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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드러낸 미국 내 파워 게임과 한반도 평화

2019년 후퇴한 남북 관계…한반도 정세 어떻게 읽을 것인가

최필수   기사승인 2019.12.13  10:4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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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은 남북 관계에 있어 거대한 후퇴의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2018년 2월 평창 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면서 시작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6월 싱가포르 북미 회담으로 이어졌고 9월 남북 군사 합의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은 충격적인 결렬로 끝났고 6월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만나는 놀라운 이벤트가 있었지만 10월 스톡홀름 실무 회담은 결렬됐다. 현재 미국은 남한을 상대로 방위비 부담금을 더 내라고 압박하고 있고 북한은 다시 미사일을 발사하며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트럼프라는 세계사적 인물이 이 국면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사적 인물이란 시대의 모순을 자기 자신에게 체현해 자신의 의지로 관건적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유대인을 송환했던 페르시아의 느부갓네살왕, 로마 공화정을 제국으로 전환한 카이사르,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아 구소련을 해체한 고르바초프 같은 이들이 세계사적 인물이다.

트럼프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비즈니스맨 출신 대통령인데, 그것이 그를 세계사적 인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의 주류 질서가 무엇이었는지, 그 질서 속에서 피해자와 수혜자가 누구였는지 낱낱이 까발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연설하고 있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우리가 패권국이라고 쉽게 지칭하는 미국은 사실 동부, 서부, 중부로 나뉘어서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나라라고 이해해야 한다. 편의상 이들을 각각 월스트리트(Wall Street),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 러스트벨트(Rust Belt)라고 불러 보자. 동부의 월스트리트는 금융자본을 장악하고 있다. 서부의 실리콘밸리는 첨단 기술을 장악하고 있다. 그런데 중부의 러스트벨트는 과거 미국 제조업을 대표했으나 지금은 쇠락하고 말았다. 러스트벨트가 쇠락한 것은 세계화에 따라 미국의 금융과 기술이 중국과 같은 해외 생산 기지로 옮겨 갔기 때문인데, 그런 면에서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를 세계화의 수혜자, 러스트벨트를 세계화의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가 세계사적 인물인 것은 바로 러스트벨트를 대변하는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공화당, 민주당을 막론하고 미국이 배출한 대통령들은 모두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의 이익을 보장해 주고 확대해 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이 미국을 위한 길이라는, 사실과 주장이 섞인 말을 하면서 말이다. 그들에게 중부 지역은 이른바 "fly-over-states", 즉 날아서 지나가는 동네였지 그 자체로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일 대상이 아니었다. 트럼프는 이렇게 미국의 정치에서 소외된 중부 지역의 이익을 과감하게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천재적이고, 심지어 민주적인 대통령이라고 해야 한다.

트럼프를 세계사적 인물로 만드는 이러한 정체성이 대외적으로는 고립주의로 표현되고 있다. 원래 고립주의는 미국이 독립을 쟁취한 후 유럽 국가들의 정치판 속에서 특정 편과 엮이지 않고 독립적으로 지내겠다는 원칙이었는데, 미국이 1·2차 세계대전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포기했다.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고립주의를 포기하고 세계 질서 구축을 적극적으로 도모하는 개입주의를 견지해 왔다. 특히 소련과의 냉전 시절에는 자본주의 진영을 구축하는 것뿐 아니라 사회주의진영을 무너뜨리는 데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이렇게 미국은 자신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 구축에 노력했고, 성공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과연 누가 성공했는가 회의감이 몰려온 것이다. 가장 혁신적인 창업 시스템와 독보적인 금융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는데, 왜 이렇게 불평등한가? 왜 1970년대 후반 이후 미국 근로자들의 실질 임금은 동결돼 있는가? 갈수록 악화되는 미국 정부의 재정을 왜 외국을 지키는 데 쏟아붓고 있는가? 중부의 러스트벨트를 중심으로 터져 나오는 이러한 볼멘소리에 적극적으로 답한 사람이 트럼프였다. 대통령이 된 그는 미국이 외국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것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 즉 고립주의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트럼프 집무실에는 고립주의를 강하게 견지했던 미국 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고립주의 원칙에 따라 트럼프는 대외 개입을 축소하고 싶어한다. 구체적으로 주한 미군을 비롯한 해외 미군 주둔지를 줄이고, 거기에 들이는 돈을 줄이고 싶어한다. 이에 대한 미국 주류 정치인의 입장은 어떠한가?

