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 지역의 모교회로 불리는 순천중앙교회가 임직 헌금을 폐지하는 등 변화의 길을 걷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임직 헌금'은 한국교회 관행 중 하나다. 보통 교회의 경우 장로·권사·안수집사가 임직할 때 감사의 의미로 헌금을 낸다. 금액은 교회마다 차이가 있는데, 수백 수천만 원에 이른다. 올해로 113주년을 맞은 순천중앙교회(홍인식 목사)도 임직자가 내는 '작정 헌금'을 시행해 오다가, 홍인식 목사 부임 이후 전격 폐지했다.

홍 목사는 작정 헌금이 물질과 권위주의를 상징한다며 그만 내려놓자고 제안했고, 교인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홍 목사는 기자에게 "지금의 교회는 물질이 계급을 결정하는 구조다. 내가 오기 전까지 우리 교회 직분자도 몇 백 씩 낸 것으로 알고 있다. 돈이 있을수록 (직분자가) 되기 쉬운 구조다. 이런 관행을 깨뜨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임직식 문화도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지난해 12월 1일 순천중앙교회에서 열린 임직식은 교단 안에서 화제를 낳았다. 대개 임직식에서 설교는 총회장이나 노회장이, 축사는 노회 중직자들이 하는 게 관행이다. 순천중앙교회 임직식에서는 홍 목사의 멘토로 알려진 은퇴장로가 설교를 맡았고, 여성 목사와 농아인 교회 목사가 축사를 전했다. 물러나는 은퇴 장로·권사·안수집사가 신임 장로·권사·안수집사에게 권면하는 시간도 있었다.

교회 중요 행사가 있을 때면 한복을 입은 여성 교인들이 등장하는데 이날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유가 있었다. 당시 임직을 받은 박원옥 권사는 1월 26일 기자와 만나 "19명이 권사 임직을 받았다. 그런데 몸이 조금 불편하신 권사님이 계셨다. 자신은 한복을 입을 수 없는 상황이기에 민폐를 끼치지 않겠다며 임직식 불참을 선언했다. 홍 목사님이 이 이야기를 듣고, 임직 마지막 교육 날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자'고 권면했다. 다들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많은 분이 한복을 준비했음에도 일상복으로 통일했다"고 말했다.

임직자는 교인들 투표로 선출된다. 기존까지만 해도 임직식 순서지에는 순위가 높은 순서대로 이름을 표기했다. 이제는 득표순이 아니라 가나다순으로 적고 있다. 교인들은 한결 자유로워졌다고 말했다.

박 권사는 "임직받은 건 좋지만, 순위가 그대로 드러나서 부담되는 측면도 있었다. 가나다순으로 되니까 마음의 부담이 훨씬 줄었다. 임직 헌금 폐지도 그렇고 다른 교회들도 도입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임직된 채규운 장로도 "나는 성이 채 씨라서 뒤에 (이름이) 배치됐다. 목사님이 사전에 양해를 구했는데,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순서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보수화·고령화하던 순천중앙교회
'해방신학자' 청빙하며 변화 시도
'백 사람의 한 걸음' 실천하는 중

변화의 중심에는 홍인식 목사가 있다. 1월 26일 주일예배가 끝난 뒤 홍 목사가 교인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순천의 모교회로 불리는 순천중앙교회는 역사가 긴 만큼 사건·사고도 많았다. 담임목사가 신변 문제로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떠나기도 했고, 신천지가 난입해 예배를 훼방한 일도 있었다. 한창 성장했을 때 2000명에 달하던 교인 수도 반토막이 났다. 한국의 많은 오래된 교회가 그렇듯, 순천중앙교회도 보수화·고령화했다.

