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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소속 한 찬양 선교회 교육생들이 불교 조계종 사찰인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서 사찰이 무너지도록 기도하는 모습과 불교를 폄훼하는 발언을 담은 동영상을 촬영했다. 이 동영상이 10월 25일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동영상의 제목은 '봉은사 땅 밟기'. 10월 중순경에 촬영된 6분 30초 분량의 이 동영상은 6명의 20대 남녀가 봉은사 대웅전을 비롯하여 사찰 곳곳에서 기도하는 장면이 들어 있다. 이들은 '찬양인도자학교' 소속임을 밝히고, 땅 밟기를 한 뒤 소감을 말했다. 소감 내용은 "주님을 믿어야 할 자리에 크고 웅장한 절이 들어와 있는 것이 마음 아팠다", "이 땅(봉은사)이 하나님의 땅이라는 것을 선포했다", "이 땅은 파괴될 것이고, 하나님께서 이 땅을 회복할 것이다", "우리가 지나간 이 땅에 주님께서 역사할 것을 믿고, 이런 우상 숭배가 이 땅에서 떠나갈 것을 선포한다" 등이다.

▲ 10월 중순경에 촬영된 6분 30초 분량의 이 동영상은 6명의 20대 남녀가 봉은사 대웅전을 비롯하여 사찰 곳곳에서 기도하는 장면이 들어 있다. (봉은사 땅 밟기 동영상 갈무리)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은 10월 24일 일요 법회에서 이 동영상에 대해서 언급했다. 명진 스님은 "예수의 사랑, 평화의 가르침, 자신의 양심을 지키는 기독교인이 많다. 그러나 동영상에 등장하는 일부 기독교인이 한국 사회를 갈등과 분열로 몰아가고 있다"고 했다.

명진 스님의 발언이 공개되면서 '봉은사 땅 밟기' 동영상은 포탈·블로그·트위터 등을 통해 일파만파 퍼져 나갔고, 이를 접한 누리꾼들은 비난을 쏟아 냈다. 한 누리꾼은 "상식 밖이다. 기독교에는 타 종교를 포용할 관용도 없는가"라고 했고, 다른 누리꾼은 "목회자들은 젊은이들에게 분열과 배타가 아니라 기본적인 사랑과 배려를 먼저 가르쳤으면 좋겠다"고 했다.

개신교인도 땅 밟기를 한 이들을 비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누리꾼은 "나도 기독교인이지만 이건 아니다. 미꾸라지 교인 몇 명이 기독교 전체를 흐리고 있다"고 했다. 다른 누리꾼은 "이 사건은 이제는 숨길 수 없이 한국 개신교의 한 부분이 되어 버린 '공격적 선교'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개신교인 중에는 땅 밟기를 한 이들을 대신해 봉은사를 비롯한 불교계에 사과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봉은사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고, 10월 26일에는 조계사 앞에서 사죄 행사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사죄 행사가 쇼처럼 보일 수 있다는 우려에, "일부 기독교인의 망동,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는 내용의 사과문만 조계사 종무실에 전달했다.

찬양인도자학교 최지호 목사, 봉은사 측에 사과

파문이 커지자 찬양인도자학교를 주관한 '에즈 37' 측은 26일 오전 봉은사 측에 전화해 사과했다. '에즈 37' 대표 최지호 목사는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모르겠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봐도 (이 동영상은) 정상이 아니라고 볼 것이다. 봉은사와 불교계에 죄송하다"고 했다. 어떤 경위로 동영상이 촬영되었는지에 대해서는 "10주 동안의 찬양인도자학교 수강 기간 중에 조별로 강남역 부근으로 나가 노숙자를 돕고, 거리에서 조용히 기도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20대 청년으로 구성된 한 조가 충동적으로 봉은사에 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 목사와 담당 간사, 동영상을 만든 청년들을 포함한 10명은 10월 27일 오전 봉은사를 찾아가 명진 스님과 신도회 임원들을 만나 "봉은사와 불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사과했다. 최 목사는 "학생들을 잘못 가르쳐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다. 용서를 구한다. 저희들의 무지와 무례를 호되게 꾸짖어 달라"고 했다. 동영상을 제작한 박 아무개 씨는 "동영상은 우리끼리 보기 위해 만든 것일 뿐 불교를 공격하려는 뜻은 없었다. 젊은 혈기로 상대방이 상처받을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고 사죄했다.

