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세미나에서 '한국 사회의 변동과 교회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이에 대한 개인적 후기를 소셜미디어에 올린 후 지인들에게 피드백을 받았다. 나의 후기는 복음을 실천하는 방법에서 '복음주의적 전략'과 나의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한 것이었다. 복음에 대한 분명한 헌신이 세상을 변혁하는 그리스도인을 만든다기보다는 빛처럼 소금처럼 사는 그리스도인이 진정한 복음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취지였다.

언뜻 말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겠으나, 실제로 적용되면 그 차이가 극명하다. 중산층 지역을 거점으로 삼아 성장해 온 한국의 일부 '복음주의' 교회들이 아직도 건재(?)하여 복음의 효용을 교세 확장으로 변질하거나 혹은 실상 사회적 영향력을 공유하는 거대한 동우회 세력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개혁과 변혁이라는 기치를 내걸고는 세속적 욕망을 위장하고 있다는 날선 비판이 서린 것이 말장난의 본의이다.

복음을 이해하는 방식, 그것을 실천하는 방식에 대한 이견은 언제나 긴장과 견제를 반복하며 지금껏 신학의 역사, 교회의 역사를 이끌어 왔다. 화해의 명분에 따라 조화라 말할 수 있겠으나, 한국교회의 현실적 조건을 고려할 때 그것은 오히려 경쟁과 갈등을 통한 역설적 화해라 하겠다. 그 화해야말로 신의 영역이니 그러하다. 나에게 더 절실한 것은 역시 '적실성', 즉 그 방향이 지금 오늘 여기에서 정당한지 묻는 것이다.

절실함의 정당성을 어디서 찾을 것인지가 결국 내가 말하고자 하는 취지의 본의를 말할 것이다. 교재를 따라 '신자 되기'와 '구원의 이르는 길'과 '하나님나라를 사는 길'을 배우고 훈련해 제대로 익히면 빛과 소금의 삶을 살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확고한 자신감이 사실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늘 한국교회 실상을 보건대 그 허상 또한 명확히 목도되는지라 그 자신감에 반하는 우려도 깊다.

제3의 길

20세기 신학의 다른 끝에는 물론 진보 신학의 에큐메니컬이 자리한다. 가끔 당신들도 예수를 믿느냐는 비수 같은 질문에 웃지만, 교회의 현실과 신학적 명분의 이격감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지 않는다. 동원력도 동원력이지만, 일단 신자들 삶에서 유리된 진보적 신학 담론이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존심으로 버텨 낼지는 모르겠으나, 조직과 제도로 명맥만 유지하는 왜소한 영향력, 분열적 파편화에 대한 성찰이라도 가능할 것인지.

나는 어쩌면 이것이 '제3의 길'일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으로 '공공신학'을 찾았다. 20세기 말엽, 레이건과 짝을 이뤄 신자유주의 기수가 되었던 대처 수상 뒤를 이어 40대의 젊은 토니 블레어가 영국 총리가 되었다. 그가 앤서니 기든스와 함께 주창한 '제3의 길'은 신중도 좌파를 표방하며 사회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적절히 조합한 결과,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 새로운 정권을 탄생시키는 결정적 이념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실험은 오래가지 않아 병약한 실체를 드러내고야 말았다. '제3의 길'은 중산층을 보호하지도, 소외층을 구제하지도 못한 채 승자 독식의 신자유주의 체제가 강고하게 뿌리를 내리도록 명분만 제공하고 실패했다. '제3의 길'은 중도적 노선을 지향하고 양극단의 폐해를 줄여 새로운 세력의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자 하나, 역사적으로 이 중도적 노선이 성공한 사례가 적다.

그럼에도 내가 '공공신학'을 '제3의 길'로 제안하려는 이유는 그것이 중도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나의 신학은 언제나 '선택'의 의미를 지니며, 한국 사회에서는 '제3의 길'이 서구와는 사뭇 다르다 여기기 때문이다.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제3의 길'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길'로 '판(field)'을 달리하고 싶다는 것이다. 구태의연한 20세기 지형을 벗어나, 다른 시소 놀이를 시작할 새 선수들을 내세워 보자는 것이다.

