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교회 세습을 용인해 준 예장통합 총회를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명성교회 세습을 용인해 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김태영 총회장) 104회 총회 결의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교단 내부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104회 총회 직후, 수습안 결의를 반대하는 성명이 20개나 나왔다. 여기에 수습안 결의를 무효로 해 달라는 예장통합 소속 개교회 청원도 14건이나 된다.

104회 총회 이후 명성교회 세습 철회를 위한 참회 기도회가 열렸다. 10월 28일 종로5가 예장통합 총회 회관 앞에서 열린 기도회에는, 교단 소속 목회자·신학생·교인과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세반연) 회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제주도·전라도·경상도 등 지방에서 올라온 참가자들도 있었다.

참가자들은 아스팔트 위에 앉아서 기도회를 이어 갔다. 저녁 7시부터 시작해 쌀쌀한 공기에 코끝이 시리고 비까지 내리는 등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기도회는 막힘없이 진행됐다. 총회 회관 앞에 설치된 작은 무대 정면에는 '하나님의 공의는 어떤 총회 결정에도 불구하고 구현되어야 합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좌우로 '부끄럽습니다', '참회합니다'라는 문구가 보였다.

기도자로 나선 김종익 목사(염산교회)는, 불법을 자행한 교회를 돌이키고 가르쳐야 할 총회가 불법을 용인해 버렸다며 용서해 달라고 했다. 김 목사는 "총회를 정신 차리게 하시고, 교회를 붙잡아 주소서. 엉망진창 사태를 바로잡고, 잘못한 저희를 꾸짖고 인도해 주소서"라고 기도했다.

설교를 전한 유경재 목사(안동교회 원로) 표정은 내내 어두웠다. 유 목사는 "수습안 결의는 신사참배나 다름없는 결의였다고 본다. (중략) 명분은 그럴듯하다. 교단 화합을 위해 헌법이라도 잠재하자고 했다. 그러나 헌법대로 명성교회가 어떤 형태로든 징계를 받고 세습을 물리도록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명성교회 사태를 해결할 방법은 간단하다고 했다. 유 목사는 "아버지 목사가 세습을 물리고, 아들 목사가 다른 교회로 가면 끝이다. (아멘) 왜 이게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왜 교단을 흔들고, 한국교회에 누를 끼쳐 가면서까지 세습에 집착하는 것일까. 아들 목사가 물러간다고 해서 명성교회가 당장 문을 닫을까. 10만 명 모이는 교회가 목사 하나에 좌지우지된다면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다"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104회 총회 결의를 철회하고, 명성교회가 세습을 물리면 새로운 길이 분명히 열릴 것이라고 했다. 교단이 분열되고 교회가 망할 것 같아도, 하나님이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고 했다. 유경재 목사는 "교단이 헌법대로 하고, 명성이 따르면 세상이 놀랄 것이다. 교단이 정한 원칙대로 가면 교단도 살고 명성은 명성대로 더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유경재 원로목사는 명성교회가 부자 세습을 철회하고, 아들이 아닌 다른 목사를 청빙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초대형 교회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했겠나
하나님과 한국교회
기만한 죄 참회해야"

기도회 중간중간, 참가자들은 '세습 철회', '총회 각성'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단위별로 발언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발언자들은 총회 수습안은 헌법에 어긋나고, 부끄러운 결정이라며 철회하라고 외쳤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서원모 교수는, 초대형 교회 대물림은 부와 권력을 세습하는 것으로 불신앙 행위라고 했다. 명성교회 위임목사직 세습을 실제적으로 허용한 총회 결의는 정당화할 수 없다고 했다. 서 교수는 "초대형 교회 세습이 아니었다면, 총회가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에서 온 서성환 목사(사랑하는교회)는, 45년 목회하면서 이번처럼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적은 없었다고 했다. 총회가 이렇게 된 데에는 자신의 책임도 있다면서 힘을 합쳐 바로잡자고 했다. 서 목사는 "명성교회 권력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아무리 교회가 크고 대단해 보여도 별거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분명한 믿음을 가지면 이겨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장신대 신대원 엄소희 여학우회장은, 104회 총회가 역사적으로 기억될 치욕스러운 결과를 냈다며 총회와 명성교회가 참회해야 한다고 했다. 엄 회장은 "하나님과 한국교회, 총회를 기만한 죄를 참회하라. 불법 세습을 용인해 준 것을 참회하라"고 말했다.

