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진 씨(엑소더스 회원)는“지나보니 내가 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죠.‘이걸 어떻게 했나’하는 생각이 들죠. 된다고 생각하고 시작하지도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김세진
“지나보니 내가 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죠. ‘이걸 어떻게 했나’ 하는 생각이 들죠. 된다고 생각하고 시작하지도 않았어요. 되든, 안 되는 해보자는 심정으로 열 받아서 했는데 하나님이 하신 거죠”

김형진 씨(엑소더스 회원)는 재판 결과를 보고, 십년 동안의 싸움에 그나마 위로를 얻었다. 지난 4월 23일 정명석 씨가 강간치상 등의 혐의로 십 년 형을 선고받자 피해자들과 안티 JMS 단체인 엑소더스 회원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엑소더스의 김도형 씨도 “죄가 찰 때까지 기다렸다가 심판하시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오랜 시간 싸웠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그 시간들은 만만한 시간들이 아니었다.

“허무해요.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좋은 결과가 기다린다 해도 절대 안 할 거예요. 한 가지 목표만 바라보고 달려왔는데 이루고 나니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김형진 씨는 변호사 지망생이었다. 지금도 가장 아쉬운 것은 “하던 공부를 계속하지 못했던 것이다. 김 씨는 십여 년 전에 아는 사람을 통해 JMS(현재 CGM․기독교복음선교회)에 들어갔고 우연히 정명석 씨의 비리를 들었고 탈퇴하면서 진실을 알리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안티 JMS 단체인 엑소더스와 그렇게 만났다. JMS에서 나오도록 사람들을 돕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엑소더스(출애굽) 과정처럼 쉽지 않았다.

재판 결과에 대한 소회를 물으니 김 씨는 “우리나라에서 성 범죄로 십 년 형을 받은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 했다. 나름 중형을 받았다는 평가다. “긴 재판에서 이겼기 때문에 해방했다는 기쁨이 있지만 피해 당사자는 만족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피해자들은 ‘그런 일을 내가 안 당했더라면…’,‘재판은 다른 사람이 하고 나는 내 삶을 찾았더라면…’ 하는 마음이 크죠.”

김 씨는 “이겼다는 기쁨 이면에 상처가 크다”고 했다. 피해자 중에는 남자에 대한 불신이 생겨 결혼 나이를 넘기신 분도 있다고 했다. 또 오랜 시간 재판을 진행하면서 사회에서 경쟁력을 잃고 나이도 들어 한 곳에 정착하기 힘들어진 사람도 있다. 게다가 늘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

김형진 씨도 엑소더스 활동을 하면서 십 여 건의 소송에 휘말렸다. 조사계에서 얼굴을 모르는 형사가 없을 정도로 법원과 검찰을 오갔다. 다른 엑소더스 회원들도 명예훼손․살인 예비․음모 등 온갖 소송을 당했다. 게다가 소송이라는 것이 늘 100% 이기기는 어렵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전과를 단 사람도 생겼다. 한 사람에 대해서는 전과 12범으로 만들기도 했다.

정명석을 찾으려고 1년 중 2/3를 외국에 다니기도 했다. 모든 사건이 끝난 지금까지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는다. 엑소더스 활동이 독립운동도 아니고 일반 사람들이 공감하는 활동도 아니기 때문에 이해하는 사람이 적다. 김 씨는 오랫동안 부작용이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JMS는 우물 안 개구리

십 년 선고가 내려진 뒤, JMS에서 탈퇴를 선언하는 단체와 개인이 생겼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대로 남아있다. 김형진 씨는 “JMS에 있으면 우물 안 개구리처럼 그 세계가 전부인 걸로 안다”고 설명했다. 내·외부 단속 상태에서 세뇌 당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다른 사람이 아무리 떠들어도 들리지 않고, 정명석의 행태를 들어도 안 믿을 정도”라고 했다.   

김 씨는 “여성들에게 정명석은 메시아, 예수님 같은 존재”라고 했다. “신앙적인 면에 남성적 면까지 결합되어 정명석을 열망하는 분위기가 여성들 사이에 형성되었다”고 했다. “본부에 있는 여성이나 상록수(평생 결혼하지 않고 교단을 위해 사는 신도)들은 궁녀처럼 왕의 눈에 띄기 위해서 서로 경쟁한다”고 했다. “정명석을 직접 만나는 게 영광으로 여겨지는 분위기여서 여성들이 당해도 처음엔 정신이 없다”고 했다. 그런 정신적인 혼란 때문에 순간 항거불능 상태가 된다고 했다. 다른 회원들도 총재가 십 년 형을 확정 받아도 ‘세상이 이해하지 못해 고난 받는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탈 JMS 선언한 단체와 개인 늘어

