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월 16일) 윌로우크릭교회에서는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 주간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사실 인종차별 문제에 있어 'Everyday Racism'이라는 용어를 사회학자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종이 다르기 때문에 매일의 삶의 현장에서 경험하는 인종차별을 뜻합니다.

빌 하이벨스 목사는 자신은 자라면서 다양한 인종과 종족 출신 친구들이 있었지만 인종을 놓고 비방하거나 농담을 하지 않았기에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노예 문제는 노예해방령을 통해 해결되었고, 인종차별로 인한 인권 문제는 1960년대 마티 루터 킹 목사를 통한 시민운동을 통해 해결됐다고 생각했는데, <Divided By Faith>라는 책을 통해 미국 교회 역사 가운데 여전히 남아 있는 인종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 빌 하이벨스 목사는 이날 진실을 알려는 것을 피하지 않고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교인들에게 감사를 전했습니다.
빌 하이벨스 목사는 이를 제2의 회심이라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교회들이나 목사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침묵하여 회중들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며, 백인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책임 회피성의 말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10년 간 회중들을 교육시켜 왔고 자신의 회중들이 용기 있는 반응을 보였다고 고마워했습니다.

어제는 어린아이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두 함께 예배드렸고 빌 하이벨스 목사는 중·고등부 학생들에게도 호소했습니다. 자신들은 어렸을 때 교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어떤 차이라도 그 경계를 넘어서 사람들을 섬기라고 그러다 보면 성인이 되었을 때 그런 삶이 상식이 되고 보편적이 되며 정상적인 삶이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 인종차별이 현존하는 현실을 놓고 기도하며 눈물을 흘리는 빌 하이벨스 목사.
빌 하이벨스 목사는 또 매년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 주간에는 다 같이 예배를 드릴 것이라며, 이 세상에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할 만한 것들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 경계와 차별을 넘어서는 지도자들을 이 교회를 통해 세워 달라고 기도하며 눈물을 훔쳤습니다. 정말 가슴 뭉클한 예배였습니다.

인종차별을 끝내야 한다고 외치지만 않았습니다. 진리를 숨기지도 않았습니다. 교회가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며 진리를 왜곡하지 않고 회중들을 교육하며 같이 기도하는 모습이 참 멋있고 감동적인 예배였습니다.

여러 특별 순서들이 있었지만 세션을 포함한 찬양 팀 인도자들 여섯 명이 교육과 집 구입 그리고 경찰의 단속 등에 대해 자신들의 실제 경험을 나누어 준 대목이 참석자들의 마음을 많이 공명시켰습니다. 백인 교인과 흑인 교인이 번갈아 가면서 나와서 자신들의 삶을 나누었습니다. 중간 중간에 불편한 진실을 말해 주는 통계 자료들도 삽입해 개인의 경험을 통해 사회적 관심을 갖도록 했습니다. 백인들의 삶을 언덕 위의 삶으로, 흑인들의 삶을 골짜기의 삶으로 비유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I have a dream'이라는 연설에서 인용한 이사야 40장 4절에서 따온 상징입니다.

불평등한 교육 여건에 대해서

안녕하십니까? 저의 이름은 블레인입니다. 제 실제 이야기입니다. 저는 언덕 위에서 자랐습니다. 저의 가정생활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학교생활을 통해서는 탁월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저는 미네아폴리스 근교 중에서도 백인들이 모여 사는 서버브 도시에서 살았습니다. 학교들은 매우 좋았으며 선생님들 또한 그랬습니다. 어떤 선생님들과는 아직까지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 저는 똑똑하고 재능 있는 아이로 인정받았습니다. 약자로 'GT kids(Gifted and Talented)'라고 불렸던 우리는 음악과 과학 그리고 수학 등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2주에 한 번씩 정규 수업 시간에 따로 모여 특별한 과제를 수행했습니다. 한 주는 세계 기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들을 모색해 보는 과제를 했고 그 다음 주에는 재밌는 과제로 침대를 정리하는 기계를 발명하는 식이었습니다. 이 영재반 교육으로 인해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신감과 창의성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런 교육 덕택에 대학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고 연극영화과에서 학사 학위를 마쳤고 후에 신학과 예술이라는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는 언덕 위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여러분 저는 새론입니다. 제 실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저는 골짜기에서 자랐습니다. 제 학교는 언제나 학생들이 규정보다 많았고, 자원이 부족했으며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들의 대부분은 정년이 보장되어 있었지만 가르치는 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수학 선생님 중 한 분은 수업 중에 잠이 드신 적도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첫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처럼 생긴 학생들은 정규반을 가득 채웠고, 영재반은 거의 다 백인 학생들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영재반에 끼지 못한 학생들에게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분명했습니다. 예민한 사춘기 시절을 보내던 저에게는 불안정과 혼란만 가중되었습니다. 마음 아프게도 졸업반이 되자 저는 저와 같이 생긴 학생들을 손으로도 꼽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는 골짜기에서 자란 사람들에는 늘상 일어나는 일입니다.

미국 통계국의 자료에 의하면 고등학교를 중퇴하는 흑인 여학생들은 백인 여학생들보다 2.7배가 많습니다. 공립학교를 평가하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 의하면 시카고의 공립학교들의 경우 학생 한 명을 교육하는데 1만 1,200불을 쓰지만 서버브인 레익 포레스트의 경우 한 학생당 2만 4,600불을 들이고 있습니다. 미국 인구 조사청에 의하면 25세 이상의 백인들 가운데 30%가 대학 교육을 받았지만 흑인들의 경우 19%만 대학 교육을 받았습니다.

