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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하나님, 좀 화끈하게 나타나주시죠!"

영화 '밀양' 소재로 김영봉 목사가 쓴 책 <숨어 계신 하나님>

김종희   기사승인 2008.04.28  16:2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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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어 계신 하나님>/ 김영봉 지음/ IVP 펴냄/ 183쪽/ 7000원  

 
 

청년들과 안티 기독교 문화에 대해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안티들이 생기는 원인 중에는 기독교의 내부 문제도 있다고 얘기했다. 상대방 얘기 안 듣고 일방적으로 자기 말만 해대는 무례한 자세도 문제 중에 하나라고 했다. 영화 <밀양>에서 비중 있게 나오는 은혜약국 김 집사의 대화 태도를 예로 들었다.

그랬더니 여학생 한 명이 대뜸 “그 영화 보는데 정말 짜증이 나더라고요” 한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평소에도 기독교에 대해 안티 정서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그 영화를 보면 ‘거 봐, 니들이 그렇지 뭐’ 할 것 같았단다.

그때 책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와싱톤한인교회 김영봉 목사가 최근 쓴 책 <숨어 계신 하나님>(IVP)이다. 올해 3월에 출판된 따끈따끈한 책이다. 그 여학생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평소 <미주뉴스앤조이>를 열독하는 독자들은 금세 알아차렸겠지만, 이 책은 김영봉 목사가 영화 <밀양>을 소재로 ‘영화관에 가신 예수님’이라는 네 번의 연속 설교를 한 내용과, 설교에서 다루지 못했던 세 가지 주제를 보태서 만든 것이다(연속 설교는 <미주뉴스앤조이>에도 연재됐다).

여학생이 ‘영화를 보면서 짜증이 났다’는 말이나 김영봉 목사가 ‘영화를 보고 괴롭힘을 당해 보긴 처음’이라는 말은 똑같은 심정의 다른 표현이다. 이 영화가 예수를 믿고 따른다고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나 불편하게 하고, 찔리게 하고, 괴롭게 하고, 짜증이 나게 하는지 모른다.

감독의 의도가 불순해보여서 그럴 수도 있고,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실감나서 그럴 수도 있다. 마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그럴 수도 있고, 문제들은 보이는데 답이 안 보여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저 괴로워하기만, 불편해하기만, 찔려하기만, 짜증스러워하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저 영화 보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그저 손 놓고 안절부절못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면 이 책을 들어라. 왜 불편하고 찔리고 괴롭고 짜증이 나는지 감을 잡을 수 있다. 거기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 신애 주변에는 비밀 햇볕(밀양)이 늘 맴돌고 있었다. 그러나 신애는 제 발로 밀양을 찾아왔음에도 밀양을 느끼지 못했다.  
 

내용을 간단히 소개한다.

 

1장 ‘밀양으로 가라’(믿음). 밀양(密陽)이라는 한자가 암시하듯이, 하나님은 ‘비밀 햇볕’이다. 비밀 햇볕은, 이 책의 제목처럼 은밀하게 숨어 있다. 비스듬히 비추는 엷은 햇볕이다. 이 햇볕은 낮고 추한 곳에 임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지저분한 골목을 비추는 햇볕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하나님은 하늘 가득히 쏟아져 내리는 햇볕이다. 눈부시고 화려하고 격렬하게 내리쬐는 햇볕이다. 밀양이 아니다. 하나님은 어떤 햇볕으로 신애에게 다가오셨던가. 그리고 나에게는….

2장 ‘값을 지불하라’(용서). 교도소에서 만난 피해자 신애와 가해자 도섭은 둘 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용서에 대해서 무척 은혜롭게 대화한다. 그러나 신애는 도섭을 만난 후 절망의 늪에 빠져서 쓰러진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소설에서는 도섭이 사형을 당한 다음 신애는 자살한다. 싸구려 회개와 싸구려 용서가 빚은 비극이다.

저자는 진정한 회개에 대해서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회개’, 자신이 끼친 잘못에 대해 어떻게든 갚는 ‘보상’, 다시는 그런 잘못을 하지 않도록 자신을 고치는 ‘개혁’, 이 세 가지를 갖춰야 온전한 회개가 된다고 한다.

3장 ‘끌어안으라’(고난). 인생은 무수한 질문들로 이뤄져 있다.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수많은 물음들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무고한 사람이 왜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오래 살아야 할 것 같은 사람이 일찍 죽고, 일찍 죽어도 아쉬워 할 사람이 별로 없어 보이는 사람의 목숨은 질기기만 하다.

그런데 교회는 정답에 대해 집착한다. 정답 강박증에 사로잡혀 있다. 단 한 방의 시원한 펀치를 날리듯이 명쾌한 정답으로 모든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주려 한다. 하지만 우리의 몫은 고통을 겪는 자에게 정답을 주는 것이 아니다. 고통을 겪는 자와 함께 아파하는 것이다.

