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장명성 기자] 2019년 지상파 드라마 최고 시청률(23.8%)을 기록하며 종영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은 미혼모·고아, 술집 사장으로 숱한 편견을 몸에 지니고 살아가는 '동백'(공효진 분)의 이야기를 그렸다. 방영 초기부터,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맞서는 동백의 모습이 위로가 됐다는 감상평이 줄을 이었다.

이렇게 좋은 드라마를 보다가, 19회 한 장면에서 화들짝하며 '정지' 버튼을 눌렀다. 장소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붙은 교회당 내부. 동백을 입양했다 파양한 양모와 동백을 버렸다가 찾아 나선 친모 정숙(이정은 분)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저도 제 딸 찾다 보니까 그게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첫 아이는 왜 파양하신 거예요?"

"거참… 애가 묘하게 그늘진 게 이상해서 좀 캐 봤더니, 무슨 술집에서 컸더라고요. 엄마가 술집 여자 같더라고. 찝찝하잖아요. 딸은 엄마 팔자 닮는다던데. 걔는 좀…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괜히 있겠냐고."

동백을 파양한 양모가 '의자에 놓인 주보와 성경책을 정리하며' 한 말이다. 예배 끝나고 봉사까지 할 정도로 열심인 개신교 신자가 "술집 여자 아래서 큰 게 찝찝하다"는 이유로 아이를 파양한 사람으로 설정된 게 씁쓸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문구를 뒤로하고 동백의 친모와 양모가 대화를 나누는 드라마 속 장면. 의자에 놓인 주보와 성경책을 정리하는 설정이 사실감 있다. KBS 영상 갈무리

수습 시절, 2000년대 한국 영화·드라마 속에서 개신교가 어떻게 묘사됐는지 정리한 기사를 썼다. 이후 습관적으로 TV나 영화를 볼 때마다 개신교 묘사를 눈여겨보게 됐다. 아쉽게도 개신교인은 대부분 부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런 현상은 최근까지도 계속됐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을 재조명한 영화 '블랙머니'(2019)에서, 은행을 헐값에 팔아넘기는 데 동조한 금융감독원 은행검사국장(서현철 분)은 "나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교회 장로'로 등장한다.

11월 개봉한 영화 '윤희에게'(2019)에서는, 윤희(김희애 분)의 성 정체성을 '정신병'으로 규정하고 정신병원에 보내 치료하려던 윤희의 가정이 개신교 집안으로 묘사된다. 윤희의 오빠가 운영하는 사진관 벽에 붙은 '교회 달력'으로 그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윤희에게'의 임대형 감독은 지난달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교회 달력을 '의도한 연출'이라고 언급했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현실이 더 영화 같으니까.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사람 중 열에 아홉은 개신교인이었다. '공관병 갑질'로 지탄받고도 "하나님이 고난 주셨다"고 간증한 사람도, "문재인은 세월호 한 척으로 이겼다"고 시시덕거린 사람도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2019년 말 한국 사회 극우화 광풍의 정점에 있는 전광훈·황교안도 개신교인 아닌가. 이쯤 되면 영화·드라마 속 개신교의 모습이 그 정도면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금융감독원 국장 집무실 책상에 놓인 성경, 벽에 걸린 교회 달력이 화면에서 지나가는 장면은 채 몇 초 되지 않는다. 나는 그 장면에 멈추어 여러 생각을 했지만, 영화나 드라마를 본 다른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 그 장면을 지나쳤을 것이다. '교회 다니는 나쁜 놈'이 클리셰가 돼 버린 현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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