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 자매님께,

며칠 전 제가 자매님께 말씀드렸죠. 오랜만에 가슴을 뛰게 만든 기독교학 관련 책을 만났다고요. 웬만해서는 그런 종류의 책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자매님께서 귀를 쫑긋 세우며 관심을 보여 내심 기뻤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날 책 내용을 자세히 설명드리지 못했습니다. 아쉬웠던 차에 마침 시간이 생겨 그 책을 소개하는 글을 써서 보냅니다.

제가 신약학 박사과정을 밟을 때 제 선생님 중 한 분은 신약성경이 저술되던 시대를 "시각화(visualization)"할 수 있을 정도로 고대 문헌을 탐독하고 소화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으나 쉽게 다다를 수 없는 경지임을 번번이 깨달아야만 했죠. 하지만 얼마 전 복음서 내용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경험을 했습니다! 신약학계에서 크게 존경받는 게르트 타이센 교수님이 쓰신 <갈릴래아 사람의 그림자>(비아)를 읽는 중에 말이죠.

신약학 분과 중 하나인 역사적 예수 연구에 제가 한동안 빠져들었던 건 자매님도 잘 아실 겁니다. 복음서가 현대적 의미의 전기(biography)는 아니기 때문에, 복음서를 읽는 것만으로는 이 땅 위에서 가르치시고 행동하셨던 예수의 모습을 제대로 알긴 어렵습니다. 역사학의 방법론으로 가능한 한 예수님의 공생애가 실제 어떤 모습이었을지 재건하려는 노력이 역사적 예수 연구이죠. 신자라면 자신이 주님으로 신앙하는 예수님이 사셨던 삶을 제대로 알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역사학자 입장에서 재구성하려는 노력은 그 역사가 유구합니다. 많은 학자가 자신들만의 예수상을 내놓았습니다. 이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요. 역사적 예수 연구는 무척 흥미롭지만 신약학도로 훈련받지 않은 분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아주 고맙게도 게르트 타이센 교수님은 탄탄한 학문적 기반 위에 소설 형식을 빌려 역사 속 예수님 모습을 그려 냈습니다. 아무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이야기책으로요. 학자로서의 탁월함은 진즉 알았지만, 이렇게 훌륭한 이야기꾼인지는 몰랐습니다.

<갈릴래아 사람의 그림자 - 이야기로 본 예수와 그의 시대> / 게르트 타이센 지음 / 이진경 옮김 / 비아 펴냄 / 428쪽 / 1만 8000원

독자는 가상 인물인 세포리스 출신의 부유한 유대인 곡물상인 안드레아가 겪어 나가는 인생의 소용돌이 속에 빨려 들어갑니다. 안드레아는 어쩌다가 인생이 "꼬여" 빌라도와 로마 장교 메틸리우스의 정보원으로 살게 됩니다. 로마제국 안정에 늘 신경 쓰는 관료를 위해 조금이라도 위험 요소가 될 가능성이 있는 유대인들 행적을 추적하게 되지요. 그런 와중에 안드레아는 세례 요한에 대한 소문과 그가 어떻게 처형되었는지를 듣게 되지요. 자매님과 저는 복음서에 있는 내용을 '읽지만', 타이센의 책이 그리듯이, 예수님 당시 살던 사람들은 이런저런 모양의 소문으로 세례 요한 이야기나 예수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역시 직접 목격한 사람을 제외하면 대부분 소문으로 떠돌아다녔겠지요. 예수님 가르침 역시 마찬가지고요. 현대인들에게 익숙하지만 뜻이 모호한 성경 구절이 <갈릴래아 사람의 그림자>에서는 당대 상황의 맥락에서 생생하고 또렷하게 '육화'됩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볼까요? 헤롯 안티파스를 흔들리는 갈대이자 여우라고 말하는 아리송한 예수님 말씀은 안드레아와 다른 이들의 대화를 통해 다음과 같이 전해집니다.

"안티파스는 새 수도에서 동전을 주조했습니다. 보통 동전에는 지도자의 얼굴이 새겨져 있지요. 하지만 유대인의 법은 사람이나 짐승의 형상을 그런 것에 새기는 일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티파스는 갈릴래아 호숫가에 있는 자신의 새 수도를 상징할 만한, 위험하지 않은 무언가를 찾았던 겁니다. 그게 바로 갈대, 흔들리는 갈대였습니다. 첫 번째 동전에는 바로 그 갈대가 새겨지게 되었지요." (19쪽)

안드레아는 이 동네 저 동네를 다니면서 느닷없이 사라진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대체로 두 부류였습니다. 로마와 대지주들의 경제적 착취에 못 이겨 산속으로 도망쳐 불의한 세상에 저항하기 위해 무력 사용을 서슴지 않는 젤롯당(열심당)에 가입하는 이들과 예수라는 인물을 좇아 생업과 가정을 버리고 간 이들. 젤롯당은 로마 관료 눈에 테러리스트로 비쳤죠. 허나 예수의 정체에 대해선 견해가 엇갈렸습니다.

