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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 여인의 주체 선언

성평등·통일 운동 관점으로 읽은 예수와 여인의 대화

이병학   기사승인 2019.08.20  10:3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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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적 성찰

최근 급격한 정세 변화로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 민족 통일에 대한 희망이 점차 고조되고 있다. 통일을 바라는 데 남성과 여성의 구별이 없지만, 우리 사회 조직과 문화는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이기에 아직도 여성은 여러 면에서 소외되고 배제되고 있다. 근래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준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이 말해 주듯이, 여성은 성적 대상으로 잘못 인식되어 피해를 입고 고통을 겪기도 한다.

예수 시대에 이스라엘 땅은 로마 식민지였으며, 원래 한 민족이었는데도 유대인들과 사마이아인들 사이에는 오랜 분단 장벽 때문에 적대감과 혐오감이 있었다. 또한 여성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차별당하고 배제되었다. 이 상황에서 예수는 로마제국과 전혀 다른 새로운 제국, 즉 정의, 자유, 평등, 평화, 생명이 지배하는 하나님나라를 선포했다. 그가 12제자를 선택한 것은 와해된 이스라엘 12지파 공동체를 회복하고 민족 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그의 염원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예수는 현상 유지를 바라는 유대인 지도자들의 율법 해석에 항의했으며, 기소와 처벌 위험에도 반제국적 설교를 했으며, 약자와 여성과 연대하면서 그들이 주체성을 회복해 모두 주체로 살 수 있도록 가르치고 행동했다.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 이야기(요 4:3-30)는 오늘날 성차별과 민족 분단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이야기는 여성의 경험을 배제한 남성 중심적 관점으로 잘못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여성주의 관점에서 읽고 새롭게 해석해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 간 대화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한국교회의 성평등 운동과 통일 운동을 신학적으로 촉구하고 지원하고자 한다.

2. 차별과 소외로 상처받은
사마리아 여인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들은 원래 한 민족이었지만,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 왕국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되면서 서로 적대적 관계가 되었다(왕상 12:1-24). 아시리아는 기원전 721년에 북이스라엘을 정복하여 수도인 사마리아를 지배했다. 아시리아는 반란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사마리아 사람들을 여러 타국으로 추방하고, 타민족들을 사마리아로 이주시켰으며, 정책적으로 사마리아에 남아 있던 사람들을 이주해 온 타민족들과 결혼하게 했다.

남유다는 기원전 586년 바빌론에 의해 멸망했다. 예루살렘성전은 불타고 많은 유대인이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상당한 세월이 흐른 후 귀환한 그들은 자신들을 순수 혈통을 지킨 "거룩한 씨앗"(에 9:2)이라고 여긴 반면, 남아 있던 사마리아인들을 혼혈족으로 규정하고 차별했다(에 9:11).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성전 재건 사업에 사마리아인들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배제시켰다(에 4:1-3). 사마리아인들은 기원전 400년경 독자적으로 세겜 그리심산에 성전을 짓고 예배하기 시작했다. 그리심산은 사마리인들에게 신성한 장소이며 축복이 약속된 장소다. 아브라함과 야곱이 그리심산 근처에 제단을 쌓았기 때문이며(창 12:7; 33:20), 하나님이 모세로 하여금 가나안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의 계약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 그리심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도록 했기 때문이다(신 11:29).

마카비 왕가 마지막 통치자 요한 힐카누스(John Hyrchanus)는 기원전 128년 그리심산의 성전을 파괴하고 많은 사마리아인을 학살했다. 이 시대에 극에 달했던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의 적대감은 예수 시대까지 계속되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불결하게 생각하고 접촉을 피했다. 사마리아인들이 쓰는 그릇을 같이 사용하지 않고, 그들과 식사를 함께하지 않았으며, 사마리아 여인들을 무시하고 말을 걸지 않았다. 유대에서 출발해 사마리아를 통과하면 3일이면 갈릴리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혐오했기에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길로 가지 않았다. 시간이 훨씬 더 많이 소요되는 다른 노선으로 여행을 하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의도적으로 사마리아를 경유해 갈릴리로 가려 한다.

