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누리가 주관하고 서울시가 지원한 '2019 평화저널리즘스쿨'이 6월 29일부터 8월 3일까지 매주 토요일 총 6회에 걸쳐 마무리됐습니다. '평화저널리즘'은 평화가 엘리트 권력자들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국가 정상의 입장만 보도하기보다는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풀뿌리 운동에 주목합니다. 이번 평화저널리즘스쿨은 한반도 평화 역시 국가 수장들에게 달려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배우고, 이 땅에서 한반도 평화를 꿈꾸고 행동하는 작은 목소리들을 찾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참가자들은 다섯 팀으로 나뉘어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단체를 취재했습니다. 그 결과물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내가 바로 빨갱이다!"

북한 출신 한 청년이 빨간색 '10'이 적힌 카드를 내며 외친다. 탈북민이 빨갱이라니. 남북 모두에게 민감한 단어지만 여기서만큼은 그렇지 않다. 남북 참가자들은 모두 손뼉을 치며 웃는다. 북한의 카드놀이 '사사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라고 한다. 게임을 하는 동안은 '금기어'가 없다. 남북 청년들이 경계를 허물고 함께 웃고 대화하며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

남한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사끼를 하고자 정기적으로 모이는 남북한 청년들이 있다. 처음에는 모여서 카드놀이만 했는데, 이제는 '남북 청년 문화 교류'라는 비전을 가진 단체로 발전했다. '오!각별' 이야기다.

2019 평화저널리즘스쿨에서 알게 된 오!각별은 '게임'을 매개로 남북 평화를 강구한다는 점에서 말 그대로 각별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초창기부터 핵심 구성원으로 활동해 온 오!각별 한가선 운영위원을 7월 27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사사끼는 북한 카드놀이다. 올해 5월 31일 열린 '사사끼와 함께하는 토크 살롱'. 사진 제공 한가선

북에서 누구나 즐기는 놀이
친해질 수 있는 최고의 매개체
"만나야 마음의 장벽 허물 수 있어"

사사끼는 북한 출신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고 즐기는 카드놀이다. 트럼프 카드를 활용하며, 참가자 4명이 둥그렇게 앉아 진행된다. 참가자들에게는 각각 카드 12장이 주어지는데, 일정한 규칙에 따라 카드를 내며 공격하기도 한다. 다른 참가자보다 먼저 모든 카드를 내면 승리한다.

한가선 위원은 남북 청년들이 함께 여행하는 프로그램 '남북 청년 한마음 한걸음'에서 사사끼를 처음 접했다. 그는 프로그램 이후 친해진 구성원끼리 지속적으로 만나 이 놀이를 했다. 이들은 사사끼를 남한 사회에 널리 알려야겠다고 생각해, 작년 6월 '끼모임'이라는 동호회를 만들었다.

"남북 청년 한마음 한걸음 이후, 개인적으로 친해진 구성원끼리 카드놀이를 하게 되었어요. 그때 사사끼를 처음 알게 되었죠. 북한 출신 친구들은 다 알고,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면서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게임이었어요. 나만 알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가선 위원은 사사끼가 북한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최고의 매개체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사사끼를 하면서 서로를 속이기도 하고 심리전을 벌이면서 많이 웃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친해질 수 있었다.

북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잘한다는 점도 의미가 있었다. 남한 사회에서 북한 이탈 주민은 대부분 연민 또는 수혜 대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사사끼를 할 때만큼은 이들이 주체가 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오!각별은 사사끼 대회를 정기적으로 열 계획이다. 사진 제공 한가선

끼모임 청년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사사끼를 통해 관계를 맺어 나갔다. 지난해 10월에는 처음으로 사사끼 대회를 열기도 했다. 남북 출신 청년 40여 명이 참가해 상금을 걸고 진행했다. 대회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남북 청년 사이로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다.

"평화란 '관계'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한반도를 사랑하는 청년들이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느냐가 제일 중요해요. 결국 북한 이탈 주민을 '직접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관계를 형성하려면 불신, 두려움, 편견, 마음의 장벽을 허무는 일이 중요하잖아요. 만나 보지 않고서는 마음의 장벽을 허물기가 어렵겠죠.

한반도 평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북한 이탈 주민들을 적극 만나 보았으면 좋겠어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국가나 지도자에게만 맡기지 말고, 풀뿌리 차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해 나가야 해요. 그게 저는 관계 형성이라고 생각해요."

오!각별 한가선 운영위원은 "평화란 관계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한가선

놀이 모임이 비영리단체로
남북 문화 교류 구심점 꿈꾼다

끼모임은 남북 청년 문화 교류 단체 오!각별로 발전했다. 비영리단체로 발전시켜, 사사끼에만 국한할 게 아니라 더 넓은 영역에서 활동하자는 취지다. 북한에서는 별을 오각五角별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느낌표를 넣었다. 문화 공간에서 남북 청년이 만나 소통하고 교류하며 각별한 관계를 쌓아 가자는 의미다.

한가선 위원은 오!각별에 남북 청년 문화 교류의 구심점이 되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고 말했다. 남한에는 북한 이탈 주민과 교류하는 여러 단체가 있는데, 이들을 묶어 주는 단체가 없다. 다양한 영역의 단체가 함께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네트워크를 꿈꾼다.

사사끼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남북 청년 간 대화가 오간다. 사진 제공 한가선

오!각별은 크게 4가지 사업을 하고 있다. △사사끼 등 놀이 문화를 통한 남북 청년들의 정기적 문화 교류 공간 창출 △사사끼 대회 개최 △북한 문화(언어·음식·놀이·예술 등)를 남한 주민들에게 알려 주는 클래스 운영 △북 출신 영상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유튜브 채널 운영.

남북 청년 문화 교류의 장을 경험하고 싶다면, 누구나 오!각별 모임에 참여할 수 있다. 오!각별 소식과 모임에 대한 정보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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