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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교회 세습과 갈라디아서의 '다른 복음'

'다른 복음'을 향한 바울의 저주

배상필   기사승인 2019.10.01  11:5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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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탈감, 분노, 우울감의 연속이다. 명성교회가 합법적으로 세습할 길이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김태영 총회장) 104회 총회 마지막 날 9월 26일에는 직장에서 일하면서도 문득문득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성전에서 장사하고 환전하면서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던 상인을 내쫓고 상을 엎으실 때의 예수님 심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예수님뿐만 아니라 모진 핍박과 박해 가운데서 인내로 사명을 감당했던 바울도 사역을 하다가 분노하고, 이를 편지로 표출하기도 했다. 그 서신이 바로 갈라디아서다.

갈라디아서는 바울의 모든 서신 중 '가장 분노한 편지'(the angriest letter)로 알려져 있다. 갈라디아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하는 바울의 복음에 뿌리를 내린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다. 믿음만으로는 부족하고 할례를 받아서 유대인이 되어야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거짓 형제들 때문에 혼란에 빠진 교회를 바로잡기 위해 바울이 쓴 것이다. 갈라디아서를 통해 당시 이슈가 되었던 할례 문제와 명성교회 세습 문제를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한다.

첫째로, 할례와 세습(승계)은 비본질적 문제(Adiaphora)다. 바울은 할례와 할례로 대표되는 율법에 적대적(갈3:2, 3:5, 3:13, 5:2, 5:4)이지만, 한편으로 할례받는 것이나 받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중립적 입장(갈 5:6, 6:15)을 취한다.

고린도전서 7장 18-20절은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할례받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요, 할례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구절을 보면 바울에게 할례는,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되는 비본질적 문제다. 갈라디아 교회에서 바울이 할례를 문제 삼은 것은 거짓 형제들이 이방인에게 할례를 강요(갈 6:12)하는 상황 때문이지, 할례를 받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거나 하는 할례 자체 문제는 아니었다(바울 자신도 할례를 받았다 - 빌 3:5).

세습(승계) 역시 가능하다. 미자립 교회 목회자가 자식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부모나 자식이나 박수받아 마땅할 일이다. 명성교회 세습은 세계 최대 장로교회의 돈과 권력이 대물림되는 상황이 있기에 문제다. 목회자가 많아지고, 사역지가 점점 줄어드는 현실에서 부와 명성이 보장되는 초대형 교회 담임목사직을 아들에게 물려주었다는 사실이 문제인 것이다. 이런 상황 가운데 명성교회 세습은 갈라디아 교회에 있는 할례처럼 금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할례와 명성교회 세습은 차별의 문제다. 갈라디아서 2장에서 바울은 베드로가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다가 할례자들이 오자 비난받을까 두려워 식사 자리를 떠난 사건을 언급한다. 안디옥에서 이방인과의 교제를 회피하며 그들을 차별한 베드로를 책망하면서, 동시에 할례를 강요하며 구원을 위해 이방인에게 더 무거운 짐을 부과하는 거짓 형제들의 이방인 차별 행위를 책망한다.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본질적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같다고 선언한다(갈 3:28).

목회 지망생에 등급이 있다고 한다. 성골, 진골, 백골이다. 성골은 목사를, 진골은 장로를 아버지로 둔 경우이고, 백골은 아무 배경이 없는 경우다. 명성교회 세습은 수많은 백골 목회 지망생을 차별하는 행위다. 사회의 윤리적 기준이 되어야 할 교회가 부모 도움 없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이 땅의 수많은 흙수저 청년에게 자괴감을 가중하는 행위다.

세 번째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중요하다(5:6). 삶으로 증명되는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을 향해 할례받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바른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죄를 짓지 않는 것(갈 5:19-21)과 성령의 열매(갈 5:22-23)를 강조한다.

과연 명성교회 세습을 사랑의 삶으로 드러나는 믿음의 행위라고 볼 수 있을까. 모든 율법의 완성은 '이웃 사랑'이다(갈 5:14). 사랑의 본질은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이다. 예수님도 십자가상에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것처럼, 우리도 형제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라고 요청하신다(요일 3:16). 십자가상에서 자기 비움(kenosis) 정신을 실천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그 삶을 따르라고 요청하신다. 수많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초대형 교회 담임목사직을 십자가의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탐욕의 길이고, 과시의 길이고, 자랑의 길이다.

명성교회 세습은 표면적으로는 명성교회가 살고 예장통합 교단이 사는 길일지 모른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한국교회를 죽이고, 예수님을 다시 한번 십자가에 못 박는 행위다.

교회 이름으로, 기독교 이름으로 명성교회 세습을 정당화하고 지지하는 모습을 온전한 복음 선포라고 볼 수 있을까.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

사도 바울이 21세기에 온다면 명성교회 세습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초대형 교회 세습을 정당화하는 '다른 복음'을 향해 저주를 퍼부어서라도 참된 복음의 가치를 지키려고 호소하지 않을까. 한국교회에 속한 우리 모두 곱씹어 볼 일이다.

배상필 / 가정의학과 의사로, 서초아가페의원 원장이다. 안식년 기간(2015~2018년) Vancouver School of Theology에서 MATS(Master of Arts in Theological Studies)를 했고, 지금은 언덕교회 집사로 교회에서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외부 기고는 <뉴스앤조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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