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연대가 2020 정기총회 1부 순서로 기획 포럼 '신앙인가? 중독인가?'를 진행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뉴스앤조이-곽승연 기자] 중독의 사전적 의미는 다양하지만 흔히 쓰이는 의미는 "술이나 마약 따위를 지나치게 복용한 결과,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태"이다. '중독' 앞에 '종교'를 붙이면 뜻이 조금 달라진다. 여기서 사용된 중독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상이나 사물에 젖어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동안 '종교 중독'(Religious Addiction)은 흔히 이단·사이비 집단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신천지처럼 신분을 속인 채 포교하는 일은 한국 헌법을 어기면서까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행동이다. 종교 중독의 단적인 예로 볼 만하다.

정통이라 자부하는 교회들도 종교 중독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박성철 교수(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교대학원)는 2월 1일 열린 교회개혁실천연대(개혁연대·공동대표 남오성·박종운·윤선주·최갑주) 정기총회에서, '사회적 트라우마와 종교 중독'을 주제로 한국 사회 여러 요인이 어떻게 한국 개신교인들의 종교 중독에 영향을 미쳤는지 발표했다.

개발독재 시대가 남긴 트라우마
무력감·공포심에 종교로 회피
편집적 반공주의와 극단적 폭력성 낳아

박성철 교수는 종교 중독을 종교 혹은 종교적 행위에 통제력을 상실할 정도로 집착하는 현상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종교 중독은 술·약물·음식 등 물질 중독과 다르게, 어떤 행동과 상호작용의 과정에 빠져들기 쉬운 '과정 중독'이라고 했다. 이는 통제력을 상실할 정도로 종교적 행위에 집착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종교 중독인지 아닌지는 그 사람이 타자에 대해 얼마나 공격적이고 배타적인지를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다. 담임목사가 세습을 강행했을 때, 교인들이 자신이 추종하는 목사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극단적 배타성과 폭력성을 드러내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폭력성과 배타성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반정부 집회에 참석하는 이들에게서도 나타난다. 개신교 신앙인을 자처하는 이들은 반공주의로 똘똘 뭉쳐 집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북한에 동조하는 사람이라고 치부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위기에도 어김없이 모여 중국인·대척자를 향해 혐오 발언을 쏟아 냈다.

박성철 교수는 한국교회의 급속한 양적 성장 기저에는 종교 중독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종교 중독은 여러 심리적·사회적 영향으로 발현된다. 박성철 교수는 이날 강의에서 '사회적 트라우마'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을 주로 소개했다. 사람은 심각한 죽음이나 상해를 입을 위험을 실제로 겪었거나 직면했을 때, 혹은 타인이 겪는 것을 목격했을 때 강렬한 두려움·무력감·공포를 경험한다. 이것을 '트라우마'라고 한다. 이러한 트라우마를 치유하지 않고 종교적 기제로 회피하거나 외면하려 할 때 종교 중독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박성철 교수는 1970~1980년대 개발독재 시대를 지나며 한국교회가 겪은 트라우마가 종교 중독 현상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독재 권력에 항거하는 이들이 죽어 가는 사회 분위기에서, 대부분 개신교인은 정권에 맞서 싸우는 대신 '정교분리'를 외치며 정치 상황을 외면했다. 오히려 정치 참여를 비성경적·반기독교로 치환했다. 이때부터 사회참여는 세속적 행위, 현실도피는 신성한 종교 행위가 됐다.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 세력은 개발독재 이데올로기를 충실히 반영하며 번영신학을 발전시켰다. 박성철 교수는 "번영신학은 물신숭배 현상의 일종이며, 종교 중독자가 바치는 헌금이나 기부금은 자본의 투자 개념에 더 가깝다"고 설명했다. 자본주의적 구매 욕구를 번영신학 이름으로 정당화하면서 한국교회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종교 중독이 한국 사회에 미친 또 다른 악영향은 '편집적 반공주의와 극단적 폭력성'이다. 박성철 교수는 권위주의에 중독된 이들이 흑백논리를 기반으로 하는 극단적 정치 이데올로기와 결합할 경우, 사회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종교 중독자들은 모든 것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고 선이라고 규정한 대상을 맹신한다. 선을 독점하고 있다는 폐쇄적 의식은 스스로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믿게 하고 다른 신앙을 가진 이들을 배척하고 판단한다. (중략) 교회 세습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향한 혐오 표현과 차별, 배제 행위는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이 결코 종교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교회 일 열심히 하면 건강한 신앙?
"타자와의 관계에서 살펴야
좋은 목사와 좋은 교회가
'좋은 신앙인' 만들어 주지 않아"

강의에 이어 개혁연대 신임 공동대표로 임명된 남오성 목사(주날개그늘교회)와 박성철 교수가 한국교회 현실을 진단하며, 어떻게 종교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CBS 아나운서 이명희 개혁연대 집행위원이 사회를 맡았다.

- 개혁연대가 설립한 지 17년이 지났지만 한국교회 모습은 그대로인 것 같다. 현재 한국교회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박성철 / 부정적·긍정적 측면이 다 있다. 과거에는 수면 아래 머물던 반공주의와 결합한 기독교 근본주의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게 부정적 측면이다. 과거 독재를 긍정하는 극우 세력은 부정적 영향력이 크다.

이런 사람들이 과거에는 없었을까. 아니다. 그들이 주류였고 권력이었다. 독재·군사정권을 지지하며 기득권을 누리다가, 이제 민주 정부가 들어서니 위기감을 느껴 광화문으로 나오는 것이다. 극우 세력이 집회를 주도하는 데는 부정적이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가 과거보다 민주화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남오성 / 목회 현장에 있다 보면 여전히 종교 중독 문제가 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교회를 새롭게 찾아오는 이들 중에도 종교 중독을 요구하는 분이 있다. 왜 이 교회는 기도회, 프로그램 등을 하지 않느냐고 묻다가 결국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교회로 옮긴다.