4장, ‘마음의 눈을 뜨라’(체험). 신애는 개척 교회 부흥회에서 절규를 하다가 목사의 안수를 받고 급속도로 변한다. 하나님을 제대로 만난 것처럼 보인다. 그걸 간증하고, 사람들은 ‘아멘’ 한다. 기차역 앞에서 찬양 전도를 한다. 그러나 그는 결국 하나님을 배신한다. 저자는 한국교회의 간증 문화에 대해 심각한 반성이 일어나기를 소원한다. 나아가 급격한 체험에 대해서도 경계한다. 그는 예수와 니고데모가 대화한 것처럼, 미풍(微風)처럼 부는 성령의 바람에 영적으로 민감하기를 바란다. 저자는 그것을 ‘일상의 보물찾기’라고 부른다. 비밀 햇볕처럼 조용히 그러나 늘 변함없이 우리를 비추고 계신 하나님을 만날 것을 당부한다.

5장, ‘차라리 침묵하라’(전도). 은혜약국 김 집사는 그래도 교양과 품위를 갖추고 전도한다. 무작정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신애에 대해서 ‘불행한 사람’이라고 단정하고, 자신만이 진리를 알고 있고 신애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대한다. 나의 ‘확신’이 상대방에게 ‘오만’으로 여겨지는 대목이다. 한국교회 교인들의 취약점이다. 저자는 종말론적 조급증에 빠지지 말 것을 호소한다. 지나치게 서두르는 바람에 한 명을 얻는 대신 아홉 명을 등지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6장, ‘연극을 끝내라’(인생). 신애의 비극은 자기가 만든 연극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가 남편의 뜻이라며 밀양에 간 것도, 복부인 행세를 한 것도 다 연극이었다. 그 연극 때문에 아들이 죽는 비극이 일어났다. 따지고 보면 아들이 죽은 직접적인 원인은 하나님의 잔인함 때문이 아니라 신애의 연극 때문이었다. 그가 나중에 간증하고 전도하고, 드디어는 도섭을 용서하겠다며 교도소로 간 것도 자신의 연극을 클라이맥스로 끌어올리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신애의 연극을 망가뜨렸고, 신애는 하나님과 대결을 벌였다. ‘연극을 끝내고 무대 아래로 내려오라’는 하나님과 맞서 싸웠으나 끝내 깨지고 말았다. 저자는 “진정한 하나님 체험은 항상 자신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고 현실을 직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말한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났을 때 어김없이 일어나는 최초의 사건은 자신의 현실을 깨닫고, 자신에 대해 절망하고 통곡하는 사건이다”고 말한다.

7장, ‘거울을 들어주라’(사랑). 신애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종찬은 속물이다. 여자 꽁무니 쫓아서 교회 다니고, 그러면서도 다방 여종업원 팬티 속을 슬쩍슬쩍 훔쳐본다. 교회 주차 안내 봉사도 하고 노방전도도 하다가, 술 한 잔 사달라고 조르고 담배 맛 좋다고 번설을 늘어놓는다. 신심 깊은 교인들이 보기에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얼치기 교인이다. 그러나 저자에게는 그런 종찬이 사랑스럽게 보인다. 정직함과 투명함, 순진함과 진실함으로 뭉쳐진 매력덩어리다. 무엇보다도 그의 일관된 헌신과 사랑이 저자의 마음을 빼앗았다. 그의 사랑의 목적이 상대방을 자신의 품에 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행복해지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종찬에 대해서 ‘참된 사랑의 모델’이라고 과찬한다.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어리석은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닮았다’고 추어올린다. 종찬이 이상적인 인물은 아니지만 그를 통해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다. 상처를 치료해주려는 비법을 강요하기보다는 같이 아파하며 상처가 나을 때까지 곁에서 지켜주는 것이 참된 사랑이라고 저자는 믿는다. 신애가 거울 앞에서 서서 머리를 자르려고 할 때 거울을 들어주는 사랑 말이다.      
   

 

   
 
  ▲  머리카락을 자르는 신애를 도와주려고 종찬이 거울을 들어주고 있다. 이것이 종찬의 사랑 방식이다. 기다려주고, 지켜봐주고, 아플 때 같이 아파해주고, 거울을 들어주는 것.     
 

김영봉 목사의 책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그에게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있다. 성격이 좋아서 그저 따뜻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깊은 성찰이 함께한다. 신학 공부를 많이 한 학자의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실존에 대한 고뇌가 있기에, 정답을 함부로 강요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밀양을 보고 괴로움의 몸살을 앓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을 바탕으로 하는 그의 신학은 그의 목회를 튼실하게 세워준다. 때로는 그 모습이 답답해 보일 때도 있다. 화끈하게 나타나지 않으시고 비밀 햇볕(密陽)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이 답답해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신애의 절규를 화끈하게 들어주시고, 종찬의 사랑도 화끈하게 만들어주시면 좋겠는데, 하나님은 그러지를 않으신다. 저자도 이 책에서 화끈하게 정답을 내뱉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책 제목 ‘숨어 계신 하나님’처럼, 값진 답들이 이 책 곳곳에 숨어서 우리를 비스듬히 비춰주고 있다.
 
김종희 / <미주뉴스앤조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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