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ㅁ교회에서 발생한 성범죄 피해 생존자가 기독교반성폭력센터를 통해 보내온 글입니다. 한국교회를 향한 호소문입니다. - 편집자 주

저는 8년 전 교회 중등부에서 담당 교육전도사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그 전도사가 떠나자마자 교회학교 교사에게 또다시 같은 방식으로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억울합니다. 그저 하나님이 좋았고, 어떤 분이신지 궁금했고, 더 알아 가고 싶었고 그래서 교회를 열심히 섬기며 교회 어른들 말씀을 잘 듣고 순종했던 착하고 평범한 중학생일 뿐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제가 당한 성폭행은 제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습니다. 성폭행 사실을 인지해 가해자를 신고하기까지 '교회이기 때문에' 훨씬 더 어려운 과정과 시간들을 겪었습니다.

교회가 그들에게 부여한 권위 때문에 저는 그를 '가해자'로 만들고 합당한 법적 처벌을 받게 하는 게 '죄'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실수'한 것이지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교회가 그토록 강조한 '순결' 때문에 저는 순결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아무것도 제 잘못이 아님에도 고개도 들고 다니지 못했습니다. 자기 혐오가 가득한 수년을 보냈습니다. 그 기억으로 고통스럽고 괴로울 때면 스스로 그럴 자격도 없다고 자책하는 한편, 교회가 잘못 가르치고 강조해 온 '용서' 때문에 끊임없이 저의 상처를 외면하고 그를 용서하려고만 했습니다. 나만 입 다물면 될 일을 공론화해서 교회를 욕먹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사건이 일어나고 7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 오랜 시간 수치심과 죄책감을 씻어 내고 싶다는 생각뿐, 단 한 번도 이 일로 하나님 앞에 불평하지 않았고 아무도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더더욱 교회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나의 감정과 아픔은 덮어 두기 바빴습니다.

교회는 각성해야 합니다. 교회의 잘못된 가르침이 수많은 피해자를 궁지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교회가 스스로 숨게 한 피해자를 이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찾아내어 그 어둠에서 꺼내 주어야 합니다. 오랜 잘못된 전통과 가르침과 문화를 깨고 나와야 합니다.

1차 가해자를 고발하고, 면직하는 과정에서 교회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응답받은 적이 없습니다. 숱한 2차 가해로부터 보호받지 못했고, 직접 자료를 모아 합당한 치리를 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마저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며 교회에 수도 없이 실망했고 상처받았습니다. 교회를 더 다닐 수 없겠다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전 교회에 남아 있습니다. 교회에 대한 고민을 안고 하나님을 찾았을 때, 사랑하는 내 아버지께서는 당신이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그리고 분명히 교회와 함께하고 계시는 당신의 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도망가지 말고 내가 사랑하는 예수가 세우신 교회를 나도 사랑하자, 예수가 함께하는 교회를 살려 보자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모든 교회 관계자 여러분, 교회는 예수께서 생명으로 사신 아름답고 소중한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이 교회를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세워 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여자와 남자를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지도자에게는 권위보다 책임을 강조하셨습니다. 어린아이를 사랑하셨고, 사회가 외면하고 손가락질하는 이들에게 먼저 찾아가 함께 계시고 함께 우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언제나 약자를 향해 있었습니다.

성범죄는 절대 가해자 개인의 일탈도, 피해자의 잘못도 아닙니다. 이는 공동체 내의 구조적 문제임이 분명합니다. 이 사실을 인식한 사회는 최근 여러 제도를 통해 피해자의 회복과 가해자 처벌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습니다. 각성하고 기존 제도를 재정비하고 끊임없이 변화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아직 이 사안에 대해 얼마나 무감각한지, 여전히 가해자를 감싸기 바쁘거나 사건 자체를 개인의 문제로 여겨 사건을 축소하거나 방관하고 묵인하고 맙니다.

어린 제가 당한 성범죄가 결코 제 잘못이 아니고 전적으로 존경하고 믿어 왔던 전도사 책임이란 것을, 그 전도사 개인 일탈이 아니라 교회에 만연한 일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교회가 방관하고 낳은 괴물들이란 것을 인식한 이후 저는 교회가 너무 무서워졌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 일이며, 저에게 언제든 또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언젠가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날지도 모를 일 그리고 그 일을 겪은 후 제가 보냈던 그 고통의 삶을 제 자매들이 겪게 될 것이 너무 무섭습니다. 언제든 그런 일을 저지르고 모른 척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이 너무 싫고 무섭습니다.

저는 제 온 삶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렇기에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교회 관계자 여러분, 부디 아무에게도 무섭지 않은, 모두가 행복하고 안전한 교회를 만들어 주십시오. 제도를 만드십시오, 관심을 기울이십시오, 치부를 드러내십시오. 잘못된 것들은 인정하고 과감히 버려 새로 가꾸어 가주십시오. 저는 포기하지 않고 소리치고 운동할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신다면 이 움직임에 힘을 더해 주십시오. 피해를 방관하고 묵인하는,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며 가해자를 보호하는 2차 가해는 피해 당사자로서 확신하건대, 1차 가해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교회 공동체는 더 이상의 2차 가해를 멈추고 피해자와 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일어난 성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 방침을 마련해 주시고, 나아가 교회 내 뿌리 깊은 가부장적 문화에 대한 개선을 위해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살리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교회가 더는 미루지 말고 부디 여성 문제에, 교회 내 성범죄 실태와 해결에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모두에게 안전하고 행복한 교회 공동체가 바로 서게 되는 그날까지 계속해서 부탁드리겠습니다.

교회 성범죄 피해 생존자 올림.

덧) 기독교반성폭력센터에서는 공동체 내 2차 가해 상황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8월 14일부터 8월 31일까지 서명운동을 진행했고, 총 789명이 동참했습니다. 9월 16일(월) 센터는 서명운동 명단과 내용, 피해 생존자의 글을 정리해 해당 교회 당회와 광주동노회, 예장통합 총회 교회성폭력대책위원회에 공문을 발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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