 것은 원래 싫어합니다. 잘 타지는 못해도 상급 코스까지 가는 즐거운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플러스 인생>, 2011년 2월호)."

한국에 세계 제1, 2의 대형 교회 세운 '형제 목사'들

순복음교회의 양적 성장은 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하면 된다'는 경제 성장의 열기에 '무엇을 하든 최고까지' 끝장을 보는 조용기 목사의 기질이 상승작용을 불러일으킨 결과로 보인다. 김종렬 목사는 한국 교회의 목회 현상을 신학적 관점에서 △보수적 근본주의 △진보적 급진주의(사회참여) △문화 자유주의 △교회 성장주의의 네 가지 흐름으로 구분한다. 그 가운데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한 교회 성장주의에 대한 진단은 이렇다.

"지난 70년대부터 한국의 경제 성장과 함께 교회 성장의 열기는 대단하였다. 여기에 더욱 부채질한 것은, '하면 된다'는 내용을 담은 <적극적 사고방식>이란 책을 써서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킨 바 있는 노르만 빈센트 피일(Norman V. Peal), 그의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배워 미국에서 '수정교회'를 대형 교회로 성장시킨 로버트 슐러, 이 슐러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교회를 세계 제일의 교회로 성장시킨 서울의 순복음중앙교회의 조용기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교회 성장학을 한국에 소개한 이는 서울의 광림교회 김선도이다(<제3회 예장전국목회자수련회 자료집>, 예장 바른목회실천협의회 편,148~149쪽)."

조용기 목사에게 '하면 된다'는 영향을 준 슐러 목사는 빌리 그래함 목사의 친구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 지도자 중 하나다. 1955년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의 이동 영화관 스낵바 지붕에서 설교하면서 목회를 시작한 그는 이후 교회 TV쇼 방송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그가 담임한 '수정교회'는 미국에선 드물게 신도가 1만 명이 넘고 예산이 7200만 달러에 달하는 대형 교회다.

김선도 목사는 '교회 성장 세미나'를 개최해 조지 헌터 등 미국의 교회 성장학자들의 이론을 한국에 소개했을 뿐만 아니라 '긍정적 사고'와 적극적 신앙을 강조함으로써 광림교회를 강남의 최대 대형 교회로 키웠다. 참고로 신도 수 기준으로 세계 50대 대형 교회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한국에 있는데, 특히 모든 교파를 통틀어 1위(여의도순복음교회, 75만 명)와 2위(은혜와 진리교회, 30만 명), 그리고 감리교회 중 1위(금란교회, 12만 명)와 2위(광림교회, 8만 명)가 모두 한국에 있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형제 목사가 설립한 공통점이 있다.

세계 제1의 대형 교회를 세운 '형님' 밑에서 부목사를 지내며 '하면 된다'는 적극적 사고와 성령 목회 기법을 전수받은 조용목 목사는 1982년 안양에 은혜와진리교회를 개척해 세계 제2의 대형 교회로 만들었다. 한편 형(김선도)보다 더 '적극적 신앙'으로 무장한 동생 김홍도 목사는 서울 망우동의 금란교회를 세계 최대의 감리교회로 키웠다.

대형 교회 공통점, 교회나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분규 잦다

   
 
 

▲ 조용기 원로목사(국민일보 회장)와 부인 김성혜 한세대 총장. (조용기 목사 홈페이지 갈무리)

 
 
이들의 공통점은 교회나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줬다는 점이다. 김선도는 지난 2000년 새 천 년을 맞이해 광림교회 담임목사를 아들 김정석 목사에게 물려주고 원로목사로 물러나 대형 교회 세습 논란을 '선도'했다. 김홍도 역시 지난 2008년에 금란교회를 아들 김정민 목사에게 '세습'시켰다. 아버지 슐러는 지난 2006년에 50년간 시무해 온 수정교회 담임목사직을 아들 슐러 목사에게 물려줬다. 조용기(현 국민일보 회장)는 순복음교회 재산으로 창간한 <국민일보>의 회장과 사장직을 두 아들에게 물려준바 있다.

