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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성경적 이해 (4)

구약성경의 장애 관련 구절 연구

이재서   기사승인 2009.04.24  15: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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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장애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케이스 25, 장애관련 구절 86, 장애구절 30)

장애인은 누구인가? 하나님 나라에서 누구인가? 하나님과는 어떤 관계인가? 비로소 장애인의 진정한 신분과 정체성을 말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구약성경에는 장애인을 부정적으로 연상케 하는 말씀들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죄의 결과로 장애를 언급한 말씀이 많은 것도 그렇고, 뒤에서 소개하겠지만 어떤 자격을 제한하기도 하고 심지어 공동체에서 격리하라는 말씀까지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이 하나님과 장애인과의 관계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며 그 모든 것을 덮고도 남을 만한 상위개념의 말씀들이 명백하게 존재한다.

1) 장애는 하나님의 주권이며 능력의 표상

*출4:10-12; 신32:39; 욥5:18-21; 출4:6-7; 왕하6:15-20; 사56:3-5; 합3:3-5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가 말에 능치 못함을 구실로 그 부르심에 응하려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라고 말씀하신다.(출4:10-12)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인간의 육체적 기능에까지 미치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유일하게 인간의 육체적 기능을 조절하시고 운영하실 권한과 능력을 갖고 계신 분이시다.(시94:9, 사50:4) 그 권한의 행사는 죄에 대한 응징으로 나타나는 장애까지를 포함하지만 이 말씀이 암시하듯이 언제나 죄와 연관된 징계만은 아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뜻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한 장애도 있고 뭔가를 가르치고 깨닫도록 하시기 위한 장애도 있으며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한 목적에서도 장애는 설계된다.

어쨌든 그 출처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비록 그것이 보기 흉하고 고통스러운 것이라 하더라도 인간이 함부로 논하거나 침범할 수 없는 어떤 신성함의 영역임을 뜻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특별한 목적으로 설정해 놓으신 인간 사회의 균형추이자 안배이며, 그래서 누구라도 함부로 취급해서는 안 될 존엄과 가치가 있다 하겠다. 그것은 사회 구성의 한 배치로서 뭔가를 향해 진행 중인 하나님의 일인 것이다.

장애는 또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을 보여주시는 수단으로도 사용된다. 이것 역시 장애의 가치와 권위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여전히 말을 듣지 않은 모세에게 하나님은 손에 나병이 들었다가 낫게 하는 기사로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셨다. 엘리사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엘리사로 하여금 무리의 눈을 어둡게도 하셨다가 다시 보게도 하시므로 당신의 절대 권능을 나타내셨다. 하박국 선지자는 “그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 손에서 나오니 그 권능이 그 속에 감추었도다. 온역이 그 앞에서 행하며 불덩이가 그 발밑에서 나오도다.”라 한다. 장애를 필요에 따라 통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말씀들인 것이다.

2) 장애인은 하나님의 사역의 대상

*시146:7-9; 사29:18-20, 30:19-26, 32:1-4, 33:20-24, 35:1-10, 42:5-7, 61:1-3; 렘31:7-9; 겔34:15-21; 미4:6-7; 습3:19

구약성경은 하나님이 장애인을 위해 행하시는 여러 가지 일들을 많이 소개함으로써 장애인도 하나님 사역의 엄연한 대상임을 분명히 하신다. 특별히 메시야가 이 땅에 오셨을 때 장애인과 관련되어 나타날 여러 일들을 소개하시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장애인을 위해서도 펼쳐질 것에 대해 밝히신다. 하나님이 직접 그들에 대하여 행하신 일들을 중심으로 그 대상의 의미를 구분해보면 이러하다.

첫째, 장애인은 구속의 대상이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예레미야 선지자는 매우 선명한 메세지를 전한다.(렘31:7-9) 바벨론의 포로 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구원을 받아 본국으로 돌아오는 내용으로서, 악의 세력으로 인해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을 그리스도를 통해 그 속박에서 구원하실 것을 상징하는 예언의 말씀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구원하신 그 ‘남은 자들’ 중에 시각장애인과 지체장애인 등 장애인들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은 똑똑하고 부유하고 신분이 높고 건강한 자들만 골라서 구원의 은혜를 펼치신 것이 아니라 가장 연약한 장애인도 구원의 대상으로 삼으신 것이다. 미가 선지자와 스바냐 선지자도 같은 의미의 말씀을 기록하므로 그 사실을 분명하게 해준다.(미4:6-7; 습3:19)

둘째, 장애인은 사랑의 대상이다.(시146:7-9; 사30:19-26, 61:1-3; 겔34:15-21) 하나님은 장애인을 불쌍히 여기시며 그들을 이해하시고 배려하신다. 그들을 감싸시고 허용하신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실제로 보여주셨던 내용이다.

