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차별이 나쁘다는 건 상식이다. 그런데도 차별을 금지하는 법 제정은 매번 무산된다. 보수 교계가 가장 앞장서서 입법 반대 활동을 펼쳤다. 그동안 차별금지법을 '설교 때 동성애 죄라고 하면 잡혀가는 법' 정도로만 알고 반대해 왔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10년 넘게 지연되면서 왜곡은 더 심해졌다. 온갖 허위·왜곡·과장 정보로 혐오감을 부추겼다. 반동성애 진영은 차별금지법을 기독교 신앙을 가늠하는 잣대처럼 사용했다.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해야 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기독교인은 '가짜'라는 식으로 주장해 왔다.

'차별을 금지하자'는 상식을 담은 법안이 어쩌다 '반기독교' 안건이 됐을까. 백소영 교수(강남대)는 한국교회가 당연하게 여겼던 '정상성'이 흔들린다는 위기감 때문에 차별금지법 반대 및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섰다고 진단했다.

백소영 교수(강남대)는 한국교회가 자기 정체성을 더 확고하게 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백소영 교수는 기독여민회(박노숙 회장)가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10월 24일 개최한 '과연 한국교회는 차별금지법과 함께할 수 없는가' 심포지엄 강사로 나와 이야기했다. 백 교수는 "(한국교회는) 특정 대상과 특정 사상에 대한 공포심이 있다"고 했다. 동성애·페미니즘 등을 교인들 삶을 혼란하게 하고 교회를 무너뜨리는 반기독교 세력으로 여기는 이유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신적 질서'라고 믿던 것들이 통째로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개신교인들이 더 위기의식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백소영 교수는 "사회구조상 여성주의, 성적 지향 다양화는 증가할 수밖에 없는 추세다. 이런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자기 정체성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 더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한국교회가 차별 반대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소수자들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에 있다고 백소영 교수는 말했다. '히브리' 민족은 고대 근동에서 땅도, 정착할 곳도 없이 지냈다. 자기 소유로 생산 수단도 갖지 못했던 이들이다. 보호해 줄 군주도 없이 착취당했고, 어떤 법적 보호도 받을 수 없는 민족이었다. 이들은 공동체를 세우면서 고대 근동 여느 나라와는 다른 법을 만들었다. 백 교수는 이 부분을 주목하면 좋겠다고 했다.

"안전을 위해 부를 축적하지 말라. 창조주인 내가 설마 일용할 양식을 주지 않겠느냐? 만나의 교훈을 배워라. 이건 새로운 사회 원리다. 매일 내릴 터이니 필요한 만큼만 거두고 축적하지 말아라. 부와 권력의 축적은 또다시 수직축의 위계 구조를 만든다.

그래도 인간인지라 수직적 사회가 만들어지거든, 7년에 1번(안식년), 50년에 1번(희년)은 하나님의 통치 질서를 기억하며 다시 수평적 관계를 사회 안에 가져오는 결단과 선택을 하라. 능력 없어 너의 종 되었던 이웃은 다시 가족에게 돌려보내고, 도저히 갚을 상황이 아닌 이웃의 빚은 탕감해 주어라. 같이 살아야 할 것 아니냐. 생명을 창조하며 불어넣었던 나의 숨(루아흐)을 그들이 제대로 쉴 수 있도록 제발 숨 좀 돌리게 해라.

사람만이 아니다. 가축도 땅도, 우주 만물이 살맛 나는 수평적 질서를 이 땅에 도래케 해라!'"

백소영 교수는 모세오경 후반부를 위와 같이 요약했다. 소수자인 히브리 민족이 만든 공동체 질서는 이웃 나라와 달랐다. 백 교수는 "차별을 고착화하지 말라는 것이다. '함께 살아라. 루아흐, 호흡, 숨은 거룩하니 어느 누구도 빼앗을 권리가 없다. 내일 숨을 다시 쉬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한 세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감히 신적 질서라고 말하지 말라.' 이것이 모세 법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차별금지법은 이웃을 향한 다양한 차별을 해소한다는 데서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 백소영 교수는 "모세 법의 핵심을 지금 21세기에는 어떤 현대 법으로 적용할 수 있을까. 이 부분이 우리 과제다. 한국교회가 어떤 방식으로 차별금지법에 대응할 것인가는 제정 운동에 참여 혹은 반대 입장을 정하는 '선택'이 아닌, 어떤 신앙을 추구하는지의 문제"라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미류 공동위원장은 한국교회가 한국 사회 차별 해소를 위해 어떻게 동참할 수 있는지 고민하면 좋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하는 인권운동사랑방 미류 활동가 역시 보수 교계가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에 앞장서 왔는데, '기독교'라는 종교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미류 활동가는 "성소수자 혐오는 종교의 것이 아니다. 기독교가 다수를 차지하는 나라 중에도 성소수자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 있다"고 말했다.

미류 활동가는 "성소수자 혐오를 강화하는 건 종교가 아닌, 종교의 외피를 입고 혐오를 정당화하는 혐오 선동 세력과 혐오 세력에 사회적 지분을 내주는 정치권, 차별이 존속될수록 이득을 얻는 세력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동성애나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혐오 발언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의 삶을 지울 수 있는 행동이다. 미류 활동가는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 따로 있고 한국교회가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차별을 금지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교회가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차원에서 차별금지법을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독여민회가 주최한 심포지엄에는 70여 명이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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