또 다른 공통점은 감투나 재산을 둘러싼 분규가 잦다는 점이다. 김선도-홍도 형제는 각각 지난 94년과 96년에 감리교단 최고위직인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장)을 역임했다. 94년 선거 때는 형제가 맞붙어 서로 비방하는 등 난타전을 벌였다. 김홍도는 지난 2003년 8월 공금 횡령,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돼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3년 및 벌금 750만 원을 선고받고, 2심에서 징역만 2년 6개월로 줄었다가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바 있다.

지난해 경영진 간에 고소·고발 사태가 벌어진 <국민일보>의 경우, 조용기 원로목사의 부인 김성혜 한세대 총장과 장남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 측이 차남인 조민제 <국민일보> 사장과 그의 장인이자 조 목사의 사돈인 노승숙 전 <국민일보> 회장 측과 여의도순복음교회 재산을 놓고 벌이는 가족 간 다툼으로 비화되는 양상이다.

김홍도는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것은 괜찮지만 재산을 물려주면 사단이 난다는 것을 예언이라도 한 것일까? 세습 논란에 대한 김홍도의 멘탈리티는 <신동아>(2007년 8월)의 '세습·횡령·불륜 논란,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인터뷰'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마치 교회가 목사의 재산이라도 되는 양 (담임목사직을) 물려줬다고 하는데 틀린 표현입니다. 자격이 없는 사람을 교인들이 (담임목사로) 추대하겠습니까.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세습이라는 용어 자체가 틀린 거예요. 자격도 없는 아들을 아버지가 억지로 세우는 게 세습이지…. 나는 조용기 목사님을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신앙 좋은 분이 자식이 셋이나 있으면서 목사 하나 못 만들었다는 건 잘못이죠. 진짜 생명보다 귀한 신앙이라면 자식한테 물려줘야지."

10억대 연봉 목사들, 교세 세습 비판하면 '사탄'의 세력 굴레

   
 
 

▲ 김홍도 목사. (사진 제공 오마이뉴스)

 
 
김홍도는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친미-반공주의 목사다. 그에게는 사회참여를 표방하는 진보주의 신학은 물론, 자유주의 신학까지도 '사탄'의 세력이다. 교회 세습이나 교회 재산 유용 등의 문제를 비판하는 이들도 이 굴레에 포함시킨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98년 금란교회 회계장부에 따르면 김홍도는 당시 교회에서 매달 3,000만 원을 받았다. 그 내역은 생활비 500만 원, 판공비 500만 원, 구제비 900만 원, 품위유지비 1,000만 원 등이다. 13년 전의 급여 명세이니 지금은 그보다 두 배 이상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세금은 한 푼도 안 낸다.

2008년에 대형 교회 목사들의 주거 및 소득을 추적한 MBC '뉴스후' 보도에 따르면, 조용기 목사 부부는 마당에 간이 골프 연습장이 있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4층짜리 고급 빌라의 1, 2층 두 채(약 117평)를 쓰고 있고, 조 목사의 십일조 헌금을 바탕으로 추정한 연봉은 11억3,000만 원이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 한 청와대 비서관은 "공무상 조 목사를 찾아뵙고 단골 식당이라는 <국민일보> 빌딩 일식당에서 단둘이 점심을 먹었는데 30만 원이 넘게 나와 국민 세금을 이렇게 써도 되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고 사석에서 말한 적이 있다.

조용기와 김홍도는 지난 대선에서 광림교회와 함께 강남의 대표적 대형 교회인 소망교회의 장로인 이명박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했다. 특히 김홍도는 2007년 3월 19일 보수 개신교 인사들이 주축인 '한국미래포럼'이 주최한 '국가와 민족을 위한 조찬기도회'에서 "목사들과 장로들 중에는 장로 후보를 반대하는 이들이 있다"면서 "'장로 후보'를 마귀의 참소, 테러의 위협에서 지켜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조용기 원로목사는 수쿠크(sukuk, 이슬람 국가들이 발행하는 채권) 법안 처리에 반대하며 "여당이 법안을 통과시킬 경우 이명박 대통령 하야 운동을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협박'했다. 보수 기독교단을 대표하는 연합체인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인 길자연 목사는 최근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우리 다 같이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죄인의 심정으로 통성기도를 하자"는 제안을 해 대통령 내외의 무릎을 꿇게 했다.

