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의 비극과 같은 충격적인 사건은 사회 전반에 걸쳐 큰 충격과 트라우마(trauma)를 남긴다. '외상'으로 종종 번역되는 트라우마의 부정적 영향력은 전쟁에 참전한 군인부터 물리적 폭행이나 강간을 당한 여성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나타난다. 외상적 사건이 집단적 차원 혹은 사회적 차원에서도 가해질 때, 집단 트라우마(collective traum) 혹은 사회적 트라우마(social trauma)가 발생한다.

한국교회의 '세월호 이후의 신학'에 대한 담론과 같이, 트라우마로 발생한 심리적 장애인 외상 장애(traumatic disorder)는 종교적 영역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한다. 사회적 트라우마와 관련한 신학은 내적으로 사회적 트라우마가 불러온 종교적 영역의 왜곡을 방지하고, 외적으로 기독교가 사회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도록 돕는 역할을 감당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개발독재 시기의 사회적 트라우마를 외면했다. 이는 종교와 사회(혹은 정치)를 분리된 것으로 이해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의 이분법적 사유 방식이 한국교회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심각한 종교 중독(religious addiction)의 문제를 지니게 되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 개신교회, 특히 근본주의적 교회의 급속한 양적 성장 기저에는 종교 중독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대형 교회 내에서 부자 세습과 같은 사유화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교인들이 보여 주는 교회 지도자를 향한 맹목적 추종과 비판자를 향한 극단적 배타성과 폭력적 공격성은 기독교 내부 종교 중독의 심각성을 잘 보여 준다.

중독은 크게 알코올, 약물과 마약, 음식 등 우리 몸 안으로 섭취되는 것과 관련한 '물질 중독'(substance addiction)과 성·도박·쇼핑·인터넷·종교 등 구체적인 일련의 행동들과 상호작용들의 과정에서 빠져들기 쉬운 '과정 중독'(process addiction)으로 구분된다.1) 과정 중독으로서 종교 중독은 종교나 종교적 행위에 통제력을 상실할 정도로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종교 중독은 삶의 통제력을 상실한 정도에 따라 평가되며,2) 이때 타자에 대한 배타성과 공격성의 강도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심리적 측면에서 종교 중독 요인으로 외적 억압과 현실 도피의 욕구(need to escape from reality)를 들 수 있다. 인간은 욕구를 억압할 때 그것을 인식하지 않으려 애쓰며 다른 좀 더 안전한 것들에 집중하려고 하는 '치환'(displacement)의 경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치환이 일어난다고 해서 우리가 억압해 온 그 무엇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억압이 욕구를 억누르는 것이라면, 중독은 "욕구에 집착하며 욕구의 에너지를 특정한 행위나 사물 혹은 사람들에게 속박"시킬 때 발생한다.3)

욕구와 집착(attachment)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무언가에 억눌린 강도가 클수록 특정한 대상에 대한 집착의 강도도 커진다. 치환 과정 중 종교적 황홀경이 주는 기분 전환을 경험한 이들이, 기분을 향상시키거나 전환하기 위해 종교적 행위를 되풀이하려는 욕구를 절제할 수 없을 때 종교 중독에 빠지게 된다.4) 종교적 황홀경에 대한 집착이나 강박적 종교 행위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심리적 상태와 그로부터 도피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다.5) 현실 도피 욕구가 클수록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이나 경험으로 발생한 아픈 감정들을 다시 표면화시켜 직면했을 때의 고통과 혼란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아무런 위험 부담 없이 그저 자신들을 받아 주기로 약속하는 집단에 애착을 보인다.6)

인식론적 측면에서 종교 중독 요인으로 흑백논리(black or white thinking)와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를 들 수 있다. 종교 중독자들은 사고·가치·선호 등을 명료한 범주 안에 넣으려 한다. 세상의 모든 현상을 두 가지 범주, 특히 선과 악으로 구분하려는 편협한 사고방식 속에 중간 지대는 존재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좋은 범주는 매우 좁고 성취하기 힘든 조건들이고 나쁜 범주는 아주 넓어서 포함되기가 쉽다. 흑백논리에 빠진 사람들에게 적당한 혹은 부분적 성공이란 존재할 수 없기에 이들은 실패의 경험을 훨씬 더 많이 한다.7) 실패의 경험을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현실 도피 욕구를 정당화해 주는 기제를 종교적 영역에서 발견할 때 종교에 집착하게 된다.

