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누리가 주관하고 서울시가 지원한 '2019 평화저널리즘스쿨'이 6월 29일부터 8월 3일까지 매주 토요일 총 6회에 걸쳐 마무리됐습니다. '평화저널리즘'은 평화가 엘리트 권력자들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국가 정상의 입장만 보도하기보다는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풀뿌리 운동에 주목합니다. 이번 평화저널리즘스쿨은 한반도 평화 역시 국가 수장들에게 달려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배우고, 이 땅에서 한반도 평화를 꿈꾸고 행동하는 작은 목소리들을 찾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참가자들은 다섯 팀으로 나뉘어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단체를 취재했습니다. 그 결과물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중요한 것은 변방이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방 의식은 세계와 주체에 대한 통찰이며, 그렇기 때문에 변방 의식은 우리가 갇혀 있는 틀을 깨뜨리는 탈문맥이며, 새로운 영토를 찾아가는 탈주脫走 그 자체이다. 변방성 없이는 성찰이 불가능하다." (신영복, <변방을 찾아서>, 26~27쪽)

북한과 민간 교류를 지속해 온 사단법인 하나누리는 올해 2월 동북아연구원(조성찬 원장)을 출범했다. 이를 위해 1월 북·중·러 접경지대 '라선 특구'에 다녀온 조성찬 원장은, 그곳에서 신영복 교수가 쓴 '변방'을 떠올렸다. 세 나라의 변방 지역을 돌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7월 30일, 서울 은평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한반도 현장에서 '동북아 평화 체제 구축'이라는 비전을 어떻게 구현할지 그리고 있었다.

"라선에 대한 우리 이미지는 한국에서 굉장히 먼 곳, 외딴 곳, 변방 정도의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경제협력 사업을 진행하는 걸 보면서, 새로운 변화가 변방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성찬 원장이 2019년 1월 방문한 북·중 접경 지대. 중앙에 흐르는 두만강을 중심으로 왼쪽은 중국 도문시, 오른쪽은 북한 남양시. 사진 제공 동북아연구원

조성찬 원장은 중국인민대학교에서 북한·중국 토지제도를 연구했다. 이후 '토지+자유연구소'(남기업 소장)에서 북·중연구센터장을 맡으며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토지문제에 관심을 쏟았다. 토지+자유연구소가 2016년 하나누리와 통합하면서, 조 원장은 하나누리가 진행하는 북한 라선특별시 사업에 합류해 연구 주제를 확장할 수 있었다.

하나누리는 2009년 북한 주민 자립을 위해 라선 지역에 협동농장을 시작했다. 조 원장도 협동농장 사업에 참여했다. 그는 한반도 변방으로만 알고 있던 라선이 동북아 여러 국가 관계에서 중요한 거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라선 지역을 단순히 미시적·인도적 수준으로 지원하는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역사·지리·도시계획 등 전략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동북아연구원'을 출범했다.

"개발 중심 협력에 그쳐선 안 돼
EU 토대 된 석탄철강공동체서 배워야"

"남한이나 북한이나 모두 잘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요. 이러한 발전·개발 욕구를 인정하면서 다른 주체들과 어떻게 상생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고 있어요."

동북아연구원은 동북아시아 평화 체제 구축이라는 목표를 위해 두 가지 전략을 세웠다. 첫 번째 전략은 상생 발전이다.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많은 자본이 북한에 진출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득이 되면 좋겠지만 독이 될 가능성도 있다. 남한 사회만 보더라도 자본과 토지 개발 욕구가 다수를 착취하고 고통을 주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부작용을 막기 위해 동북아 여러 자본의 참여를 인정하면서, 다른 주체와 상생할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두 번째 전략은 평화 관계 구축이다. 상생 발전을 계기로 정치·역사·문화 맥락에서 갈등 관계를 푸는 방식이다. 개발 중심 협력은 불안하다. 조성찬 원장은 "대륙 세력을 대표하는 중국·러시아와 해양 세력을 상징하는 일본 간 갈등은 여전히 근현대사의 과제이며, 남북 관계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변수이다"고 말했다.