기도회 참가자들은 총회가 수습안을 철회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총회 회관을 한 바퀴 행진했다. 이어서 신앙 선언문을 낭독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들은 "교회 세습은 과거 성직매매의 극단적 모습이다. 모든 형태의 교회 세습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했다.

참회 기도회 참가자들은 총회의 참회를 촉구하는 차원에서 십자가 행진을 벌였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다음은 신앙 선언문 전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제104회 총회는 스스로의 헌법에도 위배되는 명성교회 세습을 사실 상 인정했다. 3년에 걸쳐 총회 스스로의 정화 노력을 기대하며 신앙으로 기도해 온 우리는, 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버린 현실을 목도하며, 오늘 총회 앞에 우리의 신앙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우리의 신앙은 500년이 넘는 전통을 이어 온 개혁교회의 신앙이다. 불법한 것조차 '하나님의 은혜'로 치환하는 왜곡된 교회 문화에 찌든 교권은 스스로 상석에 앉아 중심을 잃고 궤변을 일삼다 하늘과 땅의 소리를 헤아려 듣는 귀를 잃고 말았다. 하나님이 아니라 교인의 숫자를 신으로 섬기는 물신주의에 압도당해, 이제 공의는 간 데 없고 숫자의 대소로 옳음이 판별된다는 사탄의 속임수를 신앙 원칙으로 받아들인 이들은, 결국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양심의 눈마저 멀어 버리고 말았다. 순종을 아름다운 덕목으로 여기는 관행에 길들여져 그릇된 결정도 은혜와 사랑으로 받아들이라고 하는 교권에 맞서, 우리는 이제 개혁의 깃발을 들어 '외치는 돌들'이 되고자 한다.

500년 전 교회를 시궁창으로 만들었던 갖가지 불법과 편법들에 맞서, 성경과 이성에 의지하여 저항의 촛불을 들었던 10월의 루터를 되새기며, 오늘 교권의 상석에 앉은 자들의 거짓된 권위와, 숫자를 숭배하는 자들의 힘의 논리와 궤변으로 진리마저 왜곡하는 비상식적 관행에 맞서 신앙과 양심의 소리를 내고자 하는 것이다.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맘몬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시대에 살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는 신앙"을 견지하고자 한다.

우리는 교회 세습을 성직매매와 함께 교회 타락의 원흉으로 간주했던 루터와 츠빙글리와 칼뱅의 역사를 기억한다. 오늘날에도 교회 세습은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이용해 치부했던 성직매 매의 극단적 모습일 뿐이다. 교회를 하나님의 것으로 돌리고 권세를 하나님께 돌리고자 하는 우리는 모든 형태의 교회 세습에 단호히 거부한다. 교회를 지키기 위함이라는 명분으로 그릇된 결정에 공의가 짓밟힐 때, 우리는 다시 우리 신앙의 선배인 본회퍼와 주기철과 손양원을 기억한다. 더 이상 진리가 포박당한 채 영문 밖으로 끌려가는 일이 없어야 하기에 신사참배의 아픈 역사를 곱씹으며, 위법하고 잘못된 결정에 분연히 거부의 몸짓을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저항과 복종! 그렇다. 우리는 복종하기 위해 저항한다. 하나님의 말슴에 복종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한 왜곡된 관행에 저항한다. 이는 사탄의 세 가지 유혹을 이기신 주님께 복종하는 것이며, 이 유혹을 축복으로 둔갑시킨 어둠의 사제들에게 저항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다수에 의지해 소수를 희생시키는 데 거리낌 없는 일그러진 교회 문화에 저항하는 것이며,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는' 기독교 문화를 회복하신 주님께 복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피할 수 없는 광야 길을 나섰던 세례 요한을 기억한다. 그리하여 지금의 척박한 교회 현실 속에서 '모든 골짜기를 메우고, 모든 산과 언덕을 평탄하게 하고, 굽은 것을 올곧게 하고 험한 길을 평탄하게' 하는 외치는 자의 소리로 거듭날 것이다.

신의 자리에까지 오른 목사들과 교권주의자들에 의해 세습이 자행되는 한국교회에도 교권주의자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교권주의자의 통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고, 교권주의자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진정 거룩한 교회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굴절된 영광의 길을 가라고 유혹하는 사탄의 속삭임을 거부하고, 외롭게 그러나 단호하게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우리가 나선 길의 길잡이가 되실 것이다.

2019.10.28. 
명성교회 불법 세습 허용 철회를 위한 참회 기도회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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