흑백논리는 권위주의적 종교(authoritarian religion)의 대표적 특징이다.8) 흥미로운 사실은 극단적인 '정통주의 신앙'에 집착하는 근본주의적 의식이 권위주의를 강화한다는 점이다.9) 경직된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는 근본주의는 전통적인 권위에 의존하여 세상에 대한 명확한 판단 기준을 제공한다. 이에 매력을 느끼는 이들은 종교적 권위에 쉽게 복종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처럼 종교적 권위주의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일 때, 종교 중독에 빠지게 된다.

종교 중독, '영적 학대'·'권력 중독' 양산
근본주의 영향 벗어나는 게 급선무

종교 중독은 영적 학대와 권력 중독이라는 두 가지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영적 학대'란 종교적 권위를 이용해 교인들을 학대하는 것을 의미하며, 가정 폭력처럼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향해 일방적으로 학대를 가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위험한 현상이다.10) 영적 학대는 종교 중독자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면서 동시에 '과도한 폭력성'(excessive violence) 혹은 '폭력적 공격성'(violent aggression)을 표출하게 해 종교 중독자를 가해자로 만든다.

종교 중독은 권력 중독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권력 중독자는 그들의 주도권과 지도력에 대한 사람들 반응으로 기분 전환 체험을 한다. 이러한 기분 전환 체험은 자신의 약점을 가려 주고 내적 갈등을 멈추게 한다. 종교 지도자가 과거의 실패나 약점을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가 강할수록 권력 중독에 쉽게 빠진다. 근본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 대형 교회에서 담임목사들이 강력한 종교적 지도력을 추구하거나 집착할 경우, 쉽게 권력 중독에 빠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물질 중독과 정서적, 육체적 또는 성적 학대에서 오는 트라우마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11) 이는 과정 중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종교 중독의 대표적 원인인 학대와 같은 외적 억압은 트라우마를 발생시킨다. 이와 같은 외상 사건으로 형성된 외상 장애를 외면하고 회피하는 기제를 종교에서 발견할 때 종교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집단 트라우마(혹은 사회적 트라우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개발독재 시기의 사회적 트라우마와 종교 중독 사이의 상관관계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폭력적인 공권력과 현실 도피 욕구 사이의 연관성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개발독재 세력은 억압적인 사회적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공권력이라는 미명 아래 물리적 폭력을 남용했다. 이는 직접적으로 물리적 폭력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양산했을 뿐 아니라 '독재정권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물리적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강력한 두려움을 심어 주었다. 이렇게 형성된 사회적 트라우마는 한국 사회의 현실 도피 욕구를 강화했다.

이때 한국의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은 엄격한 정교분리(seperation of church and state)를 주장해 이를 만족시켰다. 현실 도피 욕구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하던 근본주의적 교회는 폭발적인 성장을 경험했고,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가 이어질수록 현실 도피를 위한 더욱 강력한 열광 상태가 요구되면서 종교 중독 현상도 심해졌다.

둘째, 신성화된 자본주의에 의한 사회적 가치 체계 획일화와 자본주의적 구매 욕구 사이의 연관성이다. 개발독재 세력은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정치적 안정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로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크게 제한하면서 현실 자본주의 체제를 신성화했다. 신성화된 자본주의(sanctified capitalism)는 개발과 자본의 논리에 적합하게 사회적 가치 체계를 획일화했고, 이를 수용하지 못하는 이들을 향한 억압의 논리로 남용되었다. 이는 성공에 대한 집착과 강박에 기반한 사회적 경쟁을 격화했으며 경쟁 스트레스는 내재화하면서 집단 트라우마로 남았다. '실패한 다수'의 열등감은 정체성 위기를 겪던 이들을 자살로 내몰았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번영신학(prosperity theology)을 통해 개발독재 세력의 이데올로기를 적극 수용했다. 번영신학은 현실 도피 욕구와 경제적 부의 축적으로 정당화하면서 구원론과 제자도를 자본주의적 구매 욕구에 맞게 변형했다. 과거 종교 중독자들이 자신의 전 재산을 종교 지도자나 집단을 위해 바치는 행위는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지만 이는 자본을 통해 구원을 획득하려는, 즉 원을 구매하려는 욕구의 표현이었다. 종교 중독자가 바치는 헌금이나 물질적 기부는 자본의 투자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12)

셋째, 권위주의 내재화와 권력 중독의 연관성이다. 개발독재 세력은 물리적 폭력을 기반으로 하는 억압의 기제를 "외적 강제에서 내적 자율로까지 확장"시켰는데,13) 이때 한국교회는 군사 문화와 결합된 권위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권위주의적 종교에 매력을 느끼는 이들은 종교 중독에 쉽게 빠진다.

