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개신교와 인권조례①] 쏟아지는 반동성애 '민원 폭탄'…전국 지자체 21곳 인권조례 제정 무산

입법 예고하면 '좌표' 찍고 집단 항의…담당 공무원들 "업무 마비" 하소연

최승현 기자   기사승인 2019.12.06  21:46:11

아래의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ad42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지방자치단체의 인권기본조례는 지역 주민의 실질적 인권 보장과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2년 각 지자체에 인권조례를 제정하라고 권고했다. "주민의 실생활에 직접적인 규범력을 갖는 조례와 인류 보편 가치인 인권을 접목한 것으로, 인권의 지역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이유다.

이 인권조례가 최근 몇 년 사이 반동성애 진영의 주요 타깃이 됐다. 동성애를 옹호·조장한다는 이유다. 올해 들어서만 기초 단체 10곳이 입법 조례안을 냈다가 철회했고, 3곳은 철회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보수 개신교인들의 민원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2015년부터 계산하면, 교계 민원으로 조례 제정에 실패한 지자체가 확인된 것만 총 21곳에 이른다.

<뉴스앤조이>는 전국 226개 시·군·구 기초 자치단체 인권조례 제정 현황을 살펴봤다. 먼저 조례 제정에 실패한 기초 단체들 사례를 소개하고, 이어 현재 조례를 제정해 운영 중인 96곳의 실태를 알아본다.

전국에서 20곳이 넘는 기초 단체가 인권조례 제정에 실패했다. 입법 예고만 하면 몰려드는 '민원' 때문이다. 상당수가 민원 폭탄을 받고 조례 발의를 철회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각 기초 단체장이나 의회의 장들은 조례안을 제출하기 이전 행정안전부 입법 예고 시스템(www.elis.go.kr)에 입법 예고안을 올린다. 여기 게시물이 올라오면, 곧 반동성애 단체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바성연)·KHTV 등에 반대 민원을 넣자는 게시물이 등장한다.

가장 최근 예고된 강원 강릉시 사례를 보자. 강릉시의장 명의로 인권조례 입법 예고가 11월 26일 올라왔다. 이틀 후인 11월 28일 KHTV에 "최선근 강릉시의장, '강릉시 인권조례' 제정 시도 논란"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됐다.

KHTV 기사는 발의자, 기초 단체명만 다를 뿐 모든 기사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인권조례를 제정하면 안 되는 이유로 국가인권위원회법 2조 3호의 '성적 지향' 문구를 든다. 이 문구가 동성애를 옹호·조장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기사 하단에서는 해당 기초 단체 또는 의회 전화번호 등, 반대 민원을 넣는 방법을 상세히 알려 준다.

강릉시에 앞서 충북 옥천군이 11월 8일 입법 예고를 하자, KHTV는 "김외식 옥천군의장, 동성애 옹호·조장 '옥천군 인권조례' 제정 시도 논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옥천군의회는 집단 민원을 받고 입법 예고안을 철회했다.

우연의 일치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반동성애 진영이 '좌표' 찍은 곳들은 모조리 조례 제정에 실패했다. 2015년부터 입법을 예고하고도 제정에 실패한 21곳을 전수조사한 결과, 전남 진도군(2016년 9월)을 제외한 20곳의 입법 예고 사실이 KHTV 또는 바성연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었다.

2016년 서울 광진구, 전남 진도군, 전북 장수군이 인권조례안을 철회한 데 이어, 2017년에는 서울 강동구, 경북 포항시, 부산 금정구, 경기 시흥시가 인권조례 입법 예고를 냈다가 철회했다. 지역 언론에 따르면, 기독교연합회 등 교계의 조직적인 항의가 있었다. 2018년에는 경기 용인시와 동두천시가 입법 예고했으나 반대 민원을 받고 곧 철회했다.

반동성애 진영이 좌표를 찍었는데도 조례 제정에 성공한 케이스는 충남 청양군(2016년 11월)이 유일하다. 제정 당시 청양군의회에서도 기독교 얘기가 나왔다. 청양군 인권조례안에는 '성적 지향'이라는 말도 없었지만, 지역 교계는 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하리라는 의심을 떨치지 않았다. 당시 청양군의회 총무위원회에 출석한 관계자가 "성적 지향은 일체 용납할 수 없다. 우리 정서상도 그렇고, 윤리라는 게 또 있고 보편적으로 사회규범상에도 안 되는 부분이다"며 위원들을 안심시켜서 조례가 통과될 수 있었다.

입법 예고를 낸 지 1~2달밖에 되지 않은 서울 금천구와 강남구, 대전 유성구는 입법 예고 기간 수집된 민원 내용을 검토 중이다. 강남구의 경우, 입법 예고 시스템 홈페이지에 댓글 1163개가 달렸는데 반대가 1159, 찬성이 4개였다. 찬성 중 2명은 "반대합니다"라고 댓글을 남기고 찬반을 잘못 선택한 경우였다.

