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신교에서 또 한 명의 병역거부자가 나왔다. 연세대학교 신학과 03학번인 하동기 씨(25). 그는 예수를 따라 살기 위해 병역거부를 결심했다고 말한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개신교에서 또 한 명의 병역거부자가 나왔다. 알려진 바로는 김대산 씨(2005년), 박정경수 씨(2007년), 권순욱 씨(2008년)에 이어 네 번째다. 연세대학교 신학과 03학번인 하동기 씨(25). 그는 2005년 신학과 학생회장을 역임하며 학내에서 친일과거사 청산 운동을 펼치는 등 학생운동 경험이 있다.(뉴스앤조이 2005년 4월 13일 기사 연세대 신과대, 친일청산운동 동참)

그러나 입대를 거부하는 게 소위 운동권에게 친숙한 '반전'이나 '인권'과 같은 사회적 이념 때문은 아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목사가 되는 게 꿈이었던 그가 배우고 믿었던 ‘신앙’ 때문이다. 6월 29일 신촌에서 병역거부 선언과 졸업 준비로 분주한 하 씨를 만났다.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고 싶은데,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해 보니 당면한 입대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어요."

하 씨는 줄곧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장 최병남) 소속 교회를 다녔다. 안산 동산교회(목사 김인중)와 서울 사랑의교회(목사 오정현)를 출석했다. 안산 동산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목사가 되려고 연세대 신학과에 입학했다. 보수적인 신앙 배경을 가진 그가 병역거부에 눈을 뜬 것은 2005년 겨울. 국가인권위원회가 국방부에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하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엄신형)가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예수의 말씀대로 '평화'와 '이웃 사랑'을 좇아야 할 교회의 대표 기관이 예수의 말씀이 아닌 '국가 안보'를 내세우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때부터 병역거부자에 대해 찾아보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병역거부를 선언할 자신은 아직 없었다.

병역거부 고민한 계기 '한기총'과 '대추리 사태'

2006년 5월, 미군기지 확장 문제로 피비린내가 났던 평택 대추리에서 병역거부를 결심하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평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고자 찾아간 곳에서 목격한 광경은 충격 그 자체였다.

"전경과 시위대가 서로 죽일 듯 덤벼들었어요. 경찰과 군인들의 눈빛에는 증오와 분노가 가득했습니다. 주민들과 시위대를 때려잡지 못해 안달이 난 거 같았어요. 일부 시위대도 죽창을 사용하는 등 마치 전쟁터 같았죠. 군대 간 친구들 생각이 나서 안타까웠습니다. 자신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일 테니까요. 뒤에서 명령하던 간부들이 '너희 동료가 맞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거냐'며 선동하는 모습을 보고 학사장교로 군 복무 하겠다는 마음을 접었습니다. 군대가 어떻게 폭력 행사를 강요하는지, 국가권력이 어떻게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경험했습니다."

시위대와 함께 있던 하 씨는 경찰에 연행돼 처음으로 구치소 생활을 경험했다. 구치소 안에서 예수를 따른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예수의 가르침과 삶은 폭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 고통받는 자들과 늘 함께한 그는 국가나 권력에 맞설 수 있었지만, 희생의 길을 가셨다. 산상수훈을 떠올렸을 때도 예수가 가장 강조한 가치는 평화였다. 예수 따르미는 평화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결론을 냈다.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다 보니 군 문제에 부딪혔다. 고민 끝에 자신 없었던 병역거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가족에게 병역거부 소신을 알린 것은 2007년이다. 혼자서 자신과 누나를 키워 온 어머니에게 큰 짐을 안겨 드리는 것 같았다. 찬성하진 않으셨지만, 늘 그랬듯 '기도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들이 목사가 되길 바라던 어머니이시기에 아들의 신앙을 존중해주신 게 아닐까. 그해 가을 정부의 대체복무제 도입 계획 발표는 마음의 짐을 가볍게 해줬지만, 정권이 바뀌고 작년 말 국방부가 발표한 도입 보류 발표는 병역거부를 더 미루지 못하게 했다.

개신교인 가운데 병역거부자는 아직 극소수다. 많은 사람이 '병역거부 = 여호와의증인'이라는 공식에 익숙하다. 하 씨는 신앙의 자유나 인권의 측면이 아닌 교리로 병역거부 문제를 판단하는 개신교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신교 안에서 병역거부에 대한 신앙적 논리를 제시하는 선배를 발견하지 못해 아쉬웠다. 

그러던 중 발견한 책이 김두식 교수(경북대)의 <칼을 쳐서 보습을>과 그 개정판 <평화의 얼굴>이다. 김 교수의 책으로 인해 "예수가 걸어간 평화의 길을 병역거부를 통해 따르겠다"는 하 씨의 신앙 고백은 확고해졌다. 뺏고 뺏기는 결과를 만드는 전쟁과 이를 위해 존재하는 군대를 거부하는 것. 그것이 하 씨가 신앙을 따라 현실을 정직하게 직면하고자 선택한 바다.

전과자 낙인, '예수 따라 살겠다'는 신앙고백 되돌릴 수 없어

하 씨는 목사가 되는 꿈을 접었다. 선교사가 되고자 했던 생각도 버렸다. 신학을 공부하며 교회 안의 모순과 불합리를 알고 아무나 목회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신학생이 목사가 되려고 줄을 선 현실 속에서 목자의 역할을 잘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곳곳에서 횡행하는 폭력적 선교 방식을 알게 된 후 선교에 대한 부담감도 커졌다.

지금으로선 동아리 활동으로 한 연극을 계속 하고 싶다. 관객과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연극이 주는 매력에 빠졌기 때문이다. 예수는 사람들과 늘 교감하셨다. 약하고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며 위로하고 치료하셨다. 하 씨는 관객과 울고 웃는 연극에서 예수의 삶을 발견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은 아직 병역거부자에게 전과자란 낙인을 찍는다. 1년 반 남짓한 수감생활은 지나고 나면 끝이지만 전과 이력은 평생 따라다닌다. 인생의 방향이 바뀌고, 선택에 커다란 제약이 따른다. 하 씨는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생각이 없다. 병역거부가 구직에 걸림돌이 될 거란 사실이 별 걱정거리가 아니라고 한다. 앞으로 받을 사회적 불이익이 '예수를 따라 살겠다'는 신앙고백을 되돌릴 수는 없다. 승소나 대체복무제 도입은 현 정부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포기한 지 오래다. 이제 법정에 서고, 수감 생활을 견뎌내는 일이 남았다. 예수의 걸음을 따라 그도 한 걸음 내딛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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