재산 형성 및 부와 가난의 대물림 현상에 대해서

제 이름은 백키입니다. 저는 언덕 위에서 자랐습니다. 바로 작년에 저희 부부는 시카고에 콘도를 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돈을 저축하는 법과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저는 저희가 현명한 선택으로 집을 살 수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 부모님은 저를 임신하시자 저를 위해서 돈을 따로 저축해 두셨습니다. 그리고 27년이 지나자 이 돈은 저희가 집을 사는 데 밑천이 되었습니다. 제가 그 콘도를 무리 없이 살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분명 저에게 그냥 주어진 재정적 도움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이는 언덕 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저는 스티븐입니다. 우리 가족은 아들이 취학 연령이 되어 학군이 좋은 초등학교 근처로 이사 가려고 했습니다. 저와 아내는 마음에 드는 집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집을 돌아 볼 때 부동산 중개인이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불편함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정확하게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 집을 임대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제 신용을 조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전화가 없기에 제가 전화를 걸었습니다. 집 주인이 제가 제때 집세를 내지 못해 다섯 번이나 쫓겨난 전력이 있다고 저에게 집을 세놓지 못하겠다고 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재정을 책임 있게 운용했으며 월세를 한 번도 미룬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 주었고 부동산 중개인은 다시 알아보고 전화 주겠다고 했답니다. 그 날 오후에 부동산 중개인은 자신이 실수해서 주민번호를 잘못 입력해서 일어난 일이지만 집주인은 여전히 찜찜해서 저희에게 세를 놓지 않겠다고 했답니다. 그 집은 여전히 누구도 살지 않고 세를 놓고 있지만 저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는 골짜기에 사는 누군가는 늘 당하는 일입니다.

어메리칸 프로그레스라는 비영리 단체에 의하면 흑인들 가운데 32.1%가 높은 모기지 이자율을 내고 있는 반면 백인들 가운데는 10.5%만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미국 인구 조사청에 의하면 흑인들 가운데 25.8%가 최저 생계 수준 이하의 삶을 살고 있지만 백인들 가운데는 빈곤층에 속한 사람들은 12.3%뿐입니다. 미국 인구 조사청에 의하면 유색인종들의 순 자산 가치를 분포도로 보았을 때 정중앙(median)에 있는 사람의 재산은 8만 9,200불인 반면 백인들의 경우 27만 1,000불이었습니다.

공권력에서도 드러나는 인종차별의 문제 앞에서

저의 이름은 맷입니다. 작년에 교회 오는 길에 저는 과속으로 걸렸습니다. 사실 교회 오는 길에 가끔 과속을 했지만 이번에는 뒤에서 경찰차가 불을 번쩍이고 있었습니다. 배링턴 길옆에 차를 세웠고 경찰관이 다가와서 제 면허증과 자동차 등록증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어디 가는데 이렇게 빨리 달리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지금 교회 가고 있는 길인데 제가 이렇게 빨리 달리고 있는지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번에는 경고만 주겠는데, 다음에 또 과속하면 그때는 장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언덕 위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꽤 자주 일어나는 일상입니다.

제 이름은 지미입니다. 작년에 교회 오는 길에 저는 과속을 했습니다. 제 동생이 조수석이 앉아 있었고 알곤퀸 길 위였는데 윌로우크릭 교회 입구에서 겨우 200야드 떨어진 지점이었습니다. 뒤에서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왔고 저희는 길옆에 차를 세웠습니다. 경찰관은 차에서 나와 두 손을 머리에 올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수갑을 채워 경찰서로 데리고 갔습니다. 바로 작년 마틴 루터 킹 주말에 저는 여기서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감옥에 있었기 때문에 9시 예배 때 연주하지 못했습니다. 면허증에 문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경찰관은 제 면허증이 4년 전에 정지되었다고 했습니다만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겨우 3년 전에 처음으로 면허증을 땄습니다. 그 경찰관은 이 일은 제가 알아서 당국과 처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보석금으로 100달러가 부과되었습니다. 제 동생이 현금인출기에 가서 100달러를 뽑아 와 경찰관에게 주자 그는 그 돈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는 수갑을 풀어 주고 보내 주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골짜기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이런 일은 일상입니다.

일로노이 주 교통국에 의하면 경찰의 단속으로 차를 길가 옆에 세웠을 때 차 내부나 트렁크 등이 조사받을 가능성은 백인의 경우 다른 유색 인종들에 비해 2.5배나 낮다고 합니다. <뉴욕 타임스>에 의하면 단속받을 때 유색 인종들의 45%가 몸수색을 당하지만 백인들은 29%만 당한다고 합니다. 무기를 소지할 가능성은 백인들이 70%나 높은데도 말입니다. 미국 법무부에 의하면 흑인 아이들의 경우 부모 중 한 명이 감옥에 수감되어 있을 가능성이 백인 아이들에 비해 거의 아홉 배나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없지만 불편한 진실들을 인정하고 밝히며 회중들을 교육하는 모습은 정말 배워야 할 용기 있는 행동입니다.

김주헌 목사 /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 Ph. D. 과정 중 · Intercultural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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