입법 예고 시스템에 올라온 강남구 인권 조례안.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의견을 표명했는데 99%가 반대다. 찬성 4명 중 2명은 잘못 누른 것이었다. 입법 예고 시스템 갈무리

민원 시달리는 공무원들
"카톡 보고 전화했다" 막무가내
상관없는 내용 복사-붙여넣기
주민 아닌 타 시·도민들이 항의
'조직적 움직임' 의심

<뉴스앤조이>는 입법 예고 후 조례안을 철회한 지자체에 경위를 물어봤다. 취재에 응한 기초 단체 공무원들은 '동성애 반대'를 외치며 민원 폭탄을 넣는 기독교인들 때문에 정상 업무 수행이 힘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A구청 관계자는 "항의 전화를 해서 '카톡 보고 전화했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더라. 반대 의견도 대부분 복사해서 보내는 수준이었다. 입법 예고 기간 말미에는 뜬금없이 '차별금지법 반대한다'는 팩스가 대거 몰려들어 당황했다. 희한하게 관내 주민이 아닌 타 지역 사람이 많았다. 전체 민원 260건 중 거주지를 적은 경우가 54건인데, 이 가운데 우리 구민은 8명에 불과했다. 8명 중 1명은 찬성이었다"고 말했다.

지방 B군의회 관계자는 "그냥 '반대합니다'는 내용으로 보낸다. 우리 도민도 아니다. 주소도 '경상북도' 아니면 '포항시' 정도만 적어서 보내는 수준이다. 이런 집단 민원이 처음 있는 상황이다 보니 당황했다. 결국 법안은 철회했는데, 인권조례가 다시 발의될지는 미지수"라고 설명했다.

한 광역시 소속 C구에는 반대 의견이 3000건 이상 들어왔다. C구청 관계자는 "반대 의견이 많이 들어와 결국 조례규칙심의회에서 부결 처리했다. 3000건 민원을 다 읽어 보고 찬성인지 반대인지 파악해야 해서 업무에 지장이 있었다"고 했다.

우연의 일치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KHTV에 올라온 '입법 예고 논란' 대상 기초 단체들은 조례 제정에 실패했다. 충남 청양군만이 조례를 제정했다. 반면 KHTV에 법안 발의 사실이 올라오지 않은 대구 달성군이나 서울 관악구는 민원 폭탄 없이 무난히 조례를 제정했다. KHTV 갈무리

D시는 무기한 보류 상태라고 했다. D시청 관계자는 "기독교 단체가 반대 의견을 많이 내서 의견 조율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보류했다"고 말했다.

E시도 입법 예고 이후 별다른 진척이 없다. E시 관계자는 "인권조례가 성소수자와 관련돼 있다는 여론이 있어서 더 신중하게 판단해 보자고 했는데, 현재까지는 미정이다. 우리 역시 민원 폭탄으로 업무가 마비 수준이었다"고 언급했다.

F시의회 관계자는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옹호하려는 의도라는 얘기가 퍼져서, 반대 의견이 너무 많았다. 사실은 동성애와 전혀 상관없다. 아마 시기적으로 학생 인권조례 등이 문제가 되다 보니까 우리 시 조례도 문제를 삼은 것 같다"고 했다.

G군청 관계자는 "과거 한 차례 조례를 제정하려다 실패한 적이 있는데, 기독교계 민원 때문으로 안다. 지난달 도 인권센터에서 기초 단체 관계자들을 불러 모아서 인권조례를 제정하라고 권고했다. 그런데 옆 군이 입법 예고했다가 반대에 부딪쳐서 철회했다. 우리도 난감한 상황이다. 내년에나 추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개정안 올라가도 민원 폭탄에
있는 조례 폐지 요구까지
계룡·증평군은 의회 주도 폐지
총선 후 보수 진영 몰락으로 일부 회생
아산·공주는 '주민 청구' 끝 부결

조례가 있다고 안심할 상황도 아니다. 인권조례를 제정해 시행하는 곳들도 '개정안'만 올라가면 어려움을 겪는다. 개정안 역시 입법 예고 대상이고, 입법 예고가 되면 곧 항의하라는 '좌표'가 찍히기 때문이다.

서울 H구 관계자는 "과거 인권조례 개정안을 냈다가 엄청난 민원을 받았다. 인권조례 개정안을 반대한다는 사람들이 구청 앞에 몰려와 피켓 시위를 했다. 개정안을 통과시킨 본회의도 시끄러웠다"고 말했다.

H구 역시 '외부인'들이 몰려들어 시위를 했다. 관계자는 "지역 기독교연합회 관계자들을 만나, (인권조례 개정안은) '동성애와 무관하다'고 수차례 설명했다. 지역 목회자들에게는 어느 정도 공감을 이끌어 냈는데, 정작 우리 구민도 아닌 외부인들이 계속 시위했다.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고 했다.

