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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스라엘에 드리우는 멸망의 그림자

[박태순의 교양으로 읽는 성서] 왕조시대⑰ 연이은 반역

박태순   기사승인 2019.12.09  13: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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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 반역, 반역

열왕기하 15~16장과 역대하 27~28장은 정신없이 돌아가는 북이스라엘 정치 상황을 보여 줍니다. 북이스라엘을 재건한 여로보암 2세는 기원전 748년쯤 죽고, 그의 아들 스가랴(기원전 748~기원전 747년)가 여섯 달 통치하게 됩니다.

"유다의 왕 아사랴의 제삼십팔 년에 여로보암의 아들 스가랴가 사마리아에서 여섯 달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며(왕하 15:8)."

스가랴왕 이후부터 북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할 때까지 끝없는 반란과 혼돈이 이어집니다.

스가랴가 살룸(기원전 747년)에게 살해당하면서 여로보암 2세의 왕조는 끝납니다.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그를 반역하여 백성 앞에서 쳐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왕하 15:10)."

스가랴를 시해한 살룸은 한 달 뒤, 이스라엘 디르사에서 사마리아를 향해 올라온 가디의 아들 므나헴에 의해 살해당합니다.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디르사에서부터 사마리아로 올라가서 야베스의 아들 살룸을 거기에서 쳐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왕하 15:14)."

이 과정에서 므나헴은 아이 밴 여인들의 배를 가르는 악행을 저지릅니다.

"그때에 므나헴이 디르사에서 와서 딥사와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사람과 그 사방을 쳤으니 이는 그들이 성문을 열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므로 그들이 그곳을 치고 그 가운데에 아이 밴 부녀를 갈랐더라(왕하 15:16)."

왕권 찬탈 과정에서 므나헴의 잔혹한 행동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이는 아모스서에서 암몬인들이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가르는 행위와 같이 극악한 행동입니다(암 1:13). 딥사가 살룸의 고향이었기에 므나헴이 만행을 저지르는 대상이 된 것 같습니다.

기원전 796년 아다드-니라리 3세의 시리아 군사 원정 이후, 아시리아는 이렇다 할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시리아는 아나톨리아와 시리아 북부의 지배를 둘러싼 우라르투(Urartu)와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었습니다. 디글랏 빌레셀 3세(기원전 745~기원전 727년)가 왕위에 오르면서 상황은 급변합니다. 그는 군사를 재정비하고 기원전 743년, 첫 서부 원정길에 오릅니다. 그는 우라르투(Urartu)와 아르파드(Arpad)를 기원전 740년에 정복하고 하맛을 포함한 시리아 북부와 중부의 여러 나라를 합병합니다.

디글랏 빌레셀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기원전 738년에 다메섹 르신(Rezin)과 아라비아 여왕 자비베(Zabibe)와 이스라엘 므나헴에게 조공을 받습니다.

"앗수르 왕 불이 와서 그 땅을 치려 하매 므나헴이 은 천 달란트를 불에게 주어서 그로 자기를 도와 주게 함으로 나라를 자기 손에 굳게 세우고자 하여 그 은을 이스라엘 모든 큰 부자에게서 강탈하여 각 사람에게 은 오십 세겔씩 내게 하여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니 이에 앗수르 왕이 되돌아가 그 땅에 머물지 아니하였더라(왕하 15:19-20)."

이 상황은 아시리아 비문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쿰무후의 쿠슈타슈피, 다메섹의 르신, 사마리아의 므나헴 … 아라비아의 여왕 자비베(Zabibe)에게 공물을 받았으니, 금, 은, 주석, 철, 코끼리 가죽, 상아 … 수낙타, 암낙타와 새끼들을 받았다."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기원전 738~기원전 737년)도 겨우 2년 동안 다스리다가, 르말리야의 아들 베가와 길르앗의 군대가 주도한 반아시리아 정변으로 쫓겨납니다.

"그 장관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반역하여 사마리아 왕궁 호위소에서 왕과 아르곱과 아리에를 죽이되 길르앗 사람 오십 명과 더불어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었더라(왕하 15:25)."

다메섹의 멸망

북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다메섹도 아시리아의 군사 공격으로 위기에 빠집니다.

디글랏 빌레셀 3세의 공격은 맹렬했으나, 다메섹은 기원전 733년까지 잘 버텨 냅니다. 아라비아 여왕 삼시(Samsi)가 다메섹을 지원했기 때문인데, 결국 삼시 여왕의 패배로 끝나고 맙니다.

"아라비아 여왕 삼시의 경우, 나는 사쿠리산에서 9만 4000명을 패배시켰다. 그녀의 진영 전체와 1000명의 사람들, 3만 마리의 낙타들, 2만 마리의 소떼들 … 나는 그녀의 군대 1만 명과 나는 나의 (발 앞에) 머리를 숙이게 하였다."

하지만 기원전 732년 결국 마지막 왕 르신(Rezin)의 죽음으로 다메섹은 멸망하고 맙니다. 기원전 732년 디글랏 빌레셀 3세의 아시리아 기록은 사라지고 없으나, 성서가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하스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냈더니 앗수르 왕이 그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점령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아 기르로 옮기고 또 르신을 죽였더라(왕하 16:8-10)."

