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역사에서 교부들이 차지하는 위상은 특별하다. 교부들은 거의 모든 시대에 교회가 성서 다음으로 중시한 권위이자 판단 준거였다. 중세 교회는 성서를 해석하며 흔히 <표준 주석 Glossa Ordinaria>이라고 부르는 교부들의 주석 모음에 의존했다. 중요한 신학적 판단은 언제나 논의하는 사안에 대해 교부들이 어떻게 진술했는지를 바탕으로 내려졌다. 교부들 저술에서 발췌한 신학적 명제들을 나열한 모음집을 주석하는 것은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신학자로 인정받기 위한 가장 기본적 절차였다.

'오직 성서'를 외친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자들도 교부들 권위를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중세의 로마가톨릭교회가 교부들을 잘못 해석하며 신앙을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현대 신학자들에게도 교부들은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었다. 블라디미르 로스키나 게오르기 플로롭스키와 같은 정교회 신학자들 및 앙리 드 뤼박, 이브 콩가르와 같은 전후 로마 가톨릭의 신신학자들은 교부라는 원천이 오늘날의 문제에도 새로운 활력을 제공할 수 있음을 다양한 방식을 통해 탁월하게 보여 주었다. 이처럼 교부들의 중요성은 교파를 초월해 교회 생활과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지속적으로 주목받았다.

신학적·역사적 중요성에도 일상적 차원에서, 오늘날 그리스도인 다수에게 교부들은 사뭇 먼 존재로 남아 있다. 우선 오늘날의 그리스도인과 교부들 사이에 놓인 시간적 간극이 커다란 장벽이다. 고대 지중해 세계가 일반적으로 공유하던 지적 배경과 세계관에 익숙하지 않은 오늘날 그리스도인 다수는 교부들 논의를 친숙하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둘째, 이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마땅한 길잡이가 드물다. 교부들을 소개하는 자료는 이 분야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으며, 당대의 역사적·철학적 배경과 언어에 익숙한 독자가 백과사전식으로 참고할 수 있도록 기획된 학술 서적이 대부분이다. 교부들이 대개 사목자로 평범한 신자들을 올바른 신앙으로 권면하기 위해 저술 활동을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시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적절한 안내서도 없는 상황에서 교부들은 실제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말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전공자들만의 영역으로 사장되거나 교과서의 인물로 단편적이고 무미건조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릴 뿐이다. 그들의 주장은 맥락과 분리되어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채 교리사 교과서 앞부분을 장식하는 것에 그친다.

<교부와 만나다 - 초대교회 스승들의 생애와 사상> / 아달베르 함만 지음 / 이연학, 최원오 옮김 / 비아 펴냄 / 380쪽 / 1만 8000원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둘 때 <교부와 만나다>(비아)는 실로 귀중한 기획이다. 이 책은 본래 2002년 <교부들의 길: 감동의 교부 단편과 함께 읽는 교부학 입문서>라는 제목으로 성바오로출판사에서 출간된 것을 개정해 재출간한 것이다. 저자인 아달베르 함만은 20세기를 대표하는 교부학자 가운데 하나로, 2차 바티칸공의회 신학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여러 대표적인 교부 문헌 총서의 기획 출간을 담당하는 한편, 로마 아우구스티누스대학에서 가르치며 900여 편의 저서와 논문을 통해 교부들이 어떻게 오늘날 그리스도교를 위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지 탁월하게 증명하기도 했다.

교부들의 실천적 가르침에 관심을 기울였던 저자는, 이 책에서 지나치게 전문적인 내용은 지양하면서도 그리스도인 독자를 위해 꼭 필요한 내용만을 간추려 생생하면서도 학문적 엄밀함을 갖춘 담백한 문장에 담아내고 있다. 독자는 1세기 말 유대 그리스도교 문헌에서 8세기 초 다마스쿠스의 요한에 이르는 광범위한 교부 시대를 신뢰할 만한 안내자를 따라 여행하게 된다.