최근 들어 교계 반동성애 진영은 있는 조례도 없애려고 시도하고 있다. 충청남도의회는 자유한국당 등 보수 정당 도의원들 주도로 2018년 2월 인권조례를 폐지했다. 이후 충남도 내 인권조례 폐지 물결이 일렁였다. 4월에는 증평군의회가 제정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인권조례를 폐기했고, 5월에는 충남 계룡시의회가 인권조례를 폐지하기로 결의했다.

이 가운데 충청남도는 2018년 8월 인권조례를 재제정했다. 계룡시는 2018년 6월 시장이 인권조례 폐지 재의를 요구했고, 시의회 의원 ⅔ 이상의 찬성표를 얻지 못해 기사회생했다. 충남도와 계룡시 인권조례가 소생한 배경에는, 6월 지방선거에서 범진보 진영의 압승하고 보수 진영이 몰락하면서 의회 구성이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방어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아산시민 9366명은 2017년 9월 인권 기본 조례를 폐지해 달라는 '주민 폐지 청구 조례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소관위인 아산시의회 총무복지위원회가 2018년 2월 이를 부결했다. 소관위에서 부결됐지만 시의원이 부의를 요구해 본회의 표결에 올라갔다. 본회의에서는 폐지 찬성 6 반대 9로 부결됐다.

공주시도 2017년 8월, 6350명이 연서명해 인권조례 폐지 주민 청구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공주시의회는 2018년 2월, 심도 있게 다루자면서 이 안을 보류했다.

2018년 2월 인권조례 폐지를 반대하는 충청남도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현수막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충남도는 이날 인권조례를 폐지했다가 2018년 8월 다시 제정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경기도 안산시와 시흥시 등 인권조례 제정을 위해 주민 공청회를 개최하고 연구 보고서를 제작하는 등 재수·삼수에 도전하는 기초 단체들도 있으나, 역시 기독교 단체들의 반발로 언제 발의될지는 미지수다.

개악을 택한 사례도 있었다. 부산 북구의회는 2014년 6월, 조례에서 '성적 지향'을 삭제하고 북구 인권위원회를 비상설화하는 개정안을 의결했다. 부산 수영구의회는 2018년 5월, '성적 지향'이라는 문구가 포함된 원안을 수정하고 이 내용을 삭제했다. 수영구의회는 2017년 9월 한 차례 시도가 무산됐는데, 이듬해 기어코 성적 지향 문구를 삭제한 것이다.

기초 단체로는 전국 최초로 인권조례를 제정한 해운대구의회(2010년)도 2018년 2월, 조례에서 성적 지향을 삭제했다. 2018년 2월 8일 해운대구의회 주민도시보건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한 위원이 "얼마 전에 목사님에게 식사 대접받은 자리에서 인권조례 없애 달라는 얘기가 나오지 않았나. 그전에는 이런 이야기(성적 지향 삭제)가 한마디도 없지 않았느냐. (성적 지향 삭제는) 종교적 굴복이다"고 항의한 기록이 있다.

'공격 태세' 갖춘 반동성애 진영
"충남 인권조례 폐지로 자신감"
"공무원들 지레 겁먹지 말고
'인권 가치 실현' 헌법 정신 지켜야"

인권 정책 전문가들은 공무원들이 여론과 집단 민원보다는 '주민의 인권 보호'라는 가치 실현을 위해 적극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2년 <지방자치단체의 인권조례에 대한 연구> 등 인권조례 관련 연구를 수행했던 홍성수 교수(숙명여대)는 11월 26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반대 민원이 작전 세력에 의한 조직적 행동이라고 의심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민원 내용이 정당한지 따져 보는 것이다. 반대 민원이 고려할 만한 내용인지 고민하고, 그것이 국민 전체의 의견인지 고려해야 한다. 단순히 반대 의견 숫자만을 중요시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홍성수 교수는 충남 인권조례 폐지를 시작으로, 반동성애 세력이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고 우려했다. 그는 "충남 인권조례가 폐지되면서 반동성애 진영 사이에서 '있는 조례도 없앨 수 있다'는 의식이 생긴 것 같다. 국가인권위원회법도 이전까지 인권위 권한 강화 법안을 막는 수준의 수세적 입장에서, 이제는 성적 지향 문구를 삭제하는 공세적 입장으로 전환한 점을 심각하게 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사회적 합의'를 내세우면서 소극 대처하는 것은 오히려 반동성애 세력에 기회를 주는 꼴이다"고 지적했다.

인권정책연구소 김형완 소장도 "공무원들과 의원들이 지레 겁먹고 있다.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다 동성애를 반대하고 혐오와 차별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선거 국면에서 '1000만 기독교인이 투표로 심판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검증된 바 없다. 괜한 공포심에 휩싸여서 주민의 인권 보장이라는 본연의 사명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김 소장은 "지방자치단체는 헌법 10조에 명시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명령에 따라 인권 행정을 적극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계속)

※뉴스앤조이는 전국 인권조례 현황과 운영 실태를 태블로로 시각화했다.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ad47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동영상 기사

default_news_bottom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