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는 지난해 12월 23일, 2009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제 도입을 보류한다고 발표했다. 여론조사 결과 대체복무를 반대하는 의견이 68%로 나와 아직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이로써 국방부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겠다는 2007년 결정과 지난해 5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국회에 대체복무제 도입 법안을 제출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을 모두 뒤집었다. 인권·사회단체들은 국방부의 발표에 반발하고 나섰다. 대체복무 찬성 비율이 높았던 여론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예정대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는 게 주된 목소리다. 정부가 국제 사회의 인권 흐름에 역주행한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개신교 안에서도 국방부의 결정에 대한 논평이 나왔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회장 김삼환)와 기독교사회책임(대표 서경석)은 약속대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이사장 곽선희)는 국방부의 대체복무제 보류 결정을 환영했다. 2001년부터 이어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에 관한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간 시점에서 기독교 신앙의 관점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를 재조명한다. (편집자주)
자신을 잡으러 온 한 병사의 귀를 벤 베드로에게 예수는 "칼을 드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꾸짖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친 그에게 군대를 조직할 만한 힘이 있었다면 민족을 압제하는 로마제국에 맞서 무력으로 저항했을까.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대표회장 엄신형) 최희범 총무는 "그랬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총무는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평화적 가르침들은 단지 사회정의를 이루는 방법론일 뿐이라고 말했다. 또 국가를 지키기 위한 전쟁에서 적을 죽이는 것은 '정당방위'지 결코 '살인'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신앙 양심을 지키기 위해 '살인'이 아닌 다른 일을 하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이들을 "얌체"라고 불렀다.
"국가 없이는 신앙도 없다. 신앙의 자유도 국가의 제재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최희범 총무. 그는 임기 3년의 한기총 안방 주인으로 1년 임기인 대표회장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한기총은 초지일관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를 반대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논의를 시작한 2001년부터 반대 성명을 발표했고, 2005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부에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했을 때도 "절대 반대"를 표명했다. 초기 병역거부를 인권 문제로 부각하는 데 앞장선 <한겨레 21>은 2004년 5월 한기총·병무청·재향군인회를 "병역 거부를 반대하는 쪽의 삼각편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한국 사회에서 병역거부와 대체복무를 가장 강력하게 반대한 단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뉴스앤조이>는 최희범 총무를 만나 대체복무제에 대한 한기총의 생각을 들어봤다.
최 총무는 한기총의 보수적인 정치 색깔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면 한국 사회에 병역거부자가 도미노 현상처럼 늘어나고, 북한과 극한의 대치 상태에 있는 국방력에 큰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헌법의 병역 의무 조항을 수정해 지원병제로 바꾸지 않는 한 대체복무제를 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음은 최 총무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에 줄곧 반대하고 이번 국방부의 대체복무제 유보 발표에도 찬성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인가.
2007년 국방부가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여론조사 결과 반대 68%에 부딪혔다. 우리가 조사한 바로는 대체복무 신청자 4800여 명 중 대부분이 여호와의 증인이다. (병무청이 진석용 정책연구소에 의뢰한 연구보고서는 대체복무 신청자를 연 평균 7~800명, 최대 1000명으로 예상했다. 편집자 주) 그들은 양심적 병역거부라고 얘기하지만, 실상은 집총거부다.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것은 그들에게 집총거부의 문을 열어준다.
집총거부는 근본적으로 국민의 의무인 병역을 피하는 것이다. 받아들일 수 없다. 한기총의 기본 생각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차별 없이 병역의무를 동등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체복무제는 휴전이 아닌 종전이 됐을 때에야 가능하다.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하기 전에는 안보에 소홀할 수 없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회장 김삼환)는 소수자 인권을 강조하며 국방부 의견에 반대했다. 인권을 침해한다는 의견은 어떻게 생각하나.
NCCK 입장은 이해할 수 있다. NCCK는 한국 교회 역사에서 인권 신장에 기여했다. 그것도 교회가 해야 할 당위라는 의미에서 NCCK를 이해한다. 그러나 보수적이고 복음주의적인 입장에서는 '인권'보다 국민의 의무를 중요하게 여긴다. 사회봉사와 병역의무는 다르다. 총을 들고 나라를 지키는 것은 다른 개념이다. 병역을 거부하고 감옥까지 가겠다는 이들의 양심을 인정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은 일면 타당성 있어 보이지만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쪽의 해석이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나라를 지키도록 병역을 이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체복무제는 타당하지 않다.
