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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호 공동체 기행]지상에서 천국처럼

충북 단양 ‘산위의마을’을 찾아서

복음과상황   기사승인 2008.03.18  16: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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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위의마을’이라는 이름보다 더 어울리는 이름이 없어 보인다. 소백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삶을 통해 빛이신 예수를 보여주고 사는 산위의마을 전경.ⓒ복음과상황 이종연  
 
“산위의 마을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너희의 빛을 세상에 비추어 세상 사람들이 너희를 보고
하느님을 찬양케 하여라” (마태 5:14).

충북 단양군 가곡면 보발1리 소백산 자락, 50년이 지나도 땅 값 오를 일 없다고 할 만큼 척박한 곳에 자리한 ‘산위의마을’로 가고 있다. 단양 터미널에 내려서 하루에 몇 대 없는 보발리행 버스를 탔다. 남한강 줄기를 따라 30분쯤 가다가 보발분교에서 내렸다. 이제 느린 걸음으로 30분쯤 더 비탈길을 올라가면 산위의마을이다. 물러가지 않은 겨울의 흔적을 곳곳에서 만난다. 눈과 비가 섞여 내리고 질퍽한 흙길 옆으로는 아직 눈이 쌓여 있다. 

마을길을 지나 한적한 곳으로 접어드니 공동체에서 걸어 둔 현수막이 보인다. ‘얼마나 좋은가 한 데 모여 사는 것’이라고 적혀있다. 앞서 걸어가던 아이들도 만났다. 지연이(12)와 채은이(10)다. 올해부터 산위의마을에서 생활유학을 하는 아이들이다. 개학식을 해 학교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가톨릭 생활공동체 ‘산위의마을’

산위의마을은 2004년에 시작한 가톨릭 생활공동체이다. 공동체의 모태가 되는 것이 ‘예수살이공동체’이다. 박기호 신부를 비롯한 몇몇 수도자와 청년들이 소비사회에서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대안운동을 모색하면서 1998년 ‘예수살이공동체’를 만들었다.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 삶을 재정립하고 새로운 생활 방식을 찾고자 한 것이다. 공동체는 ‘지상에서 천국처럼’이라는 모토와 ‘소유로부터의 자유·가난한 이와 함께 하는 기쁨·세상의 변혁을 위한 투신’이라는 정신을 가지고 소비주의를 극복하는 삶을 일궈왔다.

공동체는 지난 10년 동안 32번의 ‘배동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1000명 이상의 청년들을 교육시켰다. ‘배’는 식물의 씨 속에서 자라 싹눈이 되는 부분이고 ‘배동’은 이삭이 패려고 대가 불룩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즉, 하느님이 식물에 배를 숨겨 놓듯 인간이 본래 지음받은 창조성, 야성을 드러내 소비문화를 극복해 나가도록 돕는 운동이 배동교육인 것이다. 교육을 받은 이들을 ‘배동이’라고 부른다. 배동이들이 모이는 두레모임에서는 새 옷 사지 않기, 자전거로 출퇴근하기, TV 보지 않기 등의 운동을 함께 하고 있다. 최근 언론 보도 등으로 유명해진 ‘OFF 운동’을 시작한 곳도 예수살이공동체이다. 

OFF 운동 -  TV, 자동차, 악세서리, 화장품, 쇼핑, 신용카드를 끊어버리는 운동이다. 배동교육 마지막에 각자가 할 수 있는 운동을 정해 끊거나 줄여보도록 다짐하고 실천한다. 출애굽의 백성이 이집트의 고기 국물과 야채의 추억을 단호히 물리쳤고, 예수께서는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을 물리쳤던 것 처럼 소비사회가 주는 편리와 안락의 유혹을 물리침으로써 하느님께서 원시에 부여하신 야성과 주체성을 회복하려는 운동이다.

하지만 이들은 처음부터 도시에서의 대안운동은 도전과 한계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동체의 영성대로 사는 삶을 위해 생활공동체를 만들기로 했다. 공동체는 이를 위해 1000일을 기도했고 그 열매가 2004년 단양의 산골 마을에서 맺어졌다. 박기호 신부와 28명의 식구들이 새벽을 깨우고 밤을 재우며 살고 있는 산위의마을이 바로 그곳이다.

   
 
  ▲ 공동체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다 같이 아침기도를 한다. 기도가 끝난 뒤에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축복기도를 해 준다. 박기호 신부가 학교 가는 아이들에게 축복기도를 해 주고 있다. ⓒ복음과상황 이종연  
 
어그러진 생활과 마음을
꾸짖고 반성하고 왜 그랬는가 자문한 첫 날이었다.