서론과 결론 외 4장의 본론으로 구성된 이 책은 대부분의 교부학 저술과 마찬가지로 연대기적 구성을 따른다. 서설적 배경을 다루는 서론에서 저자는 교부들의 지리적 배경을 소개한다. 먼저 브리튼 섬에서 메소포타미아로 이어지는 환 지중해 지역을 소개하고, 이를 다시 지역 간의 네 가지 소통 경로로 구분한 뒤 각 경로의 전환을 통해 교부 시대 중심 무대의 변화를 설명하는 접근은 흥미를 자아낸다.

이어서 저자는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해 독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배경적 사항과 교부학 연구에 사용되는 주요 용어를 설명한다. 이렇듯 별도로 할애된 지면은 이 책의 주된 강점 중 하나인데, 서론 이외에도 본론 도처에 수록되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나아가 모든 용어에는 라틴어를 병기해, 보다 학문적 관심이 있는 독자가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또한 지리적 배경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를 위해 여러 편의 지도를 포함해 이해를 돕고 있다.

1장부터 4장은 교부 시대를 연대기적 흐름에 따라 네 시대로 구분하고, 각 시대적 배경 가운데 주요 교부들의 저술과 사상을 소개한다. 여기서 저자는 단순히 연도에 따라 시대를 구분하는 것을 지양하고, 오히려 각 시대 특징에 주목해 소개하는 더 생동감 있는 방식으로 각 시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예루살렘에서 로마로'라는 이름의 1장은 <디다케>와 헤르마스의 <목자>에서 시작해 로마의 클레멘스, 안티오키아의 이그나티우스 및 변증가 유스티누스를 거쳐 리옹의 이레네우스에 이르는 1~2세기 유대계 및 희랍계 문헌 및 저술가들을 소개하며 유대에서 출발한 그리스도교가 점차 지중해 세계에서 서방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그린다. 1장은 순교에 대한 열띤 암시로 끝맺는데, 이를 '순교자들의 교회'라는 제목의 2장에서 3세기의 역사적 상황과 결부해 더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2장에서는 박해와 순교의 현장을 절절하게 표현하면서도 그러한 배경 가운데 꽃핀 전례와 신학의 발전을 지역별로 구분해서 충실히 언급하고 있다. 저자의 시각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와 오리게네스에서 시작해 북아프리카의 테르툴리아누스와 키프리아누스에 이른다. 시대적 배경과 특징을 먼저 소개하고, 이에 비추어 각 인물의 삶을 조명한 뒤 저서를 살펴보고, 그 사상과 영향을 소개하는 저자의 서술 방식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3장은 교부 시대의 '황금기'를 다룬다. 마지막 대대적 박해 끝에 공인된 그리스도교가 확장되는 가운데 첨예하면서도 중요한 신학 논쟁이 일어나고, 끊임없는 분열을 경험하면서도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거장들이 등장한 시대, 4세기의 이야기다. '비잔티움 문화와 중세를 향하여'라는 제목의 4장은 로마제국의 동부와 서부가 정치적·문화적으로 단절되는 상황에서 서방 갈리아와 이탈리아, 이베리아반도의 주요 저술가들 및 위디오니시우스, 고백자 막시무스, 다마스쿠스의 요한 등 동방 그리스도교 세계의 마지막 교부들에 관해 다루고 있다.

결론에서는 논의를 정리하며, 우리가 교부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에 관해 돌아본다. 저자는 교부들이 무엇보다 사목자적 관심에 서 있었으며, 우리 신앙의 공통 원천으로 교회 일치의 산증인이자 모범임을 강조한다. 여기서 드러나는 강조점은 이 책의 기획이 어떤 관심에서 이루어졌으며, 어떤 의도를 가지고 집필되었는지 짐작케 한다. "교부들은 연구 논문 자료를 우리에게 전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양 떼를 가르치고 인도하며 바로잡기 위하여 작품을 썼다"(353쪽)는 점을 저자는 분명히 한다.

교리적 세부 사항을 맥락과 분리해 교과서적으로 나열하는 것은 저자의 의도가 아닐 뿐더러 교부들 의도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자를 각 교부들 앞으로 마치 낯선 사람을 처음 소개할 때 인사를 나누게 하듯 초대할 뿐이다. 그리고는 많은 부분을 할애해 교부 문헌을 원전 그대로 인용한다. 그래서 독자들이 교부들과 인사를 나눈 뒤에는 자유롭게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한다. 초대교회를 다루는 여러 서적이 그저 교부들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전해 주는 중간 매개라는 점을 생각하면 실로 획기적인 장점이다.

