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 '나는 예수님이 싫다僕はイエス様が嫌い'(2018)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편집자 주 |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간절한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다. 8월 8일 국내 개봉한 영화 '나는 예수님이 싫다'는 시골의 미션스쿨로 전학한 열두 살 유라(사토 유라 분) 앞에 손바닥만 한 작은 예수님(채드 멀레인 분)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친구가 생기게 해 주세요", "돈 좀 주세요" 등 소소한 기도를 들어주던 예수님은 '뜻밖의 사건' 이후 갑자기 사라진다. 유라의 소원은 이뤄지지 않는다.
'뜻밖의 사건'은 유라와 절친한 친구가 된 카즈마(오오쿠마 리키 분)의 교통사고다. 학교 선생님과 아이들은 매일 돌아가면서 치료해 달라고 기도하지만, 결국 카즈마는 죽고 만다. 카즈마 자리에는 국화가 놓인다. "기도했는데 소용없었어요"라며 침울해하는 유라에게, 선생님은 조문弔文과 기도를 부탁한다.
추도 예배에서 카즈마에게 쓴 편지를 조문으로 읽는 유라. 카메라는 절망스러운 표정의 카즈마 어머니를 비춘다. 편지를 다 읽고 기도할 차례가 되자 예수님이 모습을 드러낸다. 유라는 기도하지 않는다. 모은 두 손으로 쾅! 작은 예수님을 내려칠 따름이다. 놀란 선생님은 '묵념'하자고 말한다.
슬픈 사건을 마주할 때마다 "기도하자"는 말을 내뱉거나 듣는 일이 힘겹다. 인생에는 기도가 불가능한 순간이 찾아온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황지우의 '묵념, 5분 27초'는 제목만 있고 내용은 없는 여백의 시다. '5분 27초'는 계엄군이 시민을 유혈 진압한 날짜 '5월 27일'에서 따왔다. 폭력과 죽음, 공포와 분노가 뒤엉키는 현실을 두고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비극 앞에서 언어는 힘을 잃는다. 그저 5분여간 침묵할 뿐.
홀로코스트 이후 고통의 문제를 탐구한 신학자 요한 밥티스트 메츠는, 비극이나 고통 이후 기독교인에게 주어지는 과제로 '기억'과 '슬픔'을 제시한다. 예수의 십자가를 기억하듯이 고통당하는 자들, 죽은 자들을 기억하고 연대하는 것으로 희생자를 위로하고 다른 희생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자는 말이다. 기억에는 '슬픔'이 동반돼야 한다. 어떤 의미를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욥처럼 하나님을 향해 울부짖고 항변하며 슬퍼하는 일이 우선이다.
하나님을 향한 울부짖음, 항변은 고통에 감수성을 보이는 것이며, 전적으로 인간을 위해 이뤄진다. 유라에게 내려침을 당한 예수님은 '사라진다'. 침묵하시는 것 같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는 옆에 있는 인간을 향해 시선을 돌리게 된다. 우리 시대 이웃의 부르짖음에 대한 기억과 슬픔의 의무를 지키는 게 '기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