▲ 최 목사와 담당 간사, 동영상을 만든 청년들을 포함한 10명은 10월 27일 오전 봉은사를 찾아가 명진 스님과 신도회 임원들을 만나 "봉은사와 불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사과했다. (사진 제공 봉은사)
명진 스님은 "이번 일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타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전체 개신교의 흐름 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동영상으로 유포되지만 않았을 뿐, 이런 일은 그동안 빈번하게 있어 왔다"며, 화계사 방화 사건과 일련의 훼불 사건(동국대 불상, 청주 보현사 불상) 등을 예로 들었다. 그는 "진정한 종교인이라면 내가 무조건 옳다고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성찰을 통해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남을 배려하고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청년 예수의 진정한 가르침일 것이다"고 했다. 그는 "이번 사건이 종교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한국 사회의 화합을 다지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길 바라는 뜻에서 사과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봉은사 측이 사과를 받아들인 다음 날인 27일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종평위)가 '땅 밟기' 동영상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 종평위는 "'봉은사 땅 밟기'를 한 사람들과 지도 목사가 봉은사를 직접 방문하여 공개 사과를 했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종교·다인종 한국 사회에서 종교계의 존중과 배려, 상생의 종교 문화를 위한 활동이 전개되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특히 개신교 지도자들의 진정 어린 성찰과 책임 있는 재발 방지를 위한 역할이 있기를 호소했다.

명진 스님, "사과의 진정성 없었다"…최 목사, 거듭 사과

찬양인도자학교 측이 사과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명진 스님은 10월 31일 봉은사 법회에서 사과의 진정성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느 매체에 보니까 최 목사가 '학생들을 나무랄 생각은 조금도 없다'고 했다"며, "이는 여론이 안 좋으니까 임시방편으로 사과하는 척한 것밖에 안 된다"고 비판했다. 명진 스님은 "기독교 주류에서는 오히려 '왜 들키게 했느냐', '왜 핑계를 줬느냐'고 생각한다. 남의 종교를 저주하고 사탄이고 우상 숭배라고 부르짖는다. 봉은사만 해도 교회 청년부들이 여러 차례 땅 밟기 기도를 다녀갔다. 이건 일부의 문제가 아니고, 광적이고 집단적인 히스테리 증세다"고 했다.

봉은사 측이 사과의 진정성을 문제 삼자 최지호 목사는 11월 2일 봉은사 홈페이지에 거듭 사과 의사를 밝혔다. 그는 '용서를 구합니다'는 제목의 글을 남기고, "불미스러웠던 일로 마음의 상처와 혼란을 겪으신 봉은사 주지 스님을 포함해 봉은사 그리고 모든 불자님께도 다시 한 번 용서를 구합니다"고 했다. 최 목사는 깊이 반성하고 근신하고 있다며, 올해 준비 중이던 7개의 단기 학교를 중단했다고 했다. 내년 초까지는 자숙하며 그동안의 모습을 평가하고 바르고 성숙한 모습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땅 밟기 사건에 책임을 느껴 사역하던 교회도 바로 사임했다. 또한 최 목사는 동영상을 만든 청년들을 크게 혼내 주었다며, 지금은 모두 자숙하며 지내고 있으리라 생각된다고 했다. 이어서 "이번 일로 계획하던 상당 부분의 일을 내려놓았다. 큰 손실이 있지만 무지와 무례했던 대가로 해당 청년들과 함께 값을 치를 생각이다"며,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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