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6일. 비통한 날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김태영 총회장) 104회 총회에서 명성교회수습전권위원회(채영남 위원장)가 낸 말도 안 되는 수습안이 통과됐다. 독소 조항이 있는데도 총대 1204명 중 920명이 수습안에 찬성했다. 총회는 사실상 명성교회 손을 들어 주었다. 덕분에 온종일 침울했다. 목에서는 욕설이 튀어나오고 손과 다리에는 힘이 빠졌다. 수업을 듣는 내내 수습안 결의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머릿속에서 감정을 걷어 내고 생각했다. 수습안 결의는 분명한 사실이다. 총회는 명성교회에 세습의 길을 열어 주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과거,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유신헌법이 선포됐다. 1972년 대통령 특별 선언문을 발표하고 위헌적 절차에 의한 국민투표로 유신헌법이 발효됐다. 이에 부산과 마산 시민들은 유신 독재 체제에 맞서 저항운동을 펼쳤다. 12·12 군사 반란으로 군부를 장악한 전두환은 1980년 5월 17일 시국을 수습한다는 명목 아래 비상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에 광주시민들은 계엄령 철회와 독재 반대를 위해 피를 흘렸다. 시민들은 후임 대통령 역시 간접선거로 뽑겠다는 1987년 4·13 호헌 조치에도 맞서 들고일어났다. 이런 역사 가운데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를 포함한 많은 민주 투사가 고문당하고 죽임을 당하기까지 했다. 이것이 바로 부모님 세대가 보여 준 모습이다. 먼저 길을 걸어간 선배들은 악법에 맞서 싸웠고, 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피를 흘렸으며, 목숨까지 잃었다. 법으로 정했다 할지라도 그 법이 악법이라면 그에 맞서 끝까지 저항했다.

104회 총회에서 통과된 수습안은 명성교회 불법 세습을 용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떻게 해서든 명성교회를 살리기 위해 경악할 만한 내용을 절충안이라고 내놨다. 그뿐 아니라 이번 결정에 대해 그 누구도 "고소, 고발, 소 제기, 기소 제기 등 일절 이의 제기를 할 수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조항까지 포함하며 더 이상의 논쟁을 거부했다. 총대 중 76%의 찬성으로 악법이 법으로 통과되는 순간이었다. 불의가 정의를 집어삼키는 순간이었으며, 한국교회, 특히 예장통합에 시한부 선고가 내려진 순간이었다.

장신대 신학생들은 예장통합 104회 총회 기간에, 총회가 열리는 포항 기쁨의교회 예배당 맞은편에서 시위를 진행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21세기 민주주의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는 이 결정을 따를 것인가. 이 말도 안 되는 수습안이 총회에서 통과됐다고 해서 이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총회가 결의했다고 해서 불의가 자행되는 것을 지켜만 볼 것인가?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배우지 않았다. 우리는 불의에 맞서라고 배웠고, 악법에 저항하라고 배웠고, 정의를 바로 세우라고 배웠다. 우리의 부모님으로부터, 전 세대로부터, 선배들로부터, 그리고 성경으로부터 배웠다. 악법은 법이 아니다. 악법은 그저 악일 뿐이다. 우리는 이 수습안 통과에 대해, 이 악법에 저항해야 한다. 악에 맞서 싸워야 한다. 과거 우리나라의 정의와 자유를 위해 국민들이 보여 주었던 그 뜨거움을, 정의를 위한 그 열정을 다시 한번 재연할 때다.

영광의 그 시절을 기억하자. 악법에 맞서 싸웠던, 정의를 위해 피 흘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그 시절을 기억하자. 우리 역시 불의에 맞서 싸우자. 힘이 빠지는 건 사실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다 그만두고 싶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렇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누군가의 말처럼 예장통합은 죽었을지도 모른다. 예수가 주인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주인이 돼 버린 예장통합은 이번 총회로 완전히 사형선고를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나라는 죽지 않았다. 우리가 꿋꿋이 버티는 한 하나님나라는 죽지 않는다. 비록 우리가 서 있는 그곳이 교회 안이 아니라 할지라도, 불의에 저항하는 우리가 있는 한 하나님나라는 죽지 않는다. 영광의 그 시절을 기억하며 다시 한번 정의를 위해 일어서자.

결의 철회, 세습 반대.

신비롬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신학과 3학년

외부 기고는 <뉴스앤조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