정오 무렵 예수 일행은 사마리아의 한 도시인 수가에 도착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시장으로 갔고, 예수는 혼자 우물가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한 사마리아 여자가 이러한 낮 시간에 물을 긷기 위해 우물가로 왔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왜 이 시간에 물을 길러 왔는지는 아직 모른다. 아마도 사람들 시선을 피하기 위해 아무도 오지 않는 이 시간에 왔을 것이다. 목이 몹시 마른 예수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먼저 그녀에게 마실 "물을 좀 달라"고 요청했다. 그녀는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의 적대감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놀라운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이 반응에는 그녀가 사회에서 차별받고 있는 인종과 종교와 성(gender)의 현실이 내포되어 있다.

아마도 목이 마른 예수는 사마리아 여인으로부터 물을 충분히 얻어 마셨을 것이다. 그녀의 얼굴에 그늘이 져 있는 것이 예수의 눈에 보였다. 그녀의 두레박으로 물을 마신 후 예수는 자신이 필요한 물에서 그녀가 필요한 물로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예수가 언급한 "생수"는 오늘날 시장에서 여러 상표를 붙여 파는 식수와 같은 것은 아니다. 여자가 "생수"를 얻을 수 있는 조건은 "하나님의 선물"이 무엇인지, 예수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예수의 정체성을 알아야만, 하나님의 선물을 알 수 있다.

예수는 하나님의 마지막 때 메시아적 대리자이고, 하나님은 예수 안에 영으로 임재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말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이 바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예수는 이를 "생수"라고 표현했다. 생수의 근원은 하나님이다. 생수의 선물과 함께 참된 생명의 선물이 결합되어 있다. 일상생활에서 참된 생명의 갈증을 느끼는 자는 생수의 근원 되는 하나님을 만나야만 갈증을 해소하고 주체로 변화되어 참된 생명을 살 수 있다.

여자는 예수에게 묻는다: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이것은 그녀가 예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묻는 어리석은 질문이 아니다. 그녀는 목이 마른 예수가 두레박도 없고 우물은 매우 깊기 때문에 스스로 물을 얻을 처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예수에게 어떻게 물을 긷고자 하느냐고 물은 것이 아니라, 어디서 그러한 생수를 구해 준다는 것이냐고 물은 것이다. 그녀는 예수가 말하는 생수가 이 우물의 물과 전혀 다르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예수에게 어리석은 질문을 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한 것이다.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이 질문은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와야만 마땅한 수사학적 질문이다. 그녀 눈에 방랑하는 나그네로 보이는 예수는 야곱 같은 위대한 조상과 비교할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사마리아인들 종교 전통에서 야곱은 그들의 조상이다. 반면 유대인들은 자신들 조상을 아브라함이라고 말한다(8:53). 그녀는 야곱이 요셉에게 세겜 땅을 주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참조, 창 48:22). 여자가 조상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은 곧 그녀가 투철한 민족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예수는 사마리아 여인이 절대시하는 야곱의 우물 물을 상대화한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그 여자가 위대하게 여기는 야곱의 우물에서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갈증을 느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그녀에게 목마름 때문에 마시는 물이 아니라, 참된 생명에 대한 갈증을 없애 주는 다른 물이 자신에게 있다고 말한다. 참된 생명을 향한 갈증은 물을 많이 마시거나 음식을 포식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가 주는 물을 마시는 것으로 해소된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는 자신이 주는 다른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뿐 아니라, 남의 기갈을 해소하는 샘물이 될 것이라고 약속한다. 그러한 샘물이 된 사람이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산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샘물이 된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고, 남의 목마름을 해갈해 주는 생명의 후원자가 될 수 있다.