<교부와 만나다>를 통해 교부들과 처음 인사를 나눈 독자들은 이 책의 부록이 제공하는 풍부한 읽을거리를 통해 신앙의 스승들이 제공하는 더 풍부한 원천으로 초대된다. 부록에서 독자들은 2019년 현재 한국어로 접근 가능한 모든 교부학 입문서 및 번역본의 서지 사항을 참고할 수 있다. 나아가 주요 학술 언어에 접근할 수 있는, 보다 전문적인 독자들을 위해 역자들이 제공한 교부학 사전 및 번역물에 관한 상세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특히 역자들은 가톨릭 연구자들 공헌과 개신교 연구자들 공헌을 모두 충실하게 반영하고자 노력했다. 교부들 목소리야말로 "신·구교와 정교회를 막론하고 예수의 모든 제자를 끊임없는 회개와 추종으로 초대하는 복"(14쪽)임을 역자들은 서문에서 이미 강조한 바 있다. 갈라서기 전 교회에 관한 연구조차 교파별로 각기 진행되고 있는 한국에서 이러한 시도는 매우 고무적이다. 무엇보다 <교부와 만나다>의 기획이 해마다 왜관 성베네딕도수도원에서 열리는 한국교부학연구회 모임을 통해 함께 기도하며 친교해 온 가톨릭 연구자들과 신학생, 개신교 신학생들이 만들어 낸 가시적 성과라는 점은, 한국교회 일치의 첫발을 교부들과 함께 내딛을 가능성을 그것 자체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실로 의미 있는 열매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완벽한 책은 없으므로, 이 탁월한 입문서에도 아쉬운 점은 존재한다. 우선 한정된 지면에 최대한 교부들 목소리를 전달하려는 과정에서 고대 후기의 역동적인 시대적 배경은 다소 평면적이고 단편적으로 기술될 수밖에 없었다. 역자들이 부록을 활용해 더 역사적인 접근을 택한 저서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어느 정도 보완하고 있으므로 관심이 있는 독자는 이 책을 통해 개략적인 안내를 받되, 역자들이 제공하는 서지 목록을 적극 활용하기를 권한다.

다음으로 역자들이 교부들에 대한 가톨릭 및 개신교 연구자들 성과를 공평하고 성실하게 소개했다는 점에 대해서 찬사를 보내나, 최근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동방 교부들에 대한 정교회 연구자들의 기여를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보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점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교부들과 그들의 가르침을 돌아볼 수 있도록 이 책이 선사하는 값진 만남의 기회를 결코 가로막지 않으며 오히려 첫 만남 뒤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려 준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오직 역사에서 이어져 온, 생명으로 그득한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할 때, 이 책은 이를 가장 실천적인 방식으로 가꾸어 나갈 첫걸음을 뗄 수 있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독자는 <교부와 만나다>를 통해, 학자이기에 앞서 사목자로서,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옛 교부들 모습을 담백하면서도 진솔하게 접하게 된다. 저자가 주의 깊게 선정해 구성하고, 역자들의 정갈하고 아름다운 우리말 번역으로 옮겨진 교부들의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신앙의 조상들은 오늘날까지 선배이자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와 대화를 이어 간다. 이 대화에서는 그들이 과거에 건네지 못했던 이야기의 샘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중 하나에는 앞서 언급했듯, 이 책이 세상에 나오면서 가시화한, 교회 일치를 위해 뜬 작은 삽 이야기도 담겨 있다. 이제 이러한 샘에서 길어 마시고, 이야기를 이어 가는 일은 이 책을 읽는 우리의 몫이다.

양세규 /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교회사를 공부하고 있다. <아씨시 프란치스코>(사이먼 콕세지, 비아, 2015), <성서, 역사와 만나다>(야로슬라프 펠리칸, 공역, 2017), <질문과 답변>(이안 S. 마컴, C.K. 로버트슨, 2018), <과거의 의미>(로완 윌리엄스, 2019)를 한국어로 옮겼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