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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는 죄지만 사람은 사랑한다'는 말은 헛소리…성경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 한다"

[인터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펴낸 김근주 교수, 성서해석학으로 '동성 성행위' 구절 분석

최승현 기자   기사승인 2020.01.17  18: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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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보수 개신교는 동성애를 죄로 규정한다. 동성애와 조금이라도 관련 있다 싶은 정책과 법에는 무조건 반대 목소리를 외친다. '동성애 독재'를 막겠다며 시위하고, 삭발하고, 100만 명이 참여하는 서명운동까지 전개했다.

반동성애 세력은 활동 근거를 성경에서 찾고 있다. 성경이 동성애를 금지하고, 죄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고 따르는 셈이다. 그런데 문자 그대로 성경을 받아들이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레위기는 직물 혼방(두 가지 옷감)으로 만든 옷을 입지 말라 했고, 돼지고기도 먹지 말라고 말한다. 선짓국이나 순댓국도 먹어서는 안 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에서 남성이 긴 머리를 하면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이러한 성경 구절은 쉽게 지나치면서, 왜 유독 동성애 문제에만 극렬하게 저항하는 것일까.

기독연구원느헤미야(느헤미야) 전임연구위원 김근주 교수는 성경 본문을 읽을 때 시대 상황과 문화 등 '맥락'을 배제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교회에 통용되는 '동성애=죄' 등식은 오독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교회가 동성애 혐오로 물들어 가는 상황에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NICS)를 출간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는 성경 본문에 따른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를 '성서해석학' 관점에서 비판한다. 김 교수는 동성 성행위를 언급하는 본문 7곳(창세기 19장, 사사기 19장, 레위기 18장과 20장, 로마서 1장, 고린도전서 6장, 디모데전서 1장) 맥락을 상세히 분석했다.

김근주 교수를 1월 16일 서울 동교동 느헤미야 연구실에서 만났다. 책을 쓰게 된 이유, 본문 속 구절이 무엇을 말하는지, 문자 자체에 갇혀 혐오와 배제를 일삼는 교회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물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를 펴낸 김근주 교수는 성경이 '영원한 진리'를 전하기 위해 동원한 표현을 오늘날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 주제가 상당히 흥미롭다. 동성애 문제를 연구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느헤미야 교수들은 돌아가면서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해 연구 발표한다. '느헤미야 렉처' 시리즈라고 한다. 2017년 연구자로 선정돼 무슨 주제를 정할지 고민했는데, 마침 한국교회가 동성애 문제로 시끌시끌했다. 동성애를 성서해석학으로 다뤄 보자고 생각했다.

한국교회가 동성애를 반대하는 건 부당하며 틀렸다고 생각해 왔지만, 애매모호한 지점도 있었다. 창세기 19장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는 동성애 본문이 아니라는 게 확실한데, 나머지 본문(레위기 18장과 20장, 로마서 1장 등)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연했다. 또 우연한 기회에 게이 그리스도인들을 만나게 됐고, 그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누군가에게는 삶의 문제'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 스스로가 궁금하고 답답해서 공부하는 차원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 주제가 '동성애'와 관련 있다 보니, 출판과 관련해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다.

애당초 교수들은 '느헤미야 렉처에서 발표하는 글은 출판하자'고 전제하고 시작했다. 첫 번째 렉처를 조석민 교수가 했다. <신약성서의 여성 - 배제와 혐오의 대상인가?>(대장간)라는 책으로 나왔다. 내가 두 번째로 출판하게 됐는데, 솔직히 신경이 쓰이기는 했다. 사람들은 동성애 이야기를 꺼내면 '그래서 교수님은 찬성이냐 반대냐'만 묻는다. 자칫 느헤미야가 피해를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동성애 옹호 집단'으로 싸잡히는 것도 그렇고, 느헤미야를 거쳐 간 학생들도 걱정됐다.

작년에는 한국교회가 동성애 문제로 유독 시끄러웠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졌다. 대표적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이 소속 교회에 내 강의를 금지하고, 느헤미야와 교류하려면 당회 지도를 받으라고 결의했다(김근주 교수는 인터뷰 시작 전, 지난 9월 총회 결의 이후 지금까지 강의를 요청해 온 예장합동 소속 교회는 한 곳도 없다며 웃었다 - 기자 주).