여자가 예수에게 요청한다: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여자는 아무리 퍼내어 써도 계속 흘러나오는 기적의 물을 바라지 않는다. 그녀가 기대한 것은 참된 생명의 갈증을 해소해 주는 물이다. 그녀는 정말로 참된 생명을 살고 싶어 한다. 그녀는 성적 대상이 아닌,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주체로 살고 싶어 한다. 그녀는 이제까지 자신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사회적 조건들에서 해방되기를 원한다. 그녀는 남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정오에 물을 길으러 야곱의 우물에 더 이상 갈 필요가 없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생명의 갈증을 해소해 줄 물을 달라고 예수에게 요청한 것이다.

3. 생수 경험한 사마리아 여인의
주체 선언

예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요구한다. 여자는 도덕적·윤리적으로 파탄이 난, 죄 많은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결코 창녀도 아니고, 이 남자에서 저 남자에게로 옮겨 가면서 이득을 취하며 사는 경박한 여자도 아니다. 예수가 그녀에게 남편을 불러올 것을 요구한 것은 여자의 죄를 찾으려고 뒷조사하기 위함이 아니다. 예수가 이러한 요구를 한 것은 아직 해소되지 않은 그녀의 참된 생명에 대한 갈증이 바로 그녀가 강요당하는 억압적 환경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여자는 아주 짧게 그리고 단호하게 대답한다: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이것은 억압적인 남편 혹은 남자에게 더 이상 의존하지 않고 주체로 홀로서기를 시도하겠다는 주체 선언이다. 이 선언은 불의한 권력관계에 대한 저항이고,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가 없는 평등한 형제자매적 공동체를 향한 희망이다. 지금까지 그녀를 동여매던 억압적 환경으로부터 그녀 자신을 해방하는 첫 단계가 이 선언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예수와의 대화를 통해 생수를 경험해 자신의 주체성을 되찾았기에 이러한 선언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결혼이 억압적 관계는 아니다. 그러나 그녀가 지금 같이 동거하는 남자는 슬픔과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인생의 동반자는 아니다. 그녀는 동거하는 억압적 남자로부터 버림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면서 하루하루 살았다.

예수는 대답을 듣고 그녀의 선언을 옹호한다: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그녀는 자신의 홀로서기 선언을 지지하는 예수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속에 맺힌 한이 풀리고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생수"가 가슴속에서 일어나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녀는 예수를 통해 자신을 격려해 주는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그녀가 동거하는 억압적인 남자를 위해 물을 길어 집으로 운반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살아야만 하는 한, 여자의 가슴속에서 생수가 솟아나지는 못할 것이다.

