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부터 52년간 노동자 인권 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힘써 온 영등포산업선교회(산업선교회·총무 손은정 목사)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총회장 김정서 목사) 총회 역사 유적지 제8호로 지정됐다. 이를 기념하는 감사 예배가 11월 25일 오후 3시 서울 당산동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열렸다. 또한 이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 신부)는 산업선교회가 민주화 운동에 기여한 점을 인정해 민주화 운동 기념비를 건립했다.
 

▲ 김정서 총회장은 역사 유적지를 공표하고 이를 기념하는 동판을 영등포산업선교회에 수여했다. ⓒ뉴스앤조이 이명구

산업선교회는 예장통합이 1957년 제42회 총회에서 선교 70주년을 기념하여 '산업 전도'를 결의하면서 시작됐다. 이듬해 한국 최대의 경공업 단지였던 영등포 지역에 경기노회 영등포지구 산업선교회가 창립되었다. 초기에 산업선교회는 공장 노동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로 인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고 있는 노동자들을 보면서 산업선교회는 사역 방향을 바꾸었다. 초대 산업선교회 총무 조지송 목사는 "처음에는 노동자들을 교회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가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장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노동자들의 고충을 듣고, 그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시작한 것이다. 조 목사는 "산업 선교의 주인은 교회가 아니라 노동자들이었다"고 했다.

이후 산업선교회는 모진 탄압을 받았다. 독재 정권은 각종 시국 사건이 터질 때마다 선교회 실무자들을 안기부에 잡아갔다. 2대 총무 인명진 목사(갈릴리교회)는 4번이나 구속됐다. 선교회에 출입했던 노동자들은 직장에서 해고됐고,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가장 어려운 것은 교회로부터의 탄압이었다. 영등포노회에서 산업선교회 소속 목회자는 찬밥 신세였고, 총회에서도 산업선교회를 해체하고 인 목사를 제명해야 한다는 헌의가 올라왔다. 그때마다 방지일·이정환·차관영·이순영 등 뜻있는 목사들이 "산업선교회를 없애는 건 신사 참배를 결의했던 것과 같은 큰 잘못이다"며 산업선교회를 지켰다.

이날 감사 예배에 참석한 70여 명의 산업선교회 동문 회원과 역대 실무자들의 얼굴에는 감격이 서려 있었다. 예배 중에는 실무자들의 회고와 감사 인사를 듣고 보면서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도 있었다. 안하원 목사(일하는예수회 회장)는 "지금까지 산업선교회를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기도했다.

김정서 총회장은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을 건넌 뒤 한 지파에서 한 개씩의 돌을 취해 기념비를 세웠다. 후손들이 '이 돌들이 무슨 뜻입니까' 하고 물으면,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마른 땅을 밟고 강물을 건넜다고 설명하기 위해서였다"며, "산업선교회가 총회 역사 유적지로 지정된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함께하셨던 역사를 후손들에게 보여 주려는 의미다"고 했다.

참석자들은 산업선교회의 역사가 과거의 역사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의식 목사(영등포산업선교회위원장)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해 일해 온 산업선교회가 다음 세대에도 그 역할을 잘 감당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고, 신철영 전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장(전 산업선교회 실무자)도 "산업선교회가 기념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살아 있는 역사의 장이 되어야 하고, 노동자들의 눈물과 한숨을 위로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했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산업선교회가 일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영상으로 축하 메시지를 전한 단병호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은 "30~40년 전 과거의 노동자들은 현재는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이들은 영적·제도적 소외를 받고 있다. 최악의 노동 조건에서 최저 생계비 이하의 생활을 강요받고 있다"고 했고, 함세웅 신부는 "특히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 일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날 산업선교회는 "금융 자본의 횡포와 경쟁 질서가 낳은 사회적 양극화가 산업 선교가 씨름해야 할 새로운 시대적 과제"라고 지적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별과 설움을 해소하고 노숙자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매진하겠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 산업선교회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별과 설움을 해소하고 노숙자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매진하겠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왼쪽부터 산업선교회 총무 손은정 목사, 홍윤경 전 이랜드 노조 사무국장, 진형탁 산업선교회 협동사업부장. ⓒ뉴스앤조이 이명구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영등포산업선교회가 민주화 운동에 기여한 점을 인정해 민주화 운동 기념비를 건립했다. 사진은 제막식에 참석한 산업선교회 동문 회원과 실무자, 예장통합 총회 임원들. ⓒ뉴스앤조이 이명구
▲ 산업선교회 2대 총무 인명진 목사가 기념비 건립을 감사하는 기도를 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명구

다음은 성명 전문이다.

 

 

2010년 영등포산업선교회 사명 선언
"양극화를 넘어서는 신나는 노동과 협동, 우리 큰 걸음으로 성큼!"


1. 전 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70주년 기념 사업으로 1957년에 결의된 공장 전도는 1958년 영등포 지역에서 최초로 시작되었다. 영등포산업선교회는 이때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눌린 자에게 자유를 전하시는 주의 성령의 인도를 따라(눅 4:18-19)' 수난의 세월을 한걸음에 달려왔다.