셋째, 장애인은 보호의 대상이다.(사30:26, 42:5-7; 겔34:16-21; 습3:19) 직접 보호란 말이 없어도 보호의 정신이 함의된 말씀들이다. 하나님은 장애인은 물론 모든 약한 자들에 대한 보호를 많이 강조하신다.

넷째, 장애인은 위로의 대상이다.(사30:26, 33:24, 35:1-10, 61:1-3) 따뜻한 위로의 정신이 흐르고 있는 말씀들이다. 안타까운 육신적 아픔으로 괴로워하는 그들을 하나님은 위로자의 모습으로 다가오신 것이다.

다섯째, 장애인은 치료의 대상이다.(시146:7-9, 사29:18-20, 30:19-26, 32:1-4, 33:20-24, 42:5-7, 61:1-3; 겔34:15-21) 이 치료를 그들에 대한 봉사 혹은 사랑의 실천이라는 개념으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 그들의 부족과 필요를 채워준다는 의미에서다.

여섯째, 장애인은 동역의 대상이다.(렘31:7-9; 미4:6-7) 하나님은 구원하여 부르신 자들과 언제나 당신의 성업을 동역하신다. 그래서 장애인의 구원도 단지 구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동역자로 부르신 것의 의미를 포함한다.

일곱째, 장애인은 가족의 되어야 할 대상이다.(렘31:7-9; 미4:6-7) 구원해 내셨다는 것은 천국 백성이 됨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라는 뜻이다.

이상 일곱 가지가 하나님이 장애인에 대해 직접 실천하신 사역의 내용이다. 물론 신약성경까지 포함한다면 더 추가될 부분도 있겠으나 일단 구약성경 장애관련 기록을 중심으로 분석해본 결과이다. 이것들이야말로 장애인에게 붙여 주어야 할 진정한 그들의 이름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그들의 신분이다. ‘장애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장애인이 ‘하나님께 누구인가’는 그대로 ‘우리에게 누구인가’가 되기 때문에 이것들이 소중한 것이다.

3) 장애인에 대한 하나님의 당부

*레19:14; 신27:18; 욥24:12, 29:15-17; 잠언31:8-9; 겔34:3-6

이제는 하나님이 당신이 본보이신 것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우리가 그들에 대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당부하신다. 마치 예수님이 직접 장애인들을 위해 일도 하셨지만 제자들에게도 장애인을 잘 돌볼 것을 명령하시고 당부하셨던 것과 같다. 장애인에 대한 하나님의 각별하신 관심과 사랑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너는 청각장애인을 저주하지 말며 시각장애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레19:14)고 말씀한다. 이는 어떤 형태로든 장애인을 욕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되며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장애물을 놓지 말라는 말씀은 말 그대로 장애물을 놓지 않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들의 삶이 순탄할 수 있도록 돕지 않은 것까지를 포함하는 의미이다. 이 말씀은 또한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장애인을 돕는 것과도 관련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너는 언어장애인과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 너는 입을 열어 공의로 재판하여 간곤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할지니라”(잠언31:8-9)고 하신다. 장애인이라고 차별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그들을 대변해주고 편들어주라는 당부이다. 어떤 경우라도 정당한 대우와 평등한 존중으로 그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하라는 말씀이다.

