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와 함께 진보적인 일간지로 평가받는 <경향신문>이 안팎으로 곤란한 지경에 놓였습니다. <경향신문> 정기 기고자인 전남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가 김용철 변호사가 쓴 책 <삼성을 생각한다>를 소개하면서 삼성 재벌을 비판하는 칼럼을 써서 이 신문에 보냈는데, 실리지 않았습니다. 김 변호사의 책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에서도 광고를 거부당했다고 합니다.

조중동이 이 책 광고를 실어 주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경향신문>이 칼럼을 싣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고, 안팎에서 시끄럽습니다. <경향신문> 기자들이 반발했고, 편집국장도 잘못을 시인했으며, 재발 방지에 대해서 고민하기로 했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제 주변 사람들은 <경향신문>의 태도에 크게 실망했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실망을 넘어서 분노를 표출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구독을 중단하겠다', '맛이 갔다', '즐겨찾기 목록에서 빼겠다'는 반응이 대세였습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화가 날 법도 합니다.

저는 공교롭게도 '경향 사건' 소식을 들은 며칠 전부터 집에서 <경향신문>을 정기 구독하기 시작했습니다. '경향 사건'을 들은 다음에도 계속 받아 보기로 했습니다. 10년 동안 <뉴스앤조이>를 운영하면서 겪은 고통으로 인해 생긴 동병상련 때문인지, 화가 나기보다는 슬프고 아팠습니다. 눈물도 났습니다.

김 교수는 "이번 일을 두고 <경향신문>을 비난하기보다는 도리어 진정한 독립 언론의 길을 걷도록 더 열심히 돕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김상봉 교수의 마음을 공감합니다.

삼성그룹은 2년 전부터 <한겨레>와 <경향신문>에 광고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올해부터 광고를 재개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있었습니다.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는 <경향신문>이 거대 광고주인 삼성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삼성은 거대 광고주 정도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절대 권력입니다. 골리앗 재벌 앞에서 정론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과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현실 한가운데서 외줄타기를 하는 다윗 언론사의 고민은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 교회개혁실천연대가 사랑의교회 앞에서 1인 시위를 개시한다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많았지만 정작 기자들은 거의 없어 썰렁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기독교에도 삼성 재벌 같은 곳이 있습니다. 사랑의교회(담임 오정현 목사)입니다.

2월 19일 교회개혁실천연대는 사랑의교회 앞에서 새 예배당 건축을 반대하는 1인 시위를 시작하면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사전에 기독교 언론사에 연락을 취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 나타난 언론사는 단 4곳뿐이었습니다. 어느 기자는 "일단 취재는 하지만 보도 여부는 나도 알 수 없다"고 했답니다. 교회개혁실천연대가 8년 동안 수도 없이 기자회견을 했지만, 이번처럼 언론사가 오지 않은 경우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인 박득훈 목사는 "언론이 취재를 왜 안 왔는지 알아보겠지만, 만약 자발적으로 취재를 안 온 거라면 한국 기독 언론이 얼마나 썩었는지 느낄 수 있는 일이다. 기독 언론마저 '큰 힘으로 큰일을 하겠다는데 뭐가 문제냐'라는 맘몬의 논리에 빠진 것이다. 또 만약 언론이 자발적으로 온 게 아니라면, 힘을 누려서는 안 되는 교회가 너무 큰 힘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 목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언론뿐이 아닙니다. 작년 12월 사랑의교회 건축 관련 포럼을 기획할 때, 참가할 만한 기독교 단체라고 생각했던 곳들이 줄줄이 고사하는 바람에 주최 단체 없이 '공개 포럼' 형식으로 진행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사랑의교회 건축이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사적인 자리에서는 그렇게 말하지만, 공식적으로는 그런 생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랑의교회로부터 재정을 지원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뉴스앤조이>도 몇 년 전부터 사랑의교회로부터 광고와 후원을 받아 왔습니다. <뉴스앤조이>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뉴스앤조이>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왜 사랑의교회로부터 후원과 광고를 받느냐"고 나무라곤 합니다. 광고와 후원을 받으면서 비판 기사를 쓰는 것은 모순이 아니냐고 따지는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광고, 후원과 기사는 별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랑의교회 관계자로부터 여러 차례 전화를 받았습니다만, 흔들림 없이 사랑의교회 건축을 비판하는 글을 써 왔습니다. 예상대로 올해가 시작되면서 광고와 후원이 모두 끊겼습니다. 이 교회뿐 아니라 몇몇 대형 교회 후원이 중단되었으리라는 것은 교회 문제를 다루는 <뉴스앤조이> 기사 논조에서 감지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견디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가슴이 철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첫째는, 사랑의교회의 후원 금액이나 광고 금액과는 비교할 수 없이 적지만, 후원금을 보내 주시는 분들이 조금씩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차라리 소액 후원자도 모조리 끊겨서 이 핑계로 아예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을 갖고 살기 때문입니다. 최선을 다하되 안 되면 구질구질 사느니 깔끔하게 죽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여러분 몫이고, 두 번째는 저희 몫입니다.

김상봉 교수의 말을 덧붙입니다. "문을 닫을 때 닫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언론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한편으로 현재 이 땅의 진보 언론들이 처해 있는 어려움의 원인이 신문사 내부의 잘못이 아니라 언론 소비자들의 무지와 무관심에 기인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고 했습니다.

악(惡)해서 못된 짓을 할 때는 침을 뱉어 주어야 됩니다. 하지만 약(弱)해서 그럴 때는 입에서 나오는 침 말고 '건강 침' 같은 걸 놓아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전전심(以錢傳心), 물심양면(物心兩面)의 침 말입니다. 아, 오늘따라 유난히 '건강 침' 한 대 맞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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