정확하게 “이것이 문제요, 원인이다”는 아니지만
내가 잘 못살았다는 것은 확실하고
내가 나 중심적이었음도,
때론, 아니 자주 내 생각, 몸을 괴롭혀왔음도 확실히 알았다.

모두 각자의 방으로 돌아간 시간
괴론 마음으로 기도하러 경당에 올라갔는데
캄캄한 경당에서 기도하는 분이 있다.
여기 기도하는 한 사람이 있어서
아직 ‘하늘이 하늘이구나’ 감동을 받았다.

눈처럼 희고 맑게, 그렇게…

아침 6시 30분, 경당에 모여 아침 미사를 드린다. 미사 집전을 돕는 것도, 식사 기도와 저녁 기도를 진행하는 것도 아이들이다. 박기호 신부는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해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할 수 있는 일을 지지해주고, 맡겨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동체의 삶을 통해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시도인 것이다. 평소에는 장난도 잘 치고 활발한 아이들이지만 이 시간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하고 품위가 있다.

2층 경당에서 미사를 끝내고 1층으로 내려오니 거실 밖으로 소백산 봉우리들에 눈덩이가 한가득 쌓인 채 계속 눈이 내리고 있다. 이날은 하루 꼬박 눈이 왔다. 미카엘라 할머니는 “오늘 장 담그려고 했는데 눈이 이렇게나 많이 오네. 사람의 계획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아이들 생활지도와 홈스쿨링을 맡아주려고 서울에서 석사 과정을 휴학하고 내려와 지내는 재란 이모는 “3월인데 한겨울보다 눈이 더 많이 오네요. 예쁜 사진 찍으라고 눈이 많이 오나 봐요”라고 인사한다. ‘4월호에 나가는 기사인데 온통 눈 세상이라 큰일이다’ 싶으면서도 하얗게 변해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놓고 좋아했다.

공동체의 하루는 미사로 시작해서 저녁기도로 끝난다. 낮 시간 동안에는 주업인 농사를 짓는다. 원래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씩 공부하고 찾아다니며 기술보다 정성으로 짓고 있다. 일하기 힘든 비탈지고 자갈 많은 밭에 멧돼지와 고라니까지 골치를 썩인다. 그래도 모두 유기농으로 재배하다 보니 지난번에 만들어 판 청국장을 맛 본 사람들이 다시 주문을 하는 일도 잦아졌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성서 연구와 책 나눔도 한다. 이번 주에는 라르쉬(L'Arche) 공동체를 창립한 장 바니에의 <공동체와 성장>으로 책 나눔을 한다. 또 필요한 사항이 있을 때 마다 가족회의를 통해 의견을 공유하고 중요한 결정도 내린다. 오늘 가족회의에서는 이번 주에 식구들이 해야 할 일을 공유하고 꼬뮨 스쿨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했다.

   
 
  ▲ 눈길 뚫고 30분을 걸어 학교에 잘 갈 수 있을까 했는데 추위도 잊은 듯 즐겁게 학교에 다녀온 아이들. 경당과 손님방으로 쓰이고 있는 더부네집 앞에 모인 아이들의 웃음이 즐겁다. ⓒ복음과상황 이종연  
 
눈이 많이 왔다.
천지사방 하얀색 일색
내 마음도 그렇게 하얀 빛이어야 할 것을
눈과 어울리고 싶었다.

저녁 기도 시간에 생활 나눔을 했다.
“세 끼 식사를 이렇게 건강한, 좋은 음식으로 하는 것이
참 감사한 하루였다”고 나누었다.

눈길을 30분 걸어 학교를 다녀 온 아이들이 예뻤고
그 아이들을 위해 2시간 넘게 눈을 치우고, 모여 회의를 하는 어른들이 든든했다.

이렇게 또 산 위의 마을의 하루가 저물었다.

   
 
  ▲ 정갈하고 건강한 음식을 마주할 때 마다 산위의마을에서 식사 때 마다 불렀던 노래가 생각날 것이다. “이는 나의 몸 받아 먹으라, 이는 농부의 땀 생명의 양식.”ⓒ복음과상황 이종연  
 
보물을 위해 전 재산을 팔듯…

산위의마을에서는 12명의 아이들이 생활유학을 하고 있다. 도시 각처에 살던 아이들이 1년 동안 보발분교에 전학을 와서 공부를 하고 산 위의 마을에서 기숙 생활을 하는 것이다. 또 중고등학생들은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 공동체는 장기적으로 공동체 대안학교를 세울 계획이다. ‘꼬뮨 스쿨’이라는 이름도 지어놓았다.