“시각장애인으로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신27:18)이라 말씀하시므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장애인의 삶을 불편하게 하거나 잘못되게 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범죄인가를 가르치신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세상의 헛된 삶을 떠나 참된 길인 하나님 품으로 인도할 것을 당부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같은 맥락에서 어린양과 같이 연약한 장애인을 돌보지 않고 방기시킨 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엄중한 책망을 하시기도 한다.(겔34:3-6)”

장애인을 돌볼 것을 하나님이 강조하시는 것과 관련해 욥기 24장 12절은 매우 특별한 경우를 보여준다. “인구 많은 성 중에서 사람들이 신음하며 상한 자가 부르짖으나 하나님이 그 불의를 보지 아니하신다”고 되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 불쌍한 사람들을 지나쳐가는 사람들의 불의를 용납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의 악한 불의를 모든 사람이 보고 알도록 얼마 동안 나서지 않으시고 기다리신다는 뜻이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는 세태에 대한 훨씬 강조된 책망의 표현이라 하겠다. 실제로 욥은 그 불의한 자들이 처참히 망하는 것을 그 뒤의 말씀에서 진술하고 있다.

4. 장애 관련 각종 조처 (케이스 10, 장애관련 구절 184, 장애구절 93)

이 부분이 전반적으로 장애인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하는 말씀들이다. 그러나 딱히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언급들이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상황과 이유에서 취해진 조처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1) 제한 조처

(1) 신체적으로 장애의 흠을 가진 자는 제단에 나아가 제사를 드리지 못한다.(레21:16-23)

이 본문은 오래도록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갖게 한 근거였으며 심지어 오늘 날에도 일부 기독교 종파에서 장애인이 성직자가 되는 것을 금하는 이유로 제시되는 말씀이다.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우둔함과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도 분간 못하는 무지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 언급된 장애인은 모두 중증 장애를 가진 자들로 민첩한 행동이 힘들거나 제물을 정결하게 다루기에 부적절한 건강 상태를 지닌 자들이었다. 그들의 체력 조건으로는 상당한 물리력을 필요로 하는 간단치 않은 당시 제사 업무를 수행키가 실제로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아론의 자손인 그들은 자동적으로 제사장 직분은 받았음에도 그 직무를 금지 당한 것은 그런 신체적 조건을 감안한 조처라 볼 수 있다. 그러한 신체적 상황에 있는 그들에게 제사 직무의 수행을 강요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그들에 대한 보호의 측면이 강하다 할 것이다.

그들은 제사의 집행을 금지 당한 것 외에는 쫓겨나거나 차별을 받지 않았고 제단의 제물은 똑같이 먹도록 허용되었다.(레21:22) 제물에는 지성물과 성물이 있는데 지성물은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었고 성물은 그 가족도 같이 먹었다. 그들이 두 가지를 다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제사의 집행은 안할지라도 제사장으로서의 다른 특권은 그대로 유지되었던 것을 뜻한다. 그래서 흔히 연상하는 것처럼 그들이 그렇게 심하게 무시당하거나 비참하게 배척당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이 본문이 영적으로 갖고 있는 의미가 더 크고 중요하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흠이 없는 온전한 제사장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진정한 중보자가 될 수 있음을 가르치며 그런 제사장으로 세상에 오셔서 인류의 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실 대제사장 예수님을 암시하는 말씀인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열거되고 있는 신체적 장애들은 영적인 결함을 상징하려는 것이 본질이다. 예수님이 여신 복음의 시대에는 그런 신체적 장애가 있을지라도 얼마든지 하나님께 영적인 제사를 드릴 수 있고, 건장한 신체를 가졌을지라도 영적인 장애를 지닌 자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2) 신체적으로 부정한 자는 정하기 전에는 하나님께 드린 성물을 먹을 수 없다.(레22:1-7)

이 말씀 역시 제사장 직분을 가진 아론의 자손들에 대한 말씀이다. 그러나 위의 경우는 제사장직의 수행만 금하고 성물은 함께 먹게 허용했지만, 이들에게는 그것마저 금하는 조처로서 그야말로 명백한 배척이고 차별이었다. 양자의 차이를 보면 전자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결함들로서 ‘흠’이라 불렀고, 후자는 본인의 부주의나 불결한 삶에 의해 생긴 것들로 ‘부정’이라 표현했다. 그래서 전자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찾아온 어쩔 수 없는 불행이라 하겠으나, 후자는 본인의 부적절한 생활로 인해 발생한 것들로 본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미 부정한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오염으로 다른 사람들을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백성으로부터 떨어질 것을 명령하신 바 있다. 그래서 이미 명령된 내용을 제사장들에게도 예외 없이 부과하고 있는 셈이다.