지난해 12월 <뉴스앤조이>가 주최한 임근옥(임보라·김근주·김대옥) 좌담에서 "나는 절대 동성애를 죄라고 말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 말이 기사 제목으로 걸렸다. 제목을 보고 약간 심란했다. 내가 분명히 한 말인데, 그렇다고 제목으로 가야 하나 싶어 "타이틀을 좀 바꿔 달라"고 전화하려 했다.(웃음) 내가 한 말이고, 내가 명백히 간직하려는 생각이어서 그냥 뒀다. 정리하면, 출간에 크게 기여한 건 1번이 예장합동, 2번이 <뉴스앤조이>인 셈이다.(웃음)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건 무엇인가.

성경 본문 속 '동성 성행위 부분'은 해석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 인식이 한국교회에 퍼졌으면 좋겠다. 동성애 문제는 어느 해석 하나를 밀어붙여서 될 일이 아니다. 논란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의에 이 책이 기여했으면 좋겠다.

서양에는 이런 주제로 나온 책이 수없이 많다. 지금도 나오고 있다. 한글로도 많이 번역됐다. 작년 IVP에서 나온 <동성애에 대한 두 가지 견해>에는 학자 4명이 등장해 각각 다른 입장을 설명한다. 동성 성행위가 죄가 아니라는 학자 2명과 죄라고 보는 학자 2명이 있다. 죄라고 보는 학자 중 한 명은 게이인 사제였다. 나는 게이이고 그것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지만, 동성 성행위는 죄이기 때문에 평생 안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책만 봐도 다양한 입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한국교회는 아주 협소한 하나의 입장만 가진 채 성경의 진리라고 떠든다.

동성 성행위 다루는 7가지 본문
맥락 고려하며 해석해야
소돔 이야기는 낯선 자 향한 폭력

- 이번 책에서 성서 본문의 동성 성행위 관련 구절들이 어떠한 의미와 맥락을 지니는지 살폈다. 또 한국교회가 동성 성행위 본문을 어떻게 오독하는지 짚었다.

먼저 신구약 성경에서 동성 성행위를 다루는 본문은 정말 적다는 점을 깔고 시작해야 한다. 전체 본문 중 명시적으로 다루는 구절은 7개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를 다루는 창세기 19장은 동성 성행위가 가장 처음 등장하는 본문이다. 근데 그 본문의 본질은 딱 하나다. 우리가 사는 영역에 낯선 사람이 들어왔고, 남자들이 집단으로 몰려와서는 그 낯선 남자를 끄집어내려는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알아야 되겠다"는 성관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지만, 나는 명백히 '성행위하겠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낯선 사람이 왔을 때 남자들이 잔뜩 몰려와서 그 남자 끄집어내 성관계하겠다는 것이다. 이게 동성애일까. 가장 적절한 표현은 '집단 성폭행'이지 동성애로 볼 수 없다. 전쟁 성범죄를 이성애라고 부르지 않듯, 소돔과 고모라 본문을 설명하는 가장 적합한 용어는 집단 성폭행이다. 피해 대상은 '자기 영역에 들어온 나그네'다. 집단으로 몰려와서 가장 약한 사람을 짓밟는 것이다. 이 본문 핵심은 성폭행이다.

창세기 저자가 소돔의 죄악상을 드러내고자 '집단 성폭행'을 사용했다는 점을 볼 때, 동성 성행위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창세기 본문을 후대 사람들이 어떻게 읽었는지 봐야 한다. 이사야·예레미야·에스겔 등 선지서에 소돔과 고모라가 언급되지만, 동성애 얘기는 한 구절도 없다. 이사야는 소돔을 '정의의 실종', '약자 짓밟음'이라고 언급했다. 에스겔 역시 가난한 자를 짓밟는다는 차원에서 이해했다. 그래서 구약 속 사람들은 이 본문을 동성애가 아니라 '약자 짓밟기' 본문으로 해석했다고 본다.

"남자끼리 동침하면 죽인다"는 레위기
'정한 것'과 '부정한 것' 나누는 맥락
'욕망의 극대화' 경계한 것
성소수자들의 '존재'와 무관

- 레위기 18장과 20장은 다른 구절보다 구체적이다.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남자와 동침하면 반드시 죽이라"고 나온다.

