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통합 총회가 세습금지법을 '잠재'웠다. 명성교회를 위해 '수습안'을 통과시켰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명성교회가 교단법을 어기고도 특혜를 받게 됐다. 명성교회수습전권위원회(채영남 위원장) 수습안에 따라, 명성교회는 재심 판결을 수용하고 임시당회장 파송을 1년 여간 받아들이면 된다. 대신 총회는 2021년 1월 김하나 목사를 재청빙할 수 있게 길을 열어 줬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김태영 총회장) 총대들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명성교회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명성교회 손을 들어 준 법리부서(재판국·헌법위·규칙부)들 보고를 모두 물리쳤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명성교회에 대한 여론은 뒤집어졌다. 예장통합 104회 총회 마지막 날인 9월 26일, 총대들은 1204명 중 920명 찬성(76.4%)으로 수습안을 받아들였다.

명성교회 수습 방안을 내는 일은 총회장을 지낸 채영남 목사가 도맡았다. 채 목사는 104회 총회를 앞두고 명성교회 김삼환 원로목사를 직접 만나 총회를 상대로 사과의 뜻을 밝혀 달라고 요청했다. 대신 총회 차원에서 명성교회가 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김삼환 목사는 총회 하루 전날 9월 22일에 입장문을 발표했다. 또 총회 둘째 날인 9월 24일 총회 석상에 깜짝 등장해 "교단이 명성교회를 품어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후 분위기는 명성교회 쪽으로 기울었다. 당시 기자와 만난 한 총대는 "통합 교단은 두 번 연속 나무라지 않는 특징이 있다. 감정을 흔드는 어른 특유의 발언으로 반대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교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삼환 목사가 직접 총회 석상에 섰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104회 총대들 사이에서는 '명성교회 세습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인식보다는 '어떻게든 이번 총회에서 명성교회 문제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총대들도 많이 피곤해하고 있다. 어떻게든 끝을 내야 한다"는 김태영 총회장의 취임 기자회견이 총회 분위기를 대변했다.

채영남 목사는 총회 마지막 날 수습안을 공개하기 전, 더는 총회가 명성교회 문제로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데 형제들끼리 싸우고, 싸움이 밖으로 번지면서 아버지와 집안을 망신시키고 있다. 이번에 꼭 해결해서 원수들이 공격하지 못하게 하자"고 했다.

채 목사는 만족할 만한 수습안이 나왔으니 총대들에게 안을 받아 달라고 했다. "웬만하면 박수로 받아 달라. 다시 명성 문제를 가지고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하면 좋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사회를 보던 김태영 총회장도 말을 보탰다. 양측이 100% 만족할 수 없지만, 총대들에게 통과시켜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명성교회 문제를 해결하고, 더 이상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자고 했다.

그는 "우리가 다 심판하고 판단하면 하나님은 뭐하시겠나. 하나님이 개입할 부분을 둬야 하지 않겠나. 총대 한 분 한 분이 교단을 살리고, 새 출발이 되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임해 주기를 간절히 청한다"고 호소했다.

명성교회 세습 문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재판국, 헌법위, 총회 임원회, 언론사 등을 언급하면서 허리 숙여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김 총회장은 "법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며 만든 안이다. 전권위 수고 많았다. 십자가라는 건 설교거리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믿고 정신을 따르는 것이다. 서로 십자가 밑에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총회 마지막 날, 총대들이 명성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명성교회와 명성교회를 옹호해 온 사람들은 총회 결의를 반겼다. 명성교회 한 장로는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최고 치리회인 총회가 결정했으니 잘 따르겠다"고 말했다. 수습안이 통과된 직후 서울동남노회 최관섭 노회장도 "많은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 우리 노회 문제는 노회원과 의논해서 해결해 나가도록 하겠다. 성원에 감사드린다"고 발언했다.

수차례 설교를 통해 명성교회 세습을 감싼 전 총회장 지용수 목사(양곡교회)도 기자와 만나 "매일 명성교회뿐 아니라 한국교회를 위해서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것 같다"고 했다. 직전 총회장 림형석 목사(평촌교회)도 "앞으로 잘되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총대들도 대부분 어쨌든 이번에 명성교회 문제를 마무리하게 돼 만족스럽다는 분위기였다. 

반면, 세습을 반대해 온 총대들은 아쉬움을 표했다. 명성교회수습전권위원으로 참여한 최현성 목사(충북노회)는 "개인적으로 가슴이 아프다. 기대를 가져 주신 많은 분에게 죄송한 마음이다"고 말했다. 최 목사는 "(수습안은) 시대 부름에 순응하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자칫 유사한 일이 또 나올 수 있다. 교단이 좀 더 자성하면서, 세습금지법을 유지해 건강한 교회를 세워 나가는 데 집중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양인석 목사(전북노회)는 "세습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수습안이 많이 아쉽다. 어찌 됐든 명성 세습을 용인해 준 것 아니냐는 지적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만 해도 총대들은 분개했다. 그러나 재심 판결이 올바로 나오면서 기분이 많이 풀렸다. 동시에 명성을 향한 동정론이 일었다. 김삼환 목사가 정중하게 사과하면서 분위기가 기운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총회장 출신 한 목사는 "명성교회 수습을 방관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총회가 손해를 많이 볼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와 달리 총대들 분위기가 바뀐 이유에 대해서는 "3년간 명성교회 문제로 시달리니까 다들 지치고 피곤해했다. 후유증이 상당하다 보니, 수습안 찬성표가 많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총회가 진통 끝에 명성교회 세습 문제를 매듭지었지만, 온라인상에서 소식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분노와 허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예장통합 교단과 명성교회에 혀를 내두르면서, 이제 명성교회를 시작으로 세습을 시도하는 교회가 많아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채영남 목사는 2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명성교회 살리고 총회도 살리는 길은 이 방법밖에 없었다"면서도 "특혜는 아니다"고 말했다. 명성교회처럼 교단법을 무시하고 세습을 강행하는 교회들이 나올 수 있는 길을 터 준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어찌 됐든 법은 지켜야 한다. 이 문제로 난리를 겪었는데, 법을 어길 교회가 또 나오겠는가. 같은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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