아이들 중 가장 맏형인 길산(18)이가 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하고 돌아왔다. 작년 한 해 일반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생활과 공동체 생활을 함께 할 수가 없었고 입시 위주의 공교육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이제 학교 안 가니 좋겠네”라고 얘기하고 길산이도 후련해 보이는 눈치다. 여자아이들은 며칠 동안 자퇴 준비로 학교에 분주히 오가던 오빠가 돌아오니 마냥 좋아서 졸졸 따라다닌다. 동생 덕균(17)이는 중학교를 자퇴하고 형 보다 먼저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지낸지 4년째, 덕균이는 “처음에는 TV 없이 어떻게 사나 했는데 요즘은 또래들보다 깊은 고민도 하게 되고 성격도 좋아졌고, 무엇보다 인내하는 게 뭔지 배운 것 같다”고 얘기한다. 

공동체에는 박기호 신부를 비롯해 3가족과 독신자 5명을 포함해 16명이 살고 있다. 올해는 생활유학을 하는 아이들 12명과 홈스쿨링을 하는 유민이(15)까지 포함해 가족이 29명으로 늘었다. 각 가정에는 가전제품이 없다. TV는 아예 없고 냉장고, 세탁기, 컴퓨터 등은 공동으로 사용한다. 전력은 공급받지만 전화는 아랫마을에다 놓고 사설로 끌어 왔다. 신문은 2~3일치가 한꺼번에 배달된다. 개인 재산을 소유하지 않고 노동하고 기도하며 나누는 기쁨의 삶을 가슴으로 받아 안고 사는 사람들. 그만큼 이들은 도시적이고 개인적인 삶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5년 동안 5가정이 공동체 생활을 접고 떠났을 만큼 이 생활은 쉽지 않다. 하지만 김경희 씨는 말한다. “성경에서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전 재산을 팔아서 보물을 산 것처럼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보물을 발견하고 그걸 위해 다른 것을 포기했다.”

   
 
  ▲ 충남 청양에까지 가서 싣고 온 구기자를 심기 위해 식구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구기자는 처음 시도해 보지만 고소득 작물이라 다들 기대하며 작업 중. ⓒ복음과상황 이종연  
 
공동체는 ‘산위의마을’ 건립을 앞두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해 두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달라고 1000일 기도를 바치며 준비했다. 그런데 결국 식수조차 귀한 땅을 얻었다. 뒷산 골짜기 옹달샘에 약 1km의 파이프를 연결해서 물을 받는데 그나마 연중 4개월 정도 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우리가 헛짚었거나 기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부르심이었다.

현대인들이 움직이길 싫어하고 스위치 버튼 하나로 해결해버리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속죄하여 척박한 땅에서 힘쓰며 살아가게 하셨다. 먹기 위해 살듯하면서도 생명의 농업을 우습게 알기 때문에 우리 더러 농사를 짓게 하셨다. 안락을 쫒아 무한정한 소비 중독으로 사는 까닭에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식수마저 귀한 땅으로 보내시어 세상을 용서하는 속죄 제물의 희생양으로 삼으셨음을 우리는 눈물로 고백한다. (박기호, 월간 <해인> 302호,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리라’ 중 부분편집)

스캇 펙은 ‘세계의 구원은 공동체 내에서 공동체를 통하여 존재한다’고 말했다. 기쁨을 추구하지 않고 공동체를 추구할 때 기쁨이 오고, 전체주의가 아닌 부드러운 개인주의를 존중할 때 겸손한 공동체가 된다는 그의 말처럼 좀 더 크고 넓은 생각으로 공동체의 미래를 열어 나가고 있는 산위의마을. 어색하다가 편해졌다가, 익숙해지면서 가기 싫어지는 3박 4일의 여정을 마치고 내려가는데 다시 눈이 흩날렸다. 순백의 눈처럼, 산위의마을 사람들처럼 사람들에게 희고 순결한 사람이 되라고 하느님이 보내시는 메시지 같았다.

