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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정체성 잃어버린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비극

[박태순의 교양으로 읽는 성서] 왕조시대⑫ 타작마당의 티끌 이스라엘

박태순   기사승인 2019.10.04  13:4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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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아하스(기원전 818~802)

예후 아들 여호아하스는 17년간 북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이 시대에 다메섹의 지배와 북이스라엘 혼란은 최고조에 달하게 됩니다. 여호아하스는 악을 행하고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갔기에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아람 하사엘의 손과 그 아들 벤하닷(벤하닷 2세?) 손에 붙이셨다고 말합니다. 벤하닷에 의해 이스라엘은 "타작마당의 티끌같이" 되고 맙니다.

이스라엘이 징벌을 받는 장면은 '기소와 선고' 공식을 따릅니다.

기소: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고 거기서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왕하 13:2)."

선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노하사 늘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 넘기셨더니(왕하 13:3)."

기소: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여로보암 집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그 안에서 따라 행하며 또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을 그냥 두었더라(왕하 13:6)."

선고: "아람 왕이 여호아하스의 백성을 멸절하여 타작마당의 티끌같이 되게 하고 마병 오십 명과 병거 열 대와 보병 만 명 외에는 여호아하스에게 남겨 두지 아니하였더라(왕하 13:7)."

이러한 공식은 북이스라엘의 왕을 묘사하는 일반적인 구절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구원자가 등장합니다. 여호아하스의 간구를 여호와가 '듣고', '보셨기' 때문입니다.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 이는 그들이 학대받음을 보셨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에 구원자를 이스라엘에게 주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아람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 전과 같이 자기 장막에 거하였으나(왕하 13:4-5)."

이스라엘의 구원자

위 구절에서 구원자는 누구일까요?

후보자는 여로보암 2세 또는 엘리사, 아시리아 왕 아다드-니라리 3세(Adad-nirari Ⅲ, 기원전 811~기원전 783)이나 하맛의 자키르(Zakkrur, 또는 자쿠르)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데 구원자라고 불릴 수 있을까요?

포로 시대를 끝내고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을 명령한 바사(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은 '목자'(사 44:28),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 불립니다(이사야 45:1). '기름 부음 받은'은 '메시아'를 옮긴 말인데, 이렇게 보면 구원자가 꼭 이스라엘 사람이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 아람 하맛(Hamat)의 자키르

1904년 알레포에서 남동쪽으로 40km 떨어진 오늘날의 아피스(Afis)에서 비문이 발견되었습니다. 기원전 8세기 초 것으로 추정되는 이 비문에서, 자키르는 자신을 '하사엘의 아들 바르하닷'(구약성서의 벤하닷)을 쳐부수었다는 이야기와 그가 아다드 니라리 원정 이전이나 이후에 아람인들과 동맹을 맺었다는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자키르는 방어자 입장에 있었습니다. 바르하닷(벤하닷)과 그의 동맹군은 반-아시리아 동맹에 가담한 자키르를 공격합니다. 자키르가 이들과 싸우는 동안 북이스라엘이 일시적으로 다메섹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는 있었겠지만 그를 '구원자'라고 부르기에는 좀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하맛과 루아쉬의 왕 자키르가 (그의 신) 일루-웨르를 위해 세운 석비.

나는 하맛과 루아쉬의 왕 자키르다. 나는 겸손한 사람이며, 베엘샤마인이 (나를 도와) 내 곁에 섰다. 베엘샤마인이 나를 하타리카(하드라크)의 왕이 되게 했다. 아람 왕 하사엘의 아들 바르하닷이 열 명의 동맹 왕들 중 다음의 일곱 왕들과 함께 나를 공격했다. 바르하닷과 그 군대; 바르구쉬와 그 군대; 길리기아의 왕과 그 군대; 움크의 왕과 그 군대; 구르굼의 왕과 그 군대; 사말의 왕과 그 군대; 밀리드의 왕과 그 군대."

자키르 비문은 '하사엘이 바르하닷(벤하닷)의 아버지'("아람 왕 하사엘의 아들 바르하닷")라는 사실을 언급해 열왕기하 13장 1-8, 24-25절의 역사성을 확인해 줍니다.

"아람의 왕 하사엘이 죽고 그의 아들 벤하닷이 대신하여 왕이 되매(왕하 13:24)."

아다드-니라리 3세

아시리아 왕 아다드-니라리 3세의 석비를 1967년 지금 이라크의 알-리마의 한 성소에서 발견했습니다.

이 석비는 이스라엘이 아다드-니라리 3세에게 조공을 바쳤다고 기록하는데, 아마도 기원전 796년쯤으로 요아스왕 시대였을 것입니다.