레위기 18장과 레위기 20장은 명백하게 남자의 동성 성행위를 금지한다. 이 본문은 진짜 어려운데, 레위기 11장하고 18장, 20장을 같이 봐야 한다. 레위기 11장은 먹을 수 있는 정한 짐승, 먹지 못하는 부정한 짐승을 다룬다. 18장과 20장은 금지된 성관계를 언급하는데 11장과 논리가 같다. "내가 너희를 거룩하게 하였으니 너희는 내게 거룩해야 한다"는 구별된 삶, 거룩한 삶을 말한다.

비록 레위기가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갈랐지만, 그렇다고 오늘날 우리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으로 구별된 삶을 표현하지는 않는다. 구별된 삶이라는 취지는 결코 변함이 없지만 무엇을 구별해야 하느냐는 시대마다 달라진다.

레위기 18장과 20장은 내가 결코 성관계해서는 안 되는 대상이 누군지 언급하고 있다. 주로 근친, 이웃집 아내가 열거되어 있다. 나는 레위기 18장에 나와 있는 금지된 성관계 규례가 원칙적으로는 오늘 우리에게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어머니와의 성관계 등은 오늘날에도 금지하고 있으며, 근친상간도 법으로 금지한다. 금지된 관계는 시대에 따라 좌우된다. 레위기 18장은 두 명의 자매를 동시에 아내로 맞아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맞은 야곱은 어떤가. 이런 게 시대에 따라서 바뀌어 가는 것을 보여 준다.

미국에 'Focus on the Family'라는 아주 보수적인 가족 중심의 선교 단체가 있다. 극동방송에도 자주 나온다. 당연히 반동성애와 낙태 반대를 주장하고 트럼프를 지지하는 곳이다. 그들은 남편이 부정한 짓을 하지 않기 위해서 아내가 성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리 중에라도 남편이 요구할 때는 거절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레위기 18장에 "생리 중인 여성과는 성관계하지 마라. 죽는다"라는 말씀이 있다. 이 사람들은 레위기 구절에 개의치 않는다. 동성애에 대해 레위기 구절로 야단법석 떨면서 생리 중인 여성과의 성관계에 대해서는 조용하다.

김근주 교수가 이번에 출간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을 들고 있다. 성경 속 동성 성행위 본문을 분석한 책이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레위기 본문에는 "자식을 몰렉한테 주지 마라"와 "남자끼리 관계하지 마라", "남자든 여자든 짐승과 관계하지 마라"는 구절이 나란히 나온다. 특이하게도 몰렉한테 자식을 갖다 바치지 말라는 이야기가 왜 여기 나왔을까. 히브리어를 보면 그 단어가 앞뒤 본문에서 '남자의 정자'라는 의미로 쓰인다. 이 본문의 공통점은 '씨를 엉뚱한 데 주는 것'에 있다. 이웃집 아내와의 성관계를 포함해 남자, 짐승과의 성관계 등이 '엉뚱한 데 씨 주는 것'으로 한데 묶였다고 레위기 연구자들이 이야기한다.

이 구절은 '욕망의 극대화'를 이야기한다. 자식을 태워서까지라도 신에게 바치면 받을 게 있으니 숭배하는 것이다. 남자와 성관계하면 어떨지 욕망을 추구하는 이들의 동성 성행위를 금지하는 것일 테고, 짐승과 성관계하면 어떤 쾌락이 있을지 궁금해하는 이들을 경계시키는 것이다. '자기 욕망을 극대화하기 위해 온갖 짓이라도 다하는 사람'을 염두에 둔 구절인 셈이다.

지금 시대에 우리가 만나는 게이나 레즈비언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어느 순간 남과 다르다는 걸 발견하고, 결국에는 자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말고는 길이 없는 성소수자들에게 이 본문을 적용할 수 없다. 또한 레위기는 여성 동성애는 다루지 않는다. 그렇기에 레위기 본문을 보편적인 이야기에 막 적용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클럽에서 여성을 성폭행하고, 불법 촬영물을 단체 채팅방에 돌리고… 이런 것이야말로 욕망의 극대화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 로마서 1장에도 동성 성행위를 금지하는 구절이 나온다. 음식의 부정 문제는 신약에서 해결되었기에 괜찮지만, 동성애는 신약까지 일관되게 금지하고 있어 유효하다는 주장도 있다.

로마서 1장은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유일하게 여성의 동성 성행위를 명백하게 금지한 본문이다. 로마서 1장 짜임새를 보면, 하나님이 사람들을 욕심에 내버려 두셨다는 표현이 3번 나온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내버려 두자, 이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기도 하고 동성 성행위를 하고 마음속으로 못된 꿍꿍이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로마서 1장의 가장 기본적인 짜임새는 하나님이 사람들을 못된 마음인 채로 내버려 두자, 동성 성행위나 우상숭배를 하더라는 것이다.