글 사진 이종연 기자 limpid@newsnjoy.or.kr

복수 공간 공동체를 꿈꾼다
 
   
 
  ▲ 산위의마을의 지도 신부인 박기호 신부. 90년대에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서 활동했으며 노동 시인으로 유명한 박노해 시인의 형이다. ⓒ복음과상황 이종연  
 
공동체 식구들이 모인 데서 박기호 신부와 인터뷰를 했다. 우문에도 현답으로 답하시려는 배려가 보였다. 외부인의 질문으로 서로의 삶을 점검한다고나 할까. 저녁 늦게까지 이어진 인터뷰 마지막 질문은 ‘공동체에만 있으면 아직 미혼인 식구들 결혼은 어떻게 하는냐’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진지하게 듣고만 있던 2명의 총각들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이 질문부터 할 걸 싶은 때늦은 후회도 했지만 2시간 동안의 인터뷰를 통해 한층 산위의마을 식구들을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

‘예수살이공동체’, ‘산위의마을’ ‘지상에서 천국처럼’ 등의 타이틀이 듣는 이들에게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멋있어 보이고 존경스럽지만 실제의 삶에서 그런 삶을 산다는 것이 너무 어렵고 부담스럽지 않나.

박기호: 호랑이를 그리려고 해야 고양이라도 그리지 않겠나. (웃음) 우리도 그렇게 사는 건 아니고, 그렇게 살아야 되지 않겠나 하는 희망이 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고백하는 것도 우리가 표현하는 것 보다는 사실은 더 강렬한 언어 아닌가.

김영기: 주의 기도에 나오는 것처럼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다른 거 뭐 있나… 열심히, 가족들과 하루하루를 성내거나 화내지 않고 열심히 사는 게 전부이다.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꼬뮨 스쿨을 시작했다. 어떤 목적을 갖고 시작했나, 또 학생들의 어떤 모습을 기대하는가.

박기호: 교육 철학을 공동체와 학부모 입장에서 논의하고 있다. ‘공동체 세계관을 가진 인간상’이 교육의 목표이다.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을 놓치지 않고,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을 간과하지 않는 지침․목표를 구체적으로 그리는 작업이 아직 남아 있다. 공동체를 통해서 인성만 기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나가서도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자질을 키우려고 한다. 지금은 홈스쿨링 형태이지만 공동체 학교를 세우는 것이 장기적인 계획이다. 2가정만 중고등학생이 있기 때문에 식구들이 좀 더 있으면 폭넓게 의논할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공동체 규모가 지금보다 더 커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건가.

박기호: 아이들 포함해서 60명 정도면 좋을 것 같다. 논농사 짓는 공동체, 도시 공동체, 선교 공동체 등 복수 공간 공동체를 생각하고 있다. 2012년까지는 도시 공동체를 만들 생각이다. 이곳을 본원이라고 보면 20세대 정도가 규모를 이루고 살아야 구성원들의 교육, 수련 등을 담당할 수 있지 않을까. 적정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여기 와서 살다 보니까 그 정도면 어떨까 싶다.

교회가 산위의마을에 지원해 주는 부분이 있나.

박기호: 공동체가 교권의 지시에 의해, 교권이 지향하는 사목 지침의 일환으로 시작한 게 아니다. 교회가 하지 않는 부분을 자발적으로 공식적인 지원없이 시작했다. 여전히 교회 어른들은 실험적으로만 보고 있다. 그럼에도 이 공동체운동이 교회에 새로운 각성을 주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인근 마을에서는 어떤 평가를 받고 있나.

박기호: 보발1리에 50세대 정도가 산다. 그 중 6세대가 귀농을 했다. 하지만 마을에서 ‘정말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 사람들’로는 우리 공동체만 인정해 주고 있는 형편이다. 유기농한다고 하면서 잡초는 우거지고 차타고 돌아다니는 게 귀농한 사람들의 단면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마을 사람들과 잘 지내려고 했다.

OFF 운동이 최근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도시생활에서 핸드폰, 신용카드, 가공식품 등은 생활필수품처럼 통용되고 있는데…

김영기: OFF운동을 2000년부터 시작했다. 공동체에서 이 운동을 하면서도 ‘신용카드는 한 장만 쓰자든가, 핸드폰 없이는 못산다, 대형마트만 이용하지 말자’등 조금씩 단서조항을 만들어서 일종의 타협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 것들과 일정기간 단절된 생활을 해 보는 경험이 중요하다. 언론에서는 일종의 타협안을 먼저 제시하지만 끊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그 전과 생활 패턴이나 생각 자체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공동체 생활 때문에 독신으로 지내는 분들이 결혼을 원하는데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을까

조상희: 공동체에 있기 때문에 결혼을 하고 못하고를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 또 독신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계속 독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다. 공동체가 독신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현재까지는 혼자 있는 게 부담이 없고 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생각이나 활동에 자유가 더 주어지기도 하고.

김영기: 미혼 남녀를 위한 단기 입촌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조상희: 말만 그렇지 구체적인 걸 내놓아 달라.(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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