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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세우고 농촌 살리는 교회

[그림으로 만나는 한국교회] 완주 율곡교회

이근복   기사승인 2019.11.14  13: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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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 아예 여편네이게나 맡겨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꺼나 /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 신경림, '농무'

가을 햇살이 눈부신 날, 청명한 하늘 아래 누렇게 물든 농촌 들판을 달리니 기분이 들떴습니다. 금방 시 '농무農舞'가 떠올랐습니다. 영등포산업선교회에 일하던 1980년대, 종종 선교회 강당에서 열린 농민운동 단체의 집회에서 농촌문제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농민들의 신명 나는 춤에서 가슴에 맺힌 분노를 길어 낸 이 시가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전북 완주군 고산면 율곡교회를 찾아가는 길이 수월했던 것은, 오랫동안 YMCA 활동을 하다가 십여 년 전 완주군에 정착해 사회적 경제 운동을 전개하는 친동생이 저를 태워다 준 덕입니다. 율곡교회 마당에 들어서니 담임목사였던 여태권 목사님이 십여 년 전 제게 해 준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한우 고기 직판장과 식당에서 돈이 많이 벌리니까 마을 공동체가 갈등이 생기고 서로 싸우더군요. 그래서 식당을 접었습니다."

여태권 목사님이 1984년 율곡교회에 부임했을 때, 고산마을은 대부분 소농이라 모두 떠날 궁리만 하고 있었습니다. 농촌이 살 만한 곳이 되어 농민들이 남아 있어야 교회도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목사님은 교우들과 함께 농민들이 잘살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섰고, 소를 키우기로 결정해 쌀농사를 유기농으로 바꾸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반대와 실패를 거듭한 끝에 고산면은 대표적인 유기농업 지역이 되었고, 유기 농산물에서 나온 쌀겨, 밀기울, 짚 등을 끓여 만든 여물로 키운 쇠고기를 한우영농조합을 통해 출하해 호평을 받습니다. 백화점 등에 납품하던 한우 고기를 파는 직판장과 식당을 운영하여 크게 성공하지만, 동네 사람들이 돈 때문에 싸우고 등 돌리는 모습을 보고 장사 잘되던 식당을 접은 것입니다.

율곡교회 예배당. 이근복 그림

율곡교회 덕분에 고산면은 잘살지만, 우리나라 농촌은 열악하기 짝이 없습니다. 농민은 총인구의 4.5%에 지나지 않고 고령화가 심각한데다 식량자급률은 25%밖에 되지 않습니다. 농가 소득은 2017년 연평균 3800여 만 원이었지만, 순수 농업 소득은 계속 하락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거기다가 농업을 희생 제물로 삼는 FTA가 계속 진행되고, 외국 농산물이 물밀 듯 들어오고 있어서 농촌의 전망은 어둡기만 합니다.

더구나 농민 문제를 주체적으로 풀어 갈 힘이 없습니다. 1970~1980년대에는 가톨릭농민회가 반농민 정책 반대 투쟁 등을 강하게 펼쳤고, 1982년 전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가 영등포산업선교회관에서 출범하여 농민 권익 쟁취 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1990년 전국농민회총연맹이 결성되어 농민운동의 중심이 되었지만, 지금은 약화되어 농촌 교회 목회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농촌 목회자들이 1980년 중후반에 각자 조직을 결성하여 생명 농업 운동에 주력하기 시작합니다.

신자유주의 경제 세계화가 초래한 빈부 격차의 심화, 거대 곡물 기업의 유전자 변형 농산물(GMO)과 농약 회사 등에서 비롯하는 식량 주권 침탈, 농산물 생산 체계 파괴, 전통 농업과 농촌 공동체 붕괴를 기독교 진리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인식하고, 위기를 막고 대안을 만들기 위한 활동이 이어집니다. 한경호 목사와 차흥도 목사 등 농촌 목회자들은 2005년 4월, 강원도 원주에서 세계 기독교권의 생명 농업 포럼을 개최했습니다. 2005년 11월에는 한국기독교생명농업 포럼을 창립했고, 2006년에는 아시아 기독교 생명 농업 포럼을 열었습니다.

생명 농업 운동과 각 교단 농촌 목회자들의 활동은 한경호 목사가 펴내는 계간지 <농촌과목회>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번 2019년 가을호에는 한민족 평화 공동체와 교회의 역할, 나의 농촌 목회 이야기(함기용 목사), 농촌 목회자의 건강(임락경 목사), 성경과 밥상(정경호 교수), 목회 단상(장의성 목사), 성경 다시 보기, 각 농목 소식 등이 담겨 있습니다.

농촌 목회자들이 드리는 '농촌 교회 신조'에는 농촌을 사랑하는 진정 어린 고백이 서려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의 창조자이시며 모든 일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과, 이 세상에 생명의 밥으로 오시어 당신의 몸과 피를 나누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땅 온 마을 마을에 가득하신 보혜사 성령을 믿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빚은 흙과 생명을 보듬어 안은 땅이 하나님의 성전임을 믿으며, 모든 생명을 살리시는 하나님이 농부의 땀과 자연의 기운을 통해 생명을 풍성케 하심을 믿으며, 흙에서 배우고 흙을 돌보며 생명을 일구느라 땀을 흘리는 농부가 하나님의 신실한 종임을 믿습니다. 땅은 더럽힐 수 없으며, 결코 사고팔 수 없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서로의 삶과 일을 나누고 섬기는 농촌 공동체가 하나님나라임을 깨닫고, 온 식구가 일한 뒤에 나누는 밥상이 진정한 주님의 성찬임을 믿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 논과 밭에서 일하는 가운데 죽음의 기운이 사라지고 생명의 기운이 만물에 깃들어 모든 것이 살아나는 영원한 생명, 새 하늘과 새 땅이 눈앞에 활짝 펼쳐짐을 바라보나이다. 아멘."

한국기독교장로회 율곡교회는 1906년 장덕선 씨의 집에 모여 예배하면서 창립되었습니다. 역대 담임 교역자를 살펴보면 대부분 전도사들이어서 이전에는 열악한 농촌 교회였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다행히 1984년 부임한 여태권 목사님이 31년간 마을과 교회를 생명이 넘치는 곳으로 세우고 은퇴했고, 2015년 3월 최용기 목사가 후임으로 부임하여 잘 이어 가고 있습니다.

2017년, 42년 만에 새로 건축한 교회는 소박하고 알뜰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2층 예배당 전면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율곡교회는 사랑과 평화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을 정성껏 예배하며, 예배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며, 다른 이를 하나님의 자녀로 여기며, 다른 존재를 하나님의 창조물로 소중히 대하고 축복합니다."

지금 150여 명의 장년이 출석한다고 하니 농촌의 큰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 마당의 종탑에는 "NO,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라는 현수막이, 교회 입구에 "씨앗의 주인은 농민이다"라는 글판이 걸려 있습니다. 유치원, 고산 지역 아동 센터, 친환경 농산물 판매장, 노인 일자리 작업장인 완주시니어클럽 건물들이 지역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는 교회다운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날 교회 식당에서 오순도순 주일 식사를 준비하는 여성 교우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아쉽게도 여태권 목사님과 최용기 목사님을 만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림으로 만나는 한국교회'는 매월 2차례 업데이트됩니다.

이근복 / 전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 한국교회활력화지원네트워크 사무총장.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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