도대체 예수는 누구인가? 안드레아는 톨로메오(돌로매)와 수산나라는 가난한 농부 부부를 만나게 되었는데, 가출한 아들 바르톨로메오(바돌로매) 이야기를 듣습니다. 시골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하나님의 통치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세상이 뒤바뀌는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선포하는 예수를 따르기 위해 부모를 버리고 간 아들의 이야기를요. 어느 날 바돌로매가 부모의 집에 찾아와 다음과 같은 예수의 말을 전해 주었다고 했답니다. 하루하루 생존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귀가 번쩍 뜨일 만한 선포였죠.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가난한 자들의 것입니다. 이제 굶주린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이 배부르게 될 것입니다." (눅 6:20-21 참조)

안드레아는 이런 가르침을 전하고 다니는 예수가 위험한 인물인지 아닌지 판단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안드레아뿐만 아니라 안드레아를 통해, 그리고 또 다른 경로를 통해 예수에 대한 첩보를 듣는 로마 관료 역시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Y 자매님. 자매님께 지나가듯 제가 말씀드렸죠.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를요. 안드레아는 국경을 건너면서 예전부터 알고 지낸 세리 레위(=마태)를 만날 거라 예상했는데, 그 자리에서 전혀 다른 세리를 만납니다. 레위가 예수를 따라나서는 바람에 그를 대신하는 새로운 세리(코스타바)가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죠. 코스타바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안드레아는 지팡이에 의지한 채 절뚝거리며 걷는 이빨 빠진 노인과 누더기 차림의 소경을 비롯해 세 명이 다가오는 것을 봅니다. 코스타바는 예수, 레위, 그리고 이 일군의 사람들 사이에 벌어졌던 일을 안드레아에게 말해 줍니다.

"레위는 예수를 알게 됐고 그의 가르침에 감명 받았다네. 예수의 가르침 때문에 모든 행동이 바뀌었지.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때마다 음식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어. (중략) 언젠가 예수가 다시 이곳을 지나갔을 때 레위는 예수를 따르기로 마음먹었네. 그리고 이곳을 떠나기 전 성대한 이별 잔치를 계획했어. 가난한 사람들에겐 잊을 수 없는 잔치였겠지. (중략) 저 세 인간도 거기 있었어. 저들에게는 그 사건이 형언할 수 없는 대사건이었겠지. 저들은 예수가 여기 다시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거네." (247~248쪽; 막 2:13-17 참조)

안드레아와 코스타바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이빨 빠진 노인은 그들에게 예수가 한 말을 되뇝니다.

"음식을 대접할 때 가난한 자와 장애인, 저는 자와 눈먼 자를 초대하라. 그러면 네가 복되리니, 그들이 네게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략)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가 너희에게 쉼을 주리라."

저는 이 부분을 읽을 때, 이 땅에 사셨던 예수가 당시 수많은 사람에게 절대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해 주었고, 커다란 희망을 선사했다는 사실이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예수님 마음이 향한 곳, 그리고 그분 의지의 방향성이 너무나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서민 스스로가 자신의 가치를 깨닫도록 도와주고, 하나님이 이 불의한 세계를 완전히 변혁할 것이라고 선포하신 예수님. 신약성경 연구자로 훈련받으며 읽은 어떤 책도, 이렇듯 제 마음을 역사 속 예수의 의지를 손으로 만질 수 있을 만큼 가까이 가게 하지 못했습니다.

아, 제가 이 말을 빠뜨렸군요. 타이센의 이 책을 근 20년 전에 이미 읽었다는 사실을요. 그때는 그냥 새로운 시도라고 여겼고, 타이센이 그리는 역사적 예수상은 이렇구나, 정도로 읽고 끝냈습니다. 그런데 그간 제가 바르게 방향을 잡고 공부한 탓인지 모르겠지만(우쭐대는 표현이 아님을 아시지요!), 이번에 읽을 때는 참 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안드레아는 로마 관료에게 예수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 보고를 합니다. 점차 예수에게 매혹을 느낀 그는 가능한 한 예수가 위험한 인물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의 보고서가 그린 예수는 로마인에게 친숙한 그리스-로마 철학자(특히 견유학파)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조금 전문적인 내용을 덧붙이자면, 저는 여기에서 타이센이 미국의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를 비판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책에서 타이센 자신도 인정하더군요.