"(주한 미군의 주둔 이유는) 남한을 지키는 것만이 아니다(not solely about protecting South Korea). 사실상 가장 중요한 목적은 미국의 국가 안보 증진이다(In fact, the primary purpose of our forward presence is to enhance U.S. national security)."

이는 우리나라 협상단이 미국 협상단에게 한 말이 아니다. 미국 하원 군사위원장(House Armed Services Committee Chairman)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한 말이다. 미국이 한국과 방위비 분담 협상을 하고 있던 12월 4일 행정부에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현재 10억 달러 수준인 방위비를 50억 달러로 올려 받겠다고 큰소리친 트럼프의 뒤통수를 치는 발언이다. 실제로 미국 하원은 (방위비 인상이 없으면 주한 미군을 철수시킬 것처럼 트럼프가 큰소리치고 있는데도) 주한 미군을 2만 8500명으로 유지한다는 국방수권법(NDAA)을 12월 12일 통과시켰다. 트럼프의 고립주의는 미국 내부에서 조직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트럼프의 고립주의와 기존 주류의 개입주의가 미국 안에서 투쟁하고 있는 셈이다.

2019년 말 현재 한반도 정세는 상당 부분 미국 내부의 이러한 파워 게임에 의해 좌우된다. 북한의 결심이나 실행보다 미국의 내부 움직임이 더 중요한 변수이다. 김정은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고 비핵화 의지를 보였다. "핵·경제 병진 노선"을 종결하고 "경제 건설 총력 집중"으로 전환한다고 천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해 15만 관중 앞에서 연설을 시켰다. 이 정도면 북한이 보일 성의는 다 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제재를 틀어쥔 미국은 쉽게 제재를 완화시켜 주지 않고 있다.

남한도 적극적인 노력을 보류하고 있다. 북한은 남한이 제재 완화에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길 기대했을 것이다. 실제로 제재 범위 밖에 있는 관광 분야에서 협력을 시작한다는 것은 충분히 고려 가능한 옵션이다. 그러나 남한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의 어떤 교감 때문인지, 지소미아와 방위비 협상에 시달리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만약 트럼프의 미국 우선 고립주의가 철저히 구현됐다면 미국이 북한의 평화 메시지에 적극 호응하여 제재 완화와 경제 건설 지원이 있었을 것이다. 주한 미군도 축소하고 성주에 배치한 사드(THAAD)도 회수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류 정치계의 개입주의가 발현되면서 2019년을 후퇴로 규정지을 수밖에 없는 일련의 사태가 벌어졌다. 아니, 어떤 의미에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얼어붙었다.

트럼프 고립주의를 탄생시킨 경제적 이유가 미국의 양극화와 정부 재정 악화라면 개입주의를 지탱하는 경제적 이유는 미국의 달러 패권 유지와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이다. 미국 정부 부채가 GDP의 100%를 넘었으므로 고립주의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 한편이 있다면, 그래도 달러를 발행해서 그 부채를 지탱하려면 미국의 패권이 살아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다른 한편이 있다. 강한 군사력을 유지하고 동맹의 믿음을 사는 것이야말로 패권 유지의 첩경이다. 새삼스럽지 않은 이러한 사실이 트럼프 덕분에 새삼스럽게 드러났다. 그것도 아주 분명히. 이런 면에서 트럼프는 역시 세계사적 인물이라고 불릴 만하다.

한편 이렇게 까발려진 미국을 동맹으로 껴안고 살아야 하는 우리도 좀 우리의 이해타산을 따져 보자. 과거 미국은 냉전에서 자기 진영의 경제적 번영을 도모하기 위해 많은 지원을 했다. 바로 군사적·경제적 원조인데, 덕분에 우리는 미국에 대해 고마움을 간직하도록 교육받았다. 앞으로도 그럴까?

미국의 동맹으로 남아 있기 위해 우리의 잠재적 최대 경제 파트너인 북한과의 협력을 보류해야 하고, 우리의 현재 최대 경제 파트너인 중국과 불편한 관계에 놓여야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더구나 방위비 분담이란 이름으로 미군 주둔비까지 우리가 물어야 한다면 장기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트럼프 덕분에 그 주둔비가 남한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을 위한 것이라고 미국 스스로 고백한 이 마당에 말이다.

최필수 / 한국·일본·중국에서 중문학·경제학·경영학을 공부하고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을 거쳐 2015년부터 세종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명동 향린교회에서 집사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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