예수는 그녀의 선언을 지지하는 말을 다시 한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왜 그녀는 다섯 번이나 결혼해야만 하는 처지였는가? 당시는 여자가 먼저 이혼을 제기하기 어려운 사회였다. 여자가 과거에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다는 것은 차례대로 남편과 사별했거나 거듭 이혼을 당했기 때문에 재혼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사별하거나 이혼한 여자는 다시 남자를 만나 결혼할 수 있다. 하지만 여자는 이미 여러 번 결혼했고 점차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결혼 기회가 없어져 지금 한 남자와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언제 버림 받을지도 모르는 불안한 동거 생활을 해 왔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슬픔, 고난, 실망, 무력감을 연속해서 경험했을 것이다. 예수는 그녀의 고통과 아픔과 상처를 보듬었고, 그녀의 주체 선언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4. 예배를 통한 민족 분단 극복과
민족 통일의 희망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와 대화를 나누면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간 오래된 적대감이 두 사람 사이에서는 눈 녹듯이 완전히 제거되는 것을 개인적으로 경험했다. 이제 주체로 변화된 그녀는 그러한 치유와 화해 경험이 예배에 참석한 여러 사람들의 공동 경험이 되어 오랜 민족 분단으로 생긴 상호 간 적대감을 풀고 민족 통일을 이루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는 민족 분단을 유지하는 종교적 차별의 현실에 대해 묻는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그녀는 이제 예수를 "선지자"라 인식했다. 그녀는 마치 예수가 유대인들 대표인 것처럼 2인칭 복수로 그를 호칭하면서 유대인들이 그리심산에서 사마리아인들이 드리는 예배를 인정하지 않고,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드리는 예배만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그리삼산은 사마리아인들에게 거룩한 장소이고,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에게 거룩한 장소다. 그녀는 "우리 조상"이라는 표현을 통해 사마리아인들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말한다. 그녀는 이스라엘 선조들이 세겜에 있는 그리심산에서 예배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참조, 신 11:29; 27:12). 또한 예루살렘은 다윗과 솔로몬을 비롯한 선조들과 결부된 중요한 장소다. 예수 시대에 그리심 성전은 이미 오래전 파괴되어 없어졌지만, 예루살렘성전은 아직 서 있었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예수는 여자를 사마리아인의 대표로 간주하고 "너희"라는 2인칭 복수로 말한다. 예수는 왜 사마리아인들이 아버지 하나님에게 예배하기 위해 그리심산에 가거나 예루살렘으로 갈 필요가 없을 때가 올 것이라고 말하는가? 그 이유는 십자가 처형을 당하고 부활한 예수 자신이 하나님이 임재하는 성전이기 때문에 예배는 더 이상 지리적으로 어떤 특별한 장소에 고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는 그녀에게 중요한 말을 한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들에게서 남이라." 이것은 요한복음의 중요한 주장이다. 예수는 여자를 "너희들"이라는 2인칭 복수 표현으로 사마리아인들을 대표한다고 간주하는 반면에, "우리"라는 1인칭 복수로 자기 자신을 유대인들을 대변하는 자로 간주한다. 여기서 "우리"는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하지 않는다. 참된 예배는 예수 안에 임재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은 예수 안에 임재하고 있는 하나님을 예배한다. 사마리아인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이며 하나님이 예수 안에 영으로 임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른다. 그러므로 예수는 사마리아인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유대인들은 "아는 것"을 예배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 안에 영으로 임재하는 하나님이 바로 구원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의 순간에도 그와 함께했으며, 그를 부활시켰다. 부활한 예수 안에 영으로 임재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참된 예배이고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지금까지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들은 그리심과 예루살렘이라는 분리된 장소에서 각각 따로 예배했다. 이제 갈라진 민족이 서로 화해하고 민족통일을 이루어서 하나님이 영으로 임재하는 예수 안이라는 새로운 자리에서 공동으로 드리는 예배가 바로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이러한 예배를 드리기를 원한다: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예수는 갈라진 민족이 하나 되어 예수 안에 영으로 임재하는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원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은 예수가 주는 생수를 경험하고 구원을 얻은 자들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참된 생명을 방해하는 차별과 불의에 저항하고, 약자와 억눌린 여성 편에 서고,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일한다.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여기서 "우리"는 여자를 포함한 사마리아인 전체를 가리킨다. 그녀가 메시아 오심을 기다리는 것은 차별당하는 사마리아인들의 구원과 갈라진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기다리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마지막 때 대리자이며, 그 역할은 심판자, 구원자, 해방자, 함께 싸우는 투사이다. 그리스도는 마지막 날 수많은 약자와 성도들을 희생하게 하는 폭력의 역사를 끝내고, 새로운 대안적 공동체를 시작할 것이다(참조, 계 22:1-5). 예수는 여자에게 자기 자신이 바로 그녀가 장차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그리스도임을 선언한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가 지금까지 그녀에게 설명한 이야기를 모두 잘 이해했다. 그녀는 성서 말씀과 이스라엘 역사에 대해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분열된 민족의 현실을 인식하고 갈라진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소망하는 여자다. 제자들이 돌아오자 수가의 우물가에서 나눈 예수와 여자의 긴 대화는 중단되었다.