JMS 탈퇴를 선언한 교회는 안성 진실과 충성교회와 인천 주빛교회다. 김 씨는 “특히 진실과 충성교회는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사과문을 발표했다”고 했다. 그들은 사과문을 통해 △JMS 총재인 정명석 씨를 메시아로 증거해, 순수한 영혼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했고 △오류가 많은 30개론을 비판없이 믿었고 △정 씨의 성 범죄를 원천적으로 믿지 않고 객관적인 자료가 있어도 알려고 하지 않았으며 △여성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아붙이고 매도했고 △돈을 노리고 정 총재를 모해한다고 주장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것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다고 했다. 또 JMS교단에 몸을 담아 직․간접으로 정 씨에게 힘을 실어준 점이 범죄에 가담한 것과 같은 것임을 시인한다고도 했다.

JMS 평신도비상대책협의회(평대협)에서 탈퇴한 사람들은 언론인에게 사과문을 발표했다고 했다. 평대협은 “지난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언론에 압박을 가했던 것을 사과한다”며 “정 씨가 법정 진술 하는 것을 보고 미화되었던 그의 행동이 거짓이었고 여신도들을 성폭행했다는 것도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며 “그동안의 판단이 어리석었다”고 시인했다는 것이다. 또 “JMS에서 탈퇴하는 개인이 계속 이어진다"고 했다.

테러당하는 순간 하나님 보호 느껴

10년 동안 엑소더스 활동을 하면서 하나님이 도와주셨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가 있냐고 했더니 김 씨는 테러 사건을 떠올렸다. 홍콩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정 씨를 체포했던 당시의 상황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엑소더스가 숨어있는 정 씨의 별장을 알아냈고 비자 없이 지내던 정 씨를 이민국에 신고했다. 홍콩이민국은 그를 체포했으나 정 씨의 귀국을 약속박고 보석으로 풀어 줬고 정 씨는 중국으로 밀항했다. 정 씨가 밀항한 후 김형진 씨는 협박을 받기 시작했다고 했다. JMS 간부가 전화해서 욕하고 만나자고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위협이 현실로 다가왔다.

당시는 지금처럼 발신번호 표시 시스템이 보편화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김 씨는 위협을 당하고 있었기에 경찰청을 통해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를 받고 있었다고 했다. 공중전화의 전화번호가 뜨는데 지역번호가 서울이었다가 전주였다가 김 씨가 다니는 학교 구내 공중번호가 떴다. ‘거의 노출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날 김 씨가 도서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계단의 센서등이 안 켜져서 이상했다고 말했다. 어두운 상태에서 누군가 계단을 뛰어내려오는데 순간적으로 ‘번쩍’했다. 야구 배트로 김 씨를 쳤는데 다행히 책을 들고 있었기에 책으로 막았고 위에서 세 명, 뒤에서 두 명이 머리를 중심으로 가격했다. 몸부림치면서 겨우 건물 밖으로 나왔는데, 가로등에 노출 될까봐 염려해서인지 범인들이 세 방향으로 도망갔다고 했다. 그 중에 한 사람의 얼굴을 봤다고 한다. 나머지 사람들의 얼굴도 봐야하겠기에 쫓아갈까 하다가 피를 많이 흘려서 ‘더 가면 무리다’ 싶어서 그만 두었다고 한다. 김 씨는 병원에서 다섯 바늘을 꿰맸다. 

증거가 불문명해 법적으로 미지의 사건으로 남았었는데 홍콩 엑스 파일이 공개돼 그를 근거로 재수사를 했다고 한다. 홍콩에서 일하던 직원이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들고 왔던 자료를 공개한 것이 홍콩 엑스 파일이다. 가로등 밑에서 얼굴을 노출했던 그 사람이 정 씨에게 ‘범죄했다’고 보고한 내용이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검거된 사람이 2006년 당시 청와대 경호실 소속이었다.

김 씨는 당시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보고 하나님이 보호하신다고 느꼈다. 그 책으로 머리를 막았는데, 상당히 두꺼운 법학 책이 너덜해질 정도였으니 책이 없었다면 광대뼈가 무너졌을 터였다고 했다. 그날 김 씨는 집으로 가다가 다시 돌아와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고 했다. 김 씨는 “하나님이 감동을 주셔서 그날따라 책을 빌려가게 하신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피해자들이여, 지금이라도 용기를

김형진 씨는 드러내는 것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해 피해자들이 나서 줄 것을 부탁했다. “다른 피해자가 있다면 겁내지 말고 지금이라도 용기 있게 나와서 민사든, 형사든 제기하라”고 했다.

한국교회에게는 “사이비 종교를 막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예방이다. 한국교회가 선교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세미나 등을 열어서 사람들을 깨워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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