병역거부자가 전과자로 직행하는 것은 인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 아닌가. 이런 지적이 국가인권위원회와 인권 사회단체에서 계속 나와 대체복무제 도입이 추진된 것으로 안다.
양심적 병역기피는 집총거부다. 이는 군인으로서 역할을 안 하겠다는 말이다. 국민으로서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양심이 인류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여호와의 증인 교리에 따르려는 것이라면 이것을 양심이라 할 수 있나. 'conscience'(양심)보다 'commonsense'(상식)가 우선이다.
신앙적 교리를 지키는 걸 양심이라고 주장하면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 신자도 모두 집총거부해야 하나. 이것은 어느 집단의 교리에 충실하려는 것일 뿐 보편적인 진리나 가치가 아니다. 자기가 짊어져야 할 책무가 있다. 책무를 인권과 연관시키는 것은 보편적 가치 기준에 맞지 않다.
인권문제 따지면 여러 가지 얘기가 나온다. 예를 들어 동성애 문제가 있다. 동성애는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게 한기총의 입장이다. 다른 곳은 동성애자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회가 할 일은 그 사람의 인권을 지켜주는 게 아니라 동성애에서 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사형제 폐지문제도 있다. 한기총은 사형제 폐지를 반대한다. 무고한 사람을 자꾸 죽이는 자를 그대로 두면 그 사람 때문에 죽어갈 이들은 누가 지키는가.
선진국일수록 인권을 강조한다. 국제사회도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를 인정하는 추세다.
우리나라가 극한적 대치상태가 아니라면 지원병제로 가야 한다. 군대는 최소한의 병력만으로 구성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휴전상태인 걸 알아야 한다. 우리와 북한 사이는 종전이 아니다. 그걸 다 잊어버리고 있다.
병역거부하는 인원은 소수다. 소수를 위한 길을 열어준다고 해서 국방력이 크게 손상될까.
법을 지키는 데는 원칙이 있다. 원칙이 무너지면 도미노 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대체복무제를 하려면 헌법을 고쳐야 한다. 국방부가 제도를 만들 게 아니라 헌법에 나오는 국민의 의무를 수정해야 한다.
대체복무제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북한에 맞서는데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보장하는 가치인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논리의 비약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병역기피를 양심의 자유라고 판단하는 것은 국가를 지키지 않겠다는 말이다.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현상과 실체를 얼마나 알고 하는 소리인가. 김정일이 적화통일했다고 치자. 거기에 진정한 인권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개인이 양심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기 판단 기준이지 사회 전체가 공감하고 형성한 양심은 아니다. 굳이 양심이란 표현을 쓰지 않으면 좋겠다. 개인이 종교적 신념을 지키려면 순교할 자세로 감옥에 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지키는 걸 사회 통념상 양심이라고 말할 수 있나. 자기 신앙을 지키는 것일 뿐이다.
존 스토트나 대천덕 신부는 기독교 신앙의 입장으로 병역거부를 했다. 기독교 평화의를 주창하는 메노나이트나 퀘이커, 아미시들도 전통적으로 병역을 거부해왔다. 기독교 안에서도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거부 가능하다고 보는가.
한 사람의 학자나 선교사의 행동을 전체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 그들은 자기 소신을 지키려고 반대급부의 희생을 치렀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국방부가 군 복무 대신 만 3년간 사회봉사를 시행하려 했다. 그러나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려면 국회가 헌법에 나오는 병역의 의무 내용을 바꿔야 한다. 헌법을 그대로 놔두고 시행하면 괴리가 생긴다. 현재 우리나라 헌법 아래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헌법을 바꾸고 실시한다면 반대하지 않을 수 있다.
최근 기독교인 중에서 신앙을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이들이 나오고 있다. 어떻게 봐야 하나.
근간에 사회 흐름과 연관된 것 같다.