이때부터 모든 지역이 실제적으로 아시리아 지방 조직의 일부가 되고, 사르곤 2세의 통치 초기에는 다메섹 전체가 아시리아 통치를 받게 됩니다.

다메섹 언어 아람어는 주위 나라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아람어는 아카드어를 밀어내고 시리아-팔레스타인 전역의 공용어가 됩니다. 기원전 3세기경 유대에서 사용된 정방형 서체는 옛 이스라엘의 글자라기보다 사실상 아람어의 후손이고 현대 히브리어 책 글자의 조상입니다. 아카드어는 문학 언어로 쓰였고, 아람어는 가장 보편적인 언어가 되고 페르시아 시대에는 제국의 공용어가 됩니다. 에스라서와 다니엘서의 일부분도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멸망의 그림자

아시리아 원정의 주요 목표는 분명 반아시리아 연맹 지도자 다메섹의 르신이었지만, 디글랏 빌레셀의 전략은 다른 연맹 국가들을 먼저 정복해 3년이라는 원정 기간에 다메섹을 서서히 고립하는 것이었던 듯합니다.

아시리아 세력이 커지자 다른 국가들이 연합군을 꾸려 저항합니다. 성서 자료는 제한되어 있지만, 아시리아 자료를 살필 수 있습니다. 아시리아 자료에 따르면, 북이스라엘의 베가와 다메섹의 르신, 두로의 히람(솔로몬 시대의 히람이 아니다), 블레셋의 두 도시 왕인 아스글론의 미틴티(Mitinti)와 가사의 하눈(Hanun 또는 Hanno)을 포함한 서부의 대규모 반아시리아 연맹이 형성됩니다.

하지만 디글랏 빌레셀 3세는 비블로스(Byblos)와 여러 도시를 점령하고 두로의 히람을 항복시키고 조공을 받았습니다. 디글랏 빌레셀의 군사 정복은 계속되어, 블레셋과 페니키아 남쪽의 해안 평원을 점령합니다. 미틴티는 항복하고, 하눈은 이집트로 달아났다가 되돌아와 주군 관계를 인정하고, 아시리아 제국의 물자 집산지가 된 가사(Gaza) 항구를 다스리게 됩니다. 에돔, 모압, 암몬, 남유다의 아하스(아시리아 연대기에는 여호아하스)도 조공을 바쳐야 했습니다.

"내가 이디빌리를 무쭈르 국경에 선봉장으로 삼았다. … 모압의 살람마누, 아스글론의 미탄티, 유다의 여호아사스, 에돔의 카우쉬말라쿠 … 한노로부터 공물을 받았으니 금과 은, 주석, 철 … 왕들의 보물들, 멍에를 질 수 있는 말과 노새들"

디글랏 빌레셀은 블레셋 국가들을 속국으로 편입한 뒤 이집트 시내에 기념비를 세워, 아시리아 제국의 경계를 표시합니다. 이스라엘의 납달리 전체, 북부 갈릴리, 요단 동편 북부 지역을 점령했으며(왕하 15:29),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시리아 유배 정책으로 1만 3520명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기원전 732년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베가를 살해하고 왕이 되어(왕하 15:30) 디글랏 빌레셀에게 충성의 편지를 보내면서, 나머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디글랏 빌레셀은 자신이 사마리아를 정복하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므리 가문에 속한 땅의 경우, 이전 원정들에서 나는 그곳의 모든 성읍들을 완전히 무너뜨렸으며, 그곳의 사람들과 그곳의 가축들을 노력하였지만, 사마리아 성읍만큼은 그냥 두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왕 베가를 죽였다."

비록 북이스라엘 왕국은 살아남았지만 아시리아의 속주屬州에 편입됩니다. 이렇게 서서히 멸망의 검은 먹구름이 북이스라엘을 뒤덮고 있었습니다.

*팟빵 '에르고니아 라디오' 채널 바로 가기: http://www.podbbang.com/ch/12827
*유튜브 채널 '에르고니아' 바로 가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Pw8sxRrpaJba1RXI97GwSA
박태순 / 새들녘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신학 아카데미 에르고니아(http://ergonia.org)에서 신학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참고 문헌

1) Bernhard W. Anderson, 『구약성서 탐구』, 김성천 역 (서울: CLC, 2017)
2) Anson F. Rainey and R. Steven Notley, 『성경 역사, 지리학, 고고학 아틀라스』, 강성열 역 (서울: 이레서원, 2010)
3) Alfred J. Hoerth et al., 『고대 근동 문화』, 신득일, 김백석 역 (서울: CLC, 2012)
4) John Gray, 『열왕기하』, 『국제 성서 주석』, 한국신학연구소 역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2)
5) Peter Dubovský, "Tiglath-pileser III's Campaigns in 734-732 B.C.: Historical Background of Isa 7; 2 Kgs 15-16 and 2 Chr 27-28," Biblica, Vol. 87, No. 2 (2006): 153-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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