길 목사는 조용기 목사와 함께 수쿠크 법안 반대 운동을 이끄는 대표적인 인사다. 얼마 전엔 한나라당 지도부를 방문해 여당이 법안을 처리하면 여당 후보 낙선 운동을 펼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또 그는 최근 한기총 임원 회의 시작 전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 급식 건에 대해 협조를 요청하자, "무상 급식 반대를 지지하자"면서 예정에 없던 '무상 급식 반대' 건을 처리하려다가 일부 목사의 반대로 무산된바 있다. 그는 지난번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에서 실행위원들에게 돈 봉투를 돌려 금권 선거를 했다는 의혹과 함께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교회 성장주의의 무기는 '예수천국 불신지옥'?

   
 
 

▲ 지난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에서 길자연 목사가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당시 선관위원장이었던 엄신형 목사를 비롯한 선관위원 전원이 서명한 문서. (사진 제공 오마이뉴스)

 
 
이명박 대통령도 '경수 집사'처럼 1941년 일본에서 조선인 노무자의 아들로 태어나 해방 이후 조국에 돌아왔다. 이 대통령의 어린 시절은 '가난'과 '어머니', 그리고 '새벽 기도'를 빼놓고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그는 <어머니>라는 책에서 "내 몸이 새벽 다섯 시를 기억하게 된 것은 어릴 적 온 가족이 새벽 기도를 함께했던 때부터다"며 "지금도 가끔 혼자 조용히 눈을 뜨는 새벽이면 어머니의 기도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적었다.

어머니 채태원 집사(포항제일교회, 65년 작고)는 절간을 개조한 단칸방에 살 때부터 새벽 4시면 교회 종소리보다 먼저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그의 5형제도 어김없이 어머니 옆에서 무릎을 꿇었다. 아침은 굶어도 기도는 하루도 빠뜨리지 않았다고 한다. 중학교에 가자마자 어머니의 풀빵 장사를 돕고 고학으로 야간 상고와 대학을 다닌 청년 이명박도 못 먹어서 '종지기 권정생'처럼 결핵을 앓았다. 65년 병역면제 사유는 결핵폐활동성(경도)과 기관지확장증(고도)이었다.

이 대통령은 92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3년 동안 일요일 오전 6시에 소망교회 주차 봉사를 하고서 장로가 됐다. 그는 서울시장이 된 뒤로 '서울시 봉헌' 발언을 비롯해 종교 편향 발언과 행보로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주변 사람들에게 '교회 가라'고 권했다는 얘기는 없다. 또 그는 2009년 7월 전 재산(331억 원)을 장학 재단에 기부했다. 그는 재산을 기부하면서 "이런 마음이 영글도록 한 뿌리는 어머니"라면서 "오늘 어머니와의 약속을 실천했다는 것을 뿌듯하게 생각하면서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목회의 기술에 불과한 '교회 성장주의'를 신학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성장주의 목회의 요체는 예수 잘 믿으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삼박자 구원'과 '청부론'으로 요약된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구호가 말해 주듯, 설령 전과 14범이더라도 하나님 앞에 죄를 '통성'으로 고백하고 사(赦)함을 받으면 천국행이 보장되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아무리 선행을 쌓아도 지옥행이다.

그래서 이들은 사법부의 유죄 판결이 확정되어도 주일 설교에서 "교회를 파괴하려는 좌파 정권의 음모"라고 몰아세울 만큼 뻔뻔할 수 있다. 또 그래서 이들은 대표회장 선거에서 돈 봉투를 받았다는 목사 수십 명의 양심선언이 나와도 이를 '개무시'하고 오히려 징계를 하는 판국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다. 그러니 금권에 물든 한국 기독교의 통성을 촉구하는 수밖에.

"주여, 무릎 꿇은 불쌍한 대통령을 '똥 묻은 개들'로부터 지켜주소서."

   
 
 

▲ 무릎 꿇고 기도하는 이 대통령 부부 이명박 대통령 부부가 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43회 국가조찬기도회'에서 길자연 한국기독교총연합회장의 요청에 따라 참석자들과 함께 합심 기도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연합뉴스)

 
 

김당 / <오마이뉴스> 기획취재 총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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