(3) 한센병과 유출병 환자는 격리해야 한다.(민5:1-4)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오염되어 불결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단순한 조처로 보면 될 일이다. 그들에 대한 차별이나 배척으로 보기보다는 당시 불비한 위생 설비와 부족한 의료기술 수준 하에서 전염성이 있는 그 질병으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취해진 조처로 생각할 일이다. 물론 그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집을 깨끗케 보존한다는 영적인 의미를 포함한다 하겠다.

(4) 신낭이 상한 자나 신을 베인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참석할 수 없다.(신23:1)

이 본문에 대한 해석은 매우 분분하다. 남자의 생식기인 ‘신’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도 해석이 다양하며 ‘총회’가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서도 합일된 견해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위에서 소개한 것들과 유사한 관점에서 전체적으로 흐르는 취지와 정신으로 이해해 보자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장소에 부정한 것이 개입되어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 기본 의도인 것 같다. 잘 알 수 없는 당시 상황에서의 조처지만 그러나 그것은 문자적인 것보다는 영적인 의미가 강하다는 것도 또한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2) 전염병에 대한 진단, 치료, 대처 방법

*레13:1-59, 14:1-57, 15:1-33; 신24:8

당시 사람의 의학 수준으로서는 해결이 어려운 중증 전염병에 대해 그 진단과 치료와 대처 방법을 하나님은 상세하게 가르쳐 주신다. 위에서 언급하였듯 이것은 그 환자들에 대한 차별이나 배척이 아니라 공동체를 전염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조처들이었다.

3) 신체 상해에 대한 공적 대처 기준

*출21:18-27; 레24:19-22

공동체 안에서 서로 싸우다가 신체적인 손상을 입혔을 때에 거기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루는 방법과 기준에 대해 가르친다.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 심하게 싸우는 것을 막고 약한 자에게 힘을 가지고 함부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를 기대한 듯하다. 연약한 자에 대한 보호적 취지가 담긴 조처들이라 하겠다.

5. 기타 (케이스 14, 장애관련구절 44, 장애구절 18)

구약성경의 장애관련 구절들을 그 특징별로 분석한 결과 지금까지의 설명과 같았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포함시키기 어려운 얼마의 장애관련 말씀들이 있었다.

1) 아무런 함의가 없는 단순 언급(민26:1; 삼하9:1-13, 19:24-30; 슥13:4-6)

본 연구의 구약성경 장애관련 구절 분석은 그 장애단어가 그 문장 안에서 어떤 의미로 작용하고 있는가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나타난 장애단어는 그 문장 자체 안에서는 아무런 함의가 없는 단순 언급이다.

2) 장애인을 얕보고 무시하는 당시의 사회적 인식이 노출된 경우(삼하5:6-8)

다윗이 여부스를 치려 할 때 여부스 사람들은 자기들의 신과 요새를 믿고 다윗과 그의 군대를 철저히 무시했다. 그래서 성벽 위에다 연약한 장애인들을 세워 막게 하면서 다윗과 그의 군대를 비웃게 했던 것 같다. 아마 그들은 하나님을 모독하고 불경한 발언으로 다윗의 화를 돋구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윗은 공격에 성공한 다음 그 장애인들도 치게 했던 것이다.

3) 한센병 장애인이 일을 한 경우(왕하7:3-10)

모세의 율법에 따라 비록 성 밖에서 살았지만 결정적인 정보를 나라를 위해 왕에게 전하는 역할을 했다. 구약성경에서 장애인이 구체적으로 일을 한 경우는 이것이 유일한 기록이다.

4) 욥의 장애, 사탄에 의한 장애(욥2:6-7, 7:5, 9:17, 30:17, 34:6)

5) 욥과 다윗이 장애로 원수를 저주한다.(욥17:5; 시31:18, 69:23)

장애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저주하는 매우 특별한 기록이다. 욥은 “친구를 지적하여 해를 받게 한 자의 자식들은 눈이 멀지니라”라고 했고, 다윗은 “교만하고 완악한 말로 무례히 의인을 치는 거짓 입술로 언어장애인이 되게 하소서”라고 한다.

이재서 / 세계밀알연합 총재·총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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