조 원장은 북·중 접경지대 기행에서 방문한 중국 훈춘시에서 개발 중심 협력의 한계를 느꼈다고 했다. 중국은 북한·러시아와 붙어 있는 훈춘시를 2012년 중국훈춘국제합작시범구로 지정했다. 이후 북·중·러 3국은 2015년 훈춘시 방천防川을 두만강관광합작구로 지정했다. 즉 세 나라가 함께 관광 구역을 설정하면서, 1구 3국 공동 관리 모델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하산(왼쪽), 중국 방천(가운데), 북한 두만강(오른쪽)이 만나는 접경 지역에 꽂혀 있는 세 나라 국기. 사진 제공 동북아연구원

"유럽연합은 전쟁 당사자인 독일과 프랑스의 '석탄철강공동체'라는 모델로 발전했어요. 이러한 사례가 한반도에 주는 시사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조성찬 원장은 북·중·러의 공동 관광 특구를 보면서 유럽연합 초기 모델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를 떠올렸다. 당시 프랑스 외무장관 로베르 쉬망은 냉전 당사자인 독일과 프랑스 간 갈등 방지를 위해 새로운 경제·정치 질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유럽 여러 국가는 석탄·철강 분야를 공동으로 관리하자면서 ECSC를 출범했다. 이는 향후 유럽연합의 토대가 되었다.

"북·중·러가 함께 공동 이익을 창출하려는 시도가 단순히 경제협력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당사국들이 이를 기반으로 어떻게 동북아 평화 체제로 전환할 수 있을지가 동북아연구원 핵심 연구 과제예요."

사회적 경제 통한 평화 체제
"북한, 협동조합 향한 인식 바꿔야"

동북아연구원은 '사회적 경제'를 통해 평화 체제를 구체적으로 형성하려고 한다. 현재 하나누리는 라선시에 '용평 자립 마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주민에게 무이자로 농업 자금을 대출하고, 이들이 스스로 자립 계획을 세우도록 돕는다.

북한 사회 내에서도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를 통해 공공 토지 임대제와 같이 토지를 자유롭게 쓰되 국가에 30%를 사용료로 납부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북한 역사를 살펴봐도 협동조합이 1950~1960년대에 경제가 발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으며, 현재 장마당에도 소비협동조합이 남아 있다. 개인의 자율성을 인정하면서도 국가와 경제주체가 계약관계를 취하는 형태다.

"북한은 협동조합을 표방하면서도 과도기로 간주하는 반면, 쿠바는 2011년 협동조합기본법을 만들어서 사회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선언했어요. 두 국가 모두 사회주의국가인데 협동조합에 대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 제23조는 "국가는 협동단체에 들어 있는 전체 성원들의 자원적 의사에 따라 협동단체 소유를 점차 전 인민적 소유로 전환시킨다"이다. 북한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 협동조합을 과도기로 간주한다.

쿠바는 협동조합을 '사회 연대 경제'라는 표현을 통해 장기적으로 중요한 요소로 규정했다. 쿠바의 사회 연대 경제는 사회적 경제를 자본주의 대안으로 보는 유럽 및 한국의 관점과 다르다. 사회주의와 유사하면서 연대를 강조하는 포괄적 경제 시스템을 뜻한다.

조성찬 원장은 북한도 쿠바처럼 협동조합을 과도기가 아닌 경제 발전의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하기를 바란다. 이렇게 되면 한국과 북한 협동조합 사이에 긴밀한 교류가 가능해진다. 북한의 이데올로기를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협동조합 형태를 통해 상생 발전을 위한 경제 교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의 사회적 경제 주체는 심포지엄, 세미나, 다양한 실험 등으로 사회적 경제가 서로에게 이득이 된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전해야 한다.

사회적 경제와 평화 체제의 관계를 설명 중인 조성찬 원장. 사진 제공 이상원

이런 차원에서 동북아연구원은 사회적 경제를 주제로 다양한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올해 6월 제1회 라선 포럼을 열어, 동북아 정치·경제적 시각에서 라선 특구를 조명했다. 조 원장은 지난달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주최한 '서울 사회적 경제 국제 컨퍼런스'에 참석해 '토지 기반 자립 지원 전략으로서 사회적 경제'를 주제로 발표했다.

9월 6일에는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사회적 경제를 통한 남북 인도 지원 및 도시 협력 모델 탐색'이라는 주제로 '2019 서울-평양 사회적 경제 심포지엄'을 연다. 9월 23~27일에는 서울 중구 희년평화빌딩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2019 서울-평양 사회적 경제 아카데미'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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