나는 지금 상황을 교회 생태계 전환기로 보고 있다. 소수의 초대형 교회는 여전히 맹위를 떨칠지 모르지만 그다지 의미 있는 행보라고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가나안 신자, 건강한 작은 교회 운동, 교회의 새로운 표현 등 다양한 생태계 전환 움직임이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생태계 전환이 잘되면 좋겠다.

- 종교적 열심과 종교 중독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나.

박성철 / 답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다. 건강한 신앙생활을 규정하는 것으로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과거에는 교회 열심히 다니고 교회 일만 열심히 하면 건강한 신앙인이라고 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건강한 신앙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살펴봐야 한다. 병든 신앙을 먼저 규정하고 반대 개념으로 건강한 신앙을 규정하면 된다. 타자와의 관계에서 배타성과 공격성이 나타나는 것이 곧 병든 신앙이다.

남오성 / 종교 중독은 계속 가상현실에만 존재하려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이 신앙 공동체에서 종교 행위를 통해 얻은 경험과 깨달음이 있다면, 그것을 가지고 내 현실에 적용하고 변화시켜야 한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이를 가르치지도 않고 교인들의 변화를 기대도 하지 않는다. 계속 교회에만 발 묶어 두려고 한다. 변화산에만 머무르려 하고 골고다 언덕에서는 도망친 베드로처럼, 가상현실에만 머무르려 하는 게 병든 신앙 아닐까.

개혁연대 신임 공동대표가 된 남오성 목사는 건강한 신앙을 지니려면 신학적 견해가 달라도 신앙과 종교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그러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떤 신앙인의 모습을 추구해야 하는가.

남오성 / 십계명을 잘 지키면 된다.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계명대로 목사를 우상처럼 숭배하면 안 된다. 교인들은 목사에게 큰 기대를 건다. '우상화'와 '기대'는 한 끗 차이다. 좋은 목사의 설교를 듣거나 좋은 교회를 다니면 내가 좋은 신앙인이 된다고 착각한다. 좋은 교회, 좋은 목사가 주는 좋은 콘텐츠를 쓸어 담아, 마치 샤워하듯이 맞고 지나가는 것이 종교 중독을 이끈다. 하나님나라의 의와 가치, 그분의 성품만을 절대화하며 그곳에 도달하지 못하는 나를 끊임없이 단련하고 홀로 지난한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성철 / 예수님도 이 땅에 섬기러 오셨고, 우리에게도 섬기라고 하셨다. 계급사회 속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타인을 섬기라고 하신 것은, 교회 안 교인들만 섬기라는 말이 아니다. 사회·정치적 영역에도 눈을 돌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섬기라는 말이다. 많이 가진 사람이나 힘 있는 자, 부족함 없는 이들에게는 우리의 섬김이 필요 없다. 우리의 섬김은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이 없거나, 권력 지향적 사회에서 자신의 인권을 지킬 수 없는 이들을 향해야 한다.

건강한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아무리 강조하고 실천해도 중독이라고 하지 않는다. 중독은 내가 높아지기 위해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내가 존중받기 위해 다른 사람을 무시하려는 태도다. 건강한 신앙생활은 공격성이 표출되지 않도록 자신을 절제하면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섬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건강한 신앙생활의 척도는 사랑과 섬김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 종교 중독에서 벗어나 건강한 신앙으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노력해야 하는가.

박성철 / 종교 중독이 기독교 내 의식 있는 사람들만의 토론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예수 믿는 사람끼리만 종교 중독을 규정한다면 그 기준은 결코 객관적일 수 없다. 종교가 어떻게 삶을 파괴하는지 비기독교인에게도 물어본 뒤 종교 중독의 경계를 정해야 한다. 시민사회와 연대하면서 건강한 교회 모습을 찾아가면 좋겠다. 시민사회 의견이 그리스도인에게 전달되면 더 객관적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동시에 그들과 연대하며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남오성 / 신학대학원 다닐 당시 소위 '세상 친구'가 다 사라졌다. 하지만 유학하면서 다양한 견해를 가진 이들, 타 종교인을 만나고 교제하며 생각이 바뀌었다. 건강한 신앙을 가지려면 신학적 견해가 다르고 종교가 달라도, 신앙과 종교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주변인이 많아야 한다.

개혁연대는 신임 공동대표로 남오성 목사(주날개그늘교회), 윤선주 상담사(군인권센터), 최갑주 간사(SFC)를 임명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어 열린 개혁연대 총회에서는 신임 공동대표를 임명했다. 2018년 박득훈 목사의 공동대표 퇴임에 이어, 올해 방인성 목사도 공동대표를 사임했다. 두 사람은 시무하던 교회에서 은퇴하면서 개혁연대 대표직에서도 함께 물러났다.

정회원·집행위원 등 50여 명이 참석한 총회는 신임 공동대표로 남오성 목사, 윤선주 상담사(군인권센터), 최갑주 간사(SFC)를 임명했다. 세 사람은 그동안 개혁연대 집행위원으로 활동해 왔다.

개혁연대는 2020년에도, 그동안 해 온 △교회 문제상담소 운영 △대안적 교회 발굴 및 소개 △민주적 교회 운영 및 바람직한 목회자 청빙 절차 안내 △사회 이슈 연대 등에 집중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다룬 '종교 중독'을 기획 포럼으로 확장해 신앙과 중독의 경계에서 일어나는 극단적 현상을 분석하고 대안을 고민·제시할 예정이다.

방인성 목사 사회로 진행된 개혁연대 2020년 정기총회에는 정회원·집행위원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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