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에 있는 기념관 '야드 바셈'에 새겨진 글귀다. '야드 바셈'은 히브리어로 '기억하라'는 의미로, 1939년부터 1945년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독일의 히틀러에게 학살당한 600만 유대인들을 기억하기 위해 세운 기념관이다.

한국에도 '야드 바셈'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5월 '빛고을'이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에서 피 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권력의 욕망을 가진 한 사람 때문에 무고한 생명들이 처참하게 학살되었다.

'빛고을'에서 이 땅의 민주주의와 자주적 삶을 외치다 쓰러진 숭고한 영령들이 잠든 곳, '광주 국립 5·18 민주 묘지'에서 5·18 민주화 운동 30주년을 기념하는 연합 예배가 5월 9일 오후 2시 '전국예수살기'와 '한국대안교회연합(준)'의 주관으로 열렸다. 이 예배를 위해 전국 각지에서 50여 개 교회 및 단체 등 450여 명의 사람이 모였다.

▲ '광주 국립 5·18 민주 묘지'에서 5·18 민주화 운동 30주년을 기념하는 연합 예배가 5월 9일 오후 2시 '전국예수살기'와 '한국대안교회연합(준)'의 주관으로 열렸다. ⓒ뉴스앤조이 유연석
마른 뼈들이여, 일어서십시오

▲ 향린교회 조헌정 목사. ⓒ뉴스앤조이 유연석
설교를 맡은 조헌정 목사(향린교회)는 우리가 기억할 수난의 역사는 '5·18 민주화 운동'만이 아니라고 했다.

"동학 혁명의 자유혼들, 일제의 강제 늑약에 죽음으로 맞선 애국지사들, 기미년에 독립 만세를 부르다 죽어간 수많은 학생과 농부들, 독립투사들, 정신대와 강제 징집 등 전쟁의 도구로 끌려간 조상들, 제주 4·3 항쟁과 같은 이념의 희생자들, 강대국을 대신해 형제끼리 총칼을 겨눠야 했던 한국 전쟁, 그 전쟁은 지금까지 이어져 이름도 요상한 '키 리졸브' 전쟁 연습을 하다 죽은 천안함 희생자들, 희생자를 찾기 위해 애쓰다 죽은 어부들 등 민족의 수난은 지금까지 우리 주변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변 민중들의 한(恨)과 아픔을 볼 때마다 억울하고 분할 따름이라던 조 목사는 2,500년 전 에스겔 선지자도 바빌론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의 현실 때문에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라고 했다. 그때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들판의 마른 뼈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보여 주었다. 조 목사는 '5·18 민주 묘지'가 억울하고 한 많은 비극의 역사 현장 한가운데로, 마른 뼈들이 널린 곳이며, "야훼 하나님은 '내가 숨을 불어넣어 이 뼈들을 살리겠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있다"고 했다.

부활이란 헬라어로 '아나스타시스', '다시 (위를 향해) 일어서다'는 의미다. 곧 부활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위를 향해 다시 일어선다는 것이다. 조 목사는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부활을 믿고 증언하는 사람들로 갈릴리 현장에서 위를 향해 서는 삶이다"며, 5·18 민주 묘지는 "겉으로는 죽음의 뼈가 묻힌 곳이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에스겔 선지자가 경험했던 민중 부활 현장이요, 하나님나라 복음 운동이 새롭게 시작하는 갈릴리 현장"이라고 했다.

가자 갈릴리로, 가자 광주로

조 목사의 설교대로라면 그리스도인은 고난의 현장인 갈릴리와 광주로 찾아가 하나님나라 운동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의 갈릴리, 이 시대의 광주는 어디일까. 이날 예배에서 4명의 목사가 고통으로 울부짖는 현장의 '소리'를 증언했다.

장헌권 목사(광주 서정교회)는 '생태의 위기, 무차별 개발로 인한 지구의 신음 소리'를 증언했다. 장 목사는 경제 성장을 위한답시고 우리 강토의 혈관인 강을 파헤치고 보를 막는 4대강 정비 사업이 시작되었다며, 생명의 젖줄인 강이 난도질당하는 모습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강의 탄식 소리에서 하나님의 '탄식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정경주 목사(전주 새누리교회)는 '전쟁과 억압 그리고 폭력에 희생당하는 통곡 소리'를 증언하며, 지난해 용산 참사에 이어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온 나라가 초상집이 되었다고 했다. 하재호 목사(대전 알멋교회)는 신자유주의 무한 경쟁 질서로 발생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에 대해 증언하며 가난한 자의 '절망 소리'를 이야기했고, 류상태 목사(서울 예수동아리교회)는 왜곡되고 타락하는 한국교회에 들려오는 '조롱 소리'에 대해 증언하며, "보편적 인류애를 가르쳐 주신 주님을 괴물로 만든 건 바로 우리 기독교다"고 고백했다.

증언의 시간을 마치고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먼 옛날 파라오의 노예로부터 벗어난 날을 잊지 않았던 것처럼 5·18 정신을 잊지 않게 해 달라"며, "5·18 열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와 해방을 위해 온몸으로 맞서게 하고, 오늘날 우리 앞에 서 있는 생명 없는 발전, 인간 없는 성장이 밀어붙이는 힘 앞에 굴복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 예배 후 추모의 마당 시간이 열렸다. 왼쪽부터 장구를 연주한 오광식 씨(일산 동녘교회), 판소리를 한 고현미 씨(남원시립국악원), 대금을 연주한 홍양 씨(무진전통국악원). ⓒ뉴스앤조이 유연석
▲ 이종희 선생이 인도하는 '몸 기도' 시간. 참석자들은 북소리에 맞추어 한 걸음씩 함께 걸으며 묘지를 한 바퀴 돌았다. ⓒ뉴스앤조이 유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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