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노량진수산시장은 고요했다. 평소 상인과 행인들로 북적였을 장터는 황량했고, 대다수 점포는 주인을 잃었다. 싱싱한 물고기와 해산물이 담겨야 할 스티로폼 박스와 수조는 부서졌고, 상가 현판은 아무렇게 방치됐다. "철거 임박", "신 시장 이전", "투쟁"이라고 적힌 빨간 글씨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신학교 학생들과 청년들이 만든 옥바라지선교센터는 8월 12일 노량진수산시장을 찾았다. 이들은 이날부터 2박 3일간 진행하는 '2019 반빈곤 연대 활동' 일환으로 노량진수산시장을 방문했다. 옥바라지선교센터를 포함해 감신대 도시빈민선교회·예수더하기, 장신대 암하아레츠, 한신대 민중신학회, 한신대 신대원 민중신학회, 협성대 참여신학회 예수걸음 등 기독 청년 30여 명과 상인 30여 명은 시장 입구에 쌓인 폐기물 앞에서 현장 예배를 드렸다.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은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수협)가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갈등을 겪기 시작했다. 수협은 1971년 지어진 구 시장 건물이 시설 노후화로 안전 우려가 있다며 2004년 '수산물 도매시장 현대화 사업 정책'을 결정했다. 2241억 예산에 구 시장 건물 옆에 지하 2층 지상 6층짜리 건물을 신축하겠다는 계획이다. 공사는 2012년 시작해 2015년 10월 끝났다. 

이때부터 갈등이 본격화했다. '현대화'라는 거품이 꺼지고 새 건물이 모습을 드러내자, 상인들은 분노했다. 사업 초기에 듣던 것과 달랐기 때문이다. 이날 시장에서 만난 한상범 공동위원장(노량진수산시장현대화비상대책총연합회)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사용하는 점포가 똑같이 수평 이동하는 거라고 들었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건물을 계획보다 작게 지어 점포 공간이 이전보다 협소해졌다. 반면, 임대료는 두세 배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새 건물은 통로가 좁아 점포마다 진열 공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어떤 곳은 앞에 기둥이 있어 손님들이 이동하기 불편하고, 어떤 가게는 냉장고 하나 두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입주를 거부하고 대책위를 조직했다. 이들은 시설이 낙후해도 괜찮으니 이전처럼 구 시장에서 계속 장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임대료도 계속 내겠다며 시장 존치를 주장했지만, 수협은 2016년 3월 임대차계약을 종료했다. 이어서 명도 소송을 진행해 2017년 7월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았다. 

수협은 구 시장에 있는 상인들의 점포와 부대시설을 철거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명도 소송에서 이긴 수협은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왔다. 구 시장에서 버티고 있던 점포들을 대상으로 2017년부터 최근까지 여러 차례 강제 철거를 진행했다. 8월 9일에는 10차 집행이 있었다. 수협은 이날 오전 6시 직원 90명과 법원 집행 인력 60명을 동원해 마지막 남은 점포와 부대시설을 철거하고 명도 집행 완료를 선언했다. 구 시장 곳곳에는 지금도 집행 흔적으로 폐기물들이 나뒹굴고 있다. 

수협은 명도 집행 다음 단계로, 구 시장 건물 철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상인들은 끝까지 싸우겠다는 입장이다. 이날 예배에서 현장 증언을 전한 윤헌주 공동위원장(노량진수산시장현대화비상대책총연합회)은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사회 모습을 반영한다. 가진 자들이 권력과 종교의 힘을 빌어 사회에 군림하고 없는 사람들을 탄압하고 있다. 고통받는 세대가 더는 안 생기도록 우리가 열심히 싸우겠다"고 말했다. 

윤 위원장은 수산시장 상인 680여 명 중 80여 명이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했다. 자체 발전기로 물과 전기를 공급하며 장사를 재개하고 농성하며 구 시장을 지키겠다고 했다. 

상인들은 끝까지 버티겠다는 입장이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상인들 너머로 신 시장 건물이 보인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한 상인은 명도 집행에서 수산물을 모두 빼앗겼는데도 다시 장사를 시작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날 예배에서 설교를 전한 이진경 교수(협성대)는 하나님을 신뢰하자고 말했다. 그는 "믿음이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에게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한다는 사실을 끝까지 믿자. 현재 상황에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를 지켜 줄 그분을 신뢰하자"고 말했다. 

신학생들과 기독 청년은 상인들을 위해 기도했다.

"당해도 당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강제집행이 이곳을 또 쓸어버렸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얼마나 당했는지 모릅니다. 곳곳에 있어야 할 가게들이 사라졌고, 텅 빈 공간들은 남아 있는 우리에게 절망만 가져다줍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이곳을 위로하시고, 다친 상처들을 어루만져 주소서.

수협의 횡포는 불도저처럼 들어오고, 서울시는 이곳의 목소리를 외면합니다. 사방의 사람들은 우리를 조롱하고 우리는 이 어두운 곳에 고립되었습니다. 당신께서는 우리를 외면하지 말고, 강제집행의 폭력을 벌하셔서 정의를 바로 세우소서."

이들은 예배를 마치고 상인들과 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십자가를 들고 텅 빈 가게 사이를 지나갔다. 한목소리로 떼제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의 정의는 법 너머에 있다", "투쟁으로 꼭 승리하자"는 구호를 외쳤다. 한상범 위원장이 행렬 도중에 멈춰 서서 말했다.

"이렇게 넓은 통로가 손님들로 가득해 발 디딜 틈 하나 없었다. 상인들은 부분 존치라도 얻어 내 시장을 지키고 싶다. 지난 50년간 수많은 시민의 추억이 담긴 그때 그 모습으로 복원하고 싶다."

기독 청년들과 상인들은 텅 빈 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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