'공공신학'은 서구에서 수입한 논의이니 그 기원을 따지자면 신학의 역사만큼 복잡하다. 어떤 학자들은 구약의 예언자 신학에서부터, 어떤 이는 아퀴나스와 아우구스티누스부터, 어떤 이는 종교개혁자들의 신학과 개혁신학에서부터, 또 어떤 이들은 사회 윤리와 3세계 신학에서부터 다양한 기원을 주장한다. 나는 그렇게 하려면 그냥 '기독교 사회 윤리'라 할 것이지 굳이 '공공신학'이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근대적 공론장을 전제하며, 20세기 자본주의 체제와 경쟁하는 시민사회의 대안적 세력화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고, 신학의 공공성과 교회의 공적 역할에 대한 고조되는 관심의 표명이 반영되어야 할 것이며, 기독교 사회 윤리의 신학적 동기를 공유하나 교회의 신학에서 공공의 신학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하면, 본격적인 '공공신학' 논의는 20세기 정치사회학적 변동에 응답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나의 견해다.

영국의 '공공신학'이 신학의 공공성과 공적인 본성을 주장했다면,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더 실제적으로 공공의 의제를 신학적 과제로 호흡하는 확장성을 보인다. 미국의 '공공신학'은 주로 '주류 우파'적 신학자들에게서 논의되지만, 그렇다고 근본주의적 태도를 보이거나 혹은 극단적인 이데올로기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공공의 의제들과 비신학적 자료들을 진지하게 대면하면서 과거의 주류 신학과는 일정한 방법론적 차이를 보인다.

내가 '공공신학'에 '제3의 길'이라는 의미를 애써 부여하는 것은 바로 방법론 때문이다. 이것이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주류' 신학일지 모르나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는 다른 정치적 함의를 가지게 된다. 그런 곳에서 '신학'은 본질적으로 '상황신학'이며, 교회의 역사가 시작되는 때부터 '정치신학'일 수밖에 없다. 서구와 달리 대부분 제국주의 식민지와 독재를 거친 땅에서 신학이 '주류'의 신학이 된다면 그 자체로 타락이다.

서구처럼 시민사회의 역사가 장구하고 그 자체적 문법이 건재할 경우 '공공신학'은 주류 신학의 면모를 갖출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정치적 지형에서는 신학 역시 다양한 지형과 대면하며 형성되는데, 나는 '공공신학'이 에큐메니컬과 복음주의가 직면한 시대적 유효기간 만료 상황에 응답하는 새로운 가능성이라 여긴다. 1987년 체제 이후 2017년 탄핵 정국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오늘의 광장을 보건대 이제껏 형성된 주류 신학의 자리는 더 이상 없다.

공공신학의 한국적 지형

에큐메니컬 신학은 대체로 상황적 문제의식을 반영해 왔다. 반면 복음주의 신학은 복음의 보편적 효용과 교회의 정체성을 강조해 왔다. 나는 한국교회의 주류가 복음주의를 표방하게 된 것이 교회 성장의 원동력이었다는 점을 인정하며, 지금도 그 열정과 진정성은 높이 평가한다. 다만 그 진정성이 지향하는 정치적 중립이 결과적으로 '주류-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하고, 그 열정이 실제로는 교회 성장의 욕망임을 발견하게 되는 때는 적잖이 당황하게도 된다.