다시 한번 보자. 지금 우리가 만나는 게이들은 못된 마음으로 '난 남자랑 성관계할래' 하는 사람들인가. 아니다. 어쩔 줄 몰라 괴로워하다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 사람들이다. 심지어 내가 만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구주로 고백하고 말씀대로 살아가고 싶은데, 성경은 동성애를 금지하는 듯해서 '내가 죄인인 건가', '내가 틀린 건가' 힘들어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로마서 1장은 우리 곁의 성소수자들과 상관없다고 보는 게 훨씬 타당한 해석이겠다 싶다.

신구약 성경은 전부 동성애가 아니라 동성 성행위를 다루고 있다. 동성애라는 용어 자체는 19세기에 만들어졌다. 아마 바울을 비롯한 고대 사람들은 성적 정체성이 동성애인 사람들을 제대로 파악하거나 인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사자들도 '내가 미쳤구나' 정도로 생각하지 '나는 이대로 나야'라고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책에도 용어를 엄밀하게 썼다. 성경은 동성애에 대해 말하는 게 아무것도 없지만, 동성 성행위는 금지한다고.

"죄는 밉지만 너는 사랑해?
그냥 '꺼지라'는 얘기와 뭐가 다른가"
간음한 여인에게 "다시는 죄짓지 말라"는 말
성소수자에게 적용할 수 없어

- 반동성애 세력은 물론이고 일부 복음주의권 그리스도인도 "동성애는 죄지만 동성애자는 사랑한다"고 주장한다.

"목사님의 죄는 미워하지만, 목사님은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나. 누구에게도 그런 말을 하지 않으면서 하필이면 동성애자한테만 그 말을 하나. 헛소리다. 그런 명제를 끄집어내는 사람들은 동성애자를 다르게 취급하려는 것이다.

주일날 만나면 "형제님 오셨어요? 자매님 오셨어요? 한 주간 힘든 일은 없었어요?"라고 묻고 말씀대로 살도록 격려하면 되지, 동성애자한테는 "죄는 밉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 하나. 이것 자체가 이미 동성애자들에 대한 배제이자 혐오다. "동성애라는 죄는 다른 어떤 죄와는 급이 다른 죄"라고 이미 규정을 하는 거다. 이거, 하나도 근거 없다.

내가 늘 예로 들지만, 이혼에 대해 구약과 신약의 입장은 거의 일치된다. '이혼하지 말라'는 거다. 근데 교회에 이혼한 사람 천지다. 목사가 강단에서 "이혼이라는 죄는 밉지만 이혼하신 분들 다 사랑합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나? 절대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상처다. 꺼지라는 얘기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혼 본문을 설교하는 사람들이 난감해한다. 성경은 분명히 '이혼하지 말라'고 하지만, 함부로 할 수 없는 얘기라서 그렇다. 그래서 목회자들이 설교할 때 정말 조심하고 유의한다.

목회자들이 설령 동성애를 죄라고 생각한다고 할지라도, 이 수준의 감수성 정도만 있으면 게이나 레즈비언이 교회 다니는 데 문제없으리라 생각한다. 지금 우리 문제는 이 정도 배려와 감수성조차도 없이 함부로 내뱉는 말에 있다. 동성애 구절은 논의해야 할 문제고 해석해야 할 문제인 만큼, 함부로 "죄"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말씀대로 살면서 공동체와 교제하고 싶은데, 강단에서 툭툭 함부로 해 대는 말들이 그들을 교회 밖으로 밀어낸다.

- 간음한 여인에게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한 예수의 말씀을 근거로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는 식이다.

사람들은 요한복음 8장 본문의 모든 초점을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에 맞춘다. 근데 앞뒤 문맥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야단법석을 떨면서 간음한 여인을 끌고 오는데 예수님은 그 여성을 일절 정죄하지 않는다. 그가 다음에 죄를 범했을까, 안 했을까. 나는, 기자는 다시는 죄를 범치 않나? 이 본문은 '언제든지 주님 앞에서 새 출발' 정도로 받아들여야 한다.