아시리아의 부흥을 이룬 아다드-니라리 3세는 서쪽 다메섹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와 전설적인 그의 아내 세미라미스(삼무라마트)는 시리아 정벌을 나서게 되고 다메섹과 그의 동맹국들은 다시 한번 힘을 모아 연합군을 꾸립니다. 다메섹과 그 연합군이 아다드-니라리 3세와 전쟁을 벌이는 사이 북이스라엘은 다메섹의 억압에서 벗어났을 것입니다.

"…해가 떠오르는 실루나 산부터, 사반, 엘리피, 하르하르, 아라지아쉬, 메수, 메대인들의 나라, 기질분다 전역, 문나, 페르시아, 알라브리아, 압다다나, 나이리 전역, 저 멀리 피트후 산지에 있는 안디우 전역, 두로, 시돈, 이스라엘, 에돔, 블레셋, 해가 지는 큰 바다 해변까지, 내가 모든 나라들을 내 발 앞에 항복시켰고, 그들에게 공물을 부과했다. … 나는 다메섹 왕 마리(Mari)를 공격했다. … 그의 왕가로부터 은 2300달란트, 금 20달란트, 철 5000달란트 등을 받았다…"

이 석비에 따르면 북이스라엘뿐 아니라 다메섹, 두로, 에돔, 블레셋 등 많은 나라가 아시리아에 정복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이 다메섹의 억압에서 벗어난 것은 다행이었지만, 동시에 아시리아 지배 아래 들어갔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엘리사

엘리사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면(열왕기하 2장; 4:1~8:5), 아람-다메섹인들이 상습적으로 이스라엘을 습격해 사람들을 노예로 끌어가는 일이 자주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왕하 5:2)."

그러나 이스라엘의 대책은 허술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저 아람인들을 피하는 것뿐이었는데(6:8-23), 사마리아마저 한 번 포위를 당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기도 합니다(6:24-7:20). 이 이야기에서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의 믿을 만한 조언자요, 예언자였습니다. 여호아하스 아들 요아스가 왕이 된 이야기(13:10) 이후 엘리사가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아(13:14-21), 엘리사가 구원자 역할을 충분히 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13:5의 '구원자'는 엘리사일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요아스(기원전 802~787)

여호아하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요아스는 벤하닷을 세 차례 이기고 하사엘에게 빼앗겼던 성읍을 되찾아 옵니다.

열왕기하 13장은 여호아하스와 요아스의 행적에 관해 간략하게 언급합니다. 아람에 대한 압제 및 요아스의 승리를 이야기합니다.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서 성읍을 다시 빼앗으니 이 성읍들은 자기 부친 여호아하스가 전쟁 중에 빼앗겼던 것이라 요아스가 벤하닷을 세 번 쳐서 무찌르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더라(왕하 13:25)."

북이스라엘이 다메섹과 밀고 밀리는 혼잡한 상태에 있었는데도, 남유다의 아마샤는 북이스라엘을 침략합니다(14:8-14). 두 왕국은 원래 '이스라엘' 민족이었으나, 같은 민족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처럼 행동합니다. 유다 왕 아마샤는 싸움을 걸어옵니다.

"아마샤가 예후의 손자 여호아하스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오라 우리가 서로 대면하자 한지라(왕하 14:8)."

요아스는 그를 점잖게 타일렀으나 아마샤는 충고를 듣지 않고 이스라엘을 침략합니다.

요아스는 벧세메스 근처의 전투에서 아먀샤를 무찌른 뒤, 예루살렘으로 진군하여 성벽의 상당 부분을 부수고 인질들을 잡았으며 성전과 왕궁 곳간을 탈취합니다.

"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금 은과 모든 기명을 탈취하고 또 사람을 볼모로 잡고서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왕하 14:14)."

한 민족의 정체성과 동질성을 잃은 두 나라의 비극을 단면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이 둘의 전쟁은 결국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어 후손들에게 반면교사로 남게 됩니다.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그의 업적과 또 유다의 왕 아마샤와 싸운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왕하 14:15)."

*팟빵 '에르고니아 라디오' 채널 바로 가기: http://www.podbbang.com/ch/12827
*유튜브 채널 '에르고니아' 바로 가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Pw8sxRrpaJba1RXI97GwSA
박태순 / 새들녘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신학 아카데미 에르고니아(http://ergonia.org)에서 신학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참고 문헌

1) John Gray, 『열왕기하』, 『국제성서주석』, 한국신학연구소 역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2)
2) J. Maxwell Miller and John H. Hayes, 『고대 이스라엘 역사』, 박문재 역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4)
3) James B. Pritchard, 『고대 근동 문학 선집』, 김구원 외 4인 역 (서울: CLC, 2016)
4) 김영진, 『고대 근동의 역사 문헌』 (서울: 한들출판사, 2005)
5) Walter Brueggemann, "Stereotype and Nuance: The Dynasty of Jehu," The Catholic Biblical Quarterly Vol. 70, No. 1 (January 2008):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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