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국가조찬기도회 측은 "국가조찬기도회는 비정치적인 기도 모임으로 사회 각계각층 지도자들을 초청해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 기도회를 열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제공 국가조찬기도회)

국가조찬기도회(회장 박성철)는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단체다. 그 역사는 무려 40년. 40년 동안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한 곳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1966년 박정희 정권 시절 대통령조찬기도회로 시작한 이 기도회는 1968년부터 공식적인 행사로 진행했다. 이유는 박정희 대통령이 이때부터 기도회에 참석했기 때문. 그 뒤 1976년 '국가조찬기도회'로 명칭을 바꾸고 2003년 사단법인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로 등록했다.

국가조찬기도회 초대 회장과 3대 회장을 역임한 민주당 김영진 의원은 한 언론사와 나눈 인터뷰에서 국가조찬기도회를 이같이 설명했다. "국가조찬기도회는 교계 지도자와 각계각층 귀빈 등이 모여 국가의 장래를 하나님 손에 부탁하고 국가와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는 곳이다." 이어 "국가조찬기도회는 비정치적인 기도 모임으로 사회 각계각층 지도자들을 초청해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 기도회를 열고 있다"고 설명했다.

40년을 이어온 국가조찬기도회 역사를 되짚어보면 당시 나라 정세, 교회와 정권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대통령의 기도회 참석 횟수다. 대통령이 의무적으로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독교인 대통령이 나오면서 이들의 조찬기도회 참석 횟수가 늘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문민정부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 대통령이 활발하게 조찬기도회에 참석했다. 그 전에는 국무총리나 국회의장이 대신 참석할 때도 많았다. 1960~1970년대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에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있는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었다. 교회와 정권의 관계가 좋을 리 없다. 한국기독교역사학회 회장 한규무 교수(광주대학교)는 <기독교사상>에서 독재정권시절은 권위주의 정권에서 대화와 타협보다는 일방적인 '통치'만 필요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독재정권시절은 대통령도 체육관에서 뽑던 시절이니 기독교계의 '표'가 아쉬울 리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독교계의 '표'가 대통령 당선에 큰 역할을 한 장로 대통령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고 시작한 첫 번째 기도회는 국가조찬기도회 역대 최대 인원인 4000명이 참석했다.

독재시절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드러난 왜곡된 정교유착

중앙대학교 장규식 교수는 "국가조찬기도회는 시작부터 예배 정신에 역행하는 불순한 의도의 호화 정치 쇼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대통령 조찬기도회부터 왜곡된 정교유착의 어두운 그늘이 드러났다"며 "10월 유신 이후 양심적 기독교인들이 정권과 맞서 싸우다 구속당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상황 속에서 1973년 열린 제6회 조찬기도회 석상에서 김준곤 목사는 현실의 부정과 불의를 외면한 유신의 앞날을 축복하는 설교를 했다"고 말했다.

<교회연합신보>에 따르면 당시 김준곤 목사는 "민족의 운명을 걸고 세계의 주시 속에 벌어지고 있는 10월 유신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기어이 성공시켜야 하겠다. 외람되지만 각하의 치하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군신자화운동이 종교계에서는 이미 세계적 자랑이 되고 있는데 그것이 만일 전민족신자화운동으로까지 확대될 수만 있다면 10월 유신은 실로 세계 정신사적 새 물결을 만들고 신명기 28장에 약속된 성서적 축복을 받을 것이다"고 설교했다.

장 교수는 5.17 군부 쿠데타 당시 열린 기도회를 꼬집었다. 그는 "광주의 숱한 인명을 학살하고 정권 찬탈에 성공한 당시 전두환 상임위원장의 장도를 축복하기 위해 '나라를 위한 조찬기도회'가 1980년 8월 6일 열렸다"며 한국교회사에 지울 수 없는 오욕과 굴종의 기록이라고 했다. 그리고 1981년 3월 대통령 선거인단 투표로 제12대 대통령에 취임한 전두환은 제 13회 국가조찬기도회에서 교회의 협조를 당부했다. 당시 <교회연합신보>에 따르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교회가 생존권 확보와 국리민복의 증진, 그리고 사회의 올바른 정신문화의 배양을 위해 배전의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가조찬기도회는 무엇을 기도하나

1993년 김영삼 대통령 문민정부부터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비중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참여정부 때는 국가 개발과 한반도 세계 평화, 경제 번영, 그리고 민족 복음화를 위해 기도했다. 한규무 교수는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국정 책임자 중에 기독교인이 많았다며, 이들에게 거둔 성과도 있지만 '실패한 정권'으로 평가 받는 것을 잊지 말자고 했다. 또한 1960년 3·15 부정 선거 책임자들이 대부분 기독교인이었다는 점도 기억하자고 강조했다. 더불어 그는 "1948년 초대 국회 개회 때 이승만 대통령은 목사였던 이윤영 의원에게 개회 기도를 부탁했다. 그렇게 하나님에 대한 기도로 시작한 우리 국회의 역사가 어떠한가"라고 질문했다.

국가조찬기도회는 법인화되면서 국가와 지도자를 위한 기도회를 뛰어넘어 국제사회의 이해와 협력,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영역으로 그 범위가 넓어졌다. 장헌일 사무총장은 "국가조찬기도회는 지구촌 곳곳에 하나님의 선교사역 확장을 일구어 가기 위해 역사와 사회현장에서 다양한 선교적 활동을 전개한다"고 설립 이념을 말했다. 국가조찬기도회가 민족 간 갈등과 종교 간 대립,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환경과 기아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 각국과 연대해 평화를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자는 것이다.

지난 2월 국가조찬기도회 제4대 신임회장에 취임한 박성철 회장은 취임사에서 "나라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며 나아가겠다"면서 "겸손한 자세로 교회를 섬기고, 국가조찬기도회 지회를 확장하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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