동성애는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그게 이성이 아닌 거다. 동성을 사랑하고,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 거다. '동성애는 죄'라고 정해 놓은 채, 이제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를 주장하는 건 하나 마나 한 논리다. 죄는 관계의 파괴라고 했다. 그런데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며 둘이 사랑하는 동안 무슨 관계를 파괴했나? 동성애는 존재이지 행위가 아니다. 그 간음한 여인은 '행위'가 있다. 같은 선에 올려놓고 볼 수 없다.

성경 구절, 오독하지 않으려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정신에 부합하는지 염두해야

- 성경을 읽다 보면,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오해할 소지가 큰 구절이 많다. 성경을 오독하지 않으려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성경은 '영원한 진리'를 당대 사람들에게 전달한 거다. 그 시대 사고방식, 과학, 문화를 사용해 전달하다 보니 1차 독자가 내가 아닌 옛날 사람이란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성경이 표현하고 싶었던 영원한 진리를 담아내는 그 시대 과학까지 진리라고 생각해 버리면, 창조과학이 저지르는 오류가 발생한다.

예수님은 구약 전체를 마태복음 7장 12절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 이게 율법이요 선지자다" 한마디로 요약했다.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온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하는 말로 다 끝났다"고 했다. 이것이 신구약 성경 전체를 읽는 가장 중요한 원리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종은 육체의 상전에게 주께 하듯 순종하라"는 에베소서 구절은 노예제를 지지하는 구절로 사용되었는데,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이 말을 생각해 보면 (영원한 진리가 아니라) 그 시대와 연관된 말씀이었겠구나 생각할 수 있다.

동성애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성애자다. 내가 가진 성적 지향이 인정받고 존중받기를 원한다면 저 사람도 인정해 주면 된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근데 이 땅에 무슬림이 찾아왔을 때, 내가 가진 신앙이 존중받기를 원한다면 저 사람의 신앙도 존중해 주면 된다. 내가 다른 나라에 살게 되었을 때 안전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난민들도 안전하기를 원하겠다고 생각하면 된다.

성경 읽을 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두 가지 원칙 - 사실 한 가지이지만 - 을 계속 붙잡고 성경을 읽어 가는 게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여성 안수 문제도 너무 쉽게 해결될 것 같다.

나는 동성애를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차별금지법에 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경의 정신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설령 동성애를 죄라고 생각하더라도,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한국 사회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되는 거다. 오히려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차별금지법을) 찬성하게 될 때 그분들 의도가 더 잘 먹히지 않을까. 차별금지법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은 동성애 반대와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인 것 같다.

신대원 다니면서 "죄는 밉지만, 사람은 밉지 않다"는 관념이 생겼다.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을 만나면서 이게 얼마나 허망한지 깨달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에 주목하고 귀 기울이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첫 번째 해야 할 일은 게이 그리스도인을 초대해서 그 사람에게 물어보고 질문하는 것이다. 만나지도 않은 채 그 사람 인생을 죄라고 규정해서는 안 된다.

김근주 교수는 성소수자들을 '이웃'으로 대하고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자고 제언한다. "죄는 밉지만 사람은 사랑한다" 같은 무례한 말 대신 여느 사람처럼 대하며 섬기고 교제하자고 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 분당우리교회 부목사처럼 보수적인 이야기를 해도 난리가 나고, 교수님 견해에 동의한다고만 해도 찍혀 나가는 세상이다. 반동성애 진영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편해하는 교인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 교계가 못돼서, 한번 찍히면 끝이다. 어디 부교역자로 옮겨 갈 수도 없어서 개척 외에는 길이 없어진다. 보수적 교단으로 갈수록 그런 생각을 하는 부교역자가 살기 힘들어진다. 늘 부교역자에게는 "조심해라. 살아남는 게 이기는 거다"라고 말하는데, 양아치 같은 세상에서는 살아남는 게 이기는 거다 싶기도 하다.

쉽지 않은 결단이겠지만 "교단과는 상관없이 평생 살겠다"는 각오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한국교회에 교단이 존재하는 이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못 견디겠으면 교단 나와도 살길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교인들에게는… 그런(동성애 혐오·반대하는) 교회 다니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그런 교회는 10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다. 너무 괴로우면 십일조로 대응할 수도 있다. 교회는 십일조 안 내면 쫀다. 대형 교회들? 십일조 안 내면 당회부터 반성할 거다. 교인들이 '아무리 그래도 주의 몸 된 교인으로서 십일조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 교회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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