산업 선교는 산업화가 진행되던 한국 사회에서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존엄성을 세워 내고 복음의 빛을 밝히시고자 했던 하나님 자신의 선교였다.

우리 교단 95차 총회에서 본회를 선교 유적지로 지정한 것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기념비를 건립하도록 한 것은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애쓴 선교 사역의 공적인 가치를 교회 내외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지나온 시기, 산업 선교로 부름받은 종들은 시대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쳐 일한 일꾼들이었다. 오늘 이곳에 모인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인 산업 선교에 헌신했던 선배들의 피와 땀과 눈물과 힘찬 맥박 소리를 들으며 오늘 우리 시대의 신음 소리를 통해 새로운 산업 선교의 사명을 본다.

금융 자본의 횡포와 경쟁 질서가 낳은 사회적 양극화는 산업 선교가 씨름해야 할 새로운 시대적 과제이다. 화려한 조명 뒤에 감춰진 사람들의 불안과 점증하는 자살률, 갈수록 늘어나는 가정 해체와 방황하는 아이들, 현대판 노예 계약과 다름없는 파견 근로와 불안 고용에 시달리는 비정규 노동자들, 직장을 잃고 길거리에서 헤매는 실업자들과 역 대합실을 피난처로 삼고 살아가는 홈리스들, 사람들의 편리와 투기꾼과 개발업자들의 잇속을 채우기 위해 파헤쳐지는 자연의 생명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날 것(롬 8:19)과 하나님의 은총의 해(눅 4:19)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이 절망의 신음 가운데서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새 하늘 새 땅의 비전(계 21:1)을, 새로운 산업 선교의 절박성을 본다.

2. 할 일과 갈 길(출 18:20)

우리는 양극화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신나는 노동과 협동의 새로운 질서와 생활 방식이 필요함을 고백한다. 신나는 노동과 협동은 불안과 초조와 긴장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복음의 세계로 초대하는 관문이 될 것이다.

1) 비정규 노동자들의 차별과 설움을 해소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사명이다

노동은 하나님의 일이며(요 5:17), 인간 삶의 기초이다. 노동자들은 삶의 기본 단위를 생산하는 주체임에도 고용 형태는 갈수록 비인간화되고 노동권은 무시되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설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불안정 고용과 비정규직 차별의 문제는 세계 경제 10위권에 진입했다고 하는 자부심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5년을 넘긴 끈질긴 투쟁 끝에 극적인 합의에 이른 것은 암울한 비정규직 노동 현장에 새 희망을 불어넣은 역사적인 일이며, 포기하지 않는다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살아 있는 교훈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아직도 노동자들이 땀을 흘리고 철야 맞교대를 하고 있는 노동의 현장에서는 날품을 팔고 있는 이들이 많이 있고, 부품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비정규 파견 특수 고용 노동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산업 선교는 이들이 존엄성을 회복하고 노동이 존귀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 문화가 되도록 연대하고 실천할 것이다.

2) 협동의 유기망으로 양극화의 벽을 넘어서는 것이 우리의 행동이다

협동은 경쟁 질서가 낳은 양극화를 넘어서게 하며 우리를 우애의 질서로 초대하는 삶의 방식이다. 지금 우리는 생산과 소비의 주체인 지역 주민들이 먹거리와 교육과 의료와 문화를 건강하게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협동 운동 공동체'를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생태 환경의 위기는 인간을 넘어 자연과의 협동으로 나아갈 것을 요청하고 있다.

더불어 지역의 가난한 자들이 실패와 좌절의 인생이라는 낙인을 넘어서서 협동의 주체가 되도록 할 것이다. 본회가 자리하고 있는 영등포역 주변만 해도 최소 1만여 명의 가난한 이웃들이 쪽방과 고시원과 찜질방을 전전하며 자포자기와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신음이 그치도록 자조·자립·협동의 그물을 치는 것이 우리의 행동이 될 것이다.

3) 신앙 교육과 시민 교육의 장으로 재탄생하는 것이 미래와 소통하는 길이다

오늘을 계기로 산업 선교는 앞으로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값진 신앙 교육의 장이 될 것이며 시민들의 역사 교육장으로 우뚝 서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과거를 잊어버리면 미래의 희망도 없다는 것은 엄연한 진리이다. 본 회의 지난 역사는 한국 현대사의 유산이면서 선교 역사의 빛나는 전통이다. 이것을 사장시키지 않는 것이 미래와 소통하는 길이며 현재 우리의 역할임은 자명하다.

앞으로 2년 뒤인 2013년에는 한국 기독교 선교 130주년을 맞이하면서 세계교회협의회 10차 총회가 열린다. 이때 산업 선교는 55주년을 맞이한다. 오늘의 신앙 선언이 누룩처럼 번져나갈 수 있도록(마 13:33), 세계 교회가 인정해 온 산업 선교의 역사에 부끄럽지 않도록 우리는 새로운 각오로 선교의 사명에 매진할 것이다.

산업 선교는 이제까지 그랬듯이 이후로도 하나님 자신의 선교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향해 눈을 든다(출 14:13). 이제 우리는 양극화를 넘어서는 신나는 노동과 협동의 세계를 향해 큰 발걸음을 성큼 내딛는다.

2010년 11월 25일 영등포산업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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