'공공신학'이 에큐메니컬의 상황적 논리와 복음주의의 고백적 열정의 중간 지대에 존재하는 '제3의 길'이 된다면 곧 실패한다. 내가 '제3의 길'로 보는 이유는 오히려 에큐메니컬의 상황 인식이 지역 교회의 선교적 헌신으로 전환되는 가능성으로, 또 복음주의의 열정이 시민사회와 공론장에 대한 정치적 인식으로 전환되는 가능성으로 그 방법론을 채택하기 때문이다. 회색 지대의 신학이 아니라 다른 '판'으로서의 신학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교회 개혁이라는 의제가 중차대하나,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나뉜 거대한 갈등 구조가 교회 안에 그대로 재연되고 있는 마당에 한국 사회의 역동적 공론장을 신학의 자리로 삼지 않고서 과연 오늘의 한국교회가 직면한 내부 모순을 제대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따라서 개혁을 주장하든 복음을 외치든, 지금 가장 큰 걸림돌은 '주류-에큐메니컬-복음주의' 공론장의 기득권 세력임이 분명하다.

1970년대 신학 지형은 '3세계 신학' 혹은 '상황신학'이 강력하게 주도했다. 지금 '공공신학'으로 20세기 근대 지형의 재현을 고대한다면 시대착오적이다. 지금은 새로운 정치 지형, 종교 지형이 동시에 전개되고 있는, 대한민국 역사상 전례가 없는 신세기이다. 그들의 구호가 무엇이든 이 지형에 적절한 신학 방법론을 찾지 않으면, 그들의 시대적 정당성은 곧 담론을 소비하는 기득권의 교묘한 자기 합리화로 전락한다.

나 자신이 그 일원인 자로서 스스로 비판하고 성찰하는 것이 마땅하나, '공공신학'의 효용을 단지 '주류 신학' 혹은 '상황신학'의 연장으로 파악하고 과거의 지형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에게 깊은 충심으로 호소하는 바, 새로운 지형을 탐구하고 분석하여 신학적 대화를 감행하기에 적절한 '제3의 신학'을 환영하지 않으면 우리는 시대의 유물로 남게 될 것이라는 불안을 지울 수가 없다.

'공공신학'만이 그 역할을 감당하리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제도화한 교단/교파의 연합과 일치를 지향하며 구조적 변혁을 도모하는 예언자적 외침이 애굽을 모르고 가나안으로 향하는 새로운 세대에게는 이제 큰 울림을 주지 못한다는 인식, 또 '제자 훈련'을 하고 '교재'를 배워 단계를 밟는 '가두리양식장' 형식의 훈련이 급변하는 한국 사회의 지형과 분리되는 속도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은 솔직히 시인하자는 것이다.

교회 내부의 지형 또한 이전과 전혀 다르다. 교회 개혁 의제와 정치 개혁 의제는 교회 안에서 지지층이 일치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목회직 세습은 반대하며 교회 개혁의 필요성은 절감하나 교회 밖에서는 광화문으로 향하고, 세습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면서 교회 질서를 존중하나 교회 밖에서는 서초동으로 발길을 돌리는 이들이 주조하는 이 복잡한 '신앙과 정치' 지형의 이종교배적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20년 뒤 한국교회는 건물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일제의 탄압 아래에서 경험한 '식민지 공공성', 그리고 독재 정권에 의해 내면화된 '국가 주도형 공공성'의 오랜 관습을 걷어 내고 서서히 차오르는 시민 주도형 공론장에 한국교회가 참여하려면, 그 지형의 복합적 변화를 이해하는 방법론이 필요하다고 본다. 나는 '제3의 길'로서 '중도-우파'의 회색적 타협 내지는 양비론에 기대는 기회주의적 발상이 아닌 '새 판에서 신학하기'를 시도해야 한다고 믿는다.

해외로 나가서 보면, 사실 이미 신학적 지형은 오래전에 변했고, '공공신학'도 '주류-우파'의 담론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그대로 가져다 쓰면 또 엘리트들의 전유물로 담론만 소비하는 일회용 유희로 전락을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한국의 공론장 지형 변동에 따라 시민사회의 토론에 참여하는 '공공신학'은 한국적 '상황 인식'과 지역 교회의 '선교적 열정'으로 신학의 새 지형을 형성하지 못하면 또 하나의 유행처럼 곧 소멸할 것이다.

성석환 / 도시공동체연구소 소장,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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