하지만 권위주의 문제는 '영적인 힘'과 같은 종교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받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에게 권력 중독 문제를 일으킨다. 한국 대형 교회 목사들, 특히 번영신학의 대표자들이 쉽게 권력 중독에 빠지는 것은 바로 종교 중독의 양면성 때문이다. 가짜 학위나 거짓 경력을 통해 종교 권력에 최정점에 오른 대형 교회 담임목사들이 권력을 통해 자신의 약점을 포장하고 지속적으로 추종자를 양산하려고 시도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넷째, 편집증적 반공주의와 극단적 폭력성 혹은 폭력적 공격성의 연관성이다. 박정희는 자신의 남로당 전력을 감추기 위해 '편집증적 반공주의'(paranoid anti-communism)를 표출했다. 편집증적 반공주의와 신성화된 자본주의는 동전의 양면과 같았기에,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은 편집증적 반공주의의 흑백논리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했고, 반공주의를 지지하지 않은 이들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이들'로 정죄했다.

이러한 극단적인 흑백논리는 신성화된 자본주의를 수용하지 못한 이들에 대한 극단적인 폭력을 정당화했다. 1940년 후반 서북청년단의 만행은, 정치적 이유로 집단 트라우마를 입게 된 이들이 극단적인 흑백논리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권력과 결탁할 때 발생하는 역사적 비극을 잘 보여 주었다.

한국교회의 몰락은 성적 소수자나 이슬람과 같은 외적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니다. 사회적 트라우마를 외면한 채 그로부터 도피하려는 왜곡된 욕구가 만들어 낸 잘못된 종교적 가치가 한국교회를 몰락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악마화하고 한국교회를 무너뜨리려는 가상의 적으로 상정하여 그들에 대한 억압과 차별 그리고 배제를 정당화하고 있다.

허구의 요인에 기초한 잘못된 접근 방식으로는 '교회의 세습', '젠더 차별적 교회 구조', '위력에 의한 성폭력' 등과 같은 한국교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한국교회는 사회적 트라우마로 발생한 종교 중독 문제를 성찰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교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종교와 정치를 극단적으로 분리하여 바라보는 기독교 근본주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종교 중독자가 스스로 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기독교 내부의 힘만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다. 시민사회와 연대하면서 종교 중독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갖고 공론화 과정을 통해 총체적 문제 해결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교회 회복은 종교 중독으로 왜곡된 과거의 가치들에서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

박성철 / 총신대 신학과를 졸업했고, 독일 본대학교에서 신학 석사(조직신학)와 철학 박사(종교철학) 학위를 받았다. 하나세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교회와사회연구소 대표이기도 하다.

1) 심수명, 『인격 치료』(서울: 학지사, 2004), 325.
2) 아치볼트 하트/온누리회복 옮김, 『참을 수 없는 중독』 (서울: 두란노, 2005), 162-163.
3) 제럴드 메이/이지영 옮김, 『중독과 은혜』 (서울: IVP, 2005), 13-14.
4) 데일 라이언/정동섭 옮김, 『중독 그리고 회복』 (서울: 예찬사, 2005), 57.
5) 그랜트 L. 마틴/임금선 옮김, 『좋은 것도 중독이 될 수 있다』 (서울: 생명의말씀사, 1994), 213.
6) 스티븐 아터번·잭 펠톤/문희경 옮김, 『해로운 신앙』 (서울: 그리심, 2013), 36.
7) 데브라 A. 호프 외/최병휘 옮김, 『사회불안증의 인지 행동 치료; 사회 불안 다스리기』 (서울: 시그마프레스, 2007), 100-111.
8) Dorothee Sölle, Creative Disobedience (Eugene: The Pilgrim Press, 1995), xv.
9) 메리 조 메도우, 리차드 D. 카호/최준식 옮김, 『종교심리학 하』 (서울: 민족사, 1992), 346.
10) 라이언, 『중독 그리고 회복』, 177.
11) 필립 플로렌스/김갑중·박춘삼 옮김, 『애착장애로서의 중독』 (서울: 눈, 2010), 48-49를 참조하라.
12) 아터번․펠톤, 『해로운 신앙』, 42.
13) 황병주, "박정희 체제의 지배 담론과 대중의 국민화", 비교문화연구소 기획, 임지현·김용우 옮김, 『대중 독재 1: 강제와 동의 사이에서』 (서울: 책세상, 2004), 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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