하나의 기성 교회로 머무르는 듯했던 순천중앙교회는 변화를 시도했다. 2016년 4월, 남미에서 해방신학을 공부한 홍인식 목사를 17대 담임목사로 청빙한 것이다. 홍 목사가 부임할 때만 해도 말이 많았다. '해방신학자와 대형 교회는 어울리지 않는다', '보수적인 교인들 텃세에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해방신학을 목회에 접목하기 어려울 것이다' 등 부정적 의견이 주를 이뤘다. 약 4년이 흐른 지금, 이런 걱정들이 기우였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교회가 그저 잡음 없이 운영되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홍인식 목사는 부임하자마자 순천중앙교회에서 세월호 예배를 드렸다. 박근혜 정부 당시 세월호와 관련한 활동은 정치적으로 편향된 것이라는 낙인이 존재하던 때였다. 순천중앙교회는 명성교회 세습 반대 운동에도 어떤 교회보다 적극적이다. 반동성애 독재와 같은 예장통합 교단 분위기에서도 열린 시각으로 동성애에 접근하려 노력한다. 교계 안에 만연한 가짜 뉴스를 예방하기 위해 강연을 듣고, 저탄소 생활 경연 대회서 국민 실천 부문 최우수상으로 환경부장관상 수상을 하기도 했다.

순천중앙교회가 이렇게 개혁적인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홍인식 목사의 목회 철학을 교인들이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다. 홍 목사는 부임 이후 담임목사에게 주어지는 지원비를 줄였다. 대신 부교역자와 에큐메니컬 선교 단체들 지원을 늘렸다. 교인들에게 해방신학을 알리는 책들을 적극 소개했다.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교인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순천중앙교회에서 30년 넘게 신앙생활한 이창용 장로는 "다행히 홍 목사님이 짧은 시간 안에 해방신학에 대한 오해를 풀어 줬다. 무엇보다 목사님이 사적 욕심이 적고, 교인과 소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다"고 말했다. 채규운 장로는 "홍 목사님의 목회 철학을 존중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기복주의 신앙을 결코 강조하지 않기 때문이다. '헌금 많이 하라', '교회에 충성하면 복 받는다'와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대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고 항상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물론 큰 방향에서는 동의하지만 세부적인 것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장로는 "기본적으로 목사님의 철학을 존중하지만, 선별적으로 판단한다. 교회 세습은 당연히 안 된다고 생각하고, 동성애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회 근간을 흔들 수 있기 때문에 합법화는 안 된다"고 말했다.

교인들은 정체된 교회가 변화하고 있다며 반가움을 나타냈다. (사진 맨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창용 장로, 박원옥 권사, 전아영 청년회장, 채규운 장로. 뉴스앤조이 이용필

순천중앙교회는 '한 사람의 백 걸음'보다 '백 사람의 한 걸음'을 실천하고 있다. 새로운 시도들이 입소문이 나면서 사람들도 조금씩 모여든다. 채규운 장로는 "홍 목사님 부임 이후 새가족부 정착률이 높아졌다. 7~8년 전에는 많은 예산을 들여 전도를 했는데, 서너 달 지나면 안 나왔다. 지금은 전도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온다. 정착률은 80~90%에 이른다"고 했다.

청년부에도 활기가 돈다. 장년 900명 중 청년은 40여 명밖에 안 되지만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전아영 청년회장은 "홍 목사님이 온 뒤로, 청년들에게 책을 끊임없이 읽게 한다. 사회·신앙 문제를 스스로 고민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동성애·성소수자·비혼 문제에 있어서 '무조건 안 된다'고 정죄했는데, 나의 이런 생각 때문에 누군가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전 회장은 "특히 목사님과는 소셜미디어로 언제든지 소통 가능하다. 교회 분위기가 바뀌면서 떠났던 청년들도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홍인식 목사는 다음 스텝을 밟고 있다. 교회가 변하기 위해서는 정치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행정을 당회가 결정하는 구조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했다. 홍 목사는 "당회원 20명이 모여 한 안건을 동시에 논의하다 보니 효율성이 떨어진다. 위원회별로 심도 있게 상의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가령 행정위원회, 선교위원회 등을 만들어 장로, 권사, 안수집사, 청년이 참여하게 하는 거다. 위원회가 결정하면 당회가 보고받는 식으로 하는 거다. 일종의 지방자치제 형식인데 당장은 힘들겠지만 시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교인들 인식도 조금씩 탈권위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창용·채규운 장로는 주보에 기재된 장로 이름이 임직 시 다득표순으로 돼 있다며, 이를 가나다순으로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채 장로가 "목사님이 바꾸자고 하기 전에 장로들이 먼저 제안하면 얼마나 보기 좋겠느냐"고 말하니, 옆에 있던 이 장로가 "나는 대찬성이다. 이런 것 하나 바꾸지 못하면 세상 조직과 다를 게 없을 것이다"고 맞장구쳤다.

순천중앙교회 교인들이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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