요한복음을 제외하곤, 예수의 제자들은 다 도망가서 십자가 처형을 제대로 목도한 이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역사학 전통에 서 있는 신약학자는 십자가 처형 장소와는 불가피한 역사적·해석적 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타이센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독자가 기대할 만한 이야기의 클라이맥스인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당황스러운 정도로 담담하고 짧게 기술합니다.

"불안한 시간이 지나갔다. 마침내 말코스가 소식을 가져왔다. 바라빠는 백성들의 요구로 풀려났고 곧바로 잠적했다. 그리고 예수는 다른 두 명의 젤롯당원과 함께 시내 변두리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 (352쪽)

타이센은 로마 장교 메틸리우스 입을 빌려 예수의 죽음을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예수는 거대한 바퀴 밑에 깔린 거야. 온 백성이 고통받던 긴장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진 거대한 수레바퀴 밑에 깔리고 만 거라고." (375쪽)

예수의 부활과 예수의 죽음에 대한 의미 역시 독자의 기대와는 달리 안드레아의 내적 갈등과 꿈으로 아련하게 처리됩니다. 아마도 타이센은 이 중요한 기독교의 신앙 내용 이해를 산문으로 쓰기보다는, 책을 읽으며 안드레아와 스스로를 동일시하게 된 독자 자신에게 맡기는 것 같습니다.

타이센은 각 챕터를 크라칭어라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로 마무리를 합니다. 타이센은 이 일련의 편지를 통해 역사비평적으로 예수를 연구하는 작업의 본질에 대해, 그 한계와 의의에 대해 간접적으로 독자에게 말합니다. 그는 <갈릴래아 사람의 그림자>를 '내러티브 주석'이라고 부르며 그 성격을 다음과 같이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내러티브 주석의 깊은 차원에는 역사적으로 재구성된 행동들의 양상, 갈등과 긴장들이 채워지며 표면에는 역사 자료를 문학적으로 가공해 만든 사건들이 등장합니다."(47쪽)

이러한 작업의 한계 역시 직시하지요. "저는 이 이야기를 쓰며 독자들이 제가 '예수 그 자체'에 대한 상을 재현한다고 생각하지 않게끔 구성했습니다. 특정한 사회 경험의 관점으로 본 '예수'인 것이지요."(338쪽) 게다가 요새 말로 많은 사람의 "뼈를 때리는" 타이센 말은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역사적 예수를 살폈다면 예수의 선포는 교회 안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향해 있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211쪽)

한마디로 독후감을 쓰자면, '이야기의 힘은 위대하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복음서를 비롯한 고대 자료와 예수 연구가들의 작업이 이야기라는 틀에 녹아들어 생생한 생명력을 얻는 것은, 마치 마른 뼈에 생기를 불어넣는 모습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크라칭어 씨의 정체에 대해서는 함구하겠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까요! Y 자매님, 하지만 제가 이렇게 자매님께 쓴 편지 역시 타이센 선생의 편지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걸 고백할 수밖에 없겠네요(정반대의 방식을 썼지만요). 지금까지 이 글을 읽은 <뉴스앤조이> 독자 몇 분은, 남성 목사인 제가 특정 자매에게 긴 편지를 다정한 어투로 쓰는 게 불편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Y 자매님, 아니 여보! 당신이 <갈릴래아 사람의 그림자>에 관심을 보여서 조금이나마 더 재미있게 읽도록 이런 '가이드'를 써 보았어요. 부디 이 글이 당신에게 불필요한 맨스플레인이 아니길 바라며.

남편 선용 드림.

김선용 / 서울대학교에서 화학공학(B.S.)을 전공하고, 침례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M.Div.)를 하였다. 맥코믹신학교에서 신학 석사(M.A.T.S.)를, 시카고대학 신학부(University of Chicago Divinity School)에서 성서학 박사(Ph.D. in Biblical Studies)를 받았다. 신약성서 전반과 초기 기독교 문헌을 전공했다. 아울러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 그리스-로마 시대의 종교, 고전수사학을 심도 있게 연구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바울에 관한 새 관점>(감은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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