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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로공사 직접 고용' 외치는 톨게이트 해고 노동자들 "3개월 만에 주일예배, 너무 감사하다"

22일째 김천 도로공사 본관 점거…용역·경찰 감시 속 인권침해 심각

이은혜 기자   기사승인 2019.09.30  17: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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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로공사 본사를 점거 농성 중인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이 예배하기 위해 로비에 모였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오늘 목사님들이 예배드리러 와 주셨습니다. 함께하실 분들 중앙으로 모여 주세요."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두세 번 방송하자, 금세 본관 로비가 사람들로 북적였다. 참석자들은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와 함께하는 주일예배' 주보를 손에 들고 대열을 맞춰 앉았다. 임시 강대상 위에 도자기로 만든 십자가를 세웠다. 예배 인도를 맡은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는 "여러분과 함께 예배하러 왔다"고 운을 뗐다.

경상북도 김천혁신도시 한국도로공사 본관에서 22일째(9월 30일 기준) 농성 중인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들을 위한 주일예배 현장이었다. 장기화하는 점거 농성에 지친 개신교 노동자들이 이곳에서라도 주일에 예배할 수 없겠느냐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에 문의했다. 교회협은 급한 대로 정의평화국 박영락 부장, 임보라 목사, 대구 교회협 박성민 목사를 현장에 파송했다. 농성자 200여 명 중 60여 명이 9월 29일 열린 예배에 참석했다.

대법 '직접 고용' 판결에도 꼼수
구사대까지 동원해 노동자 압박
경찰은 농성장 봉쇄, 언론 통제
각종 질환 달고 사는 노동자들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은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섬'에 갇혀 있었다. 이들은 9월 9일부터 한국도로공사 본사 본관을 점거하고 빌딩 안에서 살고 있다. 외부인은 접근이 쉽지 않다. 정문 보안 요원을 지나 경찰 허락을 받아야만 농성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본관 입구는 경찰이 막고 있다. 건물 안과 밖에 있는 노동자들은 매일 한 차례 이곳에서 만나 서로 안부를 나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막다른 길에 몰린 노동자들 투쟁이 그렇듯이,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도 본사의 불합리한 일들에 거듭 저항하다가 지금 상황이 됐다. 한국도로공사는 '경영 혁신', '경영 효율성' 등을 명목으로 최근 20년간 서울 인근 톨게이트를 하나씩 외주화했다. 요금 수납 노동자들은 어느새 용역 업체 직원이 돼 있었다. 최저임금을 받았고, 고용은 불안정했다.

노동자들은 2013년부터, 한국도로공사가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취지로 차례차례 소를 제기했다. 2015년 1심, 2017년 2심 모두 승소했다. 한국도로공사는 직접 고용은 힘드니 통행료 수납 자회사를 만들어 노동자들 소속을 자회사로 변경해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자회사도 대부분을 '기간제' 노동자로 채웠다.

해고 노동자들 중 일부는 자회사로 소속을 전환해 주겠다는 안을 거부하고 직접 고용을 계속 주장했다. 한국도로공사는 전환을 거부한 이들을 6월에 집단 해고했다. 그때부터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은 경부선 서울 톨게이트 캐노피 위에서 고공 농성을 벌였다.

사법부는 노동자들 손을 들어 줬다. 대법원은 8월 29일, 한국도로공사가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캐노피 위에서, 청와대 앞에서, 전국 각지에서 농성 중인 노동자들은 환호했다. 같은 사안으로 현재 1·2심 재판에 계류 중인 노동자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본관 내부 모습. 노동자들은 바닥에서 생활하며 경찰과 동거 중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하지만 기쁨도 잠시. 한국도로공사 이강래 사장은 대법원 판결에 해당하는 1차 소송단 당사자 300여 명만 직접 고용하겠다고 했다. 부당 해고를 당한 사람은 1500여 명이었다. 게다가 한국도로공사는 이들에게 톨게이트 요금 수납이 아닌 버스 정류장, 졸음 쉼터 환경 정비 등 생소한 업무를 맡기겠다고 밝혔다. 고령 혹은 장애인도 다수 포함된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은 이 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노동자들은 9월 9일 한국도로공사 본사를 기습 점거하고 싸움을 시작했다. 시작할 때만 해도 20일 넘게 이어질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강래 사장은 협상 테이블에 나오는 대신 이들을 고립하는 방법을 택했다. 구시대의 유물 '구사대'求社隊까지 부활시켜 노동자들을 탄압했다. 한국도로공사는 본관 전기를 일부 끊고, 생리대 등 필수 물품 반입을 금지하고, 환풍기 가동도 멈췄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농성 중인 노동자들 인권을 보장해 줘야 한다는 긴급 성명을 9월 26일 발표했다.

경찰은 농성장 입구에서 외부인 통제를 철저히 막고 있다. 한국도로공사는 언론 통제에도 나섰다. 한국도로공사에 등록된 언론사가 아니면 출입하지 못하게 했다. 김천 노동자들 소식을 뉴스에서 잘 접할 수 없는 이유다. 경찰은 이 같은 방침이 잘 지켜지도록 적극 협조하고 있다.