예수님은 "칼을 드는 자는 칼로 망한다"라고 말했다. 기독교 평화주의자들은 전쟁이나 군대를 반대한다. 집총 등 군대의 폭력성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예수님이 "칼을 들면 칼로 망한다"고 말한 것은 도덕적 개념이다. 예수님이 폭력을 안 썼나. 성전 뒤엎고 난리를 치셨다. 폭력 쓰셨다. 칼을 쓰면 안 된다는 말씀을 따르자면, 북한이 쳐들어올 때 어떻게 하나. "나 잡수쇼"하고 가만히 있어야 한단 말인가. 김정일 체제는 자나 깨나 한반도를 적화통일하려고 한다. 막지 않으면 내줘야 한다. 이런 걸 용납하는가. 주체사상에 물든 이들 입장에선 "웰컴 김정일"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의 실태를 잘 아는 국민 대다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국가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에선 내려오는 이들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작업하신 성전정화를 폭력적이라고 볼 수 있나. 복음서 어디에도 폭력을 썼다는 표현이 없는 것 같은데.
예수님의 행위를 봤을 때 장사꾼들 쫓아내면서 물리력을 행사했다. 그게 폭력이다. 평화주의자들이 칼을 들지 않기 위해 대체복무를 택하겠다면 나라는 누가 지키나. 우리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총을 쏘고 칼을 들고 대들 때 "내 목을 따라"며 목을 내놓고 있겠다는 말인가. 평상시의 자기 소신과 특수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는 다른 이야기다. "나라는 네가 지켜라. 나는 대체복무 하겠다"라는 건가.
병역을 거부하면서 오는 불이익이 있지 않나.
얌체다. 전쟁 상태라고 가정해보자. "넌 나가서 총 맞아 죽어라. 난 여기 있겠다"는 거 아닌가. 그게 어떻게 양심인가.
가만히 있겠다는 게 아니라 그들은 비전투복무, 다시 말해 살인이 아닌 다른 임무를 맡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그걸 살인이라고 보는 게 문제다. 전쟁이지 살인이 아니다. 살인은 무고한 사람을 악의적으로 죽이는 거다. 형법에 따르면 정당방위가 나온다. 치사로 죽이면 정당방위다. 전쟁은 그런 개념으로 봐야 한다. 국민·국토 지키기 위해 적을 막는 것은 정당방위지 살인이 아니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살인 못하겠다. 전투할 수 없다. 네가 해라. 나는 다른 일 하겠다"는 게 타당한가.
병역거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양심, 양심" 하는데 전쟁을 살인으로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내 재산·지위·이념·생명까지 내주는 거 아닌가.
그들은, 그렇게 내주는 게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자가당착이다.
어떻게 설득하겠는가. 예수님의 행적을 보면 그들의 주장이 잘못됐다고 볼 수 없지 않나.
예수님의 생각을 자기 교리에 맞게 각색한 것일 뿐이다.
그대로 따르겠다는 것 아닌가.
자기 교리에 맞게 적용한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입장에서도 병역거부는 허용할 수 없다는 뜻인가.
국가의 제재를 받아야 한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다 보면 때에 따라 손해 보는 부분이 많이 생긴다. 그런 자세여야 한다. 그걸 인권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평화적 가르침을 어떻게 따라야 하나.
평화를 주장한 예수님의 말씀은 사회정의나 공법을 이루는 방법과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군대는 특수한 사명을 지닌 특수 조직이다. 국권·국토·국민을 지키는 일을 한다. 전쟁에서 적을 죽이는 행위를 살인으로 보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정당방위다.
평화주의라는 말은 안정된 사회 속에서 사회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에 대한 기독교적 가치관이다. 부당하게 우리를 공격하는 이들을 향해서도 평화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것을 다 내놓자"라는 말이다.
그런 논리를 따르자면 예수님도 로마제국에 반기를 들고 혁명을 일으켜야 했던 거 아닌가.
예수님이 무슨 힘이 있었나. 무기 들고 싸울 수 있는 군대를 조직할 힘이 없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맛세다 전투에서 끝까지 로마군에 무력으로 저항하다 전멸했다. 예수님은 실제 정치 현장에서 군대를 조직할 힘이 없었다.
예수님도 유대인처럼 군대를 조직할 힘 있었다면 로마에 맞섰을 거란 말인가.
나는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안 하고 지는 것처럼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러나 오늘날 지구상에는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어쨌든 여호와의 증인은 차치하고 기독교인이 '평화주의'나 '양심'을 주창하면서 병역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렇게 하려면 헌법을 고쳐서 징병제 없애고 지원병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상황을 봤을 때 지원병제는 안 된다. 나라를 지켜야 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국가가 먼저인가, 신앙이 먼저인가.
국가 없이 신앙이 있나. 무신론자들이 쳐들어오면 신앙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순교밖에 없다. 적을 막기 싫으면 내 목숨을 내놓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