그녀는 예수에게서 "생수"를 얻었으며, 그녀 자신이 남의 갈증을 해소해 줄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되었다. 여자는 객체에서 주체로 변화되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남의 시선을 피하면서 소외된 생활을 했지만, 이제 그녀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체험한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물동이를 우물가에 두고 사마리아 시내로 달려갔다.

그녀는 큰 소리로 외쳤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예수가 마지막 때에 일어날 "모든 것"을 그녀에게 알려 주었기에 그녀는 그를 그리스도로 믿었다. 그녀는 사마리아 수가에서 예수를 증언하는 증인이 되었고,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가 되었다. 그녀가 사마리아인들에게 예수를 그리스도로 선포한 것은 사마리아 선교의 시작인 동시에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화해를 촉진하는 민족 통일 운동이다: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그녀의 선교로 많은 사마리아인이 적개심과 편견을 버리고 유대인 예수를 메시아로 믿었다(참조, 행 8:4-25).

5. 결론

사마리아 여인 이야기는 인종적, 종교적, 사회적, 성적 타자성으로 형성된 경계들을 넘어선 화해와 민족 통일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분단, 차별, 억압, 배제의 사회에서 참된 생명을 타는 목마름으로 갈구했다. 그녀는 예수를 만나 생수를 경험하고 참된 생명을 얻었기에 불의한 환경과 서러움에도 객체에서 주체로 변화되었다. 그녀가 홀로서기를 결심하면서 주체 선언을 한 것은 참된 생명을 방해하는 불의한 권력관계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고,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가 없는 평등한 형제자매적인 공동체를 위한 희망을 의미한다. 예수는 그녀의 주체 선언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그녀는 마침내 사마리아인들에게 예수를 메시아로 선포하여 목마른 사람들 생명을 후원하는 선교사가 되었다.

그녀는 예수와 대화하면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오랜 적대감을 극복한 '치유와 화해의 경험'을 예배라는 공적 차원에서 여러 사람이 경험할 수 있도록 승화해, 갈라진 민족의 장벽과 차별을 허물고 형제자매적 민족 통일을 이루고자 희망했을 것이다.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들이 각기 그리심산과 예루살렘을 참된 예배 장소라 주장하지만, 예배 장소는 어느 한 곳으로 제한될 수 없다. 참된 예배 장소는 하나님이 영으로 임재하는 살아 있는 성전인, 죽임 당하고 부활한 예수 자신이기 때문이다. 예수 안에 영으로 임재하고 있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 올림픽을 축하하고자 내한한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의 서울 공연에서 단장 현송월이 부른 '백두와 한라는 내 조국'이라는 노래는 통일을 바라는 절절한 마음을 감동적으로 표현했다.

"해 솟는 백두산은 내 조국입니다.
한라산도 독도도 내 조국입니다.
백두와 한라가 서로 손을 잡으면
삼천리가 하나 되는 통일이어라.
아 통일 통일 통일이어라.

슬기로운 우리 겨레 한 핏줄입니다.
그리움 안고 사는 한 식솔입니다.
북과 남 형제들 서로 정을 합치면
우리 민족 하나 되는 통일이어라.
아 통일 통일 통일이어라."

오늘날 남녀 그리스도인들은 한반도 분단의 역사를 청산하고, 평화 체제를 구축하고 민족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북한 형제자매들과 연대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았다. 그러므로 북한을 악마화하고 평양에서의 예배를 가짜라고 부정하고, 서울에서의 예배만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분단 현상 유지 세력에 그리스도인들은 저항해야만 한다. 한국교회는 참된 생명을 향한 목마름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생수를 제공하는 생명의 후원자가 되어야 하며, 약자들과의 연대와 성평등과 여성 참여를 민족 통일 운동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고 실천해야만 한다.

이병학 / 한신대학교 신학과 은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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