"목사님, 센 발언은 좀 자제해 주시라"
초근접 거리에서 노동자 지켜보는 경찰들

종교인이 농성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녹록지 않았다. 도로공사 정문은 보안 요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본관 건물로 들어가려면 한 바퀴 빙 둘러 뒷문으로 가야 했다. 길가에는 내부 점거 농성에 함께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노숙 농성을 하는 텐트가 죽 늘어섰다. 기거하는 이들의 옷가지, 생필품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본관 입구는 경찰이 막고 있었다. 박 목사 일행이 도착한 시간은 마침 안에 있는 노동자들과 바깥 노동자들이 만나 필요한 물품과 안부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이들은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입구를 막은 경찰들 틈으로 손을 맞잡고 안부를 물었다. 추가 인원이 내부로 들어가는 건 허락되지 않았다.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들이 점거 중인 본관으로 향하는 길, 연대하는 이들이 기거하는 텐트와 그들의 옷가지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경찰에게 신원을 밝혀야 했다. 내부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경찰들은 "목사님들, 센 발언은 좀 자제해 주시라"는 말과 함께 본부 건물 안으로 들어가도 된다고 손짓했다.

현관문을 통과하자 믿기 어려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농성자 대부분이 여성인데도, 경찰들은 팔 하나만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의자를 놓고 앉아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농성자들은 박스를 쌓거나 얇은 칸막이 등으로 임시 가리개를 만들었다. 힘없는 얼굴로 경찰 눈을 피해 칸막이 뒤에 기대 앉거나 누워 있었다.

"나 소화제 좀 줘 봐". 한 노동자가 구석에 쭈그려 앉으며 말했다. 자세히 보니 간이 약국이다. 각종 상비약이 구비돼 있었다. 그는 활명수를 하나 건네 받더니 단숨에 들이켰다. 그래도 시원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농성자들은 각종 질환을 달고 산다. 하루하루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폐쇄된 공간에서 경찰의 감시를 받는 상태로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다 보니 힘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노동자들은 호흡기·피부 질환에 시달린다.

농성장 한편에는 상비약이 차곡차곡 쌓인 작은 책장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이곳에 와서 필요한 약을 가져갔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임보라 목사 "여러분이 역사의 창조자"
예배하기 원하는 크리스천 농성자들
"약자 되어 보니 사회 부조리 보여"

'주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 영원토록 주를 찬송하리라 / 소리 높여 주께 영광 돌리며 / 약속 믿고 굳게 서리라 / 굳게 서리 영원하신 말씀 위에 굳게 서리 / 굳게 서리 그 말씀 위에 굳게 서리라'

경찰들의 시선에도, 예배 참석자 60여 명은 익숙한 몸짓으로 몸을 좌우로 흔들며 찬양을 불렀다. 기도 시간에도 간간이 '아멘' 소리가 튀어나왔다. 함께 시편 146편 3-9절, 디모데전서 6장 6-10절, 누가복음 16장 30-31절을 읽었다. 임보라 목사가 이를 본문으로 '모든 악의 뿌리'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임보라 목사는 "하나님은 약자들, 호소하는 여러분과 함께하시는 분"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임보라 목사는 성경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가 명확하다고 했다. "그렇게 못된 마음으로, 대법원 판결이 나도 '아, 나는 모릅니다'라는 태도를 취하는 악인들의 행동은 멸망으로 가는 길이다. 성경에 비록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관 로비를 점거하고 투쟁 중인 노동자'라는 단어가 정확하게 적혀 있지 않지만, 하나님은 바로 약자들, 호소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분이라고 시편에서 말하고 있다. 여러분 힘 받으시고, 위로받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끝이 안 보이는 투쟁을 이어 가며 힘겨워하는 노동자들에게 임보라 목사는 "여러분이 바로 새 역사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라고 위로했다.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 억눌리고 낮은 곳에 있는 이를 일으켜 세우는 사람, 하나님 창조의 뜻을 담아 그렇게 사는 사람들 덕에 세상은 변해 왔다. 여러분이 또 다른 역사를 만들고 있다. 우리의 외침이 옳다"고 말했다.

크리스천 노동자들은 주일에 예배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박성민 목사 축도로 예배는 끝났다. 하지만 몇몇 농성자는 자리를 뜨지 못 하고 조용히 기도를 이어 갔다. 토평톨게이트 팀장이던 이민아 씨는 농성 전 가족들과 함께 개척교회를 준비하던 크리스천이었다. 7월 1일 농성에 합류한 이후로 주일에도 예배하지 못했다. 그는 "지금 3개월 만에 예배했다. 물론 주님이 교회에만 계시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함께 예배할 수 있어 너무 감사하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 씨는 노동운동 같은 건 잘 모르고 살았다고 했다. "이전까지는 솔직히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 나조차도 약한 자를 돌아보지 못했는데, 내가 약자가 돼 보니까 뼈저리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동안 사회에 얼마나 부조리한 모습이 많았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경찰의 통제로 농성장에 계속 머무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후 가톨릭 미사가 이어지는데, 경찰은 농성장을 방문한 인원이 모두 바깥으로 내보낸 뒤에야 다음 방문자들을 들여보냈다. 밖으로 나오니 가톨릭 성직자들이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일예배에 참석한 목사들은 외부 농성장에서 예배하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또 한 번 예배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우원식 위원장)가 양쪽을 중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사측은 적극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에 보다 못한 시민사회 단체들이 나섰다. 135개 단체가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 직접 고용과 한국도로공사 자회사 정책 폐기를 위한 '시민사회공동대책위원회'(시민사회공대위)를 9월 30일 결성했다.

여성·청년·장애인·종교·인권 단체 등으로 구성된 시민사회공대위는 "톨게이트 요금 수납 여성 노동자들의 절박한 호소에 우리 사회가 함께해 주실 것을 바란다"고 출범 취지를 밝혔다. 이들은 10월 5일 노동자들을 위해 '희망 버스'를 조직해 경북 김천 현장으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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