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크리스천이며 페미니스트입니다."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발언 시간 초과로 마이크가 꺼진 뒤, 강성의 도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 문장으로 5분 발언을 마쳤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379회 1차 본회의가 열린 12월 18일, 강 의원은 '5분 발언'을 신청했다. 그가 발의한 '양성평등 기본 조례 전부 개정안'이 반동성애를 외치는 지역 교계 항의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제주도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보수 개신교계에서 '성평등'을 '양성평등'이라고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다. 강성의 의원이 발의한 법안 이름은 '양성평등 기본 조례 전부 개정안'. 2007년 제정된 조례 내용을 일부 수정하는 것으로 △양성평등 정책 시행 계획 수립 △양성평등위원회 설치 △양성평등 문화 조성 △양성평등 센터 설치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법 이름과 주요 내용을 보면 반동성애 진영이 좋아하는 '양성평등'이다. 그런데도 제주도민연대·제주바른인권국민대연합·양성평등교육을위한학부모연합 등은 12월 19일 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개정안에 2가지 용어를 교묘히 혼동해 성평등 교육 강사가 지원받을 수 있게 했다"며 철회를 요청했다.

반동성애 진영은 개정안 내용 중 '젠더', '성평등' 단어를 모두 삭제해야 한다고 했다. 개정안 10조 '양성평등위원회 분과위원회 설치' 부분을 보면, 도에서 양성평등위원회를 만들 수 있고 분과위원회로 '성평등정책분과위원회', '젠더폭력예방인권분과위원회'를 만들 수 있다고 명시했다. 분과위원회 이름에서 해당 단어를 빼라는 것이다.

조례 곳곳에 나오는 '성평등정책관'도 문제 삼았다. 조례 12조에는 도지사가 효율적인 성 인지 정책 추진 및 확산을 위해 각 부서의 장을 양성평등담당관으로 지정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양성평등 담당 정책의 세부 운영은 성평등정책관이 한다고 돼 있는데, 이것 또한 양성평등정책관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제주도 시민·여성·인권 단체 20곳은 양성평등 기본 조례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12월 19일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앞에서 개최했다. 제주여민회 페이스북 갈무리

제주도민연대 한 회원은 기자회견에서 "동성애, 근친상간, 다자 성애, 간통 등 모든 성행위를 인정해야 하는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위법 조례 개정을 위해 도민을 기만하고 설치는 강성의 의원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말했다. 교계 반동성애 진영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은 억측이다.

반동성애 진영의 반대에 제주도 시민·여성·인권 단체도 12월 19일 도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지금의 사태를 진두지휘하며 전국적으로 선동하는 단체가 기독교를 기반으로 종교적 교리로 접근하고 있다. 태극기부대와 뒤섞인 채로 사람들에게 혐오를 조장하며, 성차별 없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노력을 폄하하고 모욕하며, 각종 차별과 혐오를 확산, 재생산하는 것이 진정 그리스도의 정신인지 대답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미 도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들
법적 기반 마련 위해 전부 개정안 낸 것"
항의 시위, 낙선 운동 위협에도
"당선 때문에 신념 포기할 수 없어"

전국적으로 '성평등' 단어가 들어가는 조례안은 보수 개신교 반대에 부딪혀 제정·개정이 줄줄이 무산되고 있다. 경기도의회도 성평등 기본 조례를 '양성평등' 기본 조례로 수정하라는 요구에 수개월째 시달리고 있다.

강성의 의원은 '성평등', '젠더' 등의 단어가 개정안에 포함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12월 20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이 법안은 이미 도에서 정책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내용을 새로 담았다. 성평등정책관은 2018년 설치돼서 잘 활동하고 있고, 분과위원회도 이미 그 이름으로 설치돼 있다. 오랫동안 법 개정을 하지 않아 이번에 그동안 변화한 내용을 담아 전부 개정안을 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제주도청은 다양한 성평등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데, 2007년 제정한 양성평등 조례에 그 내용이 다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양성평등교육센터 같은 경우 벌써 예산 책정까지 끝났지만 조례에는 그 내용이 없다. 성평등정책관도 조직된 지 1년이 넘었다. 이번 개정을 통해 앞으로 이어 갈 양성평등 정책의 법적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이야기다.

강성의 의원은 반대를 주장하는 이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대화가 통하면 어느 정도 논의할 수 있겠지만 그분들은 무조건 자기주장만 하신다. 평소 양성평등을 위해, 남녀차별 해소 운동이라도 열심히 해 오신 분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이분들은 그런 차원이 아니다. 그저 반대를 위한 반대이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강성의 도의원은 정치도 중요하지만 당선만을 위해 그동안 쌓아 온 신념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했다. 사진 제공 강성의 의원실

최근 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한국교회동성애대책협의회 등 반동성애 진영은 동성애를 옹호하는 등 '악법'을 발의한 의원이라며 국회의원 12명 명단을 공개했다. 이처럼 반동성애 진영은 선거 때만 되면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는 정치인 리스트를 만들어 공개한다. 현직 정치인들이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도 결국 '표'다.

강성의 의원은 "표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건 사실이다. 지역구에 있는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내쫓으면 나갈 수밖에 없다. 낙선 운동 한다고 하시기에 하시라고 했다. 정치도 중요하지만, 오직 당선을 위해 그동안 쌓아 온 신념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해 신앙인이 되었다는 강성의 의원은 교계에 만연한 반동성애 운동에 대해 "성경에 나온 율법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해 지금 사회에 적용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이슈 외에 구약 시대의 다른 많은 율법 구절도 적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성경을 근거로 본인들의 주장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게 민주 사회에서 절대적인 선이고 기준이어야 한다는 시각은 잘못된 것 같다"고 언급했다.

강성의 의원은 이번 일로 조례 개정안 발의를 철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일이 논의를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그동안 일부의 과도한 행동으로만 치부하거나 상대를 안 하려고 했던 분위기였는데, 이제는 적극적으로 공론장에서 토론하자는 쪽으로 넘어가는 추세인 것 같다. 종교 교리로 사회 현상이나 법과 제도를 얘기하는 방식이 그게 정말 기독교적인가 하는 고민을 해 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성평등 전부 개정 조례안은 12월 20